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3)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3화(1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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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인 자 Ⅰ
신노아
1
회귀자도 사람이다. 사람.
나는 전지전능한 신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당장 심아련의 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설마 ‘【만화 연재 개시】허접 각성자인 줄로만 알았던 내가 이번 회차에선 사실 역대급 치유술사~죽음의 위기에서 환자들을 구해줬더니 저를 천사님이라고 부릅니다만, 저기저기, 나를 바보 취급했던 모두들 지금 어떤 기분?~【11/11 발매】’라는 일본 웹소설식 제목이 전개될 줄 내가 어찌 알았겠나.
다시 말하건대 회귀자라고 해서 모든 비밀을 다 아는 건 아니다.
아주 가끔씩은 나에게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혹은 괴담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들이 찾아오곤 한다.
쇼 노인의 카페오레를 마시면서 되돌이켜보면 ‘그나저나 그건 대체 뭐였을까?’ 싶은 이벤트들.
오늘은 그런 수수께끼를 소개해 볼까 한다.
2
세상에 균형이란 게 존재한다고 믿는가?
예를 들어, 인간들 중에 쓰레기가 있다면 천사 또한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빌런이 출몰한다면 정반대로 뭇사람들이 친해지고 싶어 하는 인기 스타 역시 출현하는 것이다.
-[만족]요리왕비: 마음의 평온을 원하시나요? 만족 길드에 가입하세요! 주요 거점은 대전입니다!
SG넷에서 요리왕비는 언제나 인기가 많았다.
이 사람에 대해선 좋은 얘기를 들은 기억밖에 없었다.
“요리왕비 씨 말인가요? 그렇게 오래 관찰해 본 적은 없었지만 악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자기 길드원들 잘 챙기고, 일요일마다 봉사활동까지 하고. 개인적으로 각성자 가운데 요리왕비 씨만큼 믿음직스러운 인격자가 없다고 생각해요.”
증인1. 성녀.
“아, 요리왕비. 알죠. 엄청 좋은 회원이잖아요. 제가 진짜 SG넷 운영하면서 볼 꼴 못 볼 꼴 다 봤는데 요리왕비 얘가 문제 일으키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그렇다고 노잼이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재밌는 유머글도 많이 쓰고, 잘난 척도 안 하고. 어휴. 회원들이 다 요리왕비만 같으면 나도 이런 고생을…….”
증인2. 서규.
-[만족]요리왕비: 고려장 님. 저는 고려장 님의 마음 안에 씨앗처럼 심어져 있는 선함을 믿어요. 왜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히는 행위를 계속 반복하시나요? 고민이 있으면 저에게 상담해 주세요.
-고려장: 제발……. 그만……. 내가 잘못했어. 내가 개새끼고 내가 나쁜놈이니까 그런 식으로 말 걸지 말아 줘…….
증인3. 심아련.
저마다 성격이 천차만별인 각성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증언했다. 요리왕비는 요즘 시대에 드문 심성의 소유자라고.
특히 사람을 평가하는 데 까다롭기로 유명한 성녀조차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천리안]을 통해 직접 각성자를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의 증언인 만큼 신뢰도가 남달랐다.
물론 나, 유일무이한 무한 회귀자(나 말고 다른 한 사람은 장기휴가증은 끊었으니까)인 장의사 또한 요리왕비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문학소녀: 제로슈가 이 사람… 코가 대단하다.
└[만족]요리왕비: 타인을 비방하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낮추는 행위예요. 모든 인간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고, 나는 모든 인간의 거울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 주세요.
그늘에서 몸을 숨기고 사는 저 비열한 자들이 나를 중상모략할 적에 요리왕비만큼은 나를 비호했다.
모두가 악을 행하는 가운데 혼자서 선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89회차.
이 시기의 나는 ‘안 긁은 복권’ 서규가 대박을 터트렸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회차마다 다른 각성자를 한 명씩 동료로 섭외해 보곤 했다. 지난 회차들 동안 자신의 강단과 올곧음을 증명해 온 요리왕비 역시 내 타겟 중 하나였다.
결코 사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접근한 게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요리왕비를 등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서규와 마찬가지로 요리왕비는 아주 가까운 것에 있었거든.
바로 내 회귀가 시작되는 지점인 부산역 대합실.
그곳으로 소환당한 399인 가운데 요리왕비의 본체가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여럿이서 움직이는 편이 안전하다 싶어서요. 파티원을 꾸리는 중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부산역을 빠져나갈 때까지만이라도 저와 동행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 네, 좋아요.”
핑크빛으로 머리가 물든 여자였다.
머리 색깔은 요란스러웠으나 그에 대비되어 분위기가 차분했다. 인생에서 수많은 경험을 겪었으나 결론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은 자의 고요함.
색조와 표정 사이에서 언밸런스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어색함은 이상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 특유의 매력으로 빚어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장의사 혹은 줄여서 의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고요리.”
지난 회차들에선 요리왕비라는 이름으로 SG넷에서 활동했을 여자가 화사하게, 차분하게, 정중하게 웃었다.
“편하게 요리라고 불러주세요. 의사님.”
3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요리에겐 전투 계열의 능력이 일절 없었다.
아니, 전투 계열뿐만 아니라 아예 쓸 만한 능력이 발견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기척 차단] 정도만 각성했다.
만일 고요리에게 저격수나 암살자의 재능이 있었다면 [기척 차단]도 좋은 능력이 되어 주었겠지. 하지만 고요리에겐 싸움의 재능이 정말로 전혀 없었다.
“으. 악! 윽! 죄송해요! 죄송해요!”
가장 약한 몬스터에 속하는 슬라임들한테 콩, 콩, 얻어맞으면서 고요리가 울상을 지었다.
심아련(얘도 51회차쯤부터는 내 파티원으로 등용되었다)이 다가가서 슬라임들을 우악스럽게 뜯었다.
“어, 언니……. 정말 존나 허접하시네요…….”
“네. 저에겐 재능이 없는 모양이에요.”
“괘, 괜찮아요. 제가 지켜 드리면 되니까요!”
“고마워요, 아련 씨…….”
동료들 간의 우애가 엿보여서 실로 아름다웠다. 정작 저렇게 말하는 심아련도 전투력 최하위에 속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파티에서 고요리를 추방시키지 않았다.
딱히 이야기의 장르가 #후회 #집착 #피폐로 이루어진 추방물로 바뀔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건 아니었고,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앗. 길드장님.”
새벽 5시. 아직 일상이 시작되지 않아 고요한 푸름의 시간. 길드 숙소 주방에서 카페오레를 마시고 있자니 위층에서 고요리가 종종걸음으로 내려왔다.
회귀자로 살아온 지 오래되었건만 ‘길드장님’이란 호칭엔 아직도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내게 그 칭호는 조금 특별했으니까.
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자연스레 인사를 받았다.
“일찍 일어났네?”
“네. 이 시간대면 저절로 눈이 뜨여서요.”
고요리가 헤헤 뺨을 긁적였다.
플러스 10점.
자고로 인간이란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나는 것이 건전하고도 건강한 생활의 기본이었다. 100회차 때도 1000회차 때도 이 지론엔 변함이 없었다.
고요리가 주방에 와서 기웃거렸다.
“길드장님은 항상 아침에 커피를 직접 우려서 드시네요? 저희 길드 이름에도 카페가 들어가고. 혹시 취미이신 건가요?”
“그래. 원래부터 취미는 아니었는데 옛날 친구가 이쪽에 조예가 깊었거든. 어쩌다 나까지 입문하게 됐다.”
“멋지네요!”
고요리가 양손을 맞대어 비스듬한 삼각형 모양을 만든 뒤, 살짝 고개를 기울이면서 방실방실 웃었다.
“전 이른 아침에 정해진 패턴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성실함의 증거라고 생각해요. 뭐라고 할까. 시간이 있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 그러면서도 길드장님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잖아요. 심신의 긴장이 풀리는 거죠. 아주 좋은 패턴이에요!”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내가 새벽을 좋아하게 된 이유야 따로 있었지만 고요리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너랑은 이야기가 통하네. 이제부터 화단에 물 주려고?”
“네. 산수국이 예쁘게 피었어요! 흙을 잘 받을까 걱정했는데 푸른색이 정말 밝게 나와서 기쁘더라구요!”
플러스 30점.
자고로 게으른 인간은 주변에 귀차니즘-바이러스를 살포하고, 성실한 인간은 노오력-비타민을 발산하는 법.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화단을 가꾸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했다. 말도 조리 있게 어찌나 따박따박 이쁘게 하는지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흐뭇해졌다.
내가 이런 말을 파티원들 앞에서 하면 어째선지 반응이 시원찮았지만 말이다.
“그, 형님.”
“왜 그러냐. 서규야.”
“형님 저랑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시는데 말씀하시는 거 듣고 있으면 꼭 어디 회사 부장님 같습니다…….”
어허.
인상을 찌푸리자 서규가 슥 시선을 피했다.
내가 우린 커피(최대한 봉다리 커피랑 비슷하게 맛을 우려낸 걸작)를 건네받은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장의사 씨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해요. 모든 덕목은 습관에서 비롯되고, 습관은 성실함에서 출발해요. 그 어떤 덕목도 성실함이 부재하는 순간 딜레탕트적인 자기 과시로 변질하기 십상인걸요.”
“그렇지요? 역시. 서규야, 너도 고요리나 성녀님을 좀 본받아라.”
서규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다. 우리 길드 평균 연령은 거의 업계에서 제일 낮은 수준인데 왜 분위기가 이러지……?”
그런 식으로 궁시렁거렸지만 고요리에 대한 호감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파티원 전원에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고요리 씨! 훈련 끝나면 맥주나 한잔 때립시다! 저희 자주 가는 가게가 이번 주엔 물량이 들어왔답니다!”
“저기, 고요리 누나. SG넷 운영 관련으로…….”
“고, 고요리 언니. 오늘 점심 같이 드실래요……?”
성격이 야생마처럼 까다롭기로 유명한 파티원들이 고요리 앞에만 서면 당나귀처럼 순해졌다.
사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고요리를 계속해서 데리고 다니기로 결심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각성자들은 대체로 성격이 못됐다. 이게 100% 필연적인 법칙까진 아니었지만, 심성이 기이하게 뒤틀릴수록 능력이 강해지는 경우도 분명히 있긴 했다.
우리 길드는 S급, A급 유망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만큼 정서불안이 굉장했다. 내 앞에선 세상 얌전한 서규조차도 튜토리얼의 요정한테 노빠꾸로 “야 이 씨발 새끼야!”를 박던 미친놈 아니었던가.
성녀… 는 나야 목숨까지 맡길 정도로 신뢰한다만 평범한 성격이라고 보긴 어렵지. 그나마 SG넷 운영 관련해서 서규랑 가끔 대화를 나눌 뿐. 성녀는 누구보다 많은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발송했으나 역설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싫어했다.
그런 말썽꾸러기들만 보인 길드에서 누구와도 두루두루 친하게 지낸다는 건 절대로 손쉬운 묘기가 아니었다.
‘이전 회차들보다 파티원들의 멘탈이 훨씬 더 안정되었어.’
플러스 200점.
호감도 Lv.7 돌파.
설령 고요리가 [기척 차단]밖에 터득하지 못하는, 일반인에서 코털이 삐죽 튀어나왔을 뿐인 허접 각성자라 해도 상관없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인간에게 멘탈만큼 중요한 것도 많지 않다. 최강의 전투 능력을 가지면 무슨 소용이겠나. 쇼 노인처럼 정신이 무너지면 그저 쇼 노인에서 노쇼로 전직할 뿐인데.
“네, 여러분. 그럼 점심은 같이 먹도록 해요.”
고요리는 길드원들을 모두 이어 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이전 회차였다면 서로 으르렁댈 각성자들마저 중간에서 조율해 주니 내 부담이 확 줄어들었다.
나는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성녀에게 소곤거렸다.
“고요리 쟤가 참 국밥 같은 사람입니다. 조직 관리가 말도 안 되게 편해졌어요. 하율이 아시죠? 말 없는 애. 걔도 고요리를 따르더라니까요. 이러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20명, 30명까지 길드 규모를 늘려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
“음?”
대답이 없어 돌아보자, 성녀의 표정이 어째선지 조금 멍했다. 언제나 또렷한 눈동자가 약간 탁해져 있었다.
“성녀님?”
“아. 네. 죄송해요.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죠?”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혹시 더위 드신 것 아닙니까? 냉수 갖다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성녀가 중얼거렸다.
“그저, 정말 모든 사람이랑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이구나 싶어 신기해서요. 아시겠지만 저는 저런 성향에서 워낙 거리가 멀잖아요.”
“성격엔 다 장단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고요리 씨에게도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못할 스트레스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게요. 올바른 말씀이에요.”
여러모로 89회차는 느낌이 좋았다.
SG넷 운영도 순풍만범. 고려장 빌런인 심아련도 옛날처럼 어그로를 마시는 새로 전직하여 무사히 A급 치료사로 전직했다.
성녀의 백업이야 언제든 완벽했으며, 매력 MAX를 찍은 고요리의 친화력 덕택에 길드는 어느 회차보다도 내부 결속이 끈끈해졌다. 요정들을 몽땅 다 체포해서 각성자들의 전국적인 지지까지 얻어냈다.
음으로 양으로 세력이 공고해진 회차.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세계 멸망, 막을 수 있을지도?’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개풀 뜯어 먹는 잡소리에 불과했으나 이 당시의 나는 진지하게 그리 믿었으니 어찌하리오.
그렇게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눈을 뜨고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깨자마자 침대에서 빈둥거리지 않고 즉시 일어나는 것이 나의 철칙이었기에.
“……?”
하지만 이날은 굉장히 오랜만에 침대에서 버벅거렸다.
갑자기 내가 귀차니즘의 도리를 깨우쳤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다만 멍하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잠자기 전까지는 분명히 아무것도 없어 깔끔했던 천장을.
[분홍색 머리를 믿지 마라.]낯익은 천장에 낯선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4
무한 회귀는 내게 수많은 교훈을 선물해 주었다.
그 선물들 중 하나의 이름은 ‘의심’이었다.
나와 똑같은 회귀자였던 쇼 노인 또한 똑같았다. 일찍이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이 성좌인지 뭔지 하는 놈들을 너무 신뢰하지 말거라.
누구나 당연하게 성좌들의 존재를 믿었다. 하지만 쇼 노인은 성좌들이 ‘한국인을 편애한다’라는 점을 지적하며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엔 쇼 노인이 옳았다. 성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성녀의 가면놀이극이었다.
‘독일어.’
나는 길드원들과 아침을 먹으면서 아까 방 안에서 보았던 문장에 관해 생각했다.
‘필기도구가 아니라 칼끝을 써서 새겨넣었다. 그렇다면.’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어 내려다봤다.
잠잘 때도 몸에서 떼어 놓지 않는 호신용 무기.
칼날을 확인해 보니 미세한 먼지와 티끌이 묻어 있었다. 자세한 성분 구성은 우에하라 시노에게 의뢰해야 알 수 있겠지만, 대충 봐도 천장과 재질이 동일했다.
즉.
‘누군가가 내 품에서 단검을 꺼내다가, 나밖에 알아볼 수 없는 독일어로 천장에 문장을 새겼다. 일련의 과정에서 나한테 발각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 침실에 쳐진 보안들까지 전부 뚫었고.’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지.’
하물며 내 길드 아지트는 ‘인형사’라는 진지구축 전문가에게 부탁해서 건물 천장 곳곳에나 미세한 ‘거미줄’을 쳐놨다.
당서린의 길드 열차 정도를 제외하면 이만큼 보안 레벨이 높은 본부도 달리 없었다. 적어도, 우리 길드원들 가운데 보안을 꿰뚫고 묘기를 부릴 줄 아는 인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쇼 노인이라면 가능하겠다만……. 역시 불가능하지. 영감탱이의 시체는 이미 89회차가 시작하자마자 확인해 뒀으니.
결국 용의자는 한 사람밖에 없었다.
‘나로군.’
자기 자신.
나는 물잔에 비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만일 내가 범인이라면 저 모든 악조건을 무시하고 간단히 범행을 저지를 수 있겠지.
문제는……. 아무리 머릿속을 되짚어도 내가 천장에 저딴 문장을 조각한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세뇌? 몽유병? 인격 분열? 기억 상실? 최면?’
무수한 가능성들이 떠올랐다.
어느 쪽이든 간에 둘 중 하나였다.
‘나와 고요리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목적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고요리에 관해 경고하는 것이거나.’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마침 샌드위치를 양손에 들고 냠냠 먹고 있던 고요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
고요리는 방긋 웃으면서 마저 샌드위치를 먹었다.
…심장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 역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양 평범하게 식사했다.
‘설마 역대급 회차인 줄 알았던 89회차에서 이런 억까 이벤트가 발생할 줄이야.’
이런 위급 상황에서 상담할 수 있는 동료는 결국에 성녀가 유일했다.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뿐더러,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사태를 조망할 줄 알았으니까.
“그나저나 요즘 성좌들이 말을 안 걸지 않아?”
“어? 너도? 난 어제부터 메시지가 안 뜨더라.”
“맨날 말 걸어주다가 갑자기 조용해지니까 좀 불안해지는 느낌 있지 않냐?”
멈칫.
식탁에서 들려온 길드원들의 잡담에 나는 무심코 그쪽을 쳐다보았다.
“성좌들의 메시지가 안 뜬다고?”
“아, 네. 길드장님.”
“지금 SG넷에서도 좀 얘기가 돌고 있을걸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