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09)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09화(109/151)
──────
동행자였던 자 Ⅰ
신노아
1
내가 각성한 권능들 가운데 가장 근본 넘치는 능력을 하나 뽑아보라면 [시간 봉인]이 되시겠다.
장의사라는 이명의 토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일 처음 각성한 스킬이니.
하지만 가장 쏠쏠하게, 마치 숨 쉬듯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능력은 단연 [완전 기억 능력]이다.
당장 요놈의 스킬이 없었더라면 내 어찌 여러분에게 장장 수천 년의 썰을 풀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사실 [완전 기억 능력]이라 해서 정말로 모든 걸 100%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나니.
나의 기나긴 회귀자 생애 중에서 딱 한 군데, 억지로 삭제된 데이터처럼 공백으로 남은 부분이 0.01% 존재하는 것이다.
하여, 오늘은 내 능력의 ‘불완전 기억’에 관해서 얘기해 볼까 한다.
이건 173회차의 이야기다.
2
어느 날 성녀가 말했다.
[장의사 씨.]“예.”
[어쩌면 저는 지금까지 성좌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활동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조금 더 친숙하고 친절한 방향으로 성좌의 이미지를 쇄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아, 네.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어젯밤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어쩌면 여러분들 가운데 기억력이 비상한 사람은 위의 대사가 낯익을지 모르겠다.
[안녕안녕! 한반도의 각성자 여러분 모두 안녕! 반갑다묭!] [나는 이제부터 여러분을 위해 항-상 감시하고 있을 성좌, 구국의 성녀다묭!] [묘오옹! 앞으로 잘 부탁한다묭!]“…….”
그렇다.
173회차는 내가 ‘나비효과’를 일부러 토벌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둔 회차였다.
베이징에서 일어난 날갯짓은 미국이나 브라질로 떠나는 대신 옆 동네 한국으로 이사 왔고, 한반도 터줏대감인 성녀의 정신세계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성녀님.”
[묘옹?]“그거 아닙니다. 멈춰 주십시오…….”
[예.]성녀의 일탈은 SG넷에 무수한 ‘?’를 남기고 진압되었다.
아무튼 나비효과는 이런, 기존의 회차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난수를 무작위로 발생시켰다.
‘회귀자가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만들어 낸단 점에서 나비효과는 의외로 내 가장 큰 숙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반대로, ‘지겨움을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는 꽤나 고마운 괴이이기도 했다.
아무튼 성녀의 묭묭 말투를 언제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
나는 뇌 속의 바탕화면에 ‘173회차 성녀-고양이성좌 변신’이라는 폴더를 형성하여 녹음 파일을 저장한 뒤, 일상으로 복귀했다.
회귀자에겐 그 나름대로 철저하게 정해진 스케줄이 있었다. 이 시기는 아직 회차를 시작한 지 7개월 차에 불과했기에 여러모로 바빴다.
아산 온양에서 세계수 우담바라를 토벌하고, 국도관리대 창설을 제안하기 위해 노도하와 첫 만남이 이루어질 재활병원으로 이동했다.
노도하가 죽어 있었다.
“…….”
장소는 국립병원이었다. 재활원을 겸한.
병원, 약국, 마트는 세기말에 가장 습격받기 쉬웠다. 공공기관이면서도 보안이 취약한 재활병원은 약탈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으로 비추었다.
국립병원은 사립병원에 비해 서비스가 월등하다 말할 순 없을지언정, 정부의 지원금 덕택에 제법 가성비 좋은 치료 활동을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평가도 좋았다. 그 높은 별점에는 보장구 센터에서 근무하는 보조기기 제작기사, 노도하의 솜씨도 한몫했을 것이다.
노도하의 시체는 입원실 입구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가 근무하는 보장구 센터와는 한참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약탈자들의 습격밖에 없었다면 피해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아포칼립스 상황이 심화되지 않은 시기. 아무리 약탈자라 해도 살인에 거리낌 없지는 않았다.
약탈자의 습격에 괴이들의 준동이 겹쳤다. 병원이 파괴되기 시작했을 때, 노도하는 원래 근무지에서 이탈하여 입원 병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죽었다.
습격은 불과 하루 전쯤에 벌어진 듯했다. 노도하가 즐겨 입는 백의엔 아직 핏물이 붉은빛을 다 잃지 않았다.
“어째서…….”
라고 중얼거리고서 나는 뒷말을 삼켰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극초반부터 노도하가 사망한 회차는.
따라서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 되어 이런 결과를 불러들였는지 역시,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나비효과.
토벌하지 않고 내버려 둘 시, 기존의 인과율에서 벗어나 무작위 난수를 발생시키는 괴이. 그 난수가 어쩌다 보니 약탈자와 괴이의 습격을 일으켰다.
결과, 노도하가 죽었다.
나비효과를 내버려 둘 경우 이런 루트도 관측되는 것이었다.
“…선물이 쓸모없어졌군요. 공방주.”
나는 노도하의 시체에 나란히 벽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중국에서 가져온 선물 박스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보이차. 빙도노채(冰島老寨), 첫물차. 대략 2,000만 원을 호가하는 사치품이었다.
가짜가 아니었다. 회귀자의 지식과 인맥을 활용해서 얻어 낸 진품. 커피보다는 차를 조금 더 선호하는 노도하를 위해 매번 회차 시작마다 이걸 선물했다.
노도하는 타인에게 극도로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선물을 받고 나면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뭐, 어디 이야기나 들어볼까요’라고 대화의 여지를 주었다.
이런 식으로.
-하아? 회귀자? 저기요. 죄송합니다만 지금 저보고 그따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으라는 말씀입니까아……?
-증거는 많습니다. 저희는 이미 이런 대화를 수도 없이 나누었습니다. 그렇기에 노도하 씨가 직접 고안한, [설마 여기까지 알고 있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믿겠다, 너는 회귀자가 맞군’ 질문집 100선]도 존재합니다.
-그 뭔 병신 같은…….
-예언자 아니고요, 국정원 사람 아닙니다. 그보다 이전 회차들의 노도하 씨가 지금의 노도하 씨에게 전달해 달라는 말부터 드리겠습니다.
-뭡니까……?
-개꿀 빨아서 좋습니까?
-하……?
-제가 방금 드린 자료집엔 질문집뿐만 아니라 이전 회차들의 실패 기록까지 대체로 전부 담겨 있습니다. 즉, 지금의 노도하 씨는 이전 회차들의 자신보다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 올라가 있는 것이지요. 그에 대해, 이전 회차들의 노도하 씨가 지적하는 것입니다. 개꿀 빨아서 좋냐고요.
-…….
-참고로 이 문장 뒤에는 ‘씨팔 새끼가’라는 비속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랄.
그렇게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면, 노도하는 자신이 국도관리대의 수장에 올라야 한다는 직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장의사 각성자…….
-예?
-댁 전문직이 장례식 치러 주는 거잖아요? 만일 제가 죽으면 제 시체는 장의하지 마십쇼. 아. 이건 비단 이번 회차에 한정되는 부탁이 아니라 그냥 앞으로 모든 시간에 통용되는 얘기입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왜 장의를 치르지 말아 달라는 겁니까?
-흐, 댁한테 염해지기 싫으니까요……. 그냥 제 시체가 있으면 거기 냅두고 떠나십쇼. 보지도 말고. 살피지도 말고. 배웅 같은 것도 하지 말고. 알겠습니까아……?
-음.
-어차피 다시 만나지 않습니까. 그때 가서 제가 왜 뒤졌는지만 말해 주시길…….
나는 시체 옆에 앉아서, 노도하의 죽은 얼굴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그저 나란히 병원 복도를 올려다보았다.
한동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공방주.”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과 기억을 고스란히 다음 회차로 가져갈 것이었다. 그때 노도하는 틀림없이 ‘흐으’ 하고, 특유의 웃음소리로 이야기에 반응하겠지.
그 광경을 상상하니 조금은 웃을 수 있었다.
나는 선물을 내려놓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후, 성녀의 협력을 받아 국립병원을 습격한 약탈자들을 추적하여 격살하였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겠지만 약탈자들은 마치 무협의 녹림 72채처럼 점조직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중 한 집단엔 이백이 연루되어 있었다.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증거겠지.
국내에 막 뿌리를 내리려는 대규모 약탈자 집단을 싹 다 제초해 버린 뒤, 북경으로 건너가서 나비효과까지 마저 토벌했다.
[그분이 장의사 씨에게 중요한 분이었던 모양이네요.]“예. 그쪽이야 저한테 진절머리 치고 있겠지만요.”
[…….]그다음부터 성녀와 나는 다시는 노도하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양 173번째 회차를 이어 나갔다.
혹시나 해서 덧붙여 두자면, 자살해서 새로운 회차를 시작하자는 발상 따윈 고려하지도 않았다.
노도하가 사라졌음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노도하의 죽음에 대한 나만의 장례식이었고 예우였다.
오히려 이런 변수를 기회로 삼아 더욱더 적극적으로, 평소엔 수집할 수 없었던 부분까지 데이터를 모아야겠지.
그래서 다음 회차의 노도하에게 전달해 주어야 ‘흐음, 뭐어, 그래도 제가 개죽음을 당한 보람이 있었나 보군요…….’라는 감상을 끌어내지 않겠는가?
그래서였다.
내가 173회차에 조금 더 과격한 루트를 추구해 본 까닭은.
3
“국도관리대?”
당서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지만 그런 단체를 만들 생각이고, 거기의 수장직을 나보고 맡아 달라는 거니?”
“그래.”
노도하는 국도관리대란 조직을 짊어질 1순위의 후보였다. 그리고 1순위가 있다는 말은 2순위도 존재한다는 뜻.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나의 2순위엔 언제나 당서린이 위치하고 있었다.
“으으음……. 여러모로 묻고 싶은 건 많지만, 일단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네.”
“편하게 말해.”
“왜 하필 나야?”
그건 간단한 질문이었다.
당서린이 국도관리대의 대장직에 어울리는 이유야 실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었다.
“네가 그렇게 질문해 올 줄 알고 자료를 준비해 왔다.”
“응? 자료?”
“그래. 여기 PPT를 봐주길 바란다.”
“…어라, 이상하네. 갑자기 왠지 내가 질문하지 말아야 할 걸 질문했다는 불길한 예감이 확 몰려오고 있어.”
(1) 지도력.
당서린은 이미 수많은 회차에서 삼천세계를 한반도 최강의 길드로 키워 냈다.
그뿐만 아니라 부산이라는 대도시, 서울이 멸망해 버린 이래 사실상 수도나 다름없어진 거점을 훌륭하게 통치했다.
다른 길드장들이 AI 판사에 의지할 때도 당서린은 ‘등가교환’ 마법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산의 사법을 다스렸다. 이 통치방식에 삼천세계 길드원들은 물론이거니와 부산 시민들도 납득했다.
리더십의 측면에서 당서린을 따라올 만한 인재는 없으리라.
(2) 노블레스 오블리주.
몇몇 길드장들이 도시를 점거하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꾸리는 데 급급했을 때, 당서린은 일말의 주저 없이 전쟁터에 투신했다. 그리고 괴이들과 맞서 싸우는 최전선으로 향했다.
십족. 우담바라. 유성우. 강력한 괴이들이 한반도를 휩쓸 때마다 당서린은 목숨을, 문자 그대로 ‘수명’을 깎아내리며 전장에서 마법의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공공에 대한 헌신.
헌신을 결과로 이끌어 내는 실력.
실적을 포장하여 확산시킨 뒤, 지지자를 끌어모으고 권위를 확립시키는 카리스마.
이 극히 드물고도 희귀한 덕목들을 당서린은 지니고 있었다.
…예전에도 몇 차례 언급했지만 이 세기말엔 ‘각성자 우월주의’라는 해괴망측한 기조가 판을 쳤다.
나는, 노도하가 그러하듯, 항상 각성자를 ‘각성자’라고만 불렀다. 하지만 똑같은 존재를 ‘초월자’나 ‘승천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서린은 그런 말장난에 자신의 정체성을 손톱만큼도 얹혀 놓지 않았다. 그저 강력한 힘만큼이나 끝없는 책임을 짊어졌을 뿐.
‘각성자들을 규합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모든 인간들까지 고려해야 하는’ 국도관리대장직에, 당서린만큼 적격인 인재는 찾기 어려웠다.
(3) 인간적 매력.
비단 집단을 통솔하는 데 필요한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개인 대 개인의 자리에서도 당서린은…….
“아니, 잠깐잠깐! 스톱! 스토오옵!”
“음?”
한창 열심히 ‘당신이 국도관리대장직을 맡아야 하는 101가지 이유’에 관해 설파하고 있자니 당서린이 양손을 휘저었다.
“장의사, 됐어! 그걸로 충분하니까! 이제 그만해! 제발!”
“왜 그래? 아직 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그만하랬지?! 너- 이거, 너, 사람을 부끄럽게 해서 죽이려는 거야? 응? 수치사 시키려고 그러는 거니? 진짜, 세상에. 너 미쳤구나!”
평소에 고깔모자와 마녀 빗자루를 보유하고 다닌단 점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시피, 당서린의 두뇌에는 부끄러움 및 창피함이란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가 퇴화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마법’ ‘마녀’ ‘노래’와 무관한 분야의 칭찬을 융단폭격으로 쏟아부으면 마치 쇠퇴한 허벅지 근육이 무리하게 스쿼트를 달렸다가 달달달 떨리듯, 당서린의 두뇌도 패닉 현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럴 때는 높은 확률로 억지스러운 요구가 굉장히 잘 먹혀들었다.
“알겠다. 그럼 국도관리대장직은 맡아 주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냐?”
“그래! 맡아 줄게. 맡아 줄 테니까 누가 듣기 전에 좀 닥쳐!”
봐라. 이게 바로 전직 당서린 매니저의 수법이다.
그리하여 당서린의 삼천세계 길드는 국도관리대와 통합되었다. 아니, 삼천세계가 이제부터 국도관리대로 진화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올바르겠지.
이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일개 길드에 불과한 삼천세계에 너무 많은 권한이 집중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당서린의 이름값엔 우려를 기대로 전환시키는 힘이 있었으니까.
이렇게나 간편함에도 불구하고 왜 여태까지의 회차들에서 당서린한테 국도관리대를 맡기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면―― 자잘한 변명 이외에, 정말로 핵심적인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웬만하면 다음 회차의 나한테 당신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마.
당서린에겐 내가 회귀자임을 고백할 수 없다.
당서린 본인의 유언 때문에.
우리가 처음으로 십족을 토벌하는 데 성공한 회차,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밝힌 10회차 때, 당서린은 나에게 영원한 주박을 한 매듭 걸어놓았다.
-나는 욕심쟁이에 지름신 신도라서. 절대 ‘다음 회차를 위해서 이번 회차는 버린다’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없어.
-내게 수명이 수백 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지금의 회차를 위해 써 버릴 거야.
-진짜 최후. 정말 정말로 최후의 위기가 도래하기 전까진 내 수명이 적립되도록 유도해.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10회차부터 173회차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내 비밀을 당서린한테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노도하나 성녀와 달리, 당서린은 절대로 우리의 회귀 동맹에 가입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내가 회귀를 통해 얻어낸 정보들을 노도하와는 얼마든지 공유할 수 있어도, 당서린과 나누기 위해선 언제나 약간의 포장과 연기… 달리 말해 거짓말이 필요했다.
거짓말. 본래라면 내가 절대로 당서린에게 하지 않을 짓.
하지만 173회차는, 노도하의 초반부 퇴장이라는 사건이 워낙에 충격적이었던 탓인지 [만약 당서린이 국도관리대를 이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IF 루트를 실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개척해 보는 이 루트에서 당서린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내었다.
“장의사. 당신이 저번에 개발 도와준 등가교환 마법 있잖니. 어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 마법,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 같아.”
“응. 국도관리대 대원들을 타지로 순찰 보낼 때는 항상 십족 토벌전에 참전했던 애를 한 명 포함시키려고. 그래야 여차할 때 다른 길드랑 시비가 붙어도 우리 전부 전우 아니었냐는 식으로 퉁치고 넘어갈 수 있지 않겠어?”
“으음- 천요화 길드장이 마련해 준 AI 판사는 솔직히 편리하긴 하지만. AI 재판관의 판결에 사람들이 불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 그러니까 여기 부산 국도관리대 본부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질 수 있도록…….”
나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비록 노도하가 쌓아 올린 데이터와 내 조언이 있었다곤 하나 당서린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 국도관리대를 이끌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당서린은 여태껏 노도하와 내가 떠올리지 못했던 발상까지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저기, 장의사.”
“음?”
“내가 주가영창으로 펼친 노래를 녹음해서 도시 전체에 계속, 은은하게 틀어놓을 수는 없을까? 가령… 조금 더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해 주는 마법을 개발해서.”
그것이 시작이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