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38)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38화(13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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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칭자 Ⅲ
신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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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黒).
유언노트 내내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던 ‘일기장 주인’의 별명은 쿠로였다고 한다.
본명이 아니라 별명이란 점을 주목해 보자. 일기장 주인의 진짜 이름은 흑요금조차 알 수 없었다.
“쿠로 씨는 아무랑도 얘기를 나누지 않았어요.”
그리고 아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똑같은 그룹 아니었나?”
“네. 같은 일본인이라서 저희 그룹에 속하긴 했지만요. 항상 끝에 떨어져 저희를 쫓아왔을 뿐이지, 쿠로 씨 본인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려 들거나 동참한 적은 없었어요.”
“…….”
속된 말로는 아싸. 아웃사이더.
왜, 초등학생 아이들이 소풍 갈 때도 꼭 그런 친구 있잖은가? 다른 아이들이 전부 밀착 대열을 이뤄서 선생님을 따라갈 적에도 자기 혼자 맨 끝에 떨어져서 ‘여러분,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소풍의 진정한 목적인 풍경 감상에 열중하고 있답니다’라고 주장하는 아이.
쿠로가 꼭 그런 스타일이었다.
아싸의 삶은 세기말 이전보다 세기말 이후 훨씬 더 혹독해졌다.
이 시대에 사교성이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식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런 외톨이었다면 그룹 내에서도 취급이 좋지 못했을 텐데?”
“맞습니다. 요괴들과 싸울 때도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으니까요. 요정들이 나눠 주는 전리품 분배에도 끼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그래도 그룹에서 축출하진 않았어요. 따로 말썽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적나라하게 말해서, 후방으로부터 요괴들이 기습해 왔을 때 쿠로 씨가 가장 먼저 희생될 거라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버림패로밖에 쓸모없는 졸병이었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 그랬어요.”
…그건 내가 여태껏 유언노트를 읽어 오면서 느낀 이미지와는 전혀 상반된 인상이었다.
일기장 속에서 쿠로는 비록 심성이 뒤틀렸으나 최소한 그룹 내에서 자기 몫은 다하는 각성자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초반부를 지나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무력까지 강해졌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홀로 켄타우로스 부족의 습격을 막아 낼 수도 있었다 그랬으니까.
그 증언이 전부 거짓말이었단 말인가? 내가 주운 일기장도 어떤 외톨이의 망상노트에 불과했던 것일까?
“다만……. 언더테이커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했던 점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정보여도 상관없다. 편하게 말해다오.”
흑요금이 미간을 좁혔다. 기억 속 서랍에서 벌써 퇴색되어 버린 사진을 찾느라 헤매듯이.
“…쿠로 씨는 잠이 많았습니다.”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잠?”
“네. 수면. 왜, 카미카쿠시를 당하면 언제 어떤 요괴가 튀어나올지 몰라서 긴장하기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쿠로 씨는 일어나 있을 때는 항상 쭈뼛거렸으면서 이상하게 잠을 잘 때만큼은 굉장히 태평했습니다.”
“…….”
“그리고 이상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루하루 잠을 잘 때마다 쿠로 씨의 팔로부터 ‘털’이 덥수룩해졌습니다. 네. 언터테이커님께서 보여 주신 이 사진처럼요.”
원숭이 손.
괴이의 힘을 끌어다 쓰는 인간은 점점 더 괴이에 가까워진다.
만일 누군가가 원숭이 손에 의지한다면, 그 자신 또한 원숭이와 같은 형상으로 전락하겠지.
“사람의 팔에서 갑자기 털이 생겨나니 저희들도 경계했습니다. 정체불명의 전염병이나 저주일 가능성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쿠로 씨를 억눌러서 소유품을 수색해 봤는데…….”
“배낭에 무엇이 있었지?”
“…괴물의 손과 평범한 노트, 그리고 군것질거리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당연히 괴물의 손을 압수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압수하지 못했다.
“저희가 빼앗으려 하니까 그 손이, 엄청난 괴력으로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그룹의 사람들 몇 명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졌어요.”
“허어.”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란이 일어난 틈을 타서 쿠로 씨가 도망쳤지요. 괴물의 손이 쿠로 씨를 뒤따라가듯 기어 갔고요. 저희들은 당황스러웠고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 이상으로 기분이 나빠져서. 그냥 쿠로 씨가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다시 쿠로와 재회한 적은 없고?”
“없습니다.”
흑요금은 테이블에 올려진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 궁금하긴 했는데 이런 털북숭이가 되어 버렸군요. 아마도, 무언가의 저주였겠지요.”
“…….”
나는 그날 저녁까지 흑요금과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다가 헤어졌다.
신사에서 나오기 직전, 나를 배웅하러 나온 흑요금에게 물어보았다.
“참. 마지막으로 이것만 물어보마.”
“네?”
“혹시 제주도에서 튜토리얼 던전을 뛰었을 때 초반에 일본인들이 다량으로 사망했나? 그러니까, 던전 입구 근처에서 16명 정도가 죽었다든지.”
흑요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저희 그룹은 높은 생존율을 보였습니다.”
“역시. 그래. 고맙다.”
“……? 아니요.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나는 신사의 계단을 조용히 내려갔다.
자아.
도대체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일단 ‘원숭이 손’이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는 건 틀림없었다. 흑요금의 증언을 신뢰하자면, 일기장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도 확실했다.
“음.”
나는 일기장의 뒷면에다가 자그맣게 문장을 적어 놓았다.
[쇼 노인 바보].그리고 다음 회차로 넘어갔을 때, 성산일출봉에 가서 똑같은 일기장을 주웠다.
페이지를 펼쳐봐도 [쇼 노인 바보]라는 글자는 발견할 수 없었다.
“――아하.”
나는 그제야 원숭이 손이 소원을 이루어 준 방식에 대하여, 이 일기장의 정체에 관하여, ‘거짓된 회귀자’의 진실에 관하여 알아차렸다.
해답편은 간단했다.
7
“이건 ‘꿈일기’다. 독서야.”
오독서가 눈을 깜빡거렸다.
“어……. 꿈일기?”
“그래. 너도 얘기는 들어봤겠지. 심리상담적인 목적으로 작성되기도 하고, 단순히 자각몽을 체험해 보려는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 아이템은 ‘꿈에서 벌어진 일을 기록한 노트’다.”
“들어는 봤는데……. 뭐야? 그럼 이 공책에 적힌 얘기들이 전부 꿈속에서 벌어진 망상들이란 뜻이야?”
“비슷하단다.”
나는 공책을 집어다가 가볍게 팔랑팔랑 휘저었다.
“혹시 이상한 점 느끼지 못했냐?”
“이상한 점?”
“그래. 일기장에선 5일 차부터의 시간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말해 놨다. 하지만 어째선지 이 일기장만큼은 ‘회귀에 휘말리지 않고 계속해서 내용이 유지’되고 있다.”
“……! 아! 아!”
“너도 알아챈 모양이구나.”
나는 빙그레 웃었다.
“내가 가진 지팡이검 도하라거나. 너한테 건네준 로그아웃 게임의 노트북이라거나. 그런 특수한 고유 아이템이 아니고서야 진짜로 회귀가 이루어지면 당연히 일기장의 내용도 백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일기장은 당연하다는 듯 계속 이어졌어.”
“그럼 그 일기장도 아저씨 고유템처럼 회귀를 겪어도 유지되는 물건……?”
“그럴 가능성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실험해 보니까 아니더구나.”
[쇼 노인 바보].내가 시험 삼아 적어 둔 저 문장은 다음 회차 때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결국 이 일기장은 뭔가 대단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단순히 평범한 노트에 불과했다.
“이럼 결론이 단순해지지. 자기가 회귀를 거듭하고 있다고 꿈꾸는 사람이 해당 일기를 작성한 거란다.”
“아……. 어라? 잠깐만, 아저씨. 근데 그러면 원숭이 손이 소원을 들어주는 척하면서 쿠로를 속여 버린 거 아냐?”
오독서는 내 손에서 노트를 낚아챘다. 그리고 《4일 차》라고 적힌 부분을 펼쳤다.
――――――――――
1. 제가 어떤 소원을 빌든 그 소원의 부작용 따위를 만들지 말아 주세요.
2. 소원을 비는 횟수의 제한을 없애 주세요. 만일 제한을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면, 이 소원은 빌지 않는 셈 쳐 주세요.
3. 저에게 행운을 주세요. 어쩌다 굴러떨어진 바위에 죽는다든지, 그런 ‘우연한 불행’을 전부 피하게 해 주세요.
――――――――――
“여기. 이거.”
오독서의 손끝이 1번 소원을 꾹 눌렀다.
“잘 봐. 자기 소원에 어떤 부작용도 만들어 내지 말라고 똑똑히 빌었잖아.”
“그랬지.”
“그런데 그냥 쿠로한테 ‘사실 내가 행운 만렙의 회귀자?!’라는 꿈을 보여 주고 말았다면, 현실에선 여전히 아무런 능력도 없는 외톨이에 불과했다면, 이건 사기죄 아니야?”
나는 미소를 지었다.
“독서야. 너에겐 괴이감수성이 부족하구나.”
“뭐? 웬 개소리?”
“원숭이 손이라는 괴이에 대해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보렴. 이 녀석은 애당초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소원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존재’. 그것이 원숭이 손이다.”
인간들은 언제나 손해 없이 이득을 취하기를 원한다.
한마디로 양심이 없다.
인간이 잃어버린 양심을 대신하여 괴이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만사에는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노라고.
무언가를 얻었다면 반드시 잃는 것도 있어야만 한다고.
‘행운과 불행은 총량이 같다’.
바로 이 사고방식이야말로 원숭이 손이라는 괴이가 고집하는 법칙.
“그런 의미에서 [원숭이 손]이라는 이름은 딱히 본질에 충실하지 않아. [장점과 단점]이라고 불러야 할까? [행운총량의 법칙]라는 이름이 오히려 적합하겠지.”
“행운총량의 법칙…….”
오독서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운총량제(幸運總量制).
그것이 이 괴이의 본명이었다.
“행운총량제가 돌아가는 원리는 이렇단다. 우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행운’을 빈다. 그러면 괴이가 판단하기에 그 행운과 똑같은 크기의 ‘불행’을 책정한다.”
“아하……?”
요컨대 원숭이 손은 행운과 불행을 서로 맞바꿔 주는 상인의 손과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고객님이 갑자기 자기한테 공짜로 행운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거다. 이게 쿠로였어. 자아. 여태까지 장사 잘해오던 상인 입장에선 어떤 기분이 들겠니?”
“…뭐 이런 양아치 새끼가 다 있나?”
“그래. 난감하지.”
물론 괴이는 ‘난감함’이란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오류’가 일어날 뿐.
자신의 본질에 반하는 상황이 강요되었을 때, 괴이는 어떻게든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행운총량제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나는 펜을 꺼냈다.
슥삭슥삭.
일기장의 《4일 차》 바로 옆에다가 화살표를 그렸다. 그리고 빈 페이지에다 내 해석을 덧붙였다.
“행운총량제는 쿠로의 소원을 비틀어 버릴 수밖에 없었단다. 이렇게.”
――――――――――
1. 제가 어떤 소원을 빌든 그 소원의 부작용 따위를 만들지 말아 주세요.
→
(1) 어떤 행운이든 반드시 그에 버금가는 불행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이 쿠로가 말한 ‘부작용’이다.
(2) 아무런 이면도 부작용도 없다면 아무런 행운도 없다. 쿠로의 소원은 곧 어떠한 행운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3) 고로, 쿠로는 이 현실에서 아무런 소원도 빌지 않았다. 쿠로가 빈 소원들은 ‘현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다.
(4) ‘현실이 아닌 다른 곳’이라면 행운총량의 법칙이 지켜지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곳에서 쿠로는 무한에 가까운 행운을 누릴 수 있다.
(5) 그곳에서 누리는 행운에는 딱히 불행을 책정할 필요가 없으므로, 현실의 쿠로에게는 아무런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다.
(6) 현실의 쿠로에겐 행운도 불행도 없다. 따라서 ‘이면’과 ‘부작용’이 없기를 바란 쿠로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
오독서의 입술이 떡 벌어졌다.
“아니이…….”
“어때? 이해되었니?”
“부작용이 없다는 게……. 아, 확실히 아무리 맛있는 꿈을 꿔도 그게 현실에 딱히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볼 수 없으니까……. 와, 진짜. 괴이는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는 거구나……?”
오독서의 중얼거림에 나는 만족했다. 원래부터 그 귀한 교훈을 깨달아 주었으면 싶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 2번 소원도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
2. 소원을 비는 횟수의 제한을 없애 주세요. 만일 제한을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면, 이 소원은 빌지 않는 셈 쳐 주세요.
――――――――――
나는 펜 끝으로 2번 소원을 톡톡 두들겼다.
“이게, 원숭이 손의 제한을 풀어 버렸어.”
“제한을 풀어?”
“너도 알다시피 원숭이 손의 행운-불행 교환은 3번까지만 인정된단다. 일종의 국룰이지. 그런데 쿠로가 말했잖니? 소원의 제한을 없애 달라고.”
쿠로 입장에선 자기가 꿀을 빨기 위해 변칙적인 조항을 집어넣었다고 생각했을 터.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경계했던 ‘부작용’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게 결국 행운총량제라는 괴이를 얽매고 있던 쇠사슬을 해방시킨 꼴이 되어 버렸단다.”
“…무슨 뜻이야?”
“이런 뜻이지.”
――――――――――
2. 소원을 비는 횟수의 제한을 없애 주세요. 만일 제한을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면, 이 소원은 빌지 않는 셈 쳐 주세요.
→
(1) 인간이 비는 소원이란 곧 ‘행운’을 뜻한다.
(2) 소원을 비는 횟수의 제한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행운이 쌓이는 양’의 제한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3) 그런데 행운과 불행은 항상 똑같은 총량을 유지해야만 한다.
(4) 고로, 행운에 제한이 사라진다면 불행에도 제한이 사라져야 한다. 이제부터 인간은 3번의 행운-불행뿐만 아니라, 무한한 횟수와 무한한 양의 행운-불행을 교환해야만 한다.
――――――――――
오독서가 멈칫했다.
“어? 어? 어어……?”
“쿠로가 빌었던 소원을 주목하렴. 독서야. 만일 쿠로가 [나한테만 제한을 없애 주세요]라는 식으로 빌었다면, 뭐 크게 부작용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쿠로는, 의식 중이든 무의식중이든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쿠로는 아예 원숭이 손이 가지고 있는 [소원 제한]을 해금해 달라고 요청했던 거야.”
“즉……?”
“즉, 2번 소원은 비단 쿠로 한 명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적용되는 소원이 되어 버렸다. 너랑 나도 예외가 아니야. 우리, 필요 이상의 ‘행운’을 취해 버리면 즉시 그거랑 비슷한 수준의 ‘불행’이 찾아와 버린다.”
“에에에에에엑?”
오독서가 비명을 질렀다.
“우, 우리도?”
“그래.”
“왜!”
“왜냐하면 쿠로라는 이름 모를 각성자가 원숭이 손한테 그런 소원을 빌어 버렸으니까.”
“시발, 완전 민폐잖아?”
“완전 민폐지.”
그렇다.
멀리 돌아왔지만 애당초 이번 에피소드의 화두는 간단했다.
-어째서 나 장의사는 다른 창작물 속의 주인공들과 다르게 ‘기연 독식’을 행하지 않는가?
이제 여러분에게도 정답이 공개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이 세계에는 ‘행운총량제’라는 괴이가 이미 기본 베이스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너도 왠지 모르게 느끼지 않았냐? 운 좋게 회귀자가 두 명이나 있는데다, 운 좋게 노도하라는 희대의 워커홀릭이 있어 국도관리대란 조직까지 만들었는데, 분명히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데 왠지 모를 억까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고.”
“헉. 설마?”
“행운총량제 때문이야. 이 세계, 섣불리 날먹을 시도했다간 곧바로 억까의 철퇴가 대가리를 터트려 버린단다.”
“아아아악! 악! 아아아악! 뭐 이딴 망겜이 다 있어!”
오독서가 절규했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의 세계는 법칙 수준에서 ‘기연 독식’이 불가능했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라 여긴 오독서에겐 참으로 절망스러울 수밖에.
나는 이야기 도중에 이미 다 식어 버린 카페오레를 입에 머금었다. 식어도 맛있었다.
“뭐, 너무 크게 걱정하진 말렴.”
나는 숙련된 회귀자로서 행운총량제에 대해서도 항시 방책을 세워 두었다.
오히려 나에겐 이 괴이가 고마웠다. 정말 여러모로 쓸모가 있거든.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 자, 잠깐만! 아까 나 십족 심장 스테이크 먹었잖아! 그럼 나 이제부터 그만큼 불행해지는 거야? 나한테 대체 뭘 처먹인 거야, 아저씨!”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
언젠가 나중의 에피소드에 가서 썰을 풀도록 하자.
8
후일담이 있다.
인류의 무의식 저변에 ‘몽중몽’ ‘배드 엔딩’ ‘평행세계’라는 대공허가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종종 무의식 세계로 잠입했다.
목적은 단순했다. 사람들이 언제나 꿀잠을 잘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인류의 무의식 창고를 청소하는 것.
“음?”
“그르륵……. 그륵…….”
그리하여 오늘도 보람차게 쇼 노인의 배드엔딩을 쥐어패고 있던 와중, 저 멀리, 한반도 남쪽 방면으로부터 이상한 기세가 느껴졌다.
나는 쇼 노인을 마저 패 버린 다음 남쪽으로 향했다.
한반도의 남해. 그곳에는 현실을 복사한 다음 크기만 50배쯤 키워 버린 뒤 붙여넣기 한 것만 같은 성산일출봉이 우뚝 솟아나 있었다.
“…….”
데구르르르-
에베레스트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높이에서 ‘누군가’가 무언가를 굴러 떨어트리고 있었다.
인간의 머리통이었다.
그 누군가는 긴 흑발을 지니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서 얼굴이 안 보일 정도였다.
데구르르. 데구르르르-
그녀는 옆에 머리통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끊임없이 성산일출봉의 분화구를 향해 떨어트렸다. 무표정하게. 무의미하게.
마치 거꾸로 뒤집힌 시시포스처럼.
문득, 나는 생각했다.
――――――――――
3. 저에게 행운을 주세요. 어쩌다 굴러떨어진 바위에 죽는다든지, 그런 ‘우연한 불행’을 전부 피하게 해 주세요.
――――――――――
쿠로는 자신에게 우연한 불행을 모조리 없애 달라고 소망했다.
원숭이 손은 그 소원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을까.
우연적인 불행이 아니라 ‘필연적인 불행’이라면 상관없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수많은 신화와 일화에서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했건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소원의 형식만 바꾸면 여전히 괴이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가볍게 생각한다.
왜 고작 3개의 소원으로 만족하는가.
왜 무한한 소원을 들어달라 부탁하지 않는가.
나라면 더 현명하게 괴이를 이용했을 텐데.
설령 <쿠로의 일화>가 속설로 남아 인간들 사이에게 전해진다 한들, 여전히 미래의 후손들 중 누군가는 ‘나라면 더 잘 이용할 수 있었다’라면서 또 다른 원숭이 손에게 접근하겠지.
오만(Hybris).
그것이야말로 쿠로라는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진 불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등을 돌려 남해로부터 멀어졌다.
데구르르르르-
오늘도 누군가의 꿈속에서는 한 명의 소녀가 잘린 머리통을 굴리고 있을 것이다.
-참칭자. 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