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01)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01화(10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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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자 Ⅱ
신노아
3
세상은 끝도 없는 지옥이었다.
최초로 마주 본 소외신급 괴이에게 무간(無間)이란 단어를 붙인 까닭은, 그 문자가 이 세상의 올바른 이름으로 내 무의식에 라벨링 되었기 때문이리라.
“호에에! 이번 스테이지에선 사망자가 31명 발생한 거예요!”
“…….”
“나쁘지 않은 수치이지만 다른 던전들에 비하면 열악한 성적……. 조금 더 분발을 요구하는 거예요! 이런 성과로는 제가 여러분들한테 선물할 수 있는 보상도 몹시 보잘것없어지는 바……. 호잇.”
“…이건.”
“꿀꿀이죽이에요! 여기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주민들이 자주 먹던 음식이라 들었어요!”
그 전쟁이 6·25전쟁을 뜻하는 것임을 곧바로 알아챈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미군이 버린 잔반통에서 음식물쓰레기와 담배꽁초 따위를 구분하지 않고 그대로 끓인 음식이 꿀꿀이죽임을 아는 생존자 역시 없었다.
“냄새가 지독하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독소는 제가 미리 빼둔 것……. 원래 이렇게 배려하고 편애하면 절대 안 된다고 규칙에 적혀 있지만, 여러분들의 노력과 분투를 지켜본 저의 작은 배려……!”
“…….”
“아무튼 2일 만의 식량 공급! 모쪼록 맛있는 식사 즐기시라는 거예요!”
요정이 사라졌다. 지하 6층, 본래라면 존재하지 않아야 할 부산역의 식당엔 56명의 생존자 그리고 56그릇의 꿀꿀이죽이 남았다.
그 죽의 냄새에 질겁했던 사람들도 서서히 손을 움직였다. 숟가락은 없었다. 어차피 56명이 내풍기는 체향도 비루하긴 똑같았기에 그 몸 안으로 비슷한 향기의 음식을 넘기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곳곳에서 울음이 흘렀다.
먹는 것이 죄일 수는 없다.
먹는 것이 죄라면 삶은 천벌이기 때문이다.
1964년 5월 20일 자 경향신문의 기사에 그런 문장이 담겼다. 기고자의 이름은 신영각. 허기진 군상(群像)이란 제목의 칼럼이었다.
56인의 허기진 군상이 허겁지겁 이틀 어치의 공복을 분풀이했다.
고증을 지킨 것인지 죽그릇은 사실 그릇이 아니라 알루미늄 통조림통이었다. 통, 통, 사람의 손가락이 두들겨 털어먹고 문질러 비벼 먹는 소리가 싸구려 알루미늄의 막을 타고 흘렀다.
먹는 것이 罪일 수는 없다…….
먹는 것이 罪라면 삶은 天罰이기 때문이다…….
천벌을 언도 받은 죄인들이 사는 곳이 지옥이었기에 세상은 지옥이었다.
식당에선 이따금씩 구역질 소리가 짤막하게 울렸는데, 그것은 음식물에 대한 구역질보다는 삶에 대한 구역질에 가까웠다. 사람이 삼키지 못하고 소화하지 못할 것이 사람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그 뒤로 “엄마”라거나 “씨발”이라며 이어진 소리는 아마도 트림 소리였으리라.
짤랑.
종소리가 들렸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내가 낸 종소리였다. 5회차 이전에도 오러를 사용해서 종소리를 넓게 울렸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서 모르겠지만.
이 은방울은 어느 회차에서든, 설령 휴가 회차일지라도 반드시 파밍하는 아이템이었다.
파밍 장소는 눈을 감아도 선했다. 대합실의 기념품 가게.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7번째 선반, 위에서 4번째 칸.
약탈꾼이 가게를 전부 털고 떠나도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방울, 오히려 딸랑딸랑 소음을 일으켜 몬스터들의 주의만 끌어 버리는 저주템만은 언제나 남아 있었다.
나에겐 그것이 필요했다.
“장의사다…….”
“정소희는 어디 가고 지 혼자만…….”
“쉿, 쳐다보면 안 돼.”
“무저갱으로 끌려가 버린다.”
식당가의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중엔 아직 내 기억에 남은 얼굴도, 이젠 현실에서 사라져 버린 얼굴도 섞여 있었다.
4회차에 시간을 봉인 당한 축구선수 김주철 또한 그곳에 있었겠지.
나는 계속해서 기억을 걸었다. 만일 이것이 3회차였다면 이 스테이지의 생존자는 56명이 아니라 11명이었을 테고, 그중 이백이 끼었을 것이다.
“야, 장의사! 역병!”
그리고 이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소리쳤으리라.
“꿀꿀이죽 구걸하러 왔냐? 미안하지만 너 같은 역병 새끼한테 줄 식량은 우리한테도 없어! 다들! 절대로 저놈한테 너희가 먹을 식량을 나눠주지 마라. 지 잘났다고 솔로 플레이하는 놈까지 챙겨 줄 여유 따윈 없어!”
아마도 이런 목소리로. 아마도 그런 대사를.
마치 수십 년 전에 발간된 신문을 복원하듯, 오독서가 읽었던 소설 내용을 더듬더듬 복구해 보자면, 이백은 내게 그런 말을 내뱉은 것 같았다.
오독서의 해독에 따르면 이백은 ‘생존자들에 대한 자신의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외부의 따돌림 대상을 선정함으로써’ ‘꿀꿀이죽을 먹는 것조차 하나의 특권으로 인식하게끔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모진 말을 대신 짊어진다는 인상을 풍기며’ 그리 말했다고 한다.
내 반응은 담백했다.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으신 분, 계십니까?”
“…….”
“영원히 편안해지고 싶으신 분. 혹시 계십니까?”
식당이 고요해졌다.
일순, 이백마저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위압감을 주지 않을 만큼 가볍게. 한 사람의 얼굴을 놓치지 않을 만큼 꼼꼼히.
“개소리하지 말고 썩 꺼져!”
이백이었다면 자신이 잠시나마 머뭇거렸단 사실에 분노하며 각목을 휘둘렀을 것이다.
“저기, 저는…….”
다른 회차였다면 누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을 것이다.
“저도…….”
5회차보다 4회차, 4회차보다 3회차, 3회차보다는 1회차에 손의 숫자가 많았을 것이다.
꿀꿀이죽을 퍼먹은 손이었고 괴물을 죽인 손이었으며 다른 인간을 살해한 손이었다.
어떤 노부인은 그 손으로 쓰다듬어 줄 손자와 가족이 이제는 없음을 알았다.
“청년. 나, 해 줘. 장례식이랬나? 그거.”
“제 능력으로 꿈속에 빠져들면 다른 사람들도 당신에 관한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아무도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상관없어.”
노부인이 중얼거렸다.
“상관없어, 그딴 거.”
투명한 묘비가 세워졌다.
부산역에 있을 때도 부산역을 나와서도 내 걸음걸이마다 묘석이 비지 않았다. 정확히 기억할 순 없었으나 최소한 50만 개의 비석이 세워졌다는 것은 분명했다.
회차가 재개되어도 묘비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새로운 회차가 시작할 때마다 수십만 명의 인간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아무도 그 실종에 관해 알지 못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세상은 지옥이었고 그곳에선 언제나 방울 소리가 울렸다.
나는 이 지옥에서 가장 많은 인간을 죽인 무기징역수였다.
4
그로부터 수천 년 뒤.
“아저씨. 나는 가히 아저씨의 유일무이한 이해자라고 할 수 있어.”
당돌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꼬맹이가 생겼다.
헤어스타일? 빨간머리 단발. 무기? 야구 방망이. 패션? 래퍼용 캡모자에 점퍼, 촛농처럼 줄줄 흘러내리는 청바지(구멍 3개 첨부).
시그니처 포즈는 평범한 껌을 풍선껌처럼 질겅질겅 씹어서 부풀려다가 삑- 터져 버려 입가 전체를 껌딱지로 도배하기.
오독서(吳讀書).
한마디로 병신이다.
척 보기에도 심리적인 치료 행위가 절실히 필요해 보이는 이 소녀는, 더군다나 겁도 없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난 아저씨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긴 소설 [전지적 회귀자 시점]을 독파했어. 아저씨의 속마음과 독백, 전부 적나라하게 읽었다고. 아저씨를 아저씨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냐.”
“그렇구나. 이제 사생활 침해죄로 고소하면 되는 거냐?”
“어? 아니……. 그러니까 나 좀 구해줘. 나 보호막 다 닳으면 죽을 듯.”
쾅쾅쾅쾅!
오독서가 웅크려 앉았다. 이 녀석 주위로는 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되었는데, 고블린 세 마리가 방어막에다 신명 나게 몽둥이질을 치고 있었다.
-우끼긱! 끼힉!
-끼이익, 꾸엑! 끄헥!
튜토리얼 던전에서 단골로 출현하는 괴이였다.
3대1. 다굴의 교본과도 같은 장면에 우에하라 시노, 우리 파티 멤버로 편입된 동료가 발을 동동 굴렸다.
“저기, 장 상. 아무리 그래도 도와줘야 되는 게……?”
“안 돼. 훈련에 필요한 과정이야.”
“으으. 독서 쨔앙-! 간바레에-!”
“간바레고 나발이고 도와주라고! 쫌!”
쾅콩쾅콩!
처음엔 고블린들은 이 투명한 드럼통을 신기하게 여겼지만 이제 와선 숫제 악기로 취급했다. 쾅! 콩! 쾅! 그들의 디오니소스적 본능에 새겨진 리듬이 울려 퍼지면서 삽시간에 이곳을 락 페스티벌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참고로 디오니소스 신도들은 축제가 끝나고 나면 인간을 갈갈이 찢어서 나눠 먹는 전통이 있었다. 오독서를 향한 고블린들의 눈빛을 보아하니, 이번 축제의 제물은 이미 정해졌다.
-끼히히히익!
“흐엑?! 아, 아저씨! 진짜 살려 주라니까?! 보호막 30초밖에 안 남았어!”
절대 방어.
본인이 이르기를 [AT 필드]. 상대방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방어막.
저것이 오독서의 능력 중 하나였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마도 자신을 ‘소설 속 세상에 떨어져 버린 독자’로 여기는 오독서의 심리가 반영된 능력 아닌가 싶었다. 이 세상과 자신을 아예 구분시키는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스킬에 반영된 것이지.
사기급 능력이었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하루에 1번밖에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제한시간이 1분에 불과했다.
“독서야. 내 누누이 말했다. 네가 아무리 사기 스킬을 가졌대도 스스로 단련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그치만 나 오늘만 벌써 11마리 잡았잖아! 지쳤어! 힘들어! 오늘 새벽부터 6시간 내내 걸어 다녔는데 이제 제발 도와주라고! 힉? 뚫린다, 방금 금 가는 소리 들렸어, 진짜, 진짜로 뚫린다!”
“엄살은.”
파챵- 보호막이 스러지면서 고블린들의 몽둥이가 쇄도했다. 오독서가 기묘한 비명을 지르면서 야구배트를 휘둘렀다.
“흐야아아악!”
야구배트에는 붉은 오러가 담겨 있었다. 퍼억! 고블린의 머리가 터졌다. 파울.
-끽?
-꾸익?
상대방이 KBO 타수인 줄 알았던 고블린들은 갑작스러운 메이저 리그급 스윙에 당황했다.
그러건 말건, 오독서는 지난 며칠 동안 내게 직접 시사받은 봉술로 당겨치기를 시전했다.
“흐아악! 죽어! 죽어! 괴물 새꺄, 쳐뒈져어어어!”
-꾸이에헥?
파울. 파울.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상대팀 투수 0명. 상대팀의 자격 미달, 실격 처리로 오독서의 승리.
오독서가 어깨와 야구배트를 축 늘어트리고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히엑, 후윽- 후어억, 후악…….”
“거봐라. 하면 되잖냐? 하여간 요즘 애들은 근성이 부족해서 그런지 시도해 보기도 전부터 앓는 소리를…….”
“쳐죽인다아아!”
오독서가 나를 향해 힘차게 야구방망이를 휘둘렀으나, 그런 느릿느릿한 타격이 내게 명중할 리 없었다.
헛스윙 삼진. 아웃.
감히 하늘과 같은 스승을 공격한 죄로 꿀밤을 먹여 주었다. 내 묵빛 오러가 두개골을 타고 딱 적절한 고통으로 메아리쳤다.
‘적절한 고통’이란 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냐면, 음. 남자로 따질 때 불알을 걷어차인 수준?
“흐뱌아아아아악!”
오독서가 야구배트를 패대기친 채(아웃을 당했는데 빠던이라니, 스포츠 매너도 꽝이었다) 바닥에 뒹굴었다.
“죽어! 나 죽는다! 깨졌어! 내 머리, 깨졌어! 으아아아악! 죽는다!”
“안 죽는다. 안 깨졌고. 일어나서 밥이나 먹어라. 시노하라 씨? 돗자리 좀 깔아 주세요. 점심 먹읍시다.”
“앗. 하잇.”
짐꾼 담당인 우에하라 시노가 이젠 능숙해진 솜씨로 돗자리를 깔았다.
이것 또한 4회차와는 상당히 달랐다. 돗자리 같은 사치품을 들고 다닐 여유 같은 거 4회차엔 없었을걸.
편의점에서 털어온 레토르트 식품들을 맛깔나게 조리했다. 불도 필요 없었다. 오러로 음식을 데우고 굽고 데쳤거든. 장담컨대 세상에서 제일 호사스러운 조리법이었다.
우에하라가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먹더니 표정이 흐느적 녹았다.
“와아. 맛있어…….”
“면이 딱 맛있게 익었지? 보니까 우에하라 씨는 약간 알덴테로 덜 익힌 면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앗, 네. 정말로 제 취향이에요. 장 상이 해 주시는 요리들, 전문점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어요!”
“고마워.”
그때 기둥 너머에서 빼꼼, 요정이 고개를 내밀었다.
“호에에. 좋은 냄새애…….”
“응? 뭐야. 너도 먹으려고?”
“히엑. 저는 공명정대한 심사관. 테스트에 참여한 당사자들한테 뇌물은 일절 받을 수 없는 거예요…….”
“이건 뇌물이 아니라 수고비다. 세계혁명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전위대에게 인민이 자발적으로 건네주는 선물이지.”
“호에! 인민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음식…….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도리어 부르주아의 소치인 바, 투철한 혁명당원으로서 거절할 수 없다예요…….”
“자. 내가 만들어 본 연어 스테이크다.”
“호에엑! 실로 혁명적인 맛이에요!”
돗자리 위에서 일본인과 요정의 웃음꽃이 하하호호 만개했다. 과거의 적대 민족과 현대의 적대 종족을 안 가리고 진정한 화합이 이루어졌다.
“으으으…….”
오직 중2병 오타쿠만이 돗자리 옆에 널브러져 신음했다.
“나도오……. 나도 밥 줘. 배고파…….”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돗자리에 깔아 뒀으니까 알아서 먹어라.”
“아저씨는 왜 나한테만 차가워?”
오독서가 빼애액 소리 질렀다.
“괴이들 때려잡는 것도 나한테만 시키고! 오러 수련도 나한테만 시키고! 아저씨한테 내가 뭘 잘못했는데, 어?”
“그만큼 너한테 기대하는 거란다. 꼬맹아.”
“흑. 나 서러워서 못 살 거 같아. 너무 속상해……. 씨발, 파스타는 또 왜 이렇게 맛있는데? 이거 레토르트잖아.”
“앗, 독서 쨩. 그거 내 건데…….”
“호에. 이 BLT 호밀 샌드위치도 혁명적인 것이에요! 요리영웅 훈장감인 거예요!”
메뉴의 단탄지 비율도 완벽했다. 튜토리얼 던전의 초심자들이 누리기엔 지나치게 호화로운 점심이 끝났다.
결국 4회차 탐방이 럭셔리 여행으로 변한 것이지만……. 뭐, 상관없지 않을까. 나야 둘째치고 이 아이들은 사치를 누릴 수 있을 때 누렸으면 한다.
우리는 너무 배부르지도 너무 출출하지도 않게 위장에 기름기를 바른 뒤 일어섰다.
“이제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보스룸이다. 보스만 깨면 튜토리얼 던전도 끝이야.”
“응. 아저씨가 깨 줄 거지?”
“아니? 고인물이 뉴비 경험치 뺏으면 안 되지. 독서 네가 혼자서 클리어할 거다.”
“……?”
“……?”
우리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가며 지하 13층 계단에 발을 디뎠을 때였다.
반대편 통로에서 인기척이 강하게 느껴졌다.
“잠깐. 모두 정지.”
막 계단을 내려가려던 일행들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일행에 264번 요정도 포함되었단 게 우스웠지만 내 입은 웃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몰려와? 몇 명이길래?”
“117명.”
“…….”
“우리를 제외한 생존자 전원이다. 준비해. 오독서는 내 옆으로, 우에하라 씨는 뒤로.”
나는 복도 한복판에 자리 잡았다.
“여기서 대비한다.”
그 말을 내뱉고서 정말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오른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던 것이다.
텅 비어 있는 허리띠에, 마치 원래였다면 소방도끼 같은 무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을 것이라는 듯이.
내 손가락은 허공을 더듬었다.
“…….”
기묘한 기시감이 덮쳐왔다.
데자뷰.
아주 오래전. 이젠 수천 년이란 시간이 지나가 버린 먼 과거, 분명히 이것과 똑같은 장면을 겪은 것 같았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