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36)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36화(13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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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칭자 Ⅰ
신노아
1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여러분이라면 희미하게나마 눈치챘을 것이다.
내 썰에는 장르물에 필수적인 ‘어떤 요소’가 부재한다.
이 요소란 너무나도 중요하여서 만일 그게 없으면 대체 뭐 하러 주인공 행세를 하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다.
바로 ‘기연 독식’.
예컨대 555회차의 오독서를 생각해 보자. 녀석은 자기가 소설 속 세상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자마자 이런 속마음부터 품지 않았던가.
[오독서: 뭐, 아무튼. 부산역 파트에서 어차피 중요한 건 해운대에 숨겨진 영약을 얼마나 초반에 확보해 두느냐, 그것뿐이니까.]아, 기연! 달콤한 울림이여.
경지를 단번에 올려주는 영약이라든지. 어째선지 절벽 중턱에 파묻힌 비급이라든지. 원래라면 인격이 파탄 나게 될 세계 최강자를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 하여 자신에게 의존하도록 가스라이팅을 시도한다든지. 아직은 아무도 그 가치를 모르는 아이템을 파밍한다든지.
그런 것들을 가볍게 낚아채서.
‘운이 좋군.’
이라고 쿨하게 읊조리는 것이야말로 장르문학의 주인공에게 주어진 품격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을 숨기랴.
나 장의사 또한 소싯적엔 운이 좀 좋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기연을 찾아다니는 ‘행운 사냥꾼’이었다 해도 무방했다.
만일 내가 어떤 공허에 진입했다면 반드시 그곳에서만 파밍할 수 있는 희귀 아이템이 존재한단 뜻이었다.
괴이도 다를 바 없었다. 여러분에겐 여태껏 비밀로 해 뒀지만 사실 ‘십족의 심장’은 굉장한 레어템에 해당했다. 그거 생으로 회 쳐서 먹으면 1갑자의 내공은 우습게 쌓인다(맛은 참치뱃살에 가깝다).
그런데 예전이면 모를까, 작금의 나는 더 이상 그런 아이템들에 연연하지 않는다.
도리어 적극적으로 피한다.
정말로 필수적인 게 아니라면 사양하고, 사양하기에 너무 아깝다면 내가 아니라 딴 애들한테 넘긴다.
“아니……. 대체 왜?”
그런 내 정책을 듣고 언젠가 오독서가 눈살을 찌푸린 적 있었다.
이때 독서는 마침 나의 썰을 집필하다가 잠깐 쉬는 도중이었다. 아무래도 얘의 기력이 좀 쇠한 것 같아서, 나는 특별히 십족의 심장을 발라다가 십족-초밥을 만들어 주었다.
오독서는 ‘진짜 참치회 맛이잖아…….’ 하고 우물우물거린 다음 말을 이었다.
“혹시 아저씨 힙스터야? 뭔가 주인공이 기연을 독식하면 너무 빤하다든지 그런 사상을 갖고 있어?”
“그럴 리가. 나도 가능하다면 기연을 독식하고 싶다. 애당초 내겐 [컨티뉴] 능력이 있으니까, 기연은 먹어 둘수록 이득이지.”
“그럼 왜……. 아! 혹시 아저씨가 섭취하는 것보다 다른 동료들이 먹어 두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서?”
“음. 그것도 있다만… 보여 주는 편이 빠르겠다.”
나는 이렇게 독서에게 ‘괴이들에 관한 정보’를 교육시키는 걸 좋아했다. 다 나중에 도움이 될 테니까.
아공간 트렁크 가방을 열어다가 어떤 공책과 함께 아이템 하나를 꺼내 탁자에 턱, 올려놓았다.
그러자 오독서의 눈이 둥그레졌다.
누가 오타쿠 아니랄까 봐 녀석에게도 낯익은 형태의 아이템이었나 보다.
“…뭐야, 이거. [원숭이 손] 아니야?”
“오. 바로 알아보는구나.”
원숭이 손(The Monkey’s Paw).
문자 그대로 원숭이 손모가지처럼 생긴 이 괴이는, 사람의 소원을 세 번까지 들어준다.
단, 괴이답게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원을 들어주진 않는다.
감히 인생을 날먹하려는 시전자에겐 어떤 형태로든 ‘불행’이 다가온다.
‘영생을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면 불로는 안 줘서 영원토록 늙어 가는 이터널 실버 라이프를 만끽시킨다.
‘불로영생을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면 지구가 종말한 다음에도 자기 혼자 멀쩡해서 무한히 우주 여행을 즐기도록 만들어 준다.
‘불로영생을 주되 언제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면, 이래도 안 죽을 거냐면서 어마어마하게 끔찍하고 참담한 이벤트들이 주변에서 계속 발생하도록 배려해 준다.
억까라고?
그래. 억까 맞다.
바로 그 억까야말로 [원숭이 손]이라는 괴이의 본질이다.
부작용 없는 소원을 비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지니가 갇힌 요술램프의 암흑진화 얼터 버전이라 할 수 있겠지.
“엄밀히 말해서 이건 원숭이 손인 동시에 인간의 손이기도 해.”
“어? 무슨 뜻이야?”
“내가 발견할 무렵엔 이미 누군가가 세 번 소원을 빌어 둔 상태였거든.”
“엑.”
안타깝게도 이 세기말은 이미 원숭이 손의 저주가 완전하게 구현되어 버린 세계였다.
“독서야.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괴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이, [원숭이 손]을 발견했다면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소원 스택이 총 3개잖아. 그럼 먼저 ‘소원의 부작용을 없애 주세요’라고 빌래.”
나는 빙긋 웃었다.
“좋다. 그다음은?”
“어……. 소원의 개수 제한을 없애 주세요? 세 개로는 아쉽잖아. 요즘 이런 소원은 들어주지 않는단 설정도 많지만 일단 질러 봐야지.”
“이야.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응?”
“나중에 설명해 주마. 아무튼 그래서, 마지막 소원은 뭐니?”
“음…….”
오독서가 남은 십족초밥을 한 점 먹고는 입을 열었다.
“좀 고민되지만, ‘나에게 행운을 주세요’라고 빌래.”
“…….”
“원숭이 손은 사용자한테 불행을 가져다주잖아. 그거의 카운터 어택. 처음부터 나한테 행운 만렙을 찍어 두면 불행 자체가 억제될 거야.”
나는 쓴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오독서의 대답은 정석이었다. 천요화나 이하율, 서규에게 물어봤을 때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다.
소원의 디테일은 달라도 목적은 동일했다. ‘원숭이 손의 한계 및 부작용을 없앤다’라는 목적.
“네 말이 맞다. 아마 누가 발견했더라도 대동소이한 소원들을 빌었을 테지.”
“아, 응.”
나는 카페오레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탁자에 원숭이 손과 나란히 놓여 있는 어느 공책을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내가 기연 독식이 불가능하게 된 거란다.”
2
내가 원숭이 손을 처음으로 발견한 장소는 제주도였다.
당시 나는 성산일출봉에서 발생했던 튜토리얼 던전을 탐색하고 있었다.
해당 던전은 [수학여행]이란 컨셉의 공허였는데, 시간 순서로 따졌을 때 [백화여고]와 더불어 가장 빨리 출현한 튜토리얼 던전 중 하나였다.
튜토리얼 던전 안에선 성산일출봉의 해발고도가 에베레스트 높이까지 자라났다던가.
당연히 내가 도착했을 무렵엔 이미 튜토리얼이 끝나 버린 지 한참이 흘렀고, 성산일출봉도 평범한 사이즈로 되돌아와 있었다.
진즉에 튜토리얼이 종료된 시험장에서 나는 혹시나 건질 만한 아이템이 없을지 이리저리 탐색해 보고 있었다.
‘시체가 제법 많군.’
딱히 눈에 띄는 아이템은 안 보였다. 다만 튜토리얼 던전이었던 곳답게 등산로 입구부터 백골과 시체가 굴러다녔다.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은 없나?’
시체의 카드와 신분증을 살펴보니 입구 근처의 시체들은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시체의 숫자는 대략 16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나온 부산역 튜토리얼 던전에도 우에하라 시노 같은 일본인이 몇 명 있었다.
부산보다 일본에 가까운 제주도에선 더 많은 일본인들이 강제로 소환당했으리라.
“음?”
그때였다.
정상 부근에서 조금 ‘특이한 시체’를 발견했다.
우선 시체에 털이 수북했다.
아니, 수북한 걸 뛰어넘어 아예 온몸에 모발촉진제를 바른 듯했다. 언뜻 봐선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사체나 덤불인 줄 착각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체의 위치까지 공교로웠다.
관광객 전용 코스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비탈. 딱 사람의 시야가 닿지 않을 법한 각도에 시체가 숨어 있었다.
‘얘도 튜토리얼의 사망자인가?’
시체는 양손에 두꺼운 노트를 꾹 쥐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의 유언장인가 싶어서 노트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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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차》
정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나는 이 일기를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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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은 한국어가 아니라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었다.
팔락.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유언노트의 앞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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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이상해졌다.
원래도 이상했지만 더 이상해졌다. 사람들이 우스울 정도로 쉽게 죽어 나간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다! 이 정체불명의 장소에 끌려왔을 때, 내 코앞엔 ‘원숭이 손’ 떨어져 있었다.
옛날에 <모노가타리 시리즈>를 본 덕택에 난 원숭이 손을 보자마자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전 여자친구의 오타쿠 취미에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니.
고마워, 세나. 네가 다른 여자랑 바람피운 것도 용서해 줄게.
주변의 한국인들은 이게 뭔지 모르는 눈치였다. 행여라도 다른 사람이 눈치챌까 무서워 재빨리 배낭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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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손?
나는 재차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얼굴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온몸에 털이 덥수룩했다.
‘음. 그러고 보면 확실히 원숭이 털 같기도 하고……?’
눈앞의 사람은 원숭이 손에 소원들을 빌었다가 결국 괴이에 홀려 버린 것일까.
팔락. 나는 계속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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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차》
만약 ‘원숭이 손’이 생긴다면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까?
그런 주제로 세나랑 떠든 적 있었다.
단순히 심심풀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내게 이런 행운이 주어질 줄이야.
운명을 느낀다.
아무리 ‘원숭이 손’에 부작용이 있다지만 이걸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당장 사람들이 픽픽 죽어 자빠지고 있다. 나라도 어떻게든 살아야지.
이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죽고 있다. 규동이랑 파인애플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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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의 힘을 빌린다.
“음.”
그건 아직 세기말에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이 떠올릴 법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수백 회차를 경험한 나조차 기껏해야 튜토리얼의 요정, 이누나키 터널 정도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조차 여러 제약이 뒤따르는 활용법이었고.
초보자가 함부로 건너선 안 될 길.
하지만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도박수를 던져 보려는 심리에 대해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팔락. 계속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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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차》
이곳에 소환된 일본인들끼리 모여서 파티를 꾸렸다. 요우, 라는 여자애가 강력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각자의 배낭을 개방해서 서로 자원을 공유하자고 주장했다. 미친 거 아니야? 이건 사유재산이라고.
다른 그룹으로 합류하고 싶지만 대부분이 한국인이라서 말이 잘 안 통한다. 나는 하룻밤만 생각해 볼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요우라는 여자는 나를 무표정하게 쳐다보더니 마음대로 하라 그랬다.
역시 기분 나쁜 애다. 좋아, 마음대로 해 줄게.
오늘 밤 ‘원숭이 손’을 사용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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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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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차》
이미 며칠 동안 나는 ‘원숭이 손’에 빌 소원들을 철저하게 계획해 뒀다.
순서대로 소원을 기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제가 어떤 소원을 빌든 그 소원의 부작용 따위를 만들지 말아 주세요.
2. 소원을 비는 횟수의 제한을 없애 주세요. 만일 제한을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면, 이 소원은 빌지 않는 셈 쳐 주세요.
3. 저에게 행운을 주세요. 어쩌다 굴러떨어진 바위에 죽는다든지, 그런 ‘우연한 불행’을 전부 피하게 해 주세요.
일련의 소원에서 결국 핵심은 3번째. 즉, ‘행운’이다.
다른 치트 능력들도 고민해 봤지만 최종적으로는 전부 기각했다. 아무리 강력한 능력을 얻어도 이 원숭이 손이 ‘불행’을 안겨다 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테니까.
행운. 압도적인 행운 앞에선 어떤 능력이나 불행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소원을 차례차례 비는 사이에 ‘원숭이 손’이 뭔가 수작질을 부릴지도 몰랐다.
기본적으로 악마니까, 이 녀석.
그래서 종이에 세 가지의 소원을 써서 한꺼번에 들이밀 생각이다.
솔직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잘 준비했다고 여기지만, 혹시 몰라서 이 일기를 유언장처럼 남겨 둔다.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후일 이 일기장을 찾아낸 사람이 보다 현명하게 사용하기를.
이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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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느새 이름 모를 각성자의 일기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시체로 전락한 걸 보면 눈앞의 인물은 아마도 실패해 버렸겠지. 하지만 성공만큼이나 실패에서도 배울 게 많았다.
이 각성자는 괴이와 공허를 상대하는 데 있어 기본 중 기본. 즉,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록물을 남긴다’라는 원칙을 준수했다.
그렇다면 이 시체와 나는 함께 아포칼립스 세기말을 헤쳐 나아가려는 동료나 다름없을 터.
팔락. 유언장을 넘기는 내 손길이 조금 더 정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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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차》
해냈다!
불침번을 서는 도중 던전에서 켄타우로스 괴물들이 습격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나는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한테만 갔다.
그룹의 절반이 사망했지만 난 생채기 하나 안 났다. 우리 중에 제일 강한 요우도 상처를 입었는데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2번 소원까지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횟수 제한 해금! 만세!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자 갑자기 여유로워졌다. 지금은 요우의 면상을 봐도 딱히 짜증스럽지 않다.
대단해. 이건 진짜다.
‘원숭이 손’한테 ‘규동을 먹고 싶어’라고 소원을 빌었다. 괴물을 죽이자 규동이 드롭되었다. 너무 대충이어서 웃었다.
규동을 6그릇이나 얻어서 다른 그룹원들한테 나눠 주었다. 요우 녀석, 무표정한 얼굴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너한테는 딱 그 정도 역할이 어울려. 단순한 엑스트라.
인원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규동 파워에 모두가 기운을 얻었다. 먹는 것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고마워, 세나! 너 덕분이야! 나랑 사귀면서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4다리를 걸쳤던 것도 용서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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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필적에서 숨길 수 없는 떨림이 전달되었다.
내 머릿속에선, 자기 죽음을 칩으로 걸어 올인을 때려박은 다음 마침내 성공하여 환호하는 사람의 모습이 재생되었다. 일종의 승리 선언.
하지만 나는 일기장의 주인과 달리 여전히 방심하지 않았다.
‘만일 정말로 이자가 승리했더라면 시체가 되어 나타나지도 않았을 테지.’
기쁨은 6일 차, 7일 차, 8일 차, 9일 차, 10일 차에도 계속 이어졌다. 11일 차 이후로는 아예 일기 자체를 드문드문 적었다.
한참 뒤쪽의 페이지를 넘겼을 때.
드디어 일기가 재개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필기체는 다른 방향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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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이상하다. 무언가 이상하다.
오늘 눈을 뜨니까, 켄타우로스들이 습격해 오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 싶었는데 5일차 때와 상황이 똑같았다.
그룹의 절반이 죽었다. 요우도 똑같은 부위에 상처를 입었다. 모든 사건이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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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의 주인은 한동안 어찌저찌 냉정함을 유지하는 듯했다.
그녀는 일기장을 쓰는 일에 다시 성실해졌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무슨 징조가 있었는지 보다 세세하게 적었다.
하지만 또다시 ‘6일 차??’가 반복되자 더는 이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애당초 멘탈이 그리 강하지 못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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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이상해이상하다이상해이상하다이상해이상하다이상해이상하다이상해이상하다이상해이상하다이상해이상하다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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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페이지에선 빼곡하게 ‘이상하다’라는 단어만 적어 두기도 했다.
또 한참이나 일기장이 비었다.
그러다 문득 백지 한복판에, 돌연 차가워진 필체로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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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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