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22)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22화(12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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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자 Ⅱ
신노아
4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지도 않았지만, 각성자로 전직하기 이전 1회차의 나는 제법 건전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담배? 안 핀다. 술? 별로.
당연히 도박에 빠진 일도 없었다. 최선의 엔딩을 보기 위하여 내 인생을 1,000번 넘게 리세마라를 돌린 것만 제외하면.
-오빠. 나, 궁금해. 들어가 보고 싶어.
“기다려 봐라.”
그렇기에 하율이가 카지노를 보자마자 옷소매를 꼭꼭 잡아당겼을지라도 건전도덕청년인 나는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칼부터 뽑고 봤다.
일섬.
다짜고짜 휘둘러진 검격. 내 전용 장비템인 지팡이검 도하가 세상을 대각선으로 길게 양단했다.
쿠르르르릉-
사방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공허에서 불법으로 영업을 개시한 카지노 건물의 일각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 ……!”
하율이가 옆에서 콩콩 뛰어다녔지만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했다.
아무리 호기심이 앞서더라도 지금처럼 상대한테 ‘물리력이 통하는지 안 통하는지’ 시험해 보는 일은 무척 중요했다.
단순히 내가 TRPG에 참여하면 뭔가 불길한 저택에 들어가기 전에 ‘마스터님, 휘발유 구해다가 바깥에서 집을 불태우면 안 될까요?’라고 냉정하고도 과학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플레이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리력이 통용되는지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공허의 위험도를, 괴이의 레벨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나는 느긋하게 저 ‘카지노 괴이’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히에에에엑!”
그리고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카지노 대문에서 히엑, 히익, 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쪼끄맹이들이 몰려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보, 본부가 무너진 것이에요!”
“히이에엑! 지진? 지진인 거예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일……! 저희의 혁명전선기지는 각종 자연재해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한반도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에 건설된 것이에요”
“하지만 지진은 벌어진 거예요!”
“107번 동지! 코앞에서 재난이 발생했는데 현실을 부정하는 못된 소부르주아적 당원 요정은 처형! 처형인 거예요”
“자아비판을 참을 수 없는 것이어요.”
“히엑! 동지들! 숙청만은 제발!”
다름 아니라 튜토리얼의 요정들이었다.
소외신 무간의 분신체인 요정군주의 분신들. 한마디로 말해 모방품의 모방품에 불과한 괴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건물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얘네들은 왜 또 여기 있어?’
205회차의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일단 지팡이검을 납도하고 요정들을 향해 걸어갔다.
톡톡. 가장 가까운 요정의 어깨를 두들겼다.
“어이.”
“호에? 인간 손님인 거예요? 미안하지만 당점은 현재 갑작스러운 지진 재해로 인해 영업을 일시정지이헤에에엑? 장의사아아!”
요정이 발라당 넘어졌다. 사다리에 올라가서 망치와 연장 따위를 들고 있던 다른 요정들도 일제히 이쪽을 쳐다보았다.
“자, 장의사? 어째서? 어째서 장의사?”
“부산역의 악몽!”
“백화여고의 폭군!”
“107번 동지!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거예요! 여기만큼은 절대로 들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지 않았냐는 거예요!”
“히야아아아악! 도망! 도망치라는 것이에요! 또 저 새끼한테 걸려서 일족이 멸망해 버린다는 거예요!”
요정들이 사방팔방으로 와르르 흩어졌으나 별로 현명한 대처는 아니었다. 이따금 RPG 전투에선 ‘도망친다’라는 커맨드 자체가 먹히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하율아.”
-응.
하율이의 손끝에서 거미줄이 휘리릭 뿜어져 나왔다.
잠시 뒤, 27마리의 요정 전원이 거미줄에 칭칭 둘러싸여서 내 앞에 대령되었다.
“히엑, 히이이엑…….”
“야. 너희들 무간 봉인되면서 요정군주랑 같이 전부 토벌된 거 아니었냐? 이런 깡촌에 숨어서 뭐 하고 있어?”
요정들이 오들오들 떨었다.
“요, 요정군주는 저희들의 압제자에 불과할 뿐……! 저희들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그 녀석에게 굴복한 적 없다예요!”
“아. 그 뭐시냐, 왕당파랑 혁명파? 어차피 그거 너희들 설정 놀음이잖아. 아직도 혁명 어쩌고 그러면서 살아?”
“설정 놀음이라니! 갈! 우리는 몹시 진지한 거예요!”
이어진 요정의 말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애당초 요정군주 없이 잘만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존재가 요정군주를 만들어 내서 우릴 억압했던 거예요!”
“…어?”
“바야흐로 요정군주가 사멸하여 비로소 꿈에도 그리던 광복이 우리 요정들에게 찾아왔나니! 다만 오랜 억압으로 인해 민족적 자본이 일천할 수밖에 없음……! 이렇게, 눈물을 머금고 도박 사업에 뛰어들어 혁명 자금을 모으고 있는 거예요……!”
“혁명 무죄예요!”
나는 용의자들의 증언과 정보를 수집한 결과 놀라운 진상에 도달하였다.
“어, 그러니까. 너희들은 사실 소외신 무간이랑 전혀 관계없는 괴이들이었는데, 무간이 요정군주를 만들어다가 너희를 그냥 강압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바로 그렇다예요!”
“그럼 요정군주에 따르는 애들이랑 불복하는 애들로 나뉜다는 게……. 왕당파랑 공화파가 있다는 얘기가 진짜였다고?”
“지금까지 우리가 한 말을 귓구녕이 아니라 변기통으로 들었냐는 거예요, 인간!”
세상에나.
그렇다. 사실 ‘튜토리얼의 요정’이란 괴이는 무간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무간이 요정군주라는 괴뢰 독재자를 만들어 내서 요정들을 억압한 것이었다.
일종의 식민지 지배라고 할까.
하지만 내가 천요화와 함께 무간을 토벌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요정들은 졸지에 해방을 맞이했으며, 다시는 거대 괴이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다짐 아래 각지로 산개하여 게릴라로 변모했다.
여기에 세워진 도박장… 이른바 ‘몽유오락장’이란 카지노는 게릴라 요정들이 운영하는 사업체였다.
운영 이유는? 다시금 요정의, 요정을 위한, 요정에 의한 괴이공동체를 건립하기 위하여!
‘하긴 백화여고의 괴이들은 전부 귀신이었는데 튜토리얼의 요정만 좀 뜬금없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
설마 이런 비밀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여전히 세상엔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가 참 많다며 감탄하고 있자니, 옆에서 이하율이 깡충깡충 뛰었다.
-오빠. 오빠.
“응?”
-저기. 구경하고 싶어.
아무래도 하율이는 아까부터 카지노에 굉장히 관심이 깊은 듯했다. 뭐, 위험성이 거의 없다는 게 확인됐으니까.
“어이, 쪼끄맹이들. 일단 카지노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다는 건지 안내 좀 해 봐라.”
“히에엑. 말도 안 되는 소리! 부르주아 압제자에게 혁명기지의 내실을 공개할 수는 없…….”
“천요화 불러와서 무간이 봉인된 모래시계에 너희들도 넣어달라 해 볼까?”
“일보전진을 위한 이보후퇴는 프롤레타리아 동지들에게도 이해받을 수 있는 거예요……!”
우리는 카지노에 입장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캐러밴에서 실종된 관리대원들은 안쪽에서 발견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지노가 아니라, 카지노 건물 위에 건축된 호텔에서 3명 모두 세상 모르게 곯아떨어져 있었다.
“뭐야? 얘네들 왜 다 잠자고 있어? 너희들 짓이냐?”
“히에엑……! 이, 이건 상호합의 하에 정당하게 이루어진 일인 거예요! 저희 카지노에선 손님들이 딴 칩을 돈이 아니라 꿈으로 교환해 드리는 거예요!”
“꿈으로 교환해?”
“예쓰! 여기, 당점의 메뉴판을 보시라는 거예요……!”
요정이 품 안에서 스윽 무언가를 꺼냈다. 큼직한 메뉴판이었다. 절대로 요정의 몸에 들어갈 만한 사이즈가 아니었지만, 딴죽을 거는 대신 일단 읽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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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꿈을 걷는 기분~♪♫*♪
저희 『DREAM』 카지노에 방문해 주신 여러분 ٩(♡ε♡ )۶ 진심을 담아 환영합니다!◕‿◕)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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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지이익.
반사적으로 메뉴판을 찢었다.
“히에에엑? 무슨 짓인 거예요!”
“아니, 미안하다. 내 본능이…….”
“당신은 가게에 들어와서 메뉴판을 찢는 게 본능이냐는 거예요! 무섭다는 거예요! 이거 종이 좋은 거 쓰느라 품이 많이 들어갔으니까 함부로 낭비하지 말란 거예요!”
음.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메뉴판을 건네받아서 읽었다. 다만 이번엔 내 정신건강을 위해 이모티콘은 일절 배제하고 오직 메뉴의 내용만을 담백히 서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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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카지노 안내서]*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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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지적할 곳이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우선, 회귀자로서 응당 해소해야 될 질문부터 던지기로 했다.
“어이, 너희들……. 혹시 꿈을 조정하는 능력이 있었던 거냐?”
“호에? 물론이에요.”
“저희들은 꿈의 요정인걸요.”
“요정군주의 압제에 시달리느라 본업을 뛰지 못했지만 사실 저희들의 진명은 몽마(夢魔)인 거예요.”
충격! 무려 205회차 만에 밝혀진 진실!
튜토리얼 요정들의 정체는 사실 몽마. 즉, 서큐버스·인큐버스였다!
-요정코인. 9000코인, 교환 희망. 흥미진진.
내 옆에서 하율이는 과연 일본물 좀 먹은 아이답게 빠칭코의 혼을 불태우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이마에 딱콩을 먹여 주고 요정들을 쳐다봤다.
“시간을 차압당한 인간 고객들은 어떻게 되는데?”
“호에. 이렇게 되는 거예요.”
벌떡.
호텔 침대에 누워 있던 관리대원 한 명이 갑자기 일어섰다. 하율이가 깜짝 놀라서 움츠러 들었다.
관리대원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벌써 며칠을 공허에 사로잡혔는지 턱수염이 삐죽빼죽 덥수룩하게 자랐다.
그가 어딘지 멍하게- 정신머리라곤 쥐뿔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호에에에…….”
“…….”
“호에, 호에, 5000번 요정……. 관등성명을 밝힌 거예요오…….”
“…….”
침묵.
나도 하율이도 요정을 돌아보았다. 당장 해명을 요구하는 시선이었다.
튜토리얼의 요정, 아니 몽마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단 띨빵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엣. 저 손님은 9000코인을 풀대출로 땡겨 놓고 고작 하루 만에 바카라로 전부 잃은 거예요. 이제부터 10년 동안은 우리 요정 혁명 동아리의 동지로서 일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옳다예요!”
“호에에! 혁명의 그날까지 멈추지 않고 전진이에요!”
이런 미친.
괴이 양성소잖아,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