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05)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05화(10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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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Ⅲ
신노아
6
이누나키 터널에는 온갖 저주가 걸렸다.
터널이란 장소 자체에 대한 공포. 괴담. 공사 도중 파묻혀 버린 인부들의 원혼. 터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및 실종사건…….
대한해협을 건너서까지 마수를 뻗어 온 괴이의 난이도를 조금 얕봤다. 터널 입구로부터 물러나서 작전회의를 재개했다.
“저 터널, 외부에서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건 불가능한가?”
“아마도 불가능하다냐.”
만엽묘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 협의체도 터널 공략을 결정하고서 제일 먼저 물리적 파괴를 시도했다냥. 옛날 자위대에서 쓰던 폭탄들까지 동원해서 72군데의 터널을 동시에 폭파시켰다냐.”
“결과는?”
“빠르면 4분, 길어도 4일 안에 이누나키 터널이 복구되는 것으로 관측됐다냐. 물리력이 아니라 ‘터널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쭉 걸어서 나와야만’ 토벌될 거라고 우리들은 추측하고 있다냐.”
“…과연.”
가끔 그런 괴이들이 있었다. 물리력만으로는 토벌할 수 없는 종류의 괴이.
소외신 ‘무간’ 역시 그런 부류에 속했다. 새삼스럽지만 무간을 토벌하는 방법을 간략하게 적어 보자면.
1. 백화여고에서 백귀야행의 귀신 99위를 봉인한다.
2. 지하 4층으로 내려가서 4444걸음 걸어서 도착한 장소에 100개의 촛불을 놓는다.
3. 지금까지 봉인한 귀신들의 괴담. 즉, 백화(百話)를 최소한 2명이서 주고받으며 이야기한다.
4. 그리하여 도래한 무간을 향해 4걸음을 걸어가서, ‘무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일행으로 하여금 봉인토록 한다.
5. 그 과정에서 ‘무간이 예측할 수 없는 일격’을 가함으로써 무녀를 돕는다. 노도하가 제작해 준 명검 ‘도하’를 쓴다든지.
…라는 정신 나갈 것 같은 공략법이 되시겠다.
회귀자가 아니고서야 ‘이걸 깨라고 만들었냐?’ 소리가 절로 튀어나올 법했다. 나중에 이 공략법을 본 성녀가 눈썹을 찡그리면서 ‘…정말 대단하시네요’라고 중얼거렸을 만큼.
하지만 거꾸로 뒤집어서 말하자면, 세계의 법칙을 우롱하는 소외신급 괴이조차 ‘저 정도’ 노력을 기울이면 토벌할 수 있었다.
하물며 대륙급 괴이인 이누나키 터널쯤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설령 물리력이 통하지 않더라도 절대로, 괴이라면 반드시 허점(虛點)이 존재했다.
“대충 이해했다.”
“……? 냐아, 그런데 왜 지팡이검을 쥐고 일어나는 거냥? 언더테이커?”
“만일 물리력으로 토벌되지 않는 괴이가 있다면 혹시 화력이 부족했던 거 아니냐고 자문해 보는 성격이거든.”
그날부터 이누나키 터널에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 도래했다.
“비기, 터널 무너트리기.”
콰르르르릉-
나는 오러를 마음껏 퍼부어서 터널 입구를 붕괴시켰다.
만엽묘의 지적이 맞았는지 터널 구조물은 40초도 지나지 않아(아마 옛날에 비해 더 강해져서 복원력이 상승한 듯싶었다) 원상복구 되었다. 하지만 내 칼날은 그런 사소한 앙탈까지 신경 쓰진 않았다.
“비기, 터널 무너트리기. 계속.”
쿠르르릉! 콰앙! 콰르르!
이누나키 터널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마다 쉬지 않고 융단폭격을 가했다. 입구뿐만 아니라 아예 터널이 지나가는 산등성이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냐아아아! 뭐 하는 짓이냥! 여기 일대는 우리 신님한테 공헌된 산이다냥!”
“진정해라. 부수적인 피해에 불과해.”
“우리 신사 재산이 날아가 버렸는데 이게 핵심적인 피해지 어떻게 부수적인 피해다냐?”
만엽묘가 방방 날뛰었으나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
40초 후. 산이 전부 없어져 버린 황무지에 터널만 덩그러니 생겼다. 마치 탈모가 완전히 진행된 두피처럼 터널의 외부 구조물이 훤히 드러난 것이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이누나키 터널은 어디까지나 ‘터널’에 기생하는 괴이였다. 이놈이 관장하는 공허가 터널 너머의 산까지 뒤덮지는 못했다.
구조물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터널을 보며 허수검이 감탄했다.
[호오. 과연 언더테이커, 대단한 공력이구려. 터널이 고스란히 드러났소.]“터널이 가진 공포란 건 어둠에 집약되어 있다. ‘어디까지 얼마나 걸어야 출구가 나올지 모르는 막연함’이고, ‘사방이 시멘트로 둘러싸여서 여차할 때 벗어날 수 없는 막막함’이지. 하지만, 봐라.”
나는 터널의 외벽에 올라타서 중간 지점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스륵- 터널의 허리 부근을 두부처럼 갈랐다.
“구조물이 드러나면 만에 하나 탐색자가 조난당하더라도 이렇게 외부에서 구출하는 게 가능하다. 물론 40초가 지나면 다시 외벽이 복구되겠지만, 그사이에 구해 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아아……. 확실히. 그리 생각하니 별로 두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소.]“괴이는 현실의 공허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의 빈틈까지 잡아먹고 피어나는 곰팡이다. 무의식적인 공포를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해.”
[음. 실로 천금과 같은 가르침이오.]“그야 진짜로 천금이 날아갔으니까 당연하다냥! 아이고냐, 아이고냐아!”
찰칵-
나는 만엽묘에게 심령 사진기를 넘겨받아서 재차 터널 입구를 촬영해 봤다.
자아. 괴이의 도발에 이쪽도 도발로 돌려주었다만, 과연 어떻게 반응해 올런지.
곧이어 사진이 인화됐다. 지난번엔 삼나무마다 사람의 몸통을 걸어 놨더니, 지금은 숲이 싹 다 벌목됐기 때문인지 터널 입구의 돌벽에다 시체를 못 박아 놨다.
단, 이번엔 머리통들만.
잘려진 머리들은 전부 자잘한 못들로 입술과 눈꺼풀 따위가 고정당했다. 못들은 시체가 인위적으로 ‘웃는 표정’을 짓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돌벽에는 여전히 ‘어서 돌아와(おかえり)’라는 글자가, 이제는 마법소녀들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핏물로 적혀 있었다.
“…아직 여유롭다 이거로군.”
그래 봤자다.
“냐아?”
“혼잣말이었다. 너희는 굳이 사진을 봐줄 필요가 없어. 어차피 동료 마법소녀들의 시체를 갖고 장난질치고 있을 뿐이야.”
“…….”
만엽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전기를 들었다. 이 무전기 자체엔 아무런 성능도 없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하지 않도록 ‘괴이 무전기’라고 속여 두었다.
“성녀님.”
[네.]“노도하 관리대장한테 연락해 주십쇼. 작전 시작해 달라고.”
[알겠어요.]잠시 뒤.
“각하. 체스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터널 입구에 놓인 테이블 앞에서 유지원이 말했다.
“현재 1조부터 차례대로 부산 해저터널에 진입 중.”
“좋아, 계속 보고해. 성녀님? 사형수들의 시야를 꾸준히 지켜봐 주셔야 합니다. 사형수들의 반응, 대사, 세세한 행동까지 저한테 공유해 주십시오. 공략법 작성에 필요합니다.”
[예.]스르륵. 스륵.
테이블에는 예의 체스말 72개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번 회차에서 전부 잃어버렸던 사형수들.
나, 노도하, 성녀, 유지원. 서포트 계열의 최강자들이 수많은 체스말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죄수들의 목숨이 조금 더 값지게 쓰일 것이다.
7
현실의 터널이란 ‘입구에 들어가서 출구까지 걸어 나올 수 있는 통로’다.
반면 공허의 터널이란 ‘입구에 들어가더라도 결코 출구로 나올 수 없는 미로’.
따라서 터널의 괴이를 물리치기 위해선 사람이 들어갔다가 멀쩡히 나오기만 하면 된다. 그럼 ‘이곳은 더 이상 공허가 아니라 현실이다’라고 증명하는 셈이니까.
이제부터 이누나키 터널을 무사히 건너가는 가이드라인, 더 정확히는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와중에 우리들이 주고받은 교신 기록을 첨부해 두겠다.
해당 교신 기록은 후일 SG넷의 [도서관학회 괴이사전]에 등록될 공략법과 거의 유사하다.
비록 터널에 진입한 인간의 생존율이 결코 높은 편은 아니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린 채 ‘공략법’을 우직하게 따라 준다면 반드시 무사히 생환할 수 있다.
온 더 레코드.
[장의사 씨. 탐색조에 모두 무전기를 지급했습니다. 저를 국도관리대의 팀장으로 소개한 뒤, 탐색대원들이 저의 지시에 따르도록 조처했습니다.] [선발대 진입.] [돌벽을 무너트리는 행위는 ‘이누나키 터널’의 이목을 필요 이상으로 집중시키는 것으로 판단. 탐색대원들은 돌벽을 타고 넘어갔습니다.]1. 먼저 사형수들이 돌벽을 타고 넘어가면 곧바로 지독한 ‘쓰레기 냄새’가 풍길 것이다.
여름비가 내리고서 계절 내내 이파리가 썩어문드러진 악취에 가깝다.
습기를 머금은 동굴의 입냄새가 온몸에 진드기처럼 들러붙을 테지만 당황해선 안 된다.
오히려 그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 ‘안전구역’이다.
[탐색대원들 가운데 2명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악취를 맡았다고 보고.] [단순한 동굴의 냄새가 아니라 시체를 방치해 둔 냄새라고, 6번 사형수가 보고해 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시체를 찾아보라고 지시해 주십시오.”
[예.]1-1. 만일 쓰레기 냄새나 이끼 냄새가 아니라 ‘피 냄새’ ‘시체 썩는 냄새’가 풍긴다면 그 즉시 뒤로 돌아서 돌벽을 다시 타고 귀환해야만 한다.
단, 터널에 진입한 이후로 이미 ‘7걸음 이상’ 걸었다면 귀환해선 안 된다. 이 경우엔 돌벽을 넘는 즉시 허리가 절단된다.
시체 냄새가 풍긴다고 어디에 시체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려는 행위 또한 엄금된다.
최종적으로 그 냄새는 자신의 몸 안쪽에서 풍긴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공략법 1번의 작성에는 사형수 5명이 필요했다.
[탐색대원이 사망했습니다.] [나머지 대원들은 다소 혼란스러워했으나 작전 속행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노도하 관리대장에게 예정대로 후속조를 투입하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이상 무.] [전진.]2. 절대로 터널의 중앙을 넘어서 오른편으로 걷지 마라. 언제나 항상 왼편을 이용해서 이동할 것.
[장의사 씨. 일단 이 지시 사항은 모든 탐색대원에게 전달했지만, 어째서 통로의 왼편만 이용해야 되는 것인가요?]“아. 지난번 회차에선 저희들 네 사람이 통로를 나란히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맨 오른편에서 걷던 허수검이랑 중앙을 걷던 유지원이 돌연사하지 뭡니까.”
[예?]“아, 지원이 넌 이쪽 볼 필요 없고. 미니맵 보는 거에 집중해라. 아무튼……. 갑자기 깊은 물속에 완전히 잠겨 버린 것처럼 꺽꺽 숨을 헐떡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쓰러지더군요.”
[…….]“두 사람의 시체를 확인해 보니 식도와 폐에서 구정물이 한가득 흘러나왔습니다. 사인은 익사였습니다.”
2-1. 만일 걷는 도중에 ‘물 냄새’ ‘하수구 냄새’가 느껴진다면 너무 오른쪽에 기울어져서 걷고 있는 것이다.
즉각 조금 더 왼쪽으로 이동해서 걷는다.
만일 묘하게 숨을 쉬기 어렵거나 걷기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역시 왼쪽으로 이동하라. 단, 이때 ‘걷는 동작’이 아니라 ‘헤엄치는 동작’을 취하며 이동한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터널에 돌입할 때부터 구명조끼를 입고 있을 것.
공략법 2번의 작성에는 사형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상 무. 계속해서 전진하라 지시하겠습니다.]“예, 부탁드립니다.”
3. 이누나키 터널 안쪽에는 온갖 그래피티 및 낙서가 형형색색으로 그려져 있다.
좌우사방, 통로의 전체에 페인트가 칠해졌다. 그래피티들은 마치 바닷가의 암벽에 달라붙은 조개비 껍질처럼 빼곡하다.
해당 낙서들은 라틴어 문자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지구상의 어떤 언어와도 닮지 않았다.
만일 그 낙서들을 쳐다봤을 때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낙서의 빨간색 부분에서 ‘피 냄새’가 느껴진다면 즉시 그래피티로부터 시선을 돌려라.
터널을 깊이 들어갈수록 그래피티는 점점 더 진해지고 복잡해질 것이다.
그래피티가 아직 ‘낙서’처럼 보인다면 해당 구역은 안전하다. 하지만 만일 그래피티가 더없이 아름다운 ‘예술작품’, 특히나 ‘아름다운 생명체’처럼 보인다면 즉시 시선을 돌려라.
해당 현상은 터널의 ‘복도’와 갤러리의 ‘복도’가 혼돈된 공허 작용으로 추측된다.
[장의사 씨. 몇몇 탐색대원들이 그래피티에 과도한 관심을 표하고 있습니다.]“특이한 행동이 감지됐나요?”
[예.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듯이 그래피티에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아름답다, 예쁘다, 황홀하다 등의 문장을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아.] [14번 사형수에게서 이상 감지. ‘이쪽의 색깔이 조금만 더 진하면 좋을 텐데’를 반복해서 읊조리는 중입니다.] [주변 탐색대원들이 제지하고 있습니다만 소용이 없어 보입니다.] [14번 사형수의 자해를 확인.] [스스로 복부를 절개한 다음 그래피티에 붉은색을 칠하고 있습니다.]“과연. 성녀님도 낙서를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예. 주기적으로 시야를 바꿔 가고 있습니다. 14번 사형수가 자신의 눈을 도려 내어 터널 벽의 그래피티에 파묻어 뭉개트렸습니다.] [사망 확인.]3-1. 만일 터널 한복판에 서서 그래피티를 감상하는 사람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즉각 사살하라.
만일 상대방의 팔이나 목 등에 ‘문신’이 선명하게 나타났다면 이미 사살할 시기를 놓쳤다. 최대한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게 도망칠 것.
위와 같은 방식으로 감염된 개체를 이후 ‘관람자’로 칭한다.
더 이상 피 냄새가 진동하지 않고 이끼 냄새, 지하실 냄새, 동굴 냄새가 느껴진다면 안전 구역에 들어온 것이다.
3-2. 만일 관람자가 자신을 쫓아온다는 느낌이 들면 소지한 나이프로 손가락 혹은 발가락을 절단한 후, 자신의 얼굴에 문신과 같은 그림을 그리고서 잘라 낸 부위를 입안에 물고 있는다.
이때 터널벽에 최대한 밀착하여 아무런 소리를 내지 말 것.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와도 터널의 통로 방향을 쳐다보면 안 된다. 소리를 내서도 안 된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터널벽에 붙어 있는다. 최소한 30초 동안 숨을 참는 것을 추천.
공략법 3번의 작성에는 사형수 11명이 필요했다.
[탐색대원이 사망했습니다.] [이상 무.] [전진.]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