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15)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15화(11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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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가 아닌 자 Ⅲ
신노아
5
이 세계는 오염되었다.
비단 물질적인 공간이 더럽혀졌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정신적 세계, 각성자들의 두뇌까지 남김없이 오욕에 물들었다.
-익명: (추천) ☆☆☆레벨5~레벨10☆☆☆ 경험치 파밍 개꿀 사냥터 던전 list. 뉴비 필독!!
-익명: 본인 오늘 새벽부터 일어나서 경험치 1만 채움 그리고 아이템 가져와서 정산 끝내고 맥주 조지고 있음 ㅁㅌㅊ?
-고려장: 오늘의 카페모카.png
-익명: 10렙 파티 구합니다!! NPC 짐꾼은 없어요ㅠㅠ
-[삼천]마녀재판장: 얘들아. 오늘 몬스터 잡는 도중에 블랙오브메시아(S)라는 장비템이 나왔는데 이거 좋은 거니?
보라. 이 썩어빠진 정신세계를.
‘온라인 RPG’가 도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SG넷은 이딴 꼬라지로 전락해 버렸다.
애당초 세기말 이전부터 게임의 민족임을 자칭하던 한국인들답게 적응이 너무나 재빨랐다. 서브컬쳐에서 흔히 보이는.
‘뭐? 세상이… 게임으로 변했다고?’
‘이런 건, 절대로 이상해…….’
‘저 치터 녀석. 어떻게 우리는 모르는 게임의 원리를 모조리 꿰뚫고 있지?’
라는 클리셰는 모조리 스킵되었다. 초등학생 꼬맹이조차 ‘뭐? 우리가 게임 플레이어가 되었다고? 올 것이 왔군’이라는, 실로 숙련된 베테랑의 표정으로 세태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곧이어 SG넷은 온갖 공략글로 도배되었다. 굳이 내가 ‘대도서관 학회’의 가면을 쓰고 열심히 공략을 연재할 필요조차 없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알아서, 열성적으로 괴이들을 공략해 나아갔다.
이런 건 절대로 이상했다.
“왜 그리 죽상입니까……? 흐으. 괴이만 나타나면 벌벌 떨던 예전에 비하면 오히려 더 좋아진 거 아닌지? 요즘은 레벨 올리겠다면서 지들끼리 알아서 공허로 들락날락거리던데요…….”
“그야, 전부 게임 감각으로 공허를 탐사하니까 문제입니다. 자신의 직관으로, 힘껏 쌓아 올린 경험으로 세계를 파악해야 하는데, 저런 괴이 나부랭이가 마련해 준 렌즈로 굴절되어 버린 세상만 바라보는 꼴 아닙니까.”
“흐으음…….”
“이 ‘온라인 게임’이란 건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공허입니다. 자신들을 플레이어라고 자칭하는 각성자들은 스스로 공허의 괴이로 전락하는 셈이나 다름없습니다!”
“뭐, 일리는 있습니다마안……. 그냥 자기가 독점하고 있던 명성과 실적을 괴이한테 빼앗겨서 분노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저의 착각일지……?”
세상만사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타입: 독 포켓몬의 의견은 존중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일본과 중국, 더 나아가 몽골과 인도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어떤 곳이든 모조리 ‘온라인 RPG’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변해 버린 건 사람들의 인식뿐만이 아니었다.
괴이들마저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으헤헤. 요즘 강변에 슬라임들이 넘쳐나서 자, 잡기 너무 편해졌어요……!”
예컨대 심아련이 매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잡아와서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몽둥이로 후들겨 패는 슬라임.
본래 이 슬라임은 그리 흔한 괴이가 아니었다. 아주 가끔씩 하수도에 출현했고 그마저도 바깥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기어코 지하로 내려간다면 모를까. 웬만한 각성자들은 일상에서 슬라임과 마주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지경.
그런 슬라임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었다. 이젠 평범한 강변에서도 심심찮게 슬라임이 통통 튀어 다녔다.
뾰로롱♪
뾰로로롱♪
덕분에 우리 길드 앞마당에선 시도 때도 없이 심아련이 슬라임을 쥐어패는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바로 이 소음공해 때문에 나는 길드 아지트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고 진지하게 결심하게 되었다.
아울러 100미터에서 1200미터로 이어지는, 뭔 근본도 없는 S급 SSS급 EX급 등급 체계가 아니라, 매우 엄밀하고 학술적으로 입증된 객관적 기준 ‘심도’가 개발된 것도 이러한 결심의 일환이었다.
“과, 광렙……. 역시, 앞마당에서 슬라임을 패면 제 독마새 스킬이 마구마구 광렙하는 게 느껴져요! 이, 이건 그거네요. 알고 보니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만 아는 영약 광산으로 이어졌다거나, 주, 주인공 혼자만 꿀 빨 수 있는 히든 스팟이라거나……!”
심아련의 치유 능력은 슬슬 ‘대가리만 달려 있으면 환자의 사지가 찢어진 채 이송되어도 말끔하게 치료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SG넷에서 심아련을 ‘천사님’이라고 부르는 각성자들도 점차 늘어났다.
이런 건 절대로 이상했다.
어쨌거나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급증하고 있는 괴이는 슬라임뿐만이 아니었다.
고블린, 오크, 오우거, 트롤. 요컨대 게임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점점 더 공허를 채워 갔다.
이런 현상을 해설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온라인 게임이 각성자는 물론이고 괴이들까지 침식하고 있다……?’
등줄기가 싸해졌다.
인간과 괴이를 가리지 않으며, 특정한 장소에만 머물지도 않고,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그저 끝없이 자신의 세력권을 넓혀 가는 괴이.
소외신(疏外神).
그렇다. 무간이 토벌된 것을 기다렸다는 듯, 또 다른 정체불명의 소외신이 마수를 뻗어 오고 있었다.
인간으로선 거부하기 어려운 ‘게임’이라는 가면으로 위장한 채.
-익명: (인증샷) 이번에 오크 때리면서 데미지 신기록 세움ㅋ
-익명: 게임 진심 너무 재밌다.
-익명: 20렙 파티 구합니다!! NPC 짐꾼 1명 이미 확보해 두었어요!!
-익명: 김해 던전 앞에서 트롤 눈동자 교환하실 분?
SG넷은 점점 더 ‘게임 게시판’과 외관상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덧 괴이보다 몬스터라는 용어가 당연하다는 듯 사용되었고, 스킬을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들은 NPC라고 불렸다.
몬스터를 잡으면 ‘아이템’이 드롭되었다. 슬라임의 핵, 고블린의 이빨, 오크의 심장 등등. 그러한 재료들은 모두 특정한 효과를 갖고 있었으며,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는 ‘아이템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게임이었다.
…나는 내 추측을 회귀 동맹의 일원과 공유했다. 노도하와 성녀의 표정도 비로소 심각해졌다.
“노도하 관리대장. 관리대장 명의로 ‘온라인 게임’을 정식으로 괴이로 선포해 주십시오. 지금이라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줘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이제 와서 약빨이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군요. 다들 게임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어서…….”
게임 중독.
그것 또한 이 소외신에 감염된 각성자들이 보이는 증세였다. 세기말 이전에 언론에서 운운하던 게임 중독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제 각성자들은 ‘게임의 형태를 지닌 세상’이 훨씬 더 진실되고 바람직하다 여겼다. SG넷에선 지금도 3초에 한 번씩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성녀님. 계속해서, 되도록 사람들이 의심을 품을 수 없도록 ‘온라인 게임’의 운영자 역할을 연기해 주십시오. 해당 괴이를 당장 토벌할 수는 없을지언정, 그놈한테로 번져 가는 신앙심을 조금이라도 막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예. 알겠어요.”
이렇게 대비하자 134회차까진 어떻게든 틀어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심으로 이미 다음 회차를 각오하고 있었다. ‘상태창’을 가로채자 ‘경험치’ ‘레벨’ ‘데미지’라는 괴현상들이 추가로 나타났다.
이다음엔 어떤 괴이가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한반도, 아니 전 세계의 각성자들은 ‘온라인 게임’에 강력하게 중독되었다. 그것들이 측정해 주는 능력치와 레벨은 확실했고, 공포로 가득했던 공허는 돌연 경험치로 가득 찬 사냥터로 돌변했다.
인류는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공허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승리를 거듭했다. 그 자신들이 괴이를 추종함으로써.
문득 [호밀밭 파수꾼]에서 주인공이 읊조린 독백이 떠올랐다.
…게임 좋아하시네. 그래. 만일 잘난 놈들이 죄다 모인 팀에 들어가게 된다면야, 인생이란 게임이 맞다. 인정하겠다. 하지만 만약 반대팀에, 잘난 새끼들이라곤 코빼기도 안 보이는 곳에 걸린다면, 대관절 그게 무슨 갓겜이란 말씀이신가? 아무것도 아니다. 게임이 아닌 것이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라도 각성자들이 승리하고 있는 동안이라면 ‘온라인 게임’은 유희가 맞았다.
하지만 과연 그 승리가 언제까지 이어질까?
국도관리대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각성자들은 온라인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레벨업의 재미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어느 날.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항상 징조가 먼저 울리듯 하나의 메시지가 내게 도착했다.
[‘만상유희의 운영자’가 새로운 이벤트의 발생을 예고합니다.]6
회상(回想).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왜 갑자기 이상한 성좌 흉내를 냈습니까?”
“네?”
“일주일 전에요. 만상유희의 운영자라는 이름으로 메시지 보냈잖습니까. 성녀님도 실수할 때가 있구나 해서 좀 놀랐거든요. 혹시 다른 각성자한테 보내야 할 메시지를 저한테 보내신 겁니까?”
“……?”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금방 떠올리겠지.
이것은 성녀와 최초로 만났던 썰을 풀 적에 내가 말미에 언급했던 일화.
“저 그런 메시지 보낸 적 없는데요?”
“예?”
“애당초 만상유희의 운영자라는 성좌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요. 장의사 씨가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
성녀가 만들어 낸 적 없는 ‘수수께끼의 성좌’가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야기.
나야 그때그때 떠오르는 에피소드를 시간을 별로 얽매이지 않고 들려줄 따름이지만, 회차 순서대로 흐름을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17회차. 소외신 ‘무간’을 토벌.
118회차. ‘용사 증후군’을 최초 목격.
119회차. ‘환생트럭’을 최초 목격.
126회차. ‘구원서사 증후군’을 토벌.
133회차. ‘상태창’을 최초 목격.
134회차. 소외신(추정) ‘온라인 게임’을 최초 목격.
그리고 수수께끼의 성좌로부터… 아니, 과연 성좌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존재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것 또한 134회차였다.
회귀자로서 오랫동안 날카롭게 벼려진 직감이 지진계의 묘침(描針)처럼 사정없이 떨어 댔다.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134회차는 아직 전진(前震)에 불과했다.
다음 회차. 즉, 135회차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지진이 발생했다.
-익명: 이 새끼들은 진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네ㅋㅋ 게임 끄고 바깥에도 좀 나가라ㅋㅋㅋ
135회차는 134회차와 기본적으로 비슷했다.
단, 어느 순간부터 기이한 게시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점이 달랐다.
-익명: 우리한테는 게임이 현실인데? 우리한테는 게임이 현실인데? 우리한테는 게임이 현실인데?
└익명: ㄹㅇㅋㅋ
└익명: 본인 50783시간 연속 ‘현실’ 플레이하는 중ㄷㄷㄷㄷ
└익명: 넌 좀 꺼라
-익명: 얘는 새벽에도 뻘글만 올리더니 지금도 뻘글 올리네…….
└익명: 뭣?
역시 외관만 보면 아무런 문제 없는, 평범한 커뮤니티의 툭탁거림.
하지만 본래 모든 공허는 자신이 자연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처럼 위장한다. 학교로. 터널로. 바다로.
결국.
-익명: ㅅㅂ 너무 오래 게임만 했더니 온몸이 뻐근하네 나 먼저 퇴근함
실이 뚝 끊어지듯 공허는 도래했다.
-익명: 님들ㅈㅅㅈㅅ 더 이상 졸려서 접속 못 하겠음; 먼저 나가 봄
-익명: 저도 로그아웃하고 현생 살러 갑니다~
-익명: 30렙 파티 구합니다!! NPC 짐꾼 3명 이미 확보해 두었어요!!
-익명: 어휴 게임 졸라 할 거 없네. 망겜 접는다ㅅㄱ
SG넷의 회원들이 하나둘씩 게임에서 로그아웃을 하거나 접는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온라인 게임’은 현실에 덧씌워진 게임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 게임을 ‘로그아웃’하거나 접을 수 있다는 말인가?
[장의사 씨.]그 해답은 알기 싫어도 곧바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각성자들이 움직이지 않아요.]“…죽었다는 말씀입니까?”
[예. 거의. 그렇지만, 이상해요. 몇몇 각성자들은 꼭 가사 상태에 빠진 것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이 있다가, 얼마 뒤에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활동해요.]“…….”
[마치, 게임에 로그인한 것처럼.]좀비와 비슷했다.
밤이 되면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햇빛만 뜨면 작동을 정지해 버리는 괴물처럼, 각성자들은 ‘로그아웃’을 겪는 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가사 상태에 빠진 각성자들은 제 천리안으로 들여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암흑. 새까맣게 덧칠해진 까만색만 보일 뿐이에요.]로그아웃 상태에 놓인 각성자는 설령 내가 공격을 가하더라도 피해를 받지 않았다.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양 칼날이 통과되었다.
우리 길드에서 가장 ‘온라인 게임’을 즐겨한 아이, 심아련도 해당 현상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앗, 길드장님!”
심아련이 눈을 뜨고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지난 3일 동안 정자세로 우뚝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육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혹시 저 기다려 주고 계셨던 거예요?”
“…그래.”
“와아! 감사드려요! 에헤헤. 역시, 아무리 NPC여도 호감도가 올라가면 반응이 달라지는구나!”
“…….”
“얼른 돌아오려고 했는데 현생이 발목을 잡아서……. 하지만 이번에 해결하고 왔으니까요!”
원래 ‘중독자’들 사이에서 NPC란 용어는, 스킬을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들을 일컫는 용어였다.
이제는 달랐다.
시간이 흐르자 일반인들에게도 소소한 능력이 생겼다. 그들은 주저 없이 게임에 접속하여 플레이어로 승급했다.
이제 NPC란 노도하나 나처럼 아예 게임에 접속조차 하지 않는 자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24시간 내내 ‘게임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중독자들은 NPC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도하가 한반도에 국도를 건설하는 작업이 그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에서 ‘퀘스트’로 여겨졌다.
나 또한 ‘히든 NPC’로서, 플레이어들에게 각종 직업과 스킬, 육성법을 알려 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어느 쪽이 NPC인가.
내 입장에서는 괴이에 잡아먹혀 공허의 일부로 전락해 버린 저들이야말로 NPC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들은 정반대로 나를 NPC로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만일 이것이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사례라면, 너무나도 지독한 나비의 악몽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