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30)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30화(13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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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자 Ⅱ
신노아
3
언젠가 내 일대기를 읽게 될 여러분에게 꼭 권장하고 싶다.
되도록 튜토리얼의 요정들과 양호한 관계를 구축해 두라고.
나야 미숙한 회귀자였기에 요정들과 서로 모가지 자르고 대가리 터트리며 증오의 연쇄를 쌓았다지만, 여러분까지 이런 수라도에 발 담글 필요는 없다.
“힉힉힉. 서기장 동지의 무의식적 뇌주름 속에 꼭꼭 숨어 있는 반동주의 게릴라를 토벌하기 위한 작전, 스타트인 것이에요……!”
“좋아. 부탁하마.”
튜토리얼의 요정은 정말 괜찮은 괴이였다. 어투가 기묘하고 튜토리얼질로 인간을 갈아 버렸다는 부분에만 역사 왜곡을 해 두면 아무튼 호모 사피엔스와 대화가 통하지 않던가?
초장부터 ‘그게 무슨 개소리야, 씨발놈아!’라는 인사말만 박아 버리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요정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사실 요정이 아니라 인간을 상대로도 그런 인사말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다.
요정들이 쪼르르- 달려와서 내 주변을 둘러쌌다. 머릿수를 세어 보니 64마리나 모여들었다.
“우선, 무의식에 입장하기 위해 무엇보다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 놓고 숙면을 취해야 한다는 거예요!”
“음.”
나는 침대에 누웠다. 꼬옥. 요정들이 강강술래의 태세를 취한 뒤 양편에서 내 왼손 오른손을 잡았다.
요정-요정-(나)-요정-요정.
그림으로 표현해 보면 위와 같았다.
왼편과 오른편에 각각 튜토리얼의 요정이 32마리씩 이어졌다.
“그럼 이제부터 서기장 동지를 우리 요정들의 고향에 초대하는 거예요. 혹시 신청곡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란 거예요!”
“신청곡?”
“호에. 몽마의 영토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딱 적절하고 앙증맞은 자장가가 필요한 것……! 리퀘스트가 없다면 반짝반짝 작은별이 기본 BGM으로 선정된다예요!”
<반짝반짝 작은별>은 유성우 때문에 트라우마가 박혔으므로 <섬집 아기>를 요청했다.
그러자 튜토리얼 요정들이 손에 손잡고 어깨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엄마가 섬그늘에-♪”
“목 따러 가며어언-♪”
“아기가 혼자 남아- 똥을 싸아다가♪”
잠깐. <섬집 아기>가 그런 가사였나?
“ZZZ…….”
그런 의문을 품을 겨를도 없이 요정들의 노랫소리가 나를 통째로 들어다가 수면에 퐁당 빠트렸다.
깜빡.
눈을 뜨니 풍경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아지트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지금은 옛 백제병원 건물의 카페 테이블에 옆얼굴을 붙이고 있었다.
탁자 아래엔 쇼 노인의 시체.
요정들은 여전히 내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단 32명/32명으로 이루어졌던 팔문금쇄진이 딱 절반, 16명/16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오……? 야, 이거 불면증 환자들한테 완전 즉효약이겠다. 안 그래도 노도하 관리대장이 맨날 잠 부족하다며 불평하는데 그 사람한테 불러주면…….”
“바다가 불러주는-♪”
“멸망의 노래에에♪”
“ZZZ…….”
나는 꿈속에서 재차 잠들었다. 까마득해지는 의식 너머로 생각했다.
이거 영화 <인셉션>에서 비슷한 거 나오지 않나?
깜빡.
그 뒤로도 나는 꿈속의 꿈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내 의식은 더 어두운 무의식으로, 더 깊은 수면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아지트에서 카페로, 당서린의 VVIP 열차칸으로, 잠수교 편의점으로, 백화여고로…….
“어라? 부길드장, 당신――.”
꿈속의 등장인물이 나를 알아보고 눈을 크게 치켜뜰 때도 있었다.
아주 오래전 회차의 ‘길드장’, 그러니까 당서린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자장가는 멈추지 않았다.
“목 베고 스르르르-♪”
“자아암이 드읍니다아♪”
깊이. 더 깊이.
몽중몽(夢中夢).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절대로 자각할 수 없고 설령 꿈을 꾸더라도 결코 기억할 수 없는 무의식의 무저갱까지.
“――선배님?”
“형님.”
“기, 길드장님이다…….”
“오빠.”
그것은 끝없는 추락이었다.
장의사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 기억, 본질이 점점 더 떨어져 산산이 흩어졌다.
마치 정육점에서 도축당하는 짐승처럼. 조각가의 손바닥 안에서 깎여 나가는 목제 인형처럼.
“인류는 잠을 곤히-♪”
“자고 이있지마안-♪”
“아기의 울음소리.”
“혼이 흔들려.”
깜빡.
한 층 더 아래의 ‘꿈’으로 진입할 때마다 요정들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64명, 32명, 16명, 8명, 4명, 2명…….
마침내 1명.
“호에에.”
264번 요정. 내가 삶에서 가장 처음 만난 튜토리얼의 요정이 나와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현실에서 홀로 2D 데포르메 캐릭터로 조형된 요정은, 정확히 >_<);; 로 표현될 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히에에엑……. 맙소사! 완전, 완전 고생했어요!”
도리도리! 요정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자 역시 데포르메 된 땀방울이 튀겼다.
“서기장 동지의 무의식, 단단해도 너무 단단한 거예요!”
“…그래?”
“히엑. 길고 긴 몽마생 동안 이런 무의식 구조를 가진 인간종은 본 적도 없다예요! 서기장 동지, ‘현재’와 ‘과거’의 구분이 전혀 없는 거예요. 모든 것이 눈앞에 현전하고 있는데 심지어 그 용량이 수천 년이나 되는 것이에요! 일개 필멸자가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구조……! 역시 저희들을 영도하는 강철의 서기장다운 거예요!”
“음.”
인간인 나로선 ‘무의식이 단단하다’라는 감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내 [완전 기억 능력] 때문에 요정들이 애를 먹었나 보구나- 하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 기억은 흐릿해지지 않았다. 4회차 이전의 기억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내 입장에선 이렇게 되어 버린 지 이미 수천 년이 지났기에 오히려 ‘정말로 눈앞에 보이는 듯한 기억들’이 익숙했다.
쇼 노인이 나를 진심으로 부러워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 영감탱이, 부인의 얼굴과 목소리가 점점 흐려진다는 게 인생의 통한이었으니까.
나만의 이 독특한 증상에 대해선 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따로 있을 것이다.
“아무튼 고생했다. 이제 여기가 내 무의식의 밑바닥인 거냐?”
“힉힉힉. 그렇다예요! 저희들처럼 고도로 숙련된 몽마가 아니고서야 여기까지 도달하는 건 실로 불가능……! 혁명 영웅들의 장렬한 의지가 이루어 낸 초과 달성 프로젝트인 거예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산역 대합실.
어떤 의미로는 참 나답다는 감상이 들었다. 나 개인의 출생지야 따로 있겠으나, ‘회귀자’ 장의사의 고향은 이곳밖에 없지 않겠나.
나의 원점. 현실이랑 전혀 다를 바 없는 부피감이 대합실의 허공 어디메쯤 흘렀다.
“꿈이라는 실감이 전혀 안 드는군.”
“당연하다예요. 이곳은 한낱 서기장 동지 개인의 무의식이 아닌 그야말로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나 다름없는 거예요. 인간에겐 공기나 물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현상인 것……. 현실 이전의 현실, 선험적인 구조, 초현실인 거예요.”
“집단 무의식? 카를 융의 개념이잖아. 너희가 그런 것도 알았냐?”
“힉힉힉. 무간 덕분에 인류의 모든 지식에 접속해서 속성 과외를 받았다예요!”
“아.”
“어쨌든 이곳에선 상당히 조심해야 된다는 거예요, 서기장 동지. 지금 동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현실이 아니라 인류의 무의식 그 자체……!”
그런 말을 하면서도 요정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일전에 요정군주가 무간의 영역을 잠깐 구경시켜 줬을 때도 그랬듯, 여기가 정말로 위험하단 뜻이겠지.
“이 장소에서 시공간의 법칙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예요!”
“공허나 다름없단 뜻이냐?”
“다름없는 정도가 아니라, 공허 그 자체예요!”
자기가 잘 아는 것에 대해 말할 때 말이 빨라지는 인종이 있는데 264번 요정도 그런 모양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꿈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가장 첫 번째로 드리우는 대공허라 할 수 있는 것……! 그나마 여기 대합실이 서기장 동지가 생각하는 ‘제일 친밀한 장소’여서 베이스캠프로 삼을 수 있었던 거예요.”
“베이스캠프라.”
“예, 그러니 이곳을 벗어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저의 손을 놓쳐선 안 된다예요! 서기장 동지. 여차할 때 긴급탈출 프로토콜을 발동하기 위…….”
그때였다.
또벅-
나지막한 구두굽 소리가 대합실에 울렸다. 구두굽이 바닥을 치박은 소음치고는 지나치게 높이. 마치 마을의 교회 종소리처럼.
나와 요정이 서 있는 반경 너머로 대합실은 어두컴컴하게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 발소리를 낸 장본인의 모습 또한 밑에서부터 천천히 드러났다.
또벅-
검은색 로퍼 구두. 흰색 스타킹. 무릎 아래 종아리까지 뒤덮은 보라색 치마. 그렇지만 하얀색 줄선으로 진한 자주색 특유의 중압감을 가볍게 덜어낸.
“어라?”
분홍빛 머리카락.
“신기해라.”
“…….”
“이런 곳에서 뵙네요, 길드장님?”
고요리.
고요리가 싱긋 웃고 있었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내 맥박보다 오러가 더 빠르게 요동쳤다. 전신에서 오러를 끌어올려 단숨에 고요리의 목을 베어 넘기려던 순간.
“―호엣?”
퍼엉!
내 왼손을 쥐고 있던 무게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옆을 돌아보니, 요정의 몸에서 머리통이 통째로 뜯겨 나가 있었다.
후두두득. 요정의 살점들이, 마치 박자가 어긋난 노래처럼 뒤늦게 바닥에 떨어졌다.
내 손에 잡힌 264번 요정의 팔뚝이 추우윽- 힘없이 늘어져 덜렁거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팔뚝이 시소를 타고 마침내 잦아들었다.
즉사였다.
현실보다 꿈에서 전능한 힘을 발휘하는 몽마가 바로 그 꿈속에서 순살당했다.
“…….”
“앗, 죄송해요. 그렇지만 너무 오랜만에 길드장님을 뵙게 되어 반가워진 마음에 그만……. 정말로 죄송―.”
문답무용.
나는 전력으로 오러를 끌어올렸다. 바닥을 찼다.
고요리를 지나쳤고, 그 목이 내 일섬에 폭발하는 느낌이 지팡이검을 타고 손에 와 닿았다. 베는 것보다는 폭발에 가까운 소리가, 펑, 한 걸음 늦게 따라왔다.
십족전 때에 비하면 나는 많이 성장했다. ‘해치웠나?’ 같은 소리를 입밖에 내지도, 해치웠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질주했다.
요컨대 꽁무니가 빠져라 도주했다는 소리다.
“―아하.”
그리고 300미터도 채 뛰지 않았음에도 코앞에서 고요리와 다시 마주쳤다.
퍽!
정면으로 충돌하는 바람에 고요리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고요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코를 문질문질 매만졌다.
“아얏, 아……. 죄송해요. 길드장님. 제가 앞을 보지 못해서 그만. 아하하. 제가 조금 칠칠맞지 못하잖아요.”
“…….”
곧바로 위를 향해 오러를 쏘아냈다.
거꾸로 친 벼락이 부산역 천장을 뚫었다. 하늘이 보였다. 발바닥에 오러를 모아 자리를 박찼다.
허공답보.
지금 시점에선 오러를 극한까지 연마한 나 정도만 선보일 수 있는 기예였다.
“날씨가 참 좋네요.”
고요리가 구름에 앉아 있었다.
“…….”
“공허만 조심하면 지상보다 상공이 조금 더 맑은 기분이 들지 않나요? 아. 길드장님, 보이차 드실래요?”
구름을 벤치 삼아서 고요리는 양발을 차례대로 흔들었다. 옆자리엔 보온통과 찻잔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대로 허공답보를 풀고 추락했다. 콰아아앙! 지면에 충돌한 그 순간 온 힘을 다하여 땅을 팠다. 지면으로, 지하로 파고들었다.
나는 하나의 드릴이었으며 우리의 드릴은 지하를 뚫을 드릴이었다.
“참. 저 좀 봐. 길드장님은 보이차보다 실론티를 좋아하셨는데.”
지하 600미터 지점에 묻혀 있던 고요리가 발굴되었다. 양손으로 실론티를 든 채 방긋 웃으면서.
“…….”
“앗. 저희 지금 숨바꼭질 놀이 하고 있었던 거 맞지요? 그럼……. 제가 술래였을까요? 길드장님, 찾- 았- 다. 아하하. 이런 식으로 하는 건가요? 어릴 때 이후로 숨바꼭질은 처음이라서 조금 부끄럽네요.”
하느님부처님알라님시바님모광서예수그리스도이시여! 제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최후의 긴급탈출 프로토콜 552-71번 ‘적벽가 판소리’를 발동했다.
“뜻밖에 광풍이 우루루루루! 풍성(風聲)이 요란커늘 주유, 급히 장대상에 퉁퉁퉁 내려 깃발을 바라보니…….”
“어허라♪ 청룡주작 양기각이 백호현무를 응하여, 서북으로 펄펄 삽시간에 동남대풍(東南大風)이 일어서 기각이 와직끈♪ 움쭉♪ 기폭판도 떼구르르르♪”
“…….”
“아아, 천둥같이 일어나니 주유가 이 모양을 보고 간담이 떨어지네에♪”
토옹-
어디서 장구를 구해 왔는지 고요리가 능수능란하게 궁편을 쳤다. 한때 휴가 회차에서 판소리꾼한테 전문적으로 적벽가를 전수받은 나만큼이나 절창이었다.
“어라. 길드장님, 계속 안 부르세요? 저 이거 길드장님이랑 같이 부르려고 연습 많이 했는데…….”
“…….”
고요리의 눈썹 끝이 아래로 저며 들었다.
그제야 나는 냉엄하고도 냉정한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나는 좆 됐다.
그것도 좀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