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97)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97화(97/101)
제97화
기획 실장은 어디 한번 저를 설득해 보라는 표정으로 정이원을 바라봤다.
“…저희가 이번 타이틀 곡을 ‘Find’로 정해서 얻고자 하는 효과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멤버들이 작사와 편곡도 할 수 있는 능력자이자 준비된 그룹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곡이 완성된 ‘Starlight’보다 살짝 부족한 점이 있는 ‘Find’를 저희가 완성하여 만드는 것이 타이틀 곡으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요, ‘Find’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Starlight’도 좋은 곡이지만 들을수록 기억에 남는 힘은 ‘Find’가 더 강합니다. 작곡가 M스타 님 역시 이 부분에 동의하셨고요. 그리고 저희는 데뷔 앨범인 만큼 곡 자체가 사람을 이끄는 곡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흐음. 앉아 있던 회사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이야기가 먹히고 있었다. 정이원은 판을 깔아주면 그만큼 제 역할을 하는 녀석이었다.
“마지막은?”
이제 마지막 이유만이 남았다. 이번에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냥 ‘Starlight’로 해야지 뭐.
“마지막은 저희가 완성한 ‘Find’를 들어주세요. 들어보시고도 ‘Starlight’가 더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저희도 회사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맨 처음엔 버벅거리더니 이제 제법 박력이라는 것이 생겼다. 작곡가에게 허락도 맡았고 미리 검수도 받았다. M스타는 꽤 귀찮아는 했지만 미리 들어보고 나서는 태도가 달라져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분명 회사에도 먹힐 것이다.
기획실장이 눈짓하자 정이원이 음원을 재생했다. 주지호가 가사를 완성하자마자 급하게 휴대폰으로 녹음한 가이드였다. 1절 후렴부터는 그냥 청우가 쭉 녹음하긴 했지만.
-저 빛 속에서 추락하고 있어 날 잡아줘
난 숨 쉬고 싶어 일으켜줘.
“흐음?”
‘Find’나 ‘Starlight’의 시작은 비슷한 인상이겠지만 부른 사람의 호소력이 다르다. 정제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청우가 전달하고 싶었던 감정이나 노래의 흐름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호소력 짙은 노래에 성가시다는 듯 앉아 있던 회사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제대로 듣기 위해 허리를 세우고 꼬았던 다리들이 풀렸다. 표정도 훨씬 진지해졌다.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실무진들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어, 어떠세요?”
멤버들이 커다란 회의실 테이블 아래로 손들을 마주 잡았다. 제발 통과되어야 할 텐데! 제발!
“나쁘지 않네요. 그래요. 그럼 이걸로 타이틀 갑시다. 근데 ‘Find’는 가제인 거 알죠? 제목도 지어와요. 가사는 음절이 어색하거나 라임이 안 맞는 파트가 있어서 작사팀에게 맡겨서 검수하고 완성하겠습니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기획 실장이 회의 자료를 탁탁 정리해서 나가버렸다. 다른 직원들도 짐을 챙겨서 일어났다. 의자 끄는 소리가 사라지고 모두가 나간 자리에 멤버들만이 긴장이 풀린 채로 앉아 있었다.
“야, 해냈다!”
“이게 되네? 타이틀 곡을 우리 손으로 수정하고 골랐어!”
하하하하. 멤버들이 일어나서 서로 등을 치며 격려했다. 최대한 아닌 척하고 싶었지만 가장 긴장했던 정이원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여러 손이 불쑥 튀어 나왔다.
“형! 수고했어요, 역시 우리 리더!”
“안 떨고 진짜 말 잘했어요!”
“수고했다, 짜식.”
동생이고 동갑이고 마구잡이로 머리를 헝클어트렸지만 정이원은 마냥 해맑은 너털웃음만 허허 웃었다.
“야, 근데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우리 진짜 성공할 수 있는 거야? 막 나중에 까봤더니 ‘Starlight’가 더 인기 있고 타이틀 왜 그딴 거 뽑았느니 그렇게 되는 거 아니겠지?”
“그건 하기 나름이지, 인마.”
곡이 잘 나온다고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곡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아직 녹음도 하지 않았고 안무도 최종 완성되지 않았다.
“이제 즐겼으면 일어나. 다음 작업 시작해야지.”
냉정한 청우의 말에 기뻐하던 멤버들이 터덜터덜 일어났다.
“맞는 말인데 쟨 왜 저렇게 애가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냐.”
“그러게요.”
지금 이 순간이 기쁨이 될지 후회가 될진 청우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움직여야 했다.
***
타이틀도 확정되었겠다, 최종 완성본만 나오고 음원 녹음하면 앨범은 완성이다. 앨범 제작과 뮤직 비디오 등 앨범 릴리즈에 필요한 건 회사에서 알아서 할 테고 남은 건 멤버들이 자다가 일어나서도 타이틀 노래를 부르고 안무를 출 수 있게 몸에 익히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멤버들은 각자 바쁘게 움직였다. 안무와 보컬 레슨 및 연습은 물론이고 각 멤버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수업이 추가되었다.
그 덕에 청우는 팔자에도 없던 영어 레슨을 받게 되었다. 청우의 엄청난 영어 실력을 알게 된 강 실장이 특별히 회사에 요청해서 회화 위주로 일주일에 두세 번씩 수업을 듣게 되었다. 다른 멤버들은 직전 소속사에서 외국어 레슨을 받았고, 미카엘은 캐나다 출신이라 청우의 영어 실력이 처참히 비교됐다.
‘이청우’는 그래도 학교도 다녔으니 수준이 더 나았을 텐데. ‘이청우’가 도와줄 수도 없으니 청우는 알파벳부터 새로 배워야 했다.
거실에 모여 멤버들과 외국어 레슨 숙제를 하던 청우는 헬로 에브리원을 다섯 번 정도 쓰다가 다시 폭주했다.
“…내가 왜 이 꼬부랑 글씨를 배우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옆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던 정이원이 청우를 진정시켰다.
“겨우 헬로 써 놓고서 왜 그러는 거야.”
“다녀왔습니다.”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오늘도 M스타의 작업실에 다녀온 김해월이 비척비척 걸어들어왔다.
“해월쓰, 곡 다 됨?”
“거의 다 됐어요. 내일은 녹음할 것 같은데요. 형 각오해요.”
형의 실력을 한계까지 끌어내 주겠다며 김해월이 음침하게 흐흐 웃었다.
잘 나오면 좋지, 청우가 지겨운 얼굴로 이제 나이스 투 미츄를 끄적거렸다. 그때 보컬 개인 레슨을 마치고 온 주지호와 이덕진이 숙소로 들어왔다.
“왔어?”
“…어.”
이상하게 둘 다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무슨 일 있었나?
“쟤네 얼굴이 왜 저래.”
혹시 이 녀석도 모르면 직접 물어봐야지 했는데 역시나 오지랖 대마왕 정이원은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다.
“우리 최종회 방송 다 나갔잖아. 댓글 안 봤어?”
너튜브는 공식 채널이었기에 문제될 만한 댓글은 전부 신고되어 깨끗하던데. 아, 물론 최종 등수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별 내용 없던데?”
“공식 말고. 인터넷에 난리였어. 순위 조작한 거 아니냐고.”
순위 조작이란 말에 청우의 눈썹이 불만스럽게 삐죽 올라갔다. 1등이 자신인데 순위 조작 소리가 나온다는 건 자신이 부족했다는 뜻일까?
“왜? 역시 내가 1등 된 게 좀 이상했나? 투 센터로 억지로 올라갔대?”
“아니, 너 말고. 너야 계속 3위 안에 있었으니 1위로 가는 게 이상하지 않았지. 마지막 그 유출 건도 너만 피 봤다고 너네 팬들 빡쳐서 총공한 것 같던데. 너 말고 지호 말이야.”
이야기가 길어지자 정이원이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물이나 마시자며 정이원이 부엌으로 청우를 끌었다.
“걔네 아빠가 JH식품 이사잖아. 할아버지가 JH그룹 회장이고. 누가 알아내서 다 퍼트렸나 봐. 그걸 아니까 사람들이 괜히 주지호 뽑힌 게 JH에서 힘쓴 거 아니냐고 난리더라고. 개연성이 없다나.”
“설마? 야 걔 얼굴이 개연성이지.”
“그건 맞지. 근데 또 떨어진 애들 팬들이 보긴 좀 그렇잖아? 재벌 3세가 와서 불쌍한 우리 애들 밀어낸 거 같고. 게다가 율리 형 밀어내고 붙은 느낌이잖아. 사실 좀 구성이 그렇긴 했어. 율리 형이 그간 얼마나 고생했냐. 그거 다 방송으로 나가기도 했고. 거기에 덕진이도 덩달아서 듣보가 올라왔다고 다들 막 까고 그랬어. 내가 다 상처던데 쟤들도 그걸 다 봤더라. 지호는 작게 뉴스에도 나왔어. 재벌 3세 손자가 아이돌 데뷔한다고.”
“그건 현지원이랑 윤시오 같은 애들이 딴 데서 데뷔한다고 다 빠져서 그런 거 아냐?”
“내 생각도 그렇긴 한데 밖에선 그런 사정은 모르니까. 그래서 현지원도 떨어졌는데 돈으로 한 거면 걔도 붙였어야지, 하면서 지호네 팬들이 막 쉴드 치고 그러더라.”
어차피 좀 지나고 나면 잠잠해질 거라며 원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팬들과 얽혀서 이런저런 의혹이 올라온다고 정이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아는 척은 하지 마. 그냥 두면 잠잠해질 거야.”
“그래.”
청우의 생각도 비슷했기에 고개만 끄덕였다. 지호의 순위가 마지막에 좀 올라서 해서 놀라긴 했지만 청우는 아직도 주지호랑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너무 잘생겨서 종종 놀라곤 한다.
여기가 아니었어도 본인이 의지만 있었다면 분명 데뷔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엄청난 수준의 몸치를 고쳐주긴 했지만. 예전의 그 몸짓은… 재앙이었지.
어쨌든 위로 올라가면 누구든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직 다들 사회 경험이 적고 나이가 어린 편이라 남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깊이 생각이 매몰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도 많이 겪다 보면 스스로 시련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게 되니 다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게다가 둘 다 남의 말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이니 뭐.
어설프게 위로하느니 일단은 그냥 두는 게 낫겠다며 청우가 다시 영어를 끄적거렸다. 더 심각해지거나 그러면 그때 가서 이야기나 들어주지, 뭐. 결국 본인이 이겨내야 하는 거니.
오후에는 ST 엔터에서 마련해 준 연습실로 향했다. 새로운 멤버에 맞춰 다시 구성한 〈wild〉와 〈난 준비됐어〉 안무 레슨 시간이었다. 곧 부산 뮤직 어워드 공연도 있었기에 매일매일 안무 및 라이브 연습은 필수였다.
“여기서, 빠-밤! 힘주고 다시 한 바퀴!”
쉴 틈 없는 강행군에 멤버들의 체력이 많이 빠져 있었다. 강 실장은 그런 멤버들이 안쓰러웠지만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휴식 시간을 줄 수가 없었다.
체력이 빠져 안무 디테일이 흐트러지자 안무 트레이너가 휴식 시간을 주었다. 강 실장과 막내 매니저 김규빈은 음료수를 사오겠다며 서둘러 연습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휴, 죽겠다.”
정이원이 바닥에 털썩 대자로 쓰러졌다.
다들 비하인드 영상용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든 말든 일단 누워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워터뭐시기라는 화장품으로 티 안 나게 다시 고친 화장 때문인지 힘들어서 널브러졌는데도 반짝거리는 얼굴이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다.
체력이 약한 편인 김해월은 이미 말할 힘도 없는지 벽에 기댄 채 죽은 듯 엎드려 있었고 오로지 미카엘만이 멤버들에게 물도 가져다주고 땀 닦을 수건도 가져다주고 있었다.
청우는 돌아다니며 주지호의 뭉친 기혈도 풀어주고 김해월에게는 내력도 조금 넣어주었다.
“덕진아, 괜찮냐? 물 좀 마셔. 특별히 홍삼 타줬다.”
홍삼물을 주면서 등을 몇 대 두드리며 근육을 풀어줄 생각으로 이덕진에게 다가간 청우는 순간 걸음을 흠칫 멈추었다.
“너, 왜 그래!”
무릎을 세운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쉬는 줄 알았던 이덕진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왜, 왜 울어.”
눈물 콧물이 줄줄 흘러내린 얼굴은 차마 볼꼴 못 볼꼴 다 보고 산 청우라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주위 눈치를 한 번 살핀 청우는 정이원에게 카메라 돌리라는 신호를 주고는 수건으로 이덕진의 얼굴을 가려주었다.
“크흐흑, 훕”
“자, 흥해, 흥.”
으윽, 기루에서 일하면서 길 잃은 어린애들 코 닦아 준 뒤로는 처음이다. 청우가 질색하는 표정을 짓건 말건 눈물범벅의 이덕진은 하소연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몸이 힘들어지니 겨우 버티던 마음이 더 약해진 모양이었다.
“혀어엉, 저 어떡해요, 엉엉. 그만둘까 봐요. 허어엉.”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한다. 정이원과 미카엘이 시선을 끌어준 덕에 아무도 이쪽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청우가 이덕진의 뒤통수를 한 대 쳤다. 겸사겸사 머리가 맑아지라고 내력도 넣어줬다.
퍽.
“아야야야. 혀어어엉, 저는 도움도 안 되고, 허엉, 춤도 못 추고……!”
머리가 조금 맑아지긴 한 듯 이덕진은 똑바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진짜 순위 조작이라도 한 건지……! 흐읍, 진짜 요행으로 데뷔한 것 같아요. 어떻게 제가 율리 형을 제치고 올라와요. 형이나 이원이 형, 미카엘은 말할 것도 없고 해월이는 노래만 잘 부르는 게 아니라 곡도 잘 쓰고! 지호 형은 얼굴이 사기인데 가사도 잘 쓰고! 저만! 흐엉어어어엉!”
물론 제대로 된 문장으로 개소리를 했지만 말이다. 청우는 어디까지 기가 죽었는지 보자 싶어서 아무 말 않고 덕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 그만둘까 봐요!”
야! 그건 아니지!
청우는 예상외의 발언에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뜨고 덕진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