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16)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16화(116/151)
──────
플레이어가 아닌 자 Ⅳ
신노아
7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인간이 괴이의 존재에 물드는 현상을 ‘신앙심을 가진다’라는 식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훨씬 더 좋은 용어가 있다.
홀리다.
매혹되다. 매료되다.
매(魅)라는 한자를 보면 그 안에 귀신(鬼)이 들어간다. 귀기. 거스르기 어려운 끌림. 충동. 그것에서 옛사람들은 귀신. 즉, 괴이를 감지했다.
또한 수없이 경고했다.
괴이는 괴이마다 천차만별인 법. 자연히 괴이의 끌림을 가리키는 단어도 무수할 수밖에 없나니.
한자 수정
이 모든 글자가 매혹을 의미한다.
옛사람들이 굳이 하나의 단어에 머무르지 않고 에둘러 魅를 이리저리 칭한 까닭은, 글자에도 괴이가 머무르기 때문이며, 괴이가 머무른 글자는 곧 주술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괴이를 부를 적에 끊임없이 ‘이명’을 사용하는 것과 똑같다.
괴이가 아예 하나의 글자, 하나의 이름을 점유해 버리면 그 자체가 괴이에게 ‘집’을 지어 주는 셈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괴이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얘야. 귀신아. 괴이야.
-여기가 너희 집이란다. 이리로 오렴.
이라고 불러들이는 꼴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괴이의 이름은 하나로 정해져서는 안 된다. 부득이하게 불러야 한다면 부를 때마다 다른 이름을 씀이 옳고, 그럴 지식과 경험이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부르지 않는 것이 옳다.
‘도서관학회’의 창시자로서 나는 일부러 괴이들을 부르는 방법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당장 십족만 해도.
‘기어 다니는 새끼 크툴루’ ‘그림자 군주’ ‘가시지옥’ ‘러커’
등과 같은 여러 이명으로 불렀다. 물론 십족이 정신계열 괴이가 아니라 한낱 물리력만 행사하는 부류임을 고려하면 좀 과하다 싶을 만큼 대비책을 세워 둔 것이긴 했다.
하물며 소외신인 무간이야 오죽하랴?
‘천요화(天寥化)’ ‘학교괴담’ ‘백귀야행’ ‘백물어(百物語)’ ‘4자금기(四字禁忌)’ ‘백화(百話)’ ‘백화(白化)’, 여기서 더 나아가, 비록 썰에서는 자주 언급하지 않았으되, ‘헤라클레이토스의 화환(火環)’ ‘백룸(The Backrooms)’ 등등…….
인간들에게 충분하다 넘칠 정도로 호칭법의 선택지를 마련해 두었다.
이래야만 비로소 괴이가 제 둥지를 틀지 못하고 글자들의 등쌀에 떠밀려 구천을 떠도니까.
오늘의 에피소드도 마찬가지.
썰을 시작할 때 나는 괴이의 이름을 ‘온라인 게임’이라 명명했다. 하지만 지금쯤이면 그보다 더 적합한 명칭이 있음을 여러분도 짐작하고 있으리라.
‘로그아웃 게임’.
이 괴이에게 홀려 버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결말, 그것은 현실로부터의 퇴장이었다.
-익명: 망겜 콘텐츠도 없음ㅅㅂ
-익명: ㄹㅇ 요즘 게임에 잘 접속하지 않게 되네. 일퀘 도는 것도 귀찮음…….
-익명: 이 겜 엔딩은 언제 남?
-익명: 40렙 파티 구합니다!! NPC 짐꾼은 없어요ㅠㅠ
-익명: 갓겜충들 다 죽으니까 여기 사람도 얼마 안 남았네ㅋㅋㅋ
-익명: 와 이 똥망겜 게시판이 왜 아직도 살아 있냐?
플레이어들이 로그아웃하는 기간은 점점 더 길어졌으며, SG넷에 접속하는 인원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점차 황량해지는 커뮤니티.
그곳에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하게 뻘글을 올리는 네임드 회원이 한 명 있었다.
-고려장: 오늘 길드장 NPC가 타 준 카페모카.png
└익명: 님 아직도 안 접음? 레벨 몇임?
└고려장: 이 형님은 만렙 찍은 지 오래라서 이제 던전은 안 돌고 길드 하우스 꾸미기나 하고 있다
└익명: 만렙ㄷㄷㄷ
└익명: 근데 어떻게 NPC가 길드장 역할을 수행함? 버그임?
└고려장: 게임사가 패치 안 하는 거 보니까 버그는 아닌 듯?
심아련.
다른 사람들이 차례차례 ‘게임’을 접는 와중에도 심아련은 계속했다.
정작 게임에 접속하고 나서 그녀가 하는 행위란 건 별거 없었다.
“아. 망겜……. 벌써 2년째 없뎃이니까 유저들이 자꾸 탈주하지, 아효…….”
똥망겜이라며 한탄하기.
“길드장님! 이거 보세요! [커피 원두]! 헤헤. 길드장님은 이 아이템 받으면 호감도 오르죠? 으헤. 네크로맨서 리치 잡으면 되게 낮은 확률로 나오는 드롭템인데, 다 모아서 가져왔어요! 에잇에잇. 올라라! 호감도, 얼른 올라 버려라……!”
나로서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호감도 시스템에 집착하며 연거푸 선물 공세를 퍼붓기.
“으헤헤, 으히. 으히히히…….”
한강에서 슬라임 잡아와서 온갖 방식으로 두들겨 패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조차 ‘쟤 안 질리나?’라는 감상이 무심코 들 정도로 단조로운 플레이 패턴이었다.
심아련 본인도 과연 질려 버렸는지, 한창때는 매일같이 접속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1일, 3일, 7일씩, 로그인 주기가 길어졌다.
그조차 다른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꾸준한 접속률이었지만.
사실 플레이어뿐만 아니라 NPC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기껏해야 노도하와 성녀 정도?
찾아보면 아마 고요리도 남아 있겠으나, 굳이 위험을 자처해야 될 이유는 없으리라.
결국 나-노도하-성녀 세 사람, 회귀 동맹의 일원은 한강 변에 모여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은 국도관리대 본부를 유지하는 의미도 없었으며 용산의 수족관 저택에만 머물러서 생존을 이어나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 세계에선 생명의 온기가 지나치게 희박해졌다. 최후의 NPC, 아니 생존자들끼리 뭉치는 것은 필연이었다.
“흐음. 조용하군요…….”
노도하가 커피를 마시며 입김을 흘렸다.
“괴이들도 딱히 난동을 부리지 않고 던전에만 틀어박힌 상태. 각성자들은 모두 망부석이라도 된 것마냥 꼼짝하지 않고. 이거 참, 장의사 각성자가 무수한 회차를 겪어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과연 세계멸망을 직관하는 기분이 어떨까 궁금했습니다만……. 이런 풍경이었습니까…….”
“이만큼 조용한 경우는 잘 없습니다.”
우리는 강물이 햇빛을 받아 마시는 광경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제가 실험에 나서 볼게요.”
성녀가 말했다.
“예?”
“로그아웃을 한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정말로 죽음과 같은 상태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장의사 씨의 추측대로 소외신의 ‘신역’으로 끌려들어 간 것인지. 저도 게임에 접속해서 알아내 볼게요.”
“…위험할 겁니다. 다른 각성자들은 단순히 현실로 되돌아간다는 감각만 가졌기에 별다른 영향이 없었을 뿐. 소외신임을 미리 의식한 채 뛰어들면 상대로부터 어떤 반응이 튀어나올진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정보가 필요해요. 어차피 장의사 씨는 다음 회차를 생각하고 계실 거예요. 그럼 리스크를 짊어지고 약간의 정보라도 더 얻는 게 올발라요.”
“…….”
“지적하신 것처럼 섣불리 소외신의 신역에 투신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지요. 장의사 씨의 능력을 들켜 버릴지도 모르고요. 그러니까, 제가 정찰을 맡을게요.”
그건 틀리지 않은 주장이었다.
평소였다면 고작 정찰병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성녀라는 패를 소모할 리 만무했다.
체스판 위에서 성녀의 역할은 킹. 절대로 적에게 함락되어서도 들켜서도 안 되는 요원이었으므로.
하지만 더는 성녀가 감시해야 될 각성자들도 사라졌고, 성좌들을 연기해야 할 필요성도 없어졌다.
우리는 도박수를 던졌다.
길드의 지하실. 성녀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상태창.”
“…….”
“…….”
노도하와 내가 성녀를 쳐다보았다.
“어떻습니까?”
“…제 능력이 보여요. 레벨도. 다만 각성 능력을 가리키는 용어가 상당히 다르네요.”
성녀는 우리가 아니라 눈앞의 허공을, 마치 거기에 문자들이 적혀 있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로그아웃 버튼은 보이지 않습니까?”
“로그아웃 버튼……. 아. 네, 여기. 메뉴를 여니까 맨 아래에 로그아웃이라고 적혀 있어요.”
“음.”
“지금, 눌러 볼게요.”
그 순간.
성녀가 정지했다. 문자 그대로 동작이 경직되었다. 조금 전까지 가슴속에서 뛰던 심장의 진동도, 하늘빛 눈동자의 시선도, 강바람에 나풀거리던 물색 머리카락도.
전부. 모조리 멈춰 버렸다.
“…….”
“흐으음.”
노도하가 손을 뻗었다. 그렇지만 노도하의 손은 간단히 허공을 휘저었다.
“벌써 몇 번 겪어 봤지만 불쾌한 경험입니다. 흐으. 보이는데 만지지 못하니 신기루, 허상이랑 다를 바 없군요…….”
“…….”
“로그아웃 게임이라 부르기로 하셨다죠? 이 괴이. 어지간히도 우리의 세계를 허구로 만들고 싶은 모양입니다…….”
나는 시계 타이머를 돌렸다.
10초.
그것이 성녀와 약속한 시간이었다. 첫 번째 로그아웃 상태는 딱 10초 동안만 유지하고 곧바로 탈출하기로.
10초가 흘렀다.
성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
“…….”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미리 예측했기에, 두 번째 타이밍은 3분으로 약속해 두었다.
2분 50초가 흘렀다.
여전히 성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리는 미리 또한, 예측해 두었으므로, 세 번째 타이밍은――.
“장의사 각성자.”
“예.”
“죽었습니다. 그 사람.”
“…….”
“죽은 사람의 모습을 너무 오래 지켜보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혹시라도 돌아올 수도 있으니, 여긴 제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그러니 장의사 각성자는 위로 올라가십시오…….”
나는 노도하의 말에 수긍했다.
강변에선 빛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커피를 두 잔 타서 지하로 내려가니, 노도하 공방주의 몸이 정지되어 있었다.
“…….”
나는 한 잔의 커피만 들고 도로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다시는 지하실에 들르지 않았다.
다음 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긴급 패치 공지.] [‘만상유희의 운영자’가 공지해 드립니다. 어제 오후 3시경 게임에서 심각한 버그가 발견되어서 패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유저 여러분들에게 불편을 끼쳐 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송구합니다. 감사합니다.]8
이따금 회귀자로서 이런 생각이 든다.
무한히 수레바퀴를 굴리는 나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삶을 가볍게 여길지도 모르겠다고.
모든 것을 기억해 버리는 내 머리에는 성녀가 맞이한 수백 번의 결말과 노도하가 죽음에 이른 수백 번의 장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내 동료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내게 어떤 방식으로 기억될지 때때로 간과해 버리곤 했다.
‘아직. 아직은 죽을 수 없다.’
홀로 남아 버린 세계에서, 모든 사람에게 가상으로 전락해 버렸으되 오직 나에게만은 현실인 이 공간에서, 기다렸다.
소외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이제 세계는 거의 빠짐없이 네놈 손아귀에 떨어졌다. 어지간히도 최종 승리를 선언하고 싶을 터. 하지만 네 공허에는 [이건 게임이 아니다]라고 증명하는 존재가 아직 남아 있다.’
바로 나였다.
‘내가 거슬리겠지. 괴이놈.’
자신의 공허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없애 트려야 하는 불순물.
소외신 녀석이 더 이상 참지 못해 게임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본체를 드러낸다면, [만상유희의 운영자]가 본색을 내보인다면, 나는 기꺼이 그 모습을 본 다음에 죽을 작정이었다.
그 전엔 절대 죽어 줄 수 없었다. 회귀자를 우습게 봐선 곤란했다. 언제나 개복치처럼 자결해 버리는 쇼 노인과 달리 나에겐 근성이 있었다.
“길드장님, 잘 계셨어요? 하으. 요즘 현생이 너무 바빠서 접속하기 점점 어려워지네요……. 그래도 생각날 때마다 꼭꼭! 들를게요! 헤헤.”
심아련이 접속하는 주기는 급속하게 늘어졌다.
이젠 1년에 1번, 3년에 1번 접속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심아련 본인에겐 3년 만에 찾아왔다는 자각이 없어 보였다. 기껏해야 3주 정도 만에 들어왔다고 여기는 듯했다.
‘시간의 흐름이 다르군.’
하긴, 공허에서 시간이 기이해지는 것쯤이야 당연했다. 백화여고에서도 천요화는 본인 스스로 4년이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냥 앉아서만 세월을 보내지 않았다.
한반도 유저들 사이에서 제일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던전에 들어가 모든 몬스터를 사냥했다.
잠깐 기다리면 몬스터들이 리스폰 되었지만, 그것까지 싸그리 죽였다.
11년 동안.
본래는 플레이어들의 몫으로 떨어져야 할 경험치 덩어리들을 NPC에 불과한 내가 망쳐 버린 것이었다.
[긴급 패치 공지.] [‘만상유희의 운영자’가 공지해 드립니다. 심각한 버그가 발견되어서 긴급히 패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유저 여러분들에게 불편을 끼쳐 드리게 되어 진심으로 송구합니다. 감사합니다.]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이 사라졌다.
“하.”
이제 게임의 구조를 유지하는 시늉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일까.
나는 한반도 전역의 던전들을 차례차례 깨부쉈다. 그때마다 ‘긴급 패치’가 이루어졌고, 일찍이 정교하게 구성되었던 ‘게임’은 급속도로 망가졌다.
원래 플레이어들이 교류하던 도시와 마을도 똑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길거리, 혐오스러운 몬스터, 모든 오브젝트들이 파괴되었다.
아직도 로그아웃 중인 플레이어들의 망부석만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을 뿐.
내 파괴 행각은 37년 동안 이어졌다.
[긴급 패치 공지.] [긴급 패치 공지.] [긴급 패치 공지.]어느 순간부터인가 ‘게임’은 낮과 밤을 바꾸는 것마저 그만두었다.
태양과 지구마저 이미 소외신급 괴이에게 ‘홀려 버렸다’는 증거였다.
한강의 강물이 멈추었다. 여름에 들려오는 매미 소리가 중단되었다. 몬스터들은 리스폰 되어도 제자리만 맴돌았다.
기괴한 세계.
망가져 버린 게임.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죽지 않는 가상의 엘도라도.
그러나 영원토록 이어지는 내 기억이, 계속해서 피가 돌고 오러를 돌리는 내 육신이, 여전히 나 자신이 살아 있음을 각인시켜 주었다.
이제 현실의 시간은 내 뇌에 깃든 기억만 해졌고, 현실의 공간은 내 몸의 부피만 해졌다.
[긴급 패치 공지.]212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