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0)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0화(1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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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탕종자 Ⅰ
신노아
1
오늘도 쇼 노인의 커피는 맛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지난번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50회차의 썰을 하나 더 풀어볼까 한다.
2
50회차는 우리의 SG남 서규로 인하여 SG넷을 최초로 설립한 회차였다.
여러모로 SG넷은 각성자 사회에서 하나의 변곡점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각성자들은 따로따로 길드를 만들어서 활동했다. 종종 대형 게이트를 공략할 땐 길드들끼리 연합할 때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길드들은 서로에게 배타적이었다.
하지만 SG넷은 그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선사해 주었다.
-[만족]요리왕비: 마음의 평온을 원하시나요? 만족 길드에 가입하세요! 주요 거점은 대전입니다!
-[삼천]마녀재판장: 부산시. 40대 이하. 공중부양 능력 가진 각성자 우대. 마법 능력 각성자 우대. 가입문의는 귓말로. 밤 11시에서 아침 9시까지 귓말 확인 못할 수 있음.
-[백화]고등학교6학년: ★친목 동아리 백화에서 앞으로 함께할 인연을 모집해영★ >_<)!
SG넷은 기본적으로 각성자들만 가입할 수 있었다.
되도록 많은, 그리고 질 좋은 각성자를 등용하는 데 혈안이 된 길드들로서는 당연히 눈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길드를 홍보했다.
어느 순간부터 길드원들은 닉네임 앞에 [대괄호]로 자신이 어디 소속인지 표시해 두기 시작했고 이게 SG넷에선 관행처럼 굳었다.
우리는 각성자들의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어서 좋았고, 각성자들 또한 마음 놓고 길드를 홍보할 수단을 얻어서 좋았다.
물론 SG넷이 긍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었다.
-고려장: 병신 새끼들 끼리끼리 노네.
일명 고려장 빌런.
SG넷이 개설되자마자 바로 정회원으로 가입한 각성자였다. 그는 어느 길드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길드에 소속됐을지도 모르지만 뭐, 적어도 길드명을 표시하진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솔로 플레잉을 고수하는 ‘외로운 늑대’ 타입의 각성자들이야 고려장 빌런 말고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대체로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은인자중하기 마련.
SG넷에서도 외로운 늑대들은 대부분 비회원으로 활동했다.
-고려장: 어제 충주에서 게이트 터졌다면서? 인구수 줄어들면 식량 배분 넉넉해지니까 개꿀.
고려장 빌런의 독특한 이력은 자기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정회원이 되어 닉네임을 달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패드립을 입에 달고 살았다.
SG넷에는 태생적으로 어그로꾼이 적었다. 그야, 초월자인 성좌가 몸소 창조한 사이트 아니던가.
설령 욕을 싸지르더라도 비회원인 ‘익명’으로 싸지르는 게 당연했다.
그런 상황에서 성좌고 뭐고 좆까라는 식으로 구는 고려장 빌런은 사람들의 어그로를 끌어당길 수밖에 없었다.
-고려장: 백화? 친목 동아리? 세상이 개판 났는데 친목은 무슨 얼어뒈질 친목이야. 털도 안 난 애새끼들은 괜히 오래 살아서 병신 되지 말고 얼른 외국으로 도망쳐라. 이 나라는 망했다.
└[백화]고등학교6학년: 후에엥. 너무해요ㅠ_ㅠ)…….
└[만족]요리왕비: 말은 생각의 반영이고 생각은 흐린 날의 안개비처럼 자기 자신을 적십니다. 조금 더 맑고 밝은 언어를 사용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심지어 고려장 빌런은 말투가 사나운 걸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다른 회원들한테까지 시비를 털고 다녔다.
그가 공격하는 상대들은 강자와 약자를 가리지 않았다.
특히 백화 길드는 훗날 대한민국을 (안 좋은 의미에서) 대표하는 초대형 길드로 거듭날 집단이었다. 아직은 회귀자인 나 혼자만 아는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다른 회원들의 반응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익명: 미친 새끼.
-[율도국]검후: 저 아해는 차단하면 안 되오?
-익명: 여러분 그냥 병먹금하세요; 어그로 가성비 오지네.
-[삼천]마녀재판장: 솔직히 꼴 보기 싫다.
-ZERO_SUGAR: 회원님, 그러다 큰코다치십니다.
하지만 어그로가 끌릴수록 고려장 빌런은 오히려 신났다.
-고려장: ㅗ
세계가 망가지기 시작하면서 대형 커뮤니티들은 싹이 말랐다. 쓸데없이 트래픽만 차지하니까.
인터넷 세계는 마치 수십 년 전처럼 소규모의 폐쇄적 커뮤니티들로 조각조각 났다. 수위가 낮아진 물에서 어그로 낚시꾼들은 울상을 지었다.
그들에게 SG넷은 새로이 재건된 낙원과도 같았으리라.
-고려장: 솔직히 양심 있으면 노인들은 다 자살해라.
-야, 이미 정부에서 비축해 놓은 식량도 다 떨어졌고 어린애들한테 총 한 자루라도 쥐여 줘서 게이트 전선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쓰잘데기 없는 늙은이들은 뭐 영화를 누리겠다고 젊은애들한테 기생해서 등골까지 쫙쫙 빨아먹냐? 뇌세포 죽으면서 양심까지 뒈졌냐? 다시 한번 진지하게 말하는데 자기가 자식한테 짐 되는 늙은이다 싶으면 제발 하루라도 빨리 죽자.
특히 그는 노인을 굉장히 증오하는 것 같았다.
고려장 빌런은 자신의 닉값을 어떻게든 해내겠다는 듯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노인은 전부 죽어야 한다’라는 논조로 매일 글을 올렸다.
이른바 꾸준글.
여기에 또 일부 각성자들이 찬동했다.
-익명: 흠.
-익명: 이 새끼 병신이긴 한데 늙다리들 역겨운 건 맞음.
물론 대다수의 회원들은 고려장 빌런의 글을 혐오했다.
-아들사랑: 젊은 사람 같은데 말이 너무 심하십니다…….
└고려장: 늙은이임? 닉네임 역겨운 거 봐라. 얼른 뒈지지 않고 뭐함? 아들 등골 빨고 사니까 좋냐?
-[율도국]검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미쳤구려.
-[만족]요리왕비: 형제님, 만일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면 언제든 저에게 상담해 주세요. 사람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사람에 의해 살아가기도 해요.
└고려장: 제발 좀 꺼져.
└익명: 이 새끼 요리왕비님한테도 못된말 하네. 어휴.
-익명: 쟤들 전부 애미애비가 없는 듯.
-[백화]고등학교6학년: 후에엥. 오빠들 싸우지 마요ㅠ_ㅠ)…….
-ZERO_SUGAR: 회원님, 그러다 큰코다치십니다.
└고려장: ㅗ
어떤 비회원 익명이 지적했듯 어그로 관심종자에겐 무시로 일관하는 것만이 해답.
하지만 많은 각성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경험하는 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와, 얘는 진짜로 역겹네…….”
그중엔 사이트 운영자인 서규도 포함되어 있었다.
“형님. 저 녀석 제가 차단하면 안 됩니까?”
“안 돼.”
내 즉답에 서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안 됩니까?”
“네가 인간으로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예?”
“…….”
마음속에서 문장들을 조립했다.
회귀가 반복되어 살아온 세월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말은 점점 더 짧아졌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말을 길게 하려고 노력했다.
“각성자들에게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성좌의 대리인이다. 아직 한국에서 한 명밖에 밝혀지지 않은 성좌의 사도지. 그런 네가 인간적으로 화낸다거나, 슬퍼한다거나, 분노하는 반응을 보이면 그때 당장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장래적으로 볼 때는 너의 권위가 실추된다.”
“아…….”
“서규 너는 아예 다른 차원에서 사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오직 단 하나의 경우, ‘이름 모를 무명의 성좌’가 모욕당했을 때만 전면에 등장해야 돼. 고려장 빌런은 성좌를 욕한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럼 내버려 둬야지.”
서규는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을 테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당초 ‘이 씨발 새끼야! 그게 뭔 개소리인데!’ 하고 공지로 저격글을 날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서규는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이대로 내버려 둬요?”
“아니. 네가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커피를 우리면서 중얼거렸다.
“세상사는 들여다보기 전까진 모르는 법이야.”
“……?”
그러던 어느 날.
-오늘가입함: 씨발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다.
SG넷이 생긴 지 몇 년 뒤, 게시판에 장문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원래는 익명으로 활동했는데 이 글 올리려고 가입했다.
-오늘 몬스터 잡고 오랜만에 찹쌀순대 사서 숙소로 돌아갔는데 아버지가 없고 편지 하나만 있더라. 편지에 나 찾지 말아 달라고 적어 두셨는데 찾지 않게 생겼냐?
-그래서 지난 4일 동안 미친 듯이 동네 찾아다녔다. 그리고 옆옆옆동네 하천에서 겨우 발견했다. 허리랑 다리도 성치 않아서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할 양반이 어떻게 여기까지 꾸역꾸역 걸어오셨는지 몰라.
(사진 첨부)
-어차피 여기 있는 각성자들은 다 사람 죽는 꼬락서니 직관했을 게 뻔하니까 모자이크는 대충했다.
-옛날에는 화장터가 몇 군데 돌아갔는데 요즘은 그것도 없더라. 그냥 사람 뒈지면 들판에 갖다 놓고 몬스터들 뜯어먹게 풍장해 두는 게 유행이라며? 씨발ㅎㅎ.
-평소 알고 지내는 누님 중에 화마법 쓰는 분이 있어서 고개 박고 부탁드렸다. 그 누님이 술자리에서 맨날 하소연하는 게 자기가 몬스터 태운 횟수보다 시체 태운 횟수가 많다고 주변 사람들이 죄다 자기를 인간화장터로 취급한다는 거였는데, 설마 나까지 이런 부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 아버지도 각성자였다. F급. 능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었지만 덕분에 SG넷에서 사람들이랑 떠드는 걸로 소일하실 순 있었지. ‘아들사랑’이라는 닉네임이었는데 아는 애들 있을지 모르겠다.
-어제 누님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쓴 글이랑 덧글들 하나씩 읽는데 씨발 ‘고려장’ 이 새끼 글이 눈에 밟히더라. 아주 우리 아버지 자살하라고 고사를 지내놨더구만?
(사진 첨부)
-네가 우리 아버지를 죽인 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너 같은 새끼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역겹다.
-고려장 이 새끼 죽이거나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는 사람한테 내가 전 재산 다 준다. 거짓말 아니다. 귓말 넣어줘라.
-정회원으로 활동하는 주제에 아가리 놀리는 거 보니까 실력에 자신 좀 있는 거 같은데 어디 대가리에 도끼 박히고도 개소리 지껄이는지 봐보자고.
‘오늘가입함’이 올린 글은 SG넷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익명: 아이고…….
-[율도국]검후: 고인의 명복을 비오.
-[삼천]마녀재판장: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익명: 구라ㄴㄴ.
-[만족]요리왕비: 얼마나 상실감이 크실까요?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버님께선 분명히 행복한 곳으로 떠나셨을 거예요.
-[백화]고등학교6학년: 후에엥ㅠ_ㅠ)…….
-익명: 이거 진짜임?
-dolLHoUse: 애도.
게시글은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인기글로 등록되었다. 추천 수는 300을 돌파했고 댓글 수도 수백 개 달렸다.
99%의 댓글은 모두 글쓴이의 부친을 추모하고 있었다.
달리 말해 1%의 예외가 있다는 뜻이었다.
-고려장: 병신. 나 캐나다 교민인데 어떻게 죽이려고? 와 볼 테면 와 보던가. 늙다리 한 마리 컷ㅎㅎ.
└익명: 와 진짜 끝까지 역겹네.
그 파렴치한 반응에 무수한 회원들이 공분을 일으켰다.
“형님. 얘 정말 캐나다 교민일까요?”
“그럴 리가 있겠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거짓말이지. 저 녀석 SG넷 개설되자마자 들어와서 회원 가입했잖아. 그럼 성녀님 메시지를 받고 바로 접속한 건데, 성녀님은 캐나다까지 메시지 발송하지 못해.”
“아.”
“그때 이후로 캐나다에 건너갔을 가능성이야 없지 않다만……. 글쎄. 접속 시간을 보면 그럴 거 같진 않군.”
내 예상은 적중했다.
“한국에 살고 있네요.”
성녀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지금 그녀가 어떤 능력을 발동하고 있는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양손을 모으고 있다면 텔레파시. 눈을 감고 있다면 천리안.
아무리 S급 능력이라 할지라도 그걸 사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제약이 뒤따랐다.
“길은 제가 직접 텔레파시로 안내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참, 그리고 ‘오늘가입함’이 어디에 사는지도 탐색해 주시겠습니까?”
“잠시만요……. 네, 특정했어요.”
“흐음.”
새삼 성녀와 서규의 유용함이 실감되었다.
둘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사소한 정보를 얻는 데도 만만찮은 품이 들었을 테지.
그때 성녀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 고려장이란 분…….”
“음? 왜 그러십니까?”
“…정체가 다양해서요. 조금 특이한 분이네요.”
성녀가 무표정하게 커피를 홀짝였다.
나는 어깨를 한차례 으쓱인 뒤, SG넷에 내 정회원 아이디로 접속하여 고려장 빌런에게 덧글을 달았다.
마지막 충고라고나 할까.
-ZERO_SUGAR: 회원님, 그러다 큰코다치십니다.
띠링.
기다렸다는 듯이 알림이 왔다.
-고려장: ㅗ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지. 요즘 애들은 참 네티켓이 없다니까.
이런 분탕은 재깍재깍 관리해 주는 게 맞았다. 야심만만하게 준비한 SG넷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도.
결코 회귀 인생을 전부 계산하면 내가 이 세상에서 압도적으로 제일 늙은 인간이라서 고려장 빌런의 언행에 긁힌 것은 아니었다.
절대로.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