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28)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28화(12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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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Ⅱ
신노아
5
“도대체 그 성좌는 뭐니? 열받아!”
당서린이 식탁을 쾅 내리쳤다.
여기는 부산의 순대국밥 맛집이었다. 식당에선 오직 밥 먹는 데만 집중하는 당서린답지 않게 식사 내내 [모든 괴이의 수집가]를 씹어 댔다.
그만큼 우리의 <제로 레퀴엠> 프로젝트가 멋지게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음. 뭐, 아무래도 그 성좌는 자신을 마치 온라인 게임의 운영자로 생각하는 모양이더군.”
“하. 요즘 세상에 그런 찐따 같은 말투로 게임을 운영하면 게임도 망할걸!”
“그래서 망했잖냐. 현실.”
“아……. 진짜, 아무튼 하나하나 다 열받아. 한반도가 무슨 자기 놀이터인 줄 아나?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가끔 부산 앞바다에서 사람들한테 콘크리트 신발을 신긴 다음 수면 위로 런웨이를 돌아다니게 한단 점만 제외하면, 당서린은 인격자였다.
그런 인물조차 이만큼 분노하고 있었다. 다른 각성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나는 당서린에 대한 미안함을 잠시 접어 두고 얼른 언론 조작 행위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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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든 괴이의 수집가’
안녕하십니까. 한반도에서 활동하는 인간 각성자 여러분.
놀랐습니다! 설마 제가 야심 차게 준비한 사도인 십족을 이렇게 쉬이 물리칠 줄이야. 역시 게임의 민족을 자부했던 지역답다고 해야 할까요? (찡긋)
그런 여러분을 위해 앞으로는 보다 더 난이도가 조정된 괴이들을 내보낼 계획입니다.
혹시… ‘숨바꼭질’, 좋아하시는지요?
저는 좋아한다고나 할까요? (웃음)
다음으로 여러분에게 선보일 괴이는 세계수 우담바라입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찾지 못하면 한반도 전역, 아니 세계 전체를 좀비 바이러스로 물들일 괴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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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족이 토벌된 직후에 또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오자 SG넷이 폭발했다.
-익명: 아니, 진짜 이 새끼는 왜 한반도에서만 출현해서 알짱거리는 거임?
-[율도국]검후: 오호라! 강호의 도의를 욕보이는 사마외도(邪魔外道)의 농지거리에 통탄을 금할 수 없구나!
-[백화]고등학교4학년: 호에에 >_<);; 사지를 묶어다가 발톱깎기로 손끝이랑 발끝부터 잘근잘근 찢어발겨 주고 싶은 거예요 >_<);;
-익명: 나만 저 ‘찡긋’ 어쩌고 지랄하는 꼬라지에 정신 나갈 것 같냐??
-요리왕비: 흥미롭네요.
나, 성녀, 노도하, 유지원, 심아련.
세상에서 오직 다섯 사람만이 [모든 괴이의 수집가] 따윈 조작된 산물임을 알고 있었다.
노도하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정말로 여기까지 해야 하나 이따금 자괴감이 듭니다만……. 뭐, 먼저 사기를 친 건 ‘몬스터 웨이브’ 쪽이니. 사기에는 사기로 맞대응해야겠지요…….”
아무튼 우리의 언론 조작, <제로 레퀴엠> 작전은 순항을 거듭했다.
애당초 나 장의사는 장차 한반도에 등장하게 될 괴이들을 빼꼼히 외워 두고 있었다.
괴이의 정체. 기믹. 출현 시기까지.
이러한 회귀자의 지식들을 조금만 영악하게 사용한다면야 ‘한반도를 가지고 노는 흑막’으로서의 성좌를 새로 하나 뚝딱 창조해 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종말 이전의 신문 기자들이 보았다면 ‘과연 한국 언론의 정수는 문명이 멸망했음에도 맥이 끊어지지 않고 후학에게 이어졌구나!’라며 감개무량할 터.
결국 사람들의 악감정이란 악감정은 모조리 [모든 괴이의 수집가]. 즉, 심아련에게로 모여들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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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든 괴이의 수집가’
안녕하십니까. 한반도에서 활동하는 인간 각성자 여러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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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각성자들은 (웃음)이라는 표현만 봐도 발작했다.
-익명: 또야? 또 왔어?
-문학소녀: 다른 성좌들은 저 흑막 새끼 안 잡고 대체 뭐 하는 거임?
절대악.
누구나 진지하게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이 세기말을 한낱 가벼운 유희처럼 여기는 태도. 흑막 주제에 품격이나 지성이라곤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어투.
…만일 [모든 괴이의 수집가]가 조금이라도 진지한 캐릭터였다면 도리어 이 성좌를 모시는 사이비 교단이 새로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설령 인류의 죽음을 야기한다 해도 무시무시한 괴이들을 자유자재로 내보내는 성좌의 권능은, 인간 같은 필멸자들로선 거대하게 느껴질 법도 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괴이의 수집가]는 악신(惡神)으로 모시기에도 지나치게 경박했다.
한마디로 말해 폼이 안 났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든 증오하는 사람이든 자신의 신앙심을 바치기엔 [모든 괴이의 수집가]는 너무나도 강렬한 찐따미를 내풍기고 있었다.
성좌에 걸맞는 위엄 따위는 아무도 인정하지 못했다. 오직 증오와 원망, 경멸이 쏟아질 뿐.
-익명: 미친, 유성우 죽으면서 별빛 사체들 떨구는 거 봤음?
└익명: ㅇㅇ봄. 진짜 개악질이다.
└[國道]사관: 삼천 길드장 있어서 막은 거지 그거 그냥 모르고 맞았으면 경상남도 일대는 완전히 초토화됐을 겁니다.
└익명: 뭐 이딴 괴이들만 나오냐ㅋㅋ 진짜 저 수집가놈 줘패 버리고 싶네ㅋㅋㅋ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장의사 씨.] [북한 지역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관측되었어요. 현재, 간도 지방에서 한반도 내륙을 향해 남하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었다.
이 세기말에 유일한 정보공유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SG넷의 소유주는 누구인가? 나다.
이 세기말에 사람들이 유일하게 신뢰하는 정보통인 성좌들과 혈맹을 맺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 장의사다.
지금 이 순간, 한반도의 정보 권력은 모조리 나의 손안에 들어왔다. 세기말 이전의 언론사들은 이 권력을 쥐고 기껏해야 야당 혹은 여당의 대통령을 만드는 데 소모했겠으나―― 내가 만들어 내는 작품은 그런 비루한 정치 현실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영역에서 노닐었다.
“아련아.”
“네에.”
“노래 연습 많이 했니?”
“네, 네엡……! 삼천세계 대마녀 각하한테서 이쯤이면 졸업해도 된다고 인증받았어요……!”
“훌륭하다. 이제, 가라. 가서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라.”
“…….”
“본래 힐러란 오직 귀족의 직업이었음을.”
“……! 네에, 길드장니임……!”
전조는 있었다. 암시도 있었다. 복선도 있었다.
‘로그아웃 게임’에 관해 다룰 때 내가 괜히 이 아이를 중점적으로 다뤘던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은 바로 이때를 위하여.
심아련(沈娥漣).
이제부터 한반도의 구세주가 될 인재.
전직, 고려장 빌런. 인터넷 어그로꾼.
이명, 독을 마시는 새.
출격.
6
이 세상에서 압도적인 딜량으로 찍어눌러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별로 없다.
무술에 별 조예가 없는 내가 오러로 십족을 썰어 버렸듯, 괴이치곤 지나치게 단순한 ‘몬스터 웨이브’가 그저 물량빨로 수많은 국가들을 붕괴시켰듯.
하지만 나 장의사, 바야흐로 217회차를 맞이하는바, 딜찍누 메타에 찌들 대로 찌들어 버린 작금의 세태에 냉철하고도 통쾌한 비판을 던지겠다.
압도적인 딜량. 그것은 ‘압도적인 힐량’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범부라고――.
“막아라! 저놈들이 압록강을 넘지 못하도록 막아!”
“그, 그렇지만 예하! 괴이들의 숫자가 끝이 없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해도 수십만이 넘는데, 어떻게…….”
“나약한 소리 따윈 입에 담지 마라! 재림예수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설령 죽더라도 그곳이 바로 우리가 하늘로 승천할 바람길의 자리이니! 신께서 원하신다! 아멘!”
압록강 방어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방신성국은 북벌 놀이에 흠뻑 빠져 있었다. 일찍이 십족이 헤집어 놓았던 만주 일대를 그냥 빈집털이만 하면 됐으니 얼마나 재밌었을까.
허나 성경의 잠언(13:11)에서도 말하듯이 쉽게 얻은 재산은 줄어드는 법.
동방신성국의 신도들은 끝없이 밀어닥치는 괴이의 검은 해일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
원래 한민족의 DNA엔 ‘북쪽으로부터 밀려드는 물량 공세’란 개념에 대한 공포심이 각인되어 있었다. 제아무리 골수까지 세뇌된 사이비 교도라 한들 신앙심으로 DNA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추, 추기경 예하! 괴이 놈들이 시체로 강을 메워서 도하하려 듭니다!”
“안 돼! 막아! 막아아아! 여기가 뚫리면 청천강이랑 대동강밖에 안 남는다!”
바로 그때.
[‘재림의 새벽별’이 인간을 가엾이 여겨 당신의 성녀를 지상에 강림시킵니다.]전선에서 고군분투하던 부활교 신도들이 눈을 치켜뜨고 하늘을 쳐다봤다. 눈을 치켜뜰 겨를도 없는 전투원들은 괴이에 의해 목이 날아가서 하늘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직관했다.
재림의 새벽별? 우리 교단의 예수님 아니신가. 그분께서 성녀를 보내주셨다고?
“아―――.”
새까만 구정물과 새빨간 핏물로 물든 전장에 한 줄기 노랫소리가 파고들었다.
뚜벅. 뚜벅.
심아련이, 우리 길드의 그 찐따 같던 아이가, 가지런히 양손을 모은 채 전쟁터를 한 발짝 한 발짝 가로지르고 있었다.
당서린의 노래처럼 중국인이 놀라고, 일본인이 경악하며, 한국인이 무릎 꿇은 천하의 미성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반도 제일의 아이돌의 경지에 도달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하지만, 심아련은 당서린의 제자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제자로 만들었다. 당서린은 바쁜 시간을 쥐어짜 내서 심아련에게 일대일 과외를 뛰어 주었다.
자그마치 10년 동안!
그렇다면 반도 제일의 아이돌까진 아니어도 평양 제일의 아이돌은 논할 수 있었다. 심아련, 우리 힐러가 아름다운 라틴어 레퀴엠(정작 심아련은 가사의 의미를 잘 모른다)을 부르며 걸어갔다.
나는 곁에서 몰래 오러의 파장을 일으켜서 심아련의 목소리가 널리널리, 지평선 너머까지 울려 퍼지도록 보조했다.
“아―― 아――.”
그러자 기적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괴이한테 ‘반으로 갈라져 죽어’를 시전 당하여 하늘나라 천당 입구까지 날아갔던 어느 전투원의 상반신에서, 하체가 자라났다.
“어?”
팔이 결딴났던 자의 팔이 솟구쳤다.
발이 으깨졌던 자의 발이 솟아났다.
전쟁터 곳곳에 널브러졌던 반 시체들이 저마다 팔과 발, 손가락, 발가락, 눈구멍, 입구멍을 되찾아서 재차 일어섰다.
땅을 붉게 염할 정도로 문드러졌던 핏물들은 도로 제 주인을 찾아 돌아가서 혈육이 되었다.
심아련을 중심으로, 노래의 물결이 주변으로 번져 가면 번질수록, 그 범위에 들어오는 부상자들과 반 시체들이 차례차례 치료되었다.
부활.
어디 그뿐이랴.
심아련의 발끝에서부터 다시 피어오르는 것은 비단 인간의 목숨뿐만이 아니었다. 시커먼 구정물에 집어삼켜져 더러워졌던 초록색 풀들이, 형형색색의 꽃들이 사라라락- 피어올랐다.
“아아……. 아…….”
초록의 재생.
신도들이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뼈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손을.
누군가가 부지불식간에 중얼거렸다.
“기적이다…….”
그렇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설령 괴이가 출몰하고 각성자가 출현한 세기말이라 할지언정, 심아련이 내디딘 발걸음마다 ‘생명’이 재생되는 광경은 심장이 저릴 만큼 숭고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달려들려 했으나, 그런 못된 괴이들은 내가 조용히 처리했다.
나 장의사는 예의를 매우 중시하는 인간이었다. 원래 마법소녀 변신 장면에선 빌런들이 조용히 짜져 있는 것이 예의였다.
“성녀, 성녀님이셔…….”
“예수께서 산타마리아를 불러 주셨다!”
“할렐루야! 신께서 원하신다!”
전황은 급변했다.
몬스터 웨이브는 당황했다. 녀석은 졸지에 역지사지의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아무리 죽이고 썰어도 인간 대가리의 숫자에 끝이 안 보이는 것이었다.
인간은 본래 전투 종족이었다. 아무튼 목만 안 잘리면 ‘강하게 뉴게임’이 가능하다는 게임의 법칙 아래에서 한국인들은 옛 선조들의 야성을 각성했다.
장장 나흘 밤이 꼬박 흘렀다.
압록강 방어선에서 벌어진 전투. 이곳에서 동방신성국 2천 정예병은 자그마치 20만 마리의 몬스터 웨이브를 상대로 압승을 거두었다. 역사적 대승이었다.
“우오오오오오!”
“이,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모광서 그리스도께선 우리 인간을 버리시지 않는다! 예수님 만세! 성녀님 만세!”
“…….”
심아련이 빙긋 웃었다.
새삼 아련이가 고요리를 본받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넌 입만 다물고 있으면 멀쩡해 보이니까 제발 절대로 입도 뻥긋하지 말고 있으렴’ 하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나 로그아웃 게임과 엮이지만 않는다면 아련이는 대체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심아련의 신비스러운 미소에 부활교 신도들은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
다시 한번 말하건대, 이 세계의 장르, 사실 판타지였다.
그리고 판타지의 장르 문법에 따르자면 신성제국에는 마땅히 성녀가 있어야만 한다.
특히 남쪽의 서울에 이미 성녀가 존재한다면, 이에 대립하여 북쪽의 평양에도 또 다른 성녀가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의 물리법칙이기에.
감히 누가 예상할 수 있었으랴?
동방신성국 성녀.
그 이름은 심아련이었다.
7
후일담이 있다.
<제로 레퀴엠>의 성공 덕택에 또 하나의 대양급 괴이, 몬스터 웨이브가 그럭저럭 무사히 해결되었다.
다만 이 ‘해결’을 ‘토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압록강 너머에선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으니.
그때마다 심아련은 내 등에 업혀 압록강 전선까지 가서 성녀로서의 위엄을 떨쳐 내야만 했다.
“기, 길드장님. 저 잘했어요? 잘했죠? 엄청 잘했죠? 어, 어서 칭찬해 주세요…….”
“오냐. 정말로 완벽했다.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과연 세계 최강의 힐러답다. 아주 그냥 아련이가 복덩이예요.”
“에헤헤…….”
그러나 설령 미봉책에 불과하더라도 심아련은 꾸준히 북녘의 ‘무너지지 않는 생명의 방벽’으로서 한반도를 지켜 냈다.
15년 차에도, 16년 차에도, 17년 차에도, 18년 차에도, 19년 차에도, 20년 차에도, 21년 차에도, 22년 차에도.
비록 22년 차에 들어설 무렵 심아련의 능력이 지나치게 강대해지는 바람에 ‘타락 현상’이 발생하긴 했지만……. 사실상 심아련은 그때까지 홀로 전선을 방어해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그마치 8년 동안.
――기실, ‘몬스터 웨이브’에 대해 이번에 다루면서 여러모로 고민이 깊었다.
이래 봬도 몬스터 웨이브는 수없이 우리의 세계를 멸망시킨 중간보스급 괴이 중 하나. 당연히 수많은 비극이 이 괴이에 의해 초래되었다.
처음에는 ‘십족’이나 ‘유성우’에 대해 얘기했을 때처럼 그 비장한 죽음들에 관해 서술해 보려 했다.
하지만 심아련을 떠올리고 생각이 바뀌었다.
각성자들에게서 온갖 혐오와 경멸을 받으면서도, 팔자에 없는 성녀를 연기하며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 전쟁터에 불려 나가면서도, 심아련은 힘겨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아이의 길드장인 나 역시 비극을 노래하기보다는 웃음을 노래해야지 않을까?
장엄함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적어도 심아련이 웃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풍경화를 그려 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에헤헤……. 아, 아지트로 돌아가면 카페모카 타 주세요……! 초, 초코시럽 잔뜩 뿌려서……!”
이 아이가 나의 커피를 좋아하듯, 나도 이 아이의 미소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희생자. 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