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25)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25화(12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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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 Ⅱ
신노아
3
당초에 나는 모광서와 부활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묘사한 모광서의 일화나 교인들의 행동도 50%쯤은 내 상상으로 덧붙인 서술에 불과했다. 내가 직접 목격한 게 아니라 이런저런 사람들의 증언으로 재구성한 것이었으니.
왜 신경을 안 썼냐고?
‘바빠 죽겠는데 사이비는 무슨 사이비야.’
솔직히 신경을 써 줄 가치가 없었다.
똑같이 이단인 신불교는 사정이 달랐다. ‘신앙에 괴이를 이용한다’라는 점에선 비슷했어도 신불교의 우담바라는 인류 문명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했다.
심지어 신불교는 각성자들에게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시급한 조치가 필요했지.
반면 부활교는?
“각성자?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해. 예수님께서 재림하셨는데!”
“아멘!”
“종말이 도래했어요. 형제자매님들. 지금이라도 회개하셔서 교주님께서 설계하신 구원의 방주에 올라타시어요.”
“당신! 관상을 보니까 선하신 게 반드시 구원을 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길 걷다가 이따금 전교사를 만나는 걸 제외하면 딱히 해로울 게 없었다. 그리고 노방전도는 세기말이 되기 이전의 대한민국에서도 출근길에 맞닥뜨리는 사이드 퀘스트쯤에 해당했다.
회귀자인 나에겐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메인 퀘스트들이 많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모광서의 부활교에도 메인 퀘스트가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저는 바람길을 뚫어서 여러분이 승천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생전. 그러니까 아직 ‘부활 괴이’로 변모하기 이전의 모광서는 한반도라는 종교시장에서 독특한 세일즈 포인트를 노렸다.
-그런데 정말로 여러분의 도움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여의도?
-아닙니다! 북한입니다!
-뭣.
바로 북진전교론.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길과 산울타리로 나아가서 사람들에게 강권하여 집을 채우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예수님께선 강권하라 말씀하셨을까요? 아직 세례받지 못한 자를 폭력으로 이끌어서라도 성당에 끌어오라 말씀하신 걸까요?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본래라면 목자의 부름에 순응할 양들을, 억지로 길을 끊고 울타리를 둘러쳐서 우리의 집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주 못된 사탄 마귀들이죠. 이들이야말로 ‘강제로’라도 물리쳐야 할 적그리스도입니다.
-세례를 받지 못한 북한의 형제자매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철의 울타리와 담벼락을 세운 김씨 일가한테 대죄가 있습니다. 한반도가 둘로 쪼개어진 이래 ‘길’은 끊어졌으며 ‘울타리’가 쳐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저 통곡의 길과 피의 울타리를 당신들의 발걸음으로 회복하라 이르시는 것입니다.
-아, 형제자매님들! 저희들이 임하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가장 고난스러운 길을 자처함은 결코 다른 사람들보다 잘나서 으스대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만 다른 형제들이 보다 편한 들판에서 양들을 대신 끌어 주리라 믿고, 형제들보다 조금 더 수고로운 전교의 길을 걷고자 함입니다. 형제자매들에 대한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신앙의 벼락이 사탄의 담벼락을 허물어뜨리고 우리의 발걸음이 저들의 손끝에 닿을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아멘.
모광서의 북진전교론은 교인들 사이에서 제법 호응을 얻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거기에 반응한 사람들만 모광서의 회관에 입교했다.
사실 북진전교론 또한 모광서가 개발해 낸 또 다른 ‘외교적’ 수식어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북진을 해서라도 교의를 전파하자로 이해하면 모광서도 JSA 경비대대도 난감했다. 모광서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답게 그저 유권자들한테 ‘공약’을 내걸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모든 악의 근원은 뇌내에 번역기를 장착하지 않은 괴이들에게 있었다. 이 경우엔 십족이 그러했다.
“철책선이 무너졌다!”
십족은 300명 이상 운집한 인간들에게 강력하게 반응하는 습성을 지녔다.
한국인이 제법 먹을 만하다는 결론을 내린 십족은 이내 똑같은 품종의 고기에도 관심이 생겼다. 감옥과 병영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던 북한 막사들은 십족의 눈에 미슐랭 1스타 퓨전요리집으로 비추었다.
“아아! 모광서 회장님, 아니 예수님의 예언이 또다시 증명되었도다!”
“불의 주먹이 산울타리를 깨부쉈으니 이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갑시다! 형제들이여! 북한으로!”
부활교는 정말로 ‘북진’했다.
국내에서 온갖 사이비 이단들을 자기 교단으로 포섭한 뒤, 훈련시킨 다음, 다시 교인들을 끊임없이 북한으로 행진시켰다.
이 새로운 십자군은 국군이 궤멸하는 와중에도 진군을 거듭했다.
왜 뜬금없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십자군이 출현했냐고 물어온다면 역사 공부를 덜했거나 옥시덴탈리즘에 물든 것이었다. 원래 동방의 예루살렘은 평양이었다.
“북진하라!”
“신께서 바라신다!”
개성, 금천, 평산, 사리원.
북한의 주요 거점들이 차례차례 해방되었다. 역시 한반도엔 정규군보다 의용병한테 버프를 후하게 쳐주는 지형적 특성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십자군의 성공 비결은 간단했다. 부활교에선 휴전선을 무너뜨린 십족을 ‘신의 사도(使徒)’로 취급했고, 십족이 북한군을 깡그리 포식하고 나면 그 뒤꽁무니만 쫓아갔다.
어떤 의미로 부활교 신도들은 누구보다 아포칼립스 시대에 잘 적응한 인류에 속했다. 교주도 괴이. 선봉대도 괴이. 단언컨대 이들만큼 괴이를 알차게 써먹은 집단도 드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저길 봐!”
“평양이야! 이제야 도착했어!”
“아아……. 동방의 예루살렘에 주님의 빛이 가득해.”
평양 해방!
신도들은 전율했다. 단군 이래 이만한 업적을 이루어 낸 종교인이 궁예를 제외하고 또 있던가?
물론 오리엔탈 예루살렘에는 주님의 빛이 별로 없었다. 평양의 유일한 성당인 장충성당도 무너진 지 오래였다. 사람도 얼마 없었다.
-그҉오҈҈҈҉위҉우҉҈҈그҈҉오!
아니, 실시간으로 없어지고 있었다.
북한의 정권은 필사적으로 평양을 사수하기 위해 마지막 영혼의 한타를 준비했었다. 그리고 해당 명제가 과거형으로 표시된 시점에서 이미 짐작하겠지만 영혼째로 털려 버렸다.
심지어 평양에는 중국군도 일부 있었다. ‘남쪽에서 해방군을 자칭하는 자들이 북진해 오고 있습니다!’라는 첩보를 듣자마자 중국인들의 머리가 돌연 1950년대로 회귀해 버린 탓이었다.
그렇다. 가끔 까먹긴 했어도 평양과 북경은 혈맹이었다.
그래서 피도 같이 흘렸다.
-구҉로҉҈҈오҉҉위҉҈҈우҉오҉!
최강의 십족이 울부짖었다. 십족은 졸라짱쎄서 괴이 중에서 최강이었다.
크툴루를 연상케 하는 촉수질로 지하 암반을 숨펑숨펑 뚫어 버리는 십족에게 벙커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북한 정권의 수뇌부도, 북한군의 장성들도, 무엇보다 북한군과 평양 시민들도 모두 사이좋게 마르크스 선생을 만나러 떠났다.
만주에서 내려온 중국의 인민지원군도 슬슬 자기들이 뭔가 첩보를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식했다. 십족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첨병이라기엔 동양인을 너무 좋아했다.
그 순간.
그러니까 북한인들이 절명하고 중국인들이 절망하며 막 평양에 도착한 한국인들이 절규하던 그 타이밍에.
뚜벅.
모광서가 걸어 나갔다.
“회장님!”
하고 교인이 소리쳤다. 재림의 기적을 선보이기 이전부터 모광서를 따르던 교인들은 은근슬쩍 옛 칭호. 즉, ‘회장님’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특권 의식을 드러냈다.
“예수님!”
뒤늦게 배교한 신도들도 소리쳤다. 십자군 행진을 벌이던 내내 모광서는 그들의 선두에 서서 걸어왔다. 그런 귀하신 분께서 저 무시무시한 괴물의 앞으로 걸어가다니! 아무리 십족이 신의 사도라지만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저, 데새끼, 저 간나 새끼는 또 뭐래?”
북한인들도 소리쳤다. 중국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성부 성자 성령, 혹은 회장님 예수님 간나 새끼의 이름으로 모광서는 걸어갔다.
푸욱. 그리고 당연히 십족의 무수한 촉수 중 하나에 의해 모광서 꼬치가 되어 버렸다.
“회장니이이이임!”
“오오! 주여! 주여어어!”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당연한 사건이었으나 부활교 신도들은 경악했다. 이럴 수가! 십족이 신의 사도이긴 사도였는데 하필 이름이 가롯 유다였던 것이다.
이래서 서번트를 소환할 땐 진명부터 확인해야 됐다. 부활교 신도들은 오래된 격언을 무시한 죗값을 치르는 듯했다.
모두가 울음을 터트리거나 울음 터트리는 사람들 보면서 ‘저 새끼들 진짜 뭐 하는 거야?’라며 의아해하던 가운데.
번쩍―.
다시금 빛이 있었다.
-그҉르҉오҈҈҈҉쿠҉파҈҉하҈҈҉크҉!
빛은 십족의 촉수에서 환히 밝혀졌다. 한창 학살이 벌어지고 있던 도시는 일순 새하얀 빛무리에 감싸였다.
십족은 마치 생굴 파먹다가 껍데기를 씹어 버린 손님처럼 모광서를 퉷 뱉었다.
빛이 가라앉았을 무렵, 시가전에 참여한 모든 인간들은 모광서의 후광을 접견할 수 있었다.
“…….”
“…….”
전장이 고요해졌다.
빙긋.
수만 명의 시선을 독차지한 모광서는, 부활 괴이는, 다만 변함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루҈҈로҉҉҉르…….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모광서를 씹다가 뱉은 십족이 등을 돌렸다.
아마 인간의 언어로 해석하자면 ‘이런 맛대가리 없는 식당 돈 줘도 안 온다’ 정도에 해당했으련만, 괴이들이 인간용 번역기를 장비하지 않았듯 인간들 역시 괴이용 번역기를 구매하지 않았다.
쿠웅, 쿠우웅……. 십족의 거체가 점점 멀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멸을 각오했던 북한군의 표정에, 중국군의 눈빛에, 경악과 경이가 스며들었다.
도대체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할렐루야!”
부활교 신도들이 그들의 의문에 정답을 대신 적어 주었다.
“예수님께서 신의 사도를 물리치셨다!”
“아아, 동포 여러분! 찬양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십자군을 긍정하셨습니다!”
“기적이에요, 기적!”
중국군은 한국인들의 열광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인은 알아들었다.
북한 장교의 통역을 거쳐서 중국인들에게도 부활교 신도들의 울부짖음이 번역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군인과 시민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침 그날은 토요일이었으며, 바로 다음 날 부활교의 스페셜한 ‘미사’가 이루어졌다. 여전히 모광서의 기적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불신자들도 어디 너희들이 그렇게 쩔어 주는지 봐보겠다며 라이브 콘서트를 직관했다.
미사가 끝났다.
그날.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으로 복귀했다.
4
동방신성국(東方神聖國).
폐허로 전락해 버린 평양에서 새로이 건국된 나라의 이름이었다.
비록 국제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한 신생국이었으나 그렇다고 경쟁력이 떨어지진 않았다. 어차피 이전 정권도 비슷했다.
이제 북조선은 로마 그 자체였다. 동로마치곤 조금 너무 멀리 동쪽에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수도는 당연히 평양신성시. 국가수반은 모광서였다.
모광서의 공식 직함은 국왕도 대통령도 총리도 주석도 아니었다. 심지어 교황도 아니었다.
모광서에 걸맞은 직위는 오직 예수밖에 없었으며, 고로 동방신성국의 국가원수 풀네임은 ‘모광서 예수’로 정해졌다.
부활교가 각본·주연을 다 맡은 희극이 마침내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것이었다.
“아니, 씨팔. 이 뭔…….”
이북 소식을 전해들은 노도하의 표정이 볼 만했다.
“거기 동네 빨갱이 소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웬 예수랩니까, 예수는.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규정했을 텐데……?”
“흠. 주체사상보다야 그냥 사이비 종교가 낫지 않을까요?”
“씨파알, 낫긴 뭐가 나아. 개찐도찐이지. 진짜 나라꼴 한번 지랄 났네…….”
그렇다. 사실 이 세계관은 판타지였다. 아무렴 지도에 ‘신성제국’이 떡하니 박혀 있는 현실이 판타지가 아니면 뭐겠는가.
아무튼 십족에게 평양은 ‘위생관리 더러운 음식점’으로 기억됐는지 딱 그쪽만 피해서 돌아다녔다.
동방신성국의 신도들은 이를 ‘모광서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기적’으로 찬양했다.
자연스레 다른 지방의 북한 사람들도 평양으로 몰려들었다. 동방신성국의 프로파간다에 속았다기보단 십족이란 악질 고객한테 한 끼 식사 대접하기 싫었던 탓이 컸으리라.
세기말의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일본, 중국 순서대로 정부조직이 폭싹 주저앉았다.
동아시아 삼국이 비록 한날한시에 태어나진 않았으되 죽을 땐 함께하자며 형제의 연을 돈독히 다졌건만, 유독 동방신성국만은 꿋꿋하게 국체를 보전했다. 과연 국제 외교의 협력성이란 개념 따윈 대대로 거세된 지역다웠다.
주변에서 ‘아니, 저거 왜 안 망함? 진짜 왜 안 망함?’이란 시선으로 쳐다보는 와중에(이 또한 이전 정권과 비슷했다), 동방신성국은 서서히 현실을 자각했다.
‘어라? 우리 주변국 다 망했네?’
‘그럼 이제 저 무주공산을 점령해도 합법 아닐까?’
동방신성국은 다시금 ‘북진’을 개시했다.
새삼스럽게 민족의 고토를 되찾아 오겠다는 명분은 아니었다. 그런 민족주의적 사고방식은 섹시하지 못했다.
동방신성국은 유일무이하게 주님으로부터 직접 인정받은 정권이었다. 따라서 전 세계의 어떤 영토에든 정식으로 클레임을 넣을 수 있었다.
바야흐로 평양신성시에선 2차 십자군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십족에 의해 각 마을의 인구 숫자가 강제로 300명 수준까지 억제된 간도 일대로 십자군이 쓰나미처럼 덮쳤다. 해방. 해방. 또 해방.
“오늘도 성스러운 동방의 십자군이 3곳의 마을을 해방하여 우리의 모광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인도하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합시다. 아멘.”
“아멘!”
이건 민족과 민족의 대결 따위가 아니었다. 국가 대 국가의 분쟁은 더욱더 아니었다.
그저 최면어플을 다운받은 부활교와 거기에 대항하는 가련한 일반인들 사이의 혈투였다.
당연하지만 이런 장르의 싸움에선 언제나 일반인이 불리했다. 평생 19금 동인지를 접해 본 적 없는 사람일지라도 명백한 불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만일 이곳이 동인지 속의 세상이었다면 제일 먼저 ‘불길함’을 감지한 인간이 첫 번째 희생양으로 전락했을 터.
“흐음…….”
다행히 현실은 동인지가 아니었다.
최면물이라면 인류의 평균 지능을 떨어트려서라도 장르의 엄격성을 고수하는 동인지와 달리, 현실의 인간들은 정상적으로 판단할 줄 알았다.
특히나 국도관리대장 노도하는 상대방이 최면어플을 가졌다면 핸드폰을 빼앗은 뒤 역으로 ‘당신이 지금 자살해야 될 101가지 이유’에 대해서 설파할 위인이었다.
처음엔 사이비 난장판에 질색했던 노도하는 서서히 눈빛이 바뀌었다.
“장의사 각성자…….”
“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입니다. 모광서의 부활교. 저거 어떻게 이용해 볼 수는 없겠습니까아……?”
그것은 일종의 운명이었다.
국도관리대장. 한반도 ‘남쪽’의 지배자가 본능적으로 ‘북쪽’의 영도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