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02)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02화(10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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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자 Ⅲ
신노아
5
-여기서 대비한다.
아주 오래전의 내가 말했다. 손에는 소방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마지막 계단을 앞둔 통로에서 파티 멤버들이 웅성거렸다.
-여기서? 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최종 스테이지라고 요정이 그랬는데.
-…….
-재희 씨, 의심하지 마세요. 교주님은 저희를 인도해 주실 구원자예요.
이재희, 우에하라 시노, 정소희.
직업은 검사, 연금술사, 광신도 되시겠다.
클래스만 봐도 망한 파티라는 느낌이 들겠지. 이래 봬도 3회차,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된 회차부터 인연을 맺었을지 모르는 원년 멤버였다.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해 꾀죄죄해진 몰골들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난장판. 하지만 이들이 ‘부산역 튜토리얼 던전’의 최선이었다.
-…….
나는 그들과 차례차례 눈을 마주쳤다. 기억 속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앙상하게 말랐다.
-3일 전부터 우리를 몰래 훔쳐보는 정찰병이 있었다.
-정찰병……?
-이백이 보낸 거겠지. 여기까지 내려온 생존자 집단은 우리 말고 그놈밖에 없을 테니.
파티원들이 움찔거렸다.
-일부러 우리를 앞장세워 경로를 방해하는 몬스터들을 치우도록 만든 거지. 하지만 최종 보스만큼은 직접 해치워야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니, 우리가 최종 보스와 싸우면서 진이 빠졌을 때 뒤를 노리려는 것이다.
-진짜 완전 나쁜 놈이네.
-우리가 먼저 보스를 해치워 버리면 의미가 없어지는 작전이지. 그놈도 그걸 알 테고, 지금쯤 최고 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을 거다. 다들 계단 밑에 웅크려서 숨어라. 저쪽 집단이 조금이라도 지쳤을 때 놈들을 친다.
-…….
-내가…….
6
“내가 앞장선다.”
데자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늙어서 하얀 알갱이로 부서진 모래 해변을 갓 태어난 파도가 잠깐 적시고 떠나듯이.
그때 옆에서 무언가가 꾸물거렸다.
“…….”
오독서였다.
기껏 발돋움해 봤자 내 쇄골에나 닿을까 싶은 꼬맹이가 야구배트를 어깨에 올려놓고 있었다. 야구방망이엔 고블린의 피가 덕지덕지 묻었다.
“뭐하냐, 독서야. 뒤로 물러서래도.”
“싫음.”
오독서가 껌을 질겅 씹었다.
“이 몸, 오늘 몬스터 14마리 잡음. 아저씨는? 8마리. 헌터는 실력주의 아니었나?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 따윈 듣지 않는다.”
“…….”
사람이 하도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잦아들기도 전에 통로 저편으로부터 발소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무려 백 명이 넘어가는 집단. 딱히 놀랍지 않게도 그 무리의 선두에선 이백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 씨발 새끼들. 나 보고 싶었지?”
조금 놀라운 사실은 이백이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어떻게? 성대를 피자처럼 8등분으로 조사 버렸는데.
“으으, 으으으…….”
정답은 이백 옆에서 쭈구리가 되어 축 처진 심아련에게 있었다.
힐러인 주제에 심아련은 몸 여기저기에 붕대(천옷으로 만든)를 감았다. 뺨과 어깨엔 멍까지 들었다.
사태를 추론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치료를 거부하다가 이백한테 얻어터지고 자기한테 힐 놓은 것도 일일이 허락받아야 하는 노예 신세로 전락했군.’
심히 안쓰러웠다. 아련아련아, 잠재적 S급 능력자가 E급한테 얻어맞고 다니다니 그게 무슨 소리니…….
역시 성대피자증을 겪고 있어야 할 이백의 추종자들도 멀쩡히 떠들었다.
“저놈이야, 저놈! 저 멀대 자식이 우릴 보자마자 반병신으로 패 놨어!”
“대합실에 있는 물자들을 싹 다 털어간 것도 저 새끼들이야!”
“씨발, 저거 저놈들 깨끗한 거 봐. 고작 3명이서 물자들을 독차지하니까 아주 살판났네……. 개새끼들, 인간도 아닌 새끼들. 우리는 이렇게 힘든데. 음식도 다 쪼개서 먹고 다니는데…….”
“요정이다! 요정이 저기 있어!”
바람잡이들이 분위기를 몰아가는 가운데 누군가가 요정을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그걸 이백이 낚아챘다. 놈이 얼핏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섯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저 새끼들 요정이랑 붙어먹었다!”
먹었다- 다아- 다아아아-.
이백의 목소리가 통로 전체에 울려 퍼졌다. 백 명이 넘어가는 집단이 똑똑히 들을 수 있을 만큼.
그것이 저 남자의 각성 능력이었다.
[사자후]. 혹은 [확성기].“저 새끼들은 우리 편이 아니야! 요정 편에 서서 사람들을 배신했다! 봐라! 요정이랑 같이 있잖아! 배신자다! 배신자!”
단순히 목소리의 음량을 크게 확대하는 능력에 불과했으나, 다들 수준이 고만고만한 튜토리얼에선 꽤나 유용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라는 격언은 비상사태일수록 잘 들어맞았다.
다른 생존자들이 웅얼웅얼거릴 때 저 혼자서만 확성기에 대고 쩌렁쩌렁 외쳐 대니 논리고 자시고 주도권을 뺏길 수밖에.
정치질뿐만 아니라 전투에서도 썩 괜찮은 능력이었다. 민간인 수십 명이 뒤섞여서 싸우는 시장판에선 ‘공격!’ ‘후퇴!’라는 간단한 지시조차 잘 안 들렸는데, 이백의 [사자후]는 적어도 명령을 즉각적으로 전달하게는 만들어줬다.
정말 튜토리얼 한정으로 유용한 스킬.
“배신자……?”
튜토리얼의 난민들이 웅성거렸다.
“진짜야, 요정이 저기 있어.”
“그럼 이백 씨 말이 맞았네. 저놈들이 물자도 다 털어가고 요정들이랑…….”
“나쁜 새끼들. 같이 으쌰으쌰해도 모자랄 판에 지들만 잘 살겠다고…….”
나는 그들을 이해했다.
이제 막 아포칼립스에 떨어진 사람들――굶주리고, 외부와 연락이 단절되어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미쳐 버릴 것 같고, 낯선 사람들과 집단을 이루어야 해서 스트레스를 느끼며,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고, 눈앞에서 인간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목격해버린――그런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백의 [확성기]가 불어젖히는 바람대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글쎄. 서규가 있었다면 ‘그게 무슨 개소리야, 씨발 새끼야!’라면서 맞섰으려나.
‘씨발 새끼야!’
‘뭐! 씨바알 새끼야아악!’
이백과 서규가 서로를 향해 욕설을 지껄이며 튜토리얼 던전의 평균 데시벨을 아득히 올려 대는 광경을 상상해 보니 문득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가 막히는군. 나중에 시험해 봐야지.
“호엑. 크, 큰일인 거예요. 특정 플레이어들을 편애했다는 게 들키면 숙청, 숙청인 거예요! 작전상 후퇴예요……!”
뾰로롱. 264번 요정은 당황하더니 공중에서 사라졌다. 순간이동은 아니었다. 투명화로 모습을 감췄을 뿐.
하지만 사람들이 보기엔 사라진 것이나 똑같았다. 요정에 대한 트라우마가 새겨진 생존자들에겐 그것만으로도 일종의 신호가 되었다.
이백이 일갈했다.
“요정도 없어졌다! 여러분! 지금이 기회입니다! 저놈을 칩시다! 물자를 뺏어서 재정비하고 우리들의 힘으로 이 지랄맞은 던전을 나갑시다! 우리 가족들을 만나러 갑시다!”
“우오오――.”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용기를 북돋우려는 순간, 내가 한 걸음 내디뎠다.
발자국으로부터 묵빛의 오러가 해일처럼 퍼졌다. 파도는 117명에 이르는 상대편 집단을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쳤다.
“―――!”
“……? ……!”
음소거.
막 이쪽을 향해 돌격하려던 사람들이 당황해서 서로 쳐다보았다. 그들이 입을 벌리고 악을 써 본들 아무런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지하 통로는 단번에 조용해졌다.
오러의 운용이 극에 달하면 이런 묘기도 가능해지는 것이었다.
“오, 주인공 사기…….”
옆에서 오독서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놈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거기, 심아련 씨.”
“……!”
“숨지 마시고요. 이리로 오십시오. 저희가 더 강합니다. 살려 드리고, 힐 능력 안 쓴다고 두들겨 패지도 않을게요. 삼시세끼 식사에 편한 침대 보장하겠습니다. 편 갈아타십시오.”
“…….”
“3초 드립니다.”
심아련의 대단한 점은 이럴 때 머뭇거림이 일절 없다는 것이었다. 이백이 자신을 돌아보기도 전에 호다닥! 내 쪽으로 뛰어왔다.
이백은 물론이고 생존자 집단이 다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자기한테 힐 쓰세요.”
“네, 네에. 앗. 목소리 나온다…….”
사람들이 배신자를 향해 손가락질 던지며 뭐라뭐라 외쳤으나 복도엔 소리 없는 아우성만 울렸다.
훌륭한 분노였다. ‘어그로를 마시는 새’인 심아련에겐 맛있는 레벨업 경험치가 되어 줬을 터.
나는 훈훈한 미소를 짓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이백. 미안하다.”
“…….”
“내 배려가 부족했어. 아무래도 내가 너무 순식간에 너를 기절시킨 바람에 피아 간의 실력 차이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 모양이야. 그러니 기회를 주지.”
“……?”
“여기, 빨간머리 꼬맹이 보이지?”
턱. 나는 오독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얘랑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면 우리가 가진 물자를 전부 내어 주고, 너희가 먼저 보스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양보해 주마.”
“……!”
“걱정하지 마라. 함정은 없어. 뒤통수를 때리지도 않을 거다. 하지만 네가 만약 일대일 승부를 거부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너한테서 영원히 목소리를 뺏어가지. 아니면 혹시… 나도 아니고 꼬맹이랑 싸우는 게 무서워서 도망칠 건가?”
“…….”
목소리란 신기했다.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마지막에 말한 사람’의 언어가 정당한 것처럼 느껴지니.
그 목소리의 마력을 지금껏 수도 없이 즐겨왔을 이백은 아무런 반박도 내놓지 못했다. 내 말에 혹한 생존자들이 이백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없이, 116쌍으로 이뤄진 시선의 압력.
“…….”
이백이 오독서의 행색을 샅샅이 살폈다.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못 달린 각목을 휘어잡은 채 걸어 나왔다.
“흐응.”
오독서가 나를 힐끗 올려다봤다.
“좋아. 저놈 면상에다 한 방 먹여 주고 싶다는 생각은 소설 읽으면서 백 번도 넘게 들었거든.”
왜 이런 짓을 시키느냐고 물어볼 만도 했으나, 오독서는 오히려 재밌다는 듯 야구배트를 휘휘 저으며 나아갔다.
일대일 결투 상황. 수많은 사람들이 멀찍이서 두 명의 대치를 지켜보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승패가 어떻게 나든 승복하고. 나중에 딴소리하는 놈은 내가 직접 발목을 잘라 주마. 시작.”
내 말이 끝나자마자 오독서가 달려들었다.
흠칫. 자기보다 한참 자그마한 꼬마가 겁도 없이 덤빌 줄은 미처 몰랐는지 이백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이 씹새끼가- 소리 없는 아가리가 그리 발음하고 있었다.
이백은 훨씬 더 우월한 리치를 이용해서 각목을 내리쳤다. 각목에 박힌 대못이 정확히 오독서의 머리를 노렸다.
까앙-!
노리기만 할 뿐이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보호막에 이백의 각목은 튕겨 나갔다.
“……?”
절대 방어.
인간의 공격만이 아니라 괴이의 침식마저도 거부하는 보호막을 두른 채 오독서는 야구배트를 휘둘렀다.
철제 방망이에는 희미하게나마 붉은색 오러가 감돌고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오독서는 내게 집중적으로 오러 운용을 과외받았다. 지금 시점엔 세상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특강이었다.
나는 손가락을 딱 튕겨, 이백 주변의 오러를 거둬들였다. 음소거 해제. 내 수제자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끔.
“뒈져, 고구마 새끼야아아!”
“프큽……?”
안타깝지만 이백은 비명을 시원하게 내지르지도 못했다. 야구방망이가 각목을 부러트린 뒤 정확히 그놈의 턱주가리까지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홈런이었다.
“옥, 우오옥? 으호오옥……!”
이백이 자기 턱을 붙잡고 쓰러졌다. 주변으로 하얀 옥수수가 몇 점 떨어져 있었다.
오독서는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는 양 ‘히야아아아-’ 길게 트림을 흘렸다.
“와. 진짜, 3회차 때 이재희가 얘 때문에 죽었을 때는 소설 집어던졌는데. 개새끼. 씹새끼. 좆 같은 놈.”
“으어헉…….”
“아가리 여물어, 새꺄.”
바닥에서 자유형 헤엄을 치던 이백에게 오독서가 발길질을 먹였다. 이백이 기절하여 추욱 늘어졌다.
리더를 잃어버린 이백의 추종자 여섯 명이 뒤늦게 달려들었다.
“으와앗!”
“어허, 이런 꼬마를 다구리치면 쓰나.”
하지만 이건 룰 위반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오러를 끌어당겨 여섯 명의 발목을 하나씩 베어 넘겼다.
“―――!”
“……! ……!”
여섯 명이 일제히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엎어졌다. 음소거된 비명이 터졌다.
이쪽을 바라보는 생존자 집단의 시선에 공포가 섞였다. 후열에 선 몇몇 사람들은 벌써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통로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7인의 패배자들을 심아련이 뭔가, 굉장히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꼭 지렁이를 발견한 직박구리 같은 표정이라 할까.
“…아련 씨. 자존심 채우겠다고 쟤들한테 치료시켜 줄까 말까 협박하면서 가지고 놀면 안 됩니다.”
“앗, 네에에……. 힉? 자, 잠깐만요. 어어떻게 제 속마음을? 서, 설마 관심법?”
관심법 스킬도 있긴 한데 웬만해선 안 썼다. 처음만 재밌지 나중에 급격하게 흥미가 떨어져서.
그러나 관심법을 쓴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인연도 있었다.
나는 555회차부터 수제자로 받아들인 빨간머리 꼬맹이가 다가오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봤지? 아저씨. 걱정하지 마.”
내 일대기의 독자이자 제자인 아이는 겁도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저씨를 반드시 해피 엔딩에 도달하게 해 줄게.”
“…….”
“아저씨는 원작 주인공에 난 소설에 들어온 빙의자 포지션이잖아. 주인공이 두 명이라고. 두 사람이 협력하면 뭐든지 가능해. 뭐, 소설 속 이미지랑은 좀 다르긴 해도―― 아저씨는 여전히 내 최애캐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너만 믿으마.”
“응!”
어서 쫓아와라, 독서야.
나는 언제나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
7
후일담.
“흐에에엑? 아, 아저씨! 살려 줘! 제발! 진짜 살려 줘? 아까 이백한테 스킬 써서 이제 나 보호막 없어! 흐오오옥? 방금 스쳤다! 진짜로 스쳤어! 죽는다, 튜토리얼 최종 보스한테 죽어 버려! 아저씨! 아저씨이이익! 주인공 살려어어어!”
“자, 장 상. 역시 이건 독서 쨩을 도와줘야 하는 것이?”
“…….”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이 중2병 오타쿠 꼬맹이한테 등을 맡기려거든 한참 더 시간이 필요할 듯싶었다. 끝.
– 공유자. 結.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