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10)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10화(11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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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자였던 자 Ⅱ
신노아
4
시간을 가속하자.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 요화냐.”
“네에! 헤헤. 오랜만이에요!”
어느 날, 천요화가 측근 몇 명을 데리고 부산에 내려왔다.
백화여고의 종특답게 전원이 하얀 세일러복을 착용한 건 덤이었다. 이제 천요화도 고등학교 4학년이 아니라 대충 고등학교 9학년쯤 되었으니 슬슬 졸업해도 되련만.
한반도 제일의 길드장은 마녀 코스프레, 2순위의 길드장은 교복 코스프레. 이 땅의 앞날이 어두웠다.
“잘 지내고 계셨어요?”
“그럼. 나야 언제나 잘 지내지.”
“아하하. 하긴 선생님은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 떨궈도 멀쩡히 돌아오실 거 같긴 해요. 그나저나-”
우리 둘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 나머지 백화여고 길드원들은 어느새 멀찍이 떨어졌다. 우리 둘만이 남아버린 광장에서 천요화가 주변을 슥 둘러봤다.
“부산. 뭔가 되게 많이 변했다아.”
“음.”
천요화의 말이 옳았다.
173회차의 부산은 과거 회차들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시티뷰를 자랑했다.
이전의 부산은 비록 한반도 제일의 도시였다곤 해도, 아포칼립스라는 시대 상황에 걸맞게 그리 화려하지는 못했다.
환락가야 값비싼 전기를 써가며 노란빛 분홍빛으로 치장했다지만 건물들은 대부분 2층 높이를 넘지 않았다. 고층 빌딩을 유지할 엘리베이터나 하수도 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졌으니.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4층, 5층 건물이 대부분이었으며 10층 이상의 빌딩도 몇 채 보였다. 새삼 문명이 복구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집값이 제일 비싼 건 1층이었다.
단지 5층 높이의 건물에 살며 화장실을 가야 할 때마다 매번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거리는 하체 운동쯤이야 감수하고서라도, 꼭 부산에 살고 싶다는 인구가 그만큼 많아졌을 뿐.
“뭐랄까, 화려하네요.”
“요즘 세종은 어떤데?”
“아- 뭐어. 똑같죠. 세종이야 저희들이 꽉 잡고 있으니까 그나마 사람들이 좀 모이는데, 다른 도시들은 심각할걸요? 전문 인력들은 죄다 부산에 빼앗겼다면서, 가끔 길드장들끼리 모이면 꼭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오더라구요.”
한반도의 새로운 수도를 쳐다보는 천요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치만, 그 불평이 한 곳으로 집중되긴 어렵죠. 국도관리대장이랑 맞서 싸울 만큼 강력한 길드장 따윈 없잖아요?”
“글쎄. 요화 네가 있잖니.”
“아하하. 길드장들도 맨날 그러더라.”
천요화가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제가 뭐 하러 관리대장 씨랑 기싸움을 벌여요? 전 그냥 저희 애들 밥 먹이고 괴이들 때려잡고, 이따금 선생님 만나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로도 충분한걸요!”
“저런. 너답구나.”
“헤헤…….”
하지만 소박한 라이프 스타일치고는 부산에 대동한 길드원들의 아우라가 심상치 않았다.
아마 백화여고의 최고 정예 멤버들로만 사절단을 꾸렸겠지.
나는 슬쩍 천요화의 허리춤을 힐끔거렸다. 포켓몬 트레이너가 포켓볼을 장비하듯, 괴이몬 마스터 천요화도 특제 허리밸트에 모래시계를 걸어두고 다녔다.
유독 새하얀 모래알의 유리병. 저래 봬도 물리력으로는 파괴할 수 없는 괴이 봉인구.
무간(無間).
천요화가 보유한 최강의 무기였다. 모래시계 속에서도 나를 알아본 것일까? 그녀의 도플갱어인 ‘천요화(天寥化)’가 사라락, 사락, 모래를 흐트러뜨렸다.
허리벨트의 진동을 감지하자마자 천요화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조금 전까지 사방으로 발산하던 비타민 웃음기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닥쳐.”
사르르- 모래시계가 잠시 부르르 떨어 대더니 곧 잠잠해졌다. 기분 탓이겠지만 나에겐 그 울림이 비웃음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아아, 아아아――.
부산의 시내 곳곳에 전봇대처럼 솟아오른 스피커에서 자그마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서린의 목소리로 녹음된 아카펠라였다.
-아… 아아… 아…….
곡조는 동요를 닮았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발랄해서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진 않을 정도로만 화사했다.
나지막한 노래가 잠시 우리 둘 사이를 훑고 지나가자 천요화의 눈썹이 부드럽게 풀렸다.
“아- 이게. 그거죠? 부산의 명물?”
“그래. 국도관리대장의 노래지.”
“헤에……. 정말로 듣고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아니,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야 하나. 이거 마약 아니에요?”
실제로도 마약과 같은 효과를 지녔다.
‘국도관리대장의 노래’는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정각마다 방송되었다. 시간에 따라 주가영창의 효과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예컨대 오전 7시에는 ‘잠이 맑게 깨어서 정신이 또렷해지는 효과’가 담긴 노래를. 오후 10시에는 ‘기분 좋게 졸려지고 침대에 누우면 당장이라도 꿀잠을 잘 수 있는 효과’가 발생하는 노래를.
“덕분에 전 세계를 뒤져도 부산 시민만큼이나 수면이 건강한 사람들은 없을 거다. 불면증 환자가 단 한 명도 없거든.”
“흐응…….”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하는 시간에는 활력과 활기가 도는 노래, 근무가 끝나고 슬슬 저녁을 먹을 시기엔 스트레스가 풀리고 어딘지 모르게 살짝 들떠서, 사람들과 딱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템포의 노래가 울려 퍼지지. 노동생산성도, 삶의 전반적인 만족도도 최고야.”
“행복한 도시네요.”
지금도 스피커 아래에 수십 명의 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상쾌한 표정을 짓고 삼삼오오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노래로 이루어진 도시’.
그것이 작금의 부산이었다.
“다른 도시들에서 자꾸 부산으로 인구가 빨릴 만해요.”
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자그마치 6년 동안 당서린과 함께 불철주야 연구했다.
각각 상황에 어울리는 마법 5종을 개발했으며, 녹음되어도 마법의 효과가 비교적 손실되지 않도록 괴이의 귀물들을 활용했다.
“그럼, 선생님. 저는 저 노래의 주인공이랑 회의가 약속되어 있어서. 이만 실례할게요!”
“아. 그래.”
“네! 조금 있다가 또 뵈어요!”
당서린과 천요화, 백마법의 대표와 흑마법의 대표, 부산의 실질적 지배자와 세종의 군벌, 국도관리대의 대장과 백화여고의 학생회장.
여러 면에서 라이벌로 간주되는 두 각성자의 회담은 비밀리에 열렸다. 물론 나는 성녀의 ‘천리안’ 덕분에 비밀회의의 주요한 내용을 모조리 도청할 수 있었다.
협상의 디테일한 부분들까지는 어째선지 성녀가 말해 주길 꺼려서 알 수 없었지만.
회담 결과.
“헤헤. 이젠 동네 이웃이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
백화여고가 본거지를 세종에서 부산으로 옮기기로 결정되었다.
영도구 전체가 백화여고의 영지로 분배되었으며, 세종시의 시민들도 자유롭게 이주가 허락되었다.
천요화는 여전히 백화여고의 학생회장이란 직함을 유지했으나 동시에 국도관리대 부대장이라는 직위를 수여받았다.
누가 어떻게 봐도, 천요화가 길드를 통째로 이끌고 당서린에게 전격적으로 투항한 모습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그게 결정타였다고 생각한다.
5
시간을 조금 더 가속하자.
유일하게 당서린의 대항마로 손꼽히던 천요화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고개를 숙여 버리자 다른 길드장들도 버틸 수 없었다.
차례차례, 각자의 근거지에서 국왕처럼 군림하던 길드장들이 머리를 숙였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가치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국도관리대장에게 아양을 떨었다.
당서린은 너그러웠다.
“장의사. 저 해저터널, 일본 쿠슈에도 연결할 수 있다고 그랬지?”
“음.”
“쿠슈에 유명한 온천 많잖아. 거기 근처로 터널을 뽑아 주면 안 될까? 그 동네에 예쁜 별장들 으리으리하게 지어다가 선물해 주면 다른 길드장들도 그럭저럭 만족하겠지.”
그렇게 되었다.
몇몇 군벌들은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으려 들었으나 소용없었다. 국도관리대에는 ‘검후’가 있었다. 검후가 농토를 밟아 주지 않는 이상, 한반도의 식량 주권은 오롯이 당서린의 손아귀에 놓여 있었다.
찰랑. 당서린이 가볍게 와인잔을 흔들었다.
“난 장의사 당신의 생각을 항상 존중하지만, 국도관리대의 운용에 대해서는 좀 다르게 생각해.”
“그러냐?”
“응. 굳이 비효율적으로 여러 도시들을 내버려 두고, 관리대원들에게 죽음의 순찰을 돌도록 명령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한반도의 인구래 봤자 이제 한 줌밖에 안 남았잖니. 부산 하나로도 충분하단다.”
“…….”
“부산을 한반도 제일……. 아니, 이 세기말의 세계에서 어딜 가도 이렇게 좋을 수는 없을 만큼, 남부럽지 않은 도시로 만들겠어.”
“…그럼 한반도 전체가 공허에 잠식되어 버릴 거다. 높은 확률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겠지. 심심할 때마다 무한에 가까운 괴이들이 지평선 너머에서 침공해 오는 광경을 목격할걸.”
나는 경고했다.
“솔직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어. 몬스터 웨이브는 사실상 토벌할 수가 없는 현상이다. 현실에서 영원히 디펜스 게임을 찍을 생각이냐?”
“그건 무섭네. 하지만……. 응. 할 수 있어. 당신의 힘과 내 마법이라면 가능해. 장의사. 부탁할게. 나를 따라와 줄래?”
“…….”
나는 일순 멈칫했다.
회귀자로서 쌓아 올린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이 순간이 되돌이킬 수 없는 지점임을 느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말이다.
“…물론이다.”
당서린이 화사하게 웃었다.
“역시 장의사야! 당신만 믿을게!”
가속(加速).
4년 후, 한반도에는 오직 부산이란 도시밖에 남지 않았다.
누구보다 세상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떠돌길 원했던 어느 마녀의 세상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회차보다도 좁아졌다.
부산 시내 건물들의 평균 층수는 조금 더 올라갔다. 이만하면 인류 최후의 메트로폴리스라 부를 만하리라.
언제나 서울 용산구에서 머무르던 성녀조차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면서 한반도의 각성자들을 관찰할 필요가 사라진 탓이었다.
그렇게 땅값이 치솟은 부산의 정중앙에는 놀랍게도, 어떠한 건물도 자리 잡지 않은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수만 명이 둘러앉을 수 있도록 설계된 광장. 한복판은 움푹 파여서,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든 시민이 직관할 수 있었다.
마치 콜로세움처럼.
그곳이 당서린의 ‘재판장’이었다.
재판석의 상석에는 당서린이 앉았다. 그 옆에는 천요화가―― 어느 순간부터 하얀 세일러복을 검게 물들인 아이가 앉아 있었다.
재판관들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웅장하기 짝이 없는 재판장에 어느 피고인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저는… 길 가던 사람에게 폭력을 저질렀습니다.”
피고인의 나지막한 자기 고백은 드넓은 재판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당서린의 [확성 마법]이 벌인 묘기.
“저도 가끔씩 저의 몸을 주체할 수 없어요. 분노라고 해야 하나 욱, 하고 올라오는 게…….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언제나 그래서. 이번에도, 주변의 다른 분들이 말려 주지 않았으면 사람을 패 버렸을 겁니다.”
우우우우- 수만 명이 군집한 방청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당서린이 가벼이 재판봉을 두들기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온 도시가 고요해졌다.
“계속 말하렴.”
“…네. 저도 더 이상 이런 자신이 싫습니다.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하고, 사죄드리고……. 무엇보다 저의 이런 성격을 부디, 재판장 각하, 고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피고인이 머리를 조아렸다.
당서린이 차가운 얼굴로 손가락을 저었다. 그러자 황금색의 천칭이 허공에서 빛을 발했다.
등가교환의 마법.
“죄인. 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니?”
“예.”
“네가 바라는 대로, [이제부터 너는 자기 내면의 폭력성이 거세될 것]이야. 이 조건 아래에서 피해자는 너그럽게도 당신이 일으킨 폭력을 용서해 주겠노라고 제안해 왔어.”
그리 너그러운 제안을 건넨 피해자는 1년 전, 똑같은 이곳 재판장에서 [아무리 자신에게 잘못을 범한 사람이어도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는 자비]를 판결로 내려받았다.
“피해자의 제안에 동의하니?”
“예, 당연합니다. 감사합니다. 대마녀님. 감사드립니다…….”
“집행관. 부탁해.”
흑색 교복의 천요화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피고인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짚었다. 천요화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절묘하게 음소거되어 재판장에 울리지 않았지만, 지금 그녀가 피고인을 ‘세뇌’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성격 개변. 주입. 왜곡.
그것이 천요화의 능력이었으므로.
“아…….”
마침내, 황금의 천칭이 반짝였다.
왼쪽 저울에는 피해자의 용서가, 오른쪽 저울에는 피고인의 폭력성이.
양측 모두의 동의를 구한 저울은 균형을 맞추었고- 각자의 소원을 이루어 주었다.
피고인이 벌떡 일어섰다.
“안 느껴집니다……. 안 느껴져요! 평생 저를 괴롭혀 온 그게, 그 감정이, 더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대마녀님! 감사드립니다!”
수만 명의 방청객들이 일제히 손뼉을 쳤다. 잘됐다며 피고인을 응원하는 목소리, 당서린과 천요화의 권능을 찬양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들 또한 사소하거나 중대한 사건으로 인해 재판장에서 무언가를 [교환]받은 시민들이었다.
“아, 수호자 각하.”
문득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유지원이 서 있었다.
“지원이냐.”
“예. 왜 이렇게 외진 곳에서 재판을 방청하고 계십니까? 수호자 각하라면 더 가까이서 보실 수 있을 텐데요.”
참고로 저 ‘수호자’란 건 나에 대한 호칭이었다. 도시의 수호자라나.
당서린의 취향이 너무 듬뿍 들어간 명명법이어서 나 개인적으로는 선호하지 않았다. 차라리 유지원이 과장해서 부르던 ‘각하’ 칭호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 어차피 또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러 떠나야 한다.”
“아……. 역시. 정말로 바쁘시군요.”
유지원이 미소를 내보였다.
본래의 유지원이었다면 절대로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따뜻하고, 그래서 전혀 유지원스럽지 않은 인간적 미소.
“하지만 각하께서 분투해 주시는 덕분에 도시의 시민들도 안심하고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제 지도가 필요한 상황이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
그 모든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진심에서 진실을 찾기 난해한 상황에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유지원 역시 얼마 전, 당서린의 [등가교환]과 천요화의 [세뇌]에 의해 자신의 사이코패스와 같은 성격이 거세되었다.
오래전부터 유지원에겐 불치병과 같은 습성이 하나 있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작은 짐승들, 고양이든 개든 새든, 몰래 사냥하듯 잡아서 도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지웝답지 않게 도륙의 현장이 발각되었고 결국 당서린의 ‘마녀재판’에 회부되었다.
“지원아.”
“예?”
“요즘 생활에 만족하고 있냐?”
유지원이 눈을 깜빡거렸다.
“물론입니다. 오히려 요즘만큼 충실한 시간을 보낸 적이 드뭅니다. 재판을 받은 날부터 비로소 제가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
과연 그럴까.
나는 조금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었다.
애당초 유지원이 작은 짐승들을 난도질하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즐긴다는 정보 따위, 들어본 적 없었다.
설령 이번 회차에 들어서 새로 얻은 취미라 해도 유지원 정도 되는 인간이 ‘실수’로 고양이 도륙 장면을 노출시켰으리라 보기도 어려웠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위장한 취미였고 의도적으로 발각된 행위 아니었을까.
눈앞의 인물은 ‘누가 봐도 싸이코패스처럼 보이는 행각’을 꾸며 냈다. 그리고 마녀재판을 받아 자신의 성격을 교정했다.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또 계속해서 도시의 권력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유지원은 세상을 단지 입구와 출구가 정해진 지도이자 미궁으로 조망할 줄 알았다. 그녀에겐 자신의 성격과 사고방식조차 ‘정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리라.
“…그래. 잘됐구나. 그럼 유 실장도 계속 수고해.”
“예, 각하.”
나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통로를 걸었다.
와아아아아-! 멀리 방청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어마어마한 환호였다.
당서린! 당서린! 마치 달리는 기차에 얻어맞은 것처럼 재판장 전체가 들썩였다.
그 소리에 이끌리듯 재판장을 떠나기 전에 문득, 한 번 더 고개를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때마침 또 다른 피고인의 성격 일부가 황금빛 천칭에 올려져 교환되고 있었다. 당서린은 천요화에게 뭐라뭐라 속삭였으며 천요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당서린과 시선이 마주쳤다.
“…….”
“…….”
하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당서린은 도시의 지배자로서, 이 공간의 재판장으로서 계속해서 업무에 임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도.
내가 복도를 빠져나가는 와중에도 뒤에선 함성이 멈추지 않았다. 당서린! 당서린! 당서린…….
재판장에서는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고 바깥 도시의 스피커에선 노랫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나는 두 가지 선율을 내 발길에 그림자처럼 두르고 걸어갔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