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dol, but I'll show up RAW novel - Chapter (98)
아이돌이지만 등선하겠습니다-98화(98/101)
제98화
안 그래도 없던 자신감이 바닥을 뚫고 나간 이덕진을 보며 청우가 인상을 구겼다.
‘아, 이런 건 내 전문이 아닌데.’
지금 여기서 자신이 위로해 줘야 하는 타이밍이란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곳 젊은 애들한테는 뭐라고 위로해 줘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그, 그래도 네가 춤으로 치자면 우리 중 4등쯤은 될 거고, 노래도 한 3등은 되잖아? 얼굴이야 주지호는 아무도 못 따라가고, 따지고 보면 전체에서 너도 데뷔할 만해서 된 거겠지. 그럼 춤을 더 연습할까?”
“그게 아니에요! 허엉, 형은 제 마음을 너무 공감 못 해요. 형 T예요?”
그놈의 T. 전에도 들었던 기억에 청우가 벌떡 일어났다. 다른 묘수가 있을까 하여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안 되겠다. 역시 이런 나약한 정신에는 답이 하나다.
아무 생각 할 수 없을 때까지 굴리면 된다.
“네가 편하니까 잡생각이 드는 거야. 세공사분들이 귀한 시간 내서 뽑아주신 데에 감사해하며 보답하진 못할망정 그만둬? 그런 나약한 생각 할 시간에 발이나 더 움직이고 손이나 더 쫙쫙 뻗어. 데뷔할 만하니까 했겠지. 네가 아니면 또 누가 했겠냐! 일어나!”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청우의 모습에 이덕진이 훌쩍,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럴까요?”
“그럼! 앞으로 살면서 더 힘든 일이 많을 텐데 이 정도로 나약하게 굴면 아무것도 못 해. 내가 보기에 너 정도면 괜찮아. 부족한 점이 있으면 앞으로 형이 다 고쳐줄게. 걱정 마.”
청우가 이덕진의 어깨를 토닥이며 일으켜 세웠다. 질색하며 수건으로 얼굴도 빡빡 닦아주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말했다.
“서당개도 삼 년간 매를 맞으면 풍월을 읊을 수 있게 된단다.”
“그건, 제가 아는 거랑 다른데 어디 속담이에요?”
“응, 있어, 하오문이라고.”
개방에서 괜히 타구봉이 유명한 것이 아니다. 개방이나 하오문이나 공통점은 가장 사회 밑바닥에 있는 인간들을 모아서 제대로 사람 구실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자, 넌 할 수 있어.”
“…네!”
묘한 박력에 이덕진이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한동안 〈블링돌〉 내에서 유명했던 악마교관 이청우의 부활이었다.
“일단 다시 굳은 몸부터 움직일 수 있게 해볼까?”
이제 상황이 정리되었나 거울로 슬쩍 확인하던 정이원이 이덕진의 등을 팡팡 두드리고 있는 이청우를 보더니 눈 마주칠 새라 얼른 고개를 돌렸다. 살짝 눈이 돈 것이 저럴 때 마주치면 같이 끔찍한 꼴을 당한다.
“얘들아, 오늘 덕진이는 숙소 못 갈 거 같다. 우리끼리 얼른 연습하고 우리는 집에 가야겠어. 빨리빨리 움직여.”
“왜요? 같이 하면 안 돼요? 저도 연습 열심히 할 거예요!”
〈블링돌〉 중반까지도 한 번도 청우와 얽혀본 적이 없는 미카엘이 해맑게 이야기하며 청우 쪽으로 총총 달려갔다.
“쟤는 열심히 수준이 아닌데.”
“맞아요. 기절할 것 같은데도 형이 안마해주면 간신히 정신만 차려지는데, 그때 일어나면 다시 기절할 때까지 굴리더라고요.”
정이원이 악마의 소굴로 달려가는 미카엘을 보며 아련히 말하는데 김해월이 덧붙였다.
“그게 무한 반복이지. 정신 차리면 식당에 끌어다 놓고 또 정신 차리면 식당이더라고.”
“밥은 먹여주는 게 어디에요.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어후우. 정이원과 김해월은 서로 진저리를 친 후 주지호를 일으켜 연습을 시작했다.
“지호야, 넌 얼굴이 모든 개연성이니까 외모를 잘 갈고 닦는 게 네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요, 형. 저 속에 가지 말고 우리랑 정상적인 사람들끼리 연습해요.”
어느새 부채까지 꺼내서 틀린 동작마다 탁탁 고쳐가며 연습시키는 청우의 모습을 본 주지호도 지금은 우울해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저쪽을 외면한 채 연습에 몰두했다.
“엥? 다들 기운 차렸네? 역시 젊은 게 좋긴 좋구나. 얘들아, 음료수 마시면서 해!”
음료수를 사와 널브러진 멤버들을 챙겨줄 생각을 했던 강 실장은 다시 펄펄 연습하고 있는 멤버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세 시간까지는.
“야, 청우야! 그만해! 애들 죽는다!”
“아직이에요! 춤추다 죽은 사람은 없어요!”
“있어! 있을 거야! 내일도 일찍부터 일정 있단 말이야!”
쉴 틈 하나 없이 움직이다가 쓰러지면 청우가 두드려 일으켜 세워 내력을 넣어주고 다시 기운이 다 떨어지면 또 일으켜 내력을 넣어주며 세 시간 동안 빨간 구두 이야기에 나오는 소녀처럼 춤만 춘 이덕진이 강 실장의 구출에 드디어 마음 편히 널브러질 수 있었다.
“사, 살려줘요, 형.”
아직 저 녀석 말할 힘이 있는 것을 보니 더 할 수 있다며 날뛰는 청우를 멤버들이 제압하고서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야수나 다름없이 날뛰는 청우를 기절하다시피 한 이덕진을 제외하고 멤버 넷과 강 실장, 김규빈 매니저까지 합세해 말릴 수 있었다.
멤버들은 씻자마자 전부 곯아떨어졌다. 평소 불면증이니 잠이 안 온다느니 하는 멤버도 전부 포함이었다. 오직 청우만이 말년에 애들 다시 키우려니 고생이라며 펑펑 쓴 내력을 보충하느라 잠에 들지 못하고 진기조식에 들어갔다.
내일도 반복되는 일정의 시작이었다.
***
타이틀 곡이 ‘Find’로 정해지고 음원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며 최종 완성되고 M스타는 대단히 만족해했다고 김해월에게 전해 들었다. 가사는 주지호를 필두로 멤버들이 작성한 것을 작사가가 최종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이젠 수록곡이 된 ‘Starlight’도 주지호의 작사 실력을 인정하여 주지호의 작사가 들어갔고 편곡에는 김해월이 참여하였다.
이제 미니 앨범에 들어갈 곡이 대부분 완성되었다. 나머지 곡들도 모두 작업이 마무리 직전이었다.
“그리고 김해월이 만든 인트로도 괜찮은 것 같아서 분량 조절해서 정식 트랙으로 넣도록 하겠습니다.”
“와, 잘 됐다!”
인트로 곡으로만 쓰기엔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잘 되었다며 멤버들이 박수 쳤다. 이후 앨범 일정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침내 회의가 끝날 무렵 멤버들의 눈짓을 받은 정이원이 손을 들었다.
“저, 저희 타이틀곡 제목이 아직 가제잖아요. 가사까지 완성하고 나니 생각나는 게 있어서 어제 이야기했습니다.”
“뭔데?”
“제목을 ‘Piece’로 바꾸는 건 어떨까요? 저희가 별에서 조각난 원석들이잖아요. 저희를 뜻하기도 하고 조각나면서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고. 첫 앨범 타이틀 곡 제목으로 괜찮을 것 같아서요.”
“피스. 부르기 쉽네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전날 저녁 이덕진이 의견을 냈고 멤버들이 동의한 끝에 정해진 제목이었다.
‘일이 술술 잘 풀려가는 것 같은데.’
이럴 때일수록 더 경계해야 한다. 청우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작사가 마무리되고 며칠 되지 않아 최종 완성된 가사가 나왔다. 회사에 건의했던 만큼곡 제목도 가칭이었던 ‘Find’에서 ‘Piece’로 확정되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녹음이 시작되었다.
“주지호인가? 너부터 시작해 보자.”
멤버들에 대해 잘 아는 김해월과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서 M스타가 임의로 나누어 둔 파트를 각자 불러보고 파트 확정 후 전체 녹음, 이후 화성 녹음을 거치는 작업이었다.
김해월은 그사이 M스타와의 작업이 익숙해졌는지 마치 M스타의 스태프인 것처럼 움직였다.
“난이도 조절 좀 하려고 했더니 해월이가 너네 실력이 엄청나다고 그러더라. 해월이가 이야기한 대로 잘하는 지 한번 지켜볼게.”
워낙에 애교 많고 싹싹한 녀석이라 별걱정을 안 했는데 역시 그사이 M스타를 휘어잡은 모양이었다. 호칭도, 그들을 대하는 태도도 매우 편해진 것이 보였다.
“가사도 좋더라. 주지호? 네가 거의 썼다며? 그럼 노래도 기대해볼게.”
그러나 첫 타자를 잘못 뽑은 것 같다. 주지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보아하니 앞부분은 부담 없는 음역대라 주지호를 넣은 것 같은데, 첫 소절이라 다른 의미로 부담인 듯했다.
와중에 주지호의 얼굴은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작은 얼굴은 헤드폰을 쓰니 더 작아 보이고 긴장해서 핏기가 사라지니 더 뽀얗게 보였다.
데뷔 비하인드 필름 제작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있던 ST 소속 스태프가 홀린 듯 카메라를 들어 주지호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청우도 인정했다. 매우 찍고 싶은 얼굴이겠지.
-어둠 속에 내가 갇혀 있어 날 깨워줘
난 숨 쉬고 싶어 일으켜줘
흐음. 그런 것 치곤 노래는 영 신통하진 않네. 물론 이전에 〈블링돌〉 때보단 나아졌지만 아직 청우의 귀에는 영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도 차차 나아지겠지.
“흐음? 조금 아쉬운데. 속삭이듯이 시작하다가 더 강한 어조로, 다시 해볼까?”
“네!”
긴장한 얼굴의 주지호가 다시 녹음을 시작했다.
“어, 어둠 소소소속에… 다시 하겠습니다.”
긴장으로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주지호의 얼굴을 보며 뒤에 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손을 꼭 쥐었다. 지호야, 제발 성공해라.
“…다시.”
M스타도 표정이 점점 좋지 않아졌다. 김해월은 옆에서 파닥거리며 지호 형이 너무 긴장한 것 같다, 원래 저 정도는 아니라며 달래고 있었다.
“다른 사람 먼저 하면 어떨까요? 지호가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라서요. 제가 먼저 해도 되고요.”
뒤에서 다음 타자인 이덕진이 떨고 있었다. 그래도 덕진이는 노래를 잘하니까 훨씬 낫겠지.
“그게 낫겠다. 아무리 아이돌이라지만 너무 얼굴로 뽑은 거 아니야?”
M스타의 투덜거림 속에 주지호가 힘없이 녹음실을 나왔다. 실력을 모두 내보여도 부족할 판인데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평소의 실력의 반도 내지 못했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이덕진이 들어가기 전 청우가 손을 뻗어 등을 두드리며 내력을 넣어주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을 것이다.
“잘해. 마음이 해이해지면 나와 함께 했던 그 노. 력. 들을 떠올려보란 말이야.”
“윽.”
이덕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구겨졌다. 얼마 전까지 했던 청우와의 지옥훈련을 떠올리는 것이 분명했다. ‘지옥훈련’이란 단어에 옆에 있던 미카엘까지 표정이 구겨졌다. 의욕이 넘쳐서 같이 참여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Don’t wanna be alone 네 손을 원해.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왔어, 어둠 속에서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나를.”
“훨씬 낫네. 괜찮은걸?”
긴장이 풀려서인지 다시 그 지옥훈련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이덕진은 주지호에 비하면 훌륭하게 해냈다. 주지호는 고개를 더욱 푹 숙였다.
“고개 숙이지 마. 처음은 원래 떨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면 돼.”
청우의 말에 주지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이원도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럼. 청우랑 지옥훈련 한 번 하면 나아지지. 그리고 우리 처음 생각해 봐. 계속 나아지고 있잖아? 더 나아지겠지. 그리고 너 이 정도 아니야. 더 잘할 수 있어. 긴장 풀고 네가 가사 쓸 때 감정 넣어서 불러봐. 네가 쓴 거니까 네가 제일 잘 이해하고 있을걸?”
친구들의 응원에 주지호도 조금 용기가 생겼는지 표정이 바뀌었다. 주지호는 분명 빨리 늘 것이다. 본인은 잘 모르고 있지만 〈블링돌〉내에서도 주지호는 엄청나게 빨리 배우는 편이었다. 지금은 좀 늦더라도 분명 금방 따라올 것이다.
“너는 지금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래. 우리는 노래를 정확한 박자로 정확한 음정에 부르는 게 전부가 아니라 전달하는 게 중요한 거잖아? 네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을 표현해. 이 가사 팬 생각해서 쓴 거잖아. 그럼 팬들한테 뭘 전달하고 싶은지 확실히 하란 말이야.”
퉁명스럽지만 확실한 충고에 주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으로 생겼던 손 떨림도 멈추었다. 힘들다고 뒤로 물러설 순 없었다.
이전 주지호가 연습생이었을 때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모두 그를 띄워주었고 힘들어하면 다들 배려해 주곤 했다. 소속사 사장님조차 그에겐 무엇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청우는 늘 달랐다.
저 녀석의 눈은 못 한다고 한다면 한다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널 굴리겠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믿음직한 친구다.
나도 용기를 내야겠지. 주지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