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40)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40화(14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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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자 Ⅱ
신노아
3
[장의사 씨. 큰일 났어요.]어느 날 성녀가 한밤에 성좌톡을 날렸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새벽 3시. 성녀가 이런 오밤중에 나를 깨운 걸 보면 어지간히도 급박한 이벤트가 터진 것이리라.
“무슨 일입니까?”
[일전에 말씀하셨잖아요. 7년 차에 진입하면 밤하늘에서 ‘유성우’가 출현하여 경상남도 일대를 초토화시킨다고.]“예, 그렇습니다만.”
[지금. 동해 상공에서 유성우로 추측되는 괴이가 관측되었어요. 관측 지점은 울릉도예요.]뭐?
[SG넷에도 사진이 한 장 올라왔어요.] [새벽 시간대라서 조회수는 14에 불과하지만 확인 부탁드려요.]나는 기겁해서 잠옷을 갈아입고 얼른 뛰어갔다.
내 문지방에서 고양이처럼 쭈그려 자고 있던 검후도 덩달아 내 뒤를 쫓아왔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오, 검공(劍公)?”
어쩌다 검후가 나를 장의사가 아니라 ‘검의 공작’이라 부르게 되었는지에 관해선 해설하지 않겠다.
세상엔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많았고, 대체로 그런 사건들은 또라이와 연관되어 있었다.
“동해에서 지금 괴이가 출현했답니다.”
“허어! 삿된 것이 야습을 감행하다니! 고약한 놈 같으니!”
탓, 촷촷-
우리 두 사람은 해운대 모래사장을 밟은 뒤 당연하다는 듯 부산 앞바다를 뛰어갔다.
등평도수(登萍渡水).
내 입장에선 오러, 검후 입장에선 내공을 갈무리하여 수면을 밟고 건너뛰는 경공의 경지.
“허나 바다 한복판의 괴이라. 흉조가 될지 길조가 될지 모르겠구려. 그래도 지상에 출몰한 것보다야 낫다고 여기오만, 검공의 생각은 다른가 보오.”
당연히 흉조였다.
나의 [회귀자 스케줄]은 시간 약속에 심각한 강박관념을 가진 정신질환자가 작성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빈틈이 없었다.
일주일 정도의 오차야 언제든 발생해도 상관없도록 만들어 뒀다. 다만 가장 중요한 지점. 즉, ‘괴이가 출현하는 타이밍’에 관해서만은 1분 1초 단위로 세심하게 일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유성우가 나타나려면 아직 몇 년이나 남았을 텐데, 어째서! 설마 북경에서 나비효과를 죽였을 때 뭔가 잘못되었나?’
이러면 유성우 토벌이란 명목 아래 각성자들의 유대감을 키우려는 내 프로젝트에 크나큰 차질이 빚어진다.
심장이 초조해졌다.
과연 울릉도 부근에 도착하고 나서 상공을 올려다보니, 새까만 밤하늘에 형형색색의 은하수가 펼쳐져 있었다.
나는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정말로 유성우잖아……?”
사실, 유성우를 토벌하는 것 자체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무렴 590회차의 회귀자가 한반도 초반 보스 하나를 때려잡지 못하겠는가.
단지 앞서 말했다시피 계획이 상당히 꼬여 버리는 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
한반도각성자연맹의 단합력은 어찌 높일 것이며, 맹주로서 당서린의 지위는 또 어떻게 다질 것인지 등등…….
그렇게 한밤의 하늘과 한밤의 바다에 둘러싸여 내 고심이 파도칠 때쯤.
“어?”
번- 쩍!
유성우가 펼쳐진 밤하늘 저편에서 다른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반짝거림이 좀 빨랐다.
‘원반 형태’. 즉, 접시 모양의 비행 물체는 급속도로 상공을 가로지르더니…….
유성우와 정면으로 충돌해 버렸다.
-반҉҈҈짝҉,҉ ҉반҉짝҈҉,҉ ҉작҉은҉҈҈별?҉.
유성우가 철렁거렸다. 아마 인간으로 따지면 고개를 갸웃거린 것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참고로 유성우 주변에는 바다와 같은 공간이 인위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당연히 밤하늘의 수면에 부딪힌 ‘원반 형태의 비행 물체’는 궤도가 휙 꺾여졌다.
통, 통, 통-
원반이 유성우의 표면에서 통통 튕겼다. 마치 물수제비처럼.
“…….”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저건 UFO인데?’
그렇다.
원반 형태의 수수께끼 비행 물체.
우주 최강의 전투력을 보유했으나 하필 포켓몬 속성이 불이라서 물에 취약한 종족. 동해에 입수하자마자 설탕처럼 녹아 버리게 될 비운의 괴이, UFO였다.
“어, 어어- 어어어어?”
통, 통, 통, 통.
UFO의 물수제비는 멈추지 않았다.
-아҉҉҉?҉아҉҉҉?҉҉
아닌 밤중에 연거푸 폭격을 얻어맞은 유성우는 그대로 죽었다.
아니, 정말로 죽었어.
유성우 토벌 완료.
한반도의 각성자들이 손가락 한 번 까닥하지 않았음에도 초반부 보스가 퇴장해 버렸다.
통, 통, 통, 통, 통.
하물며 그 와중에도 UFO는 자그마치 89회차나 유성우의 물결에 의해 튕겨지고 있었다.
결과, 원래 동해 한복판에 떨어졌어야 할 UFO는 아주 엉뚱한 방향을 향해 경로를 비틀었다.
방향은 북쪽.
그것도 바다가 아니라 육지가 펼쳐진 북한 방향이었다.
“아, 안 돼!”
나는 절규했다. 비명에 진심이 담겼다.
“흠? 무엇이 안 된다는 말이오, 검공?”
“저게 육지로 떨어지면 끝장이란 말입니다! 저 접시 대가리에 들어간 괴이가 무려 120마리인데 한 마리 한 마리가 전부 검후 댁보다 강하다고요! 세상에 재앙이 펼쳐질 겁니다!”
“무엇이.”
검후의 표정이 변했다.
“그렇다면 당장 쫓아가야겠구려! 내 한 수 가르침을 청해야겠소이다!”
“그래. 시발.”
검후의 똘끼야 둘째치고 아무튼 쫓아가야 한다는 건 맞았다.
나는 오러를 최대출력으로 뽑아서 달려갔다. 시야에서 UFO를 놓치지 않기 위해.
뒤에서 검후가 “헛! 검공- 기다리시오, 검공!” 하고 소리쳤지만 알 바 아니었다.
지금은 저 애늙은이의 노망에 놀아 줄 겨를이 없었다.
“허억, 흐억. 허어어억……!”
참으로 오랜만에 숨이 차오를 정도로 빡세게 달렸다. 어찌나 멀리까지 달려왔는지 도중에 성녀와의 연락마저 끊겼다.
결론부터 말해, UFO는 북한보다 더 북쪽에 불시착했다.
정확히는 선양(沈阳)과 신의주 사이. 만주라고 부르는 일대로 외계인들이 뽈뽈뽈 기어 나오고 있었다.
-캬아아악?
-캬악. 캬아아아.
딱 혐오스러운 바퀴벌레들이 소굴에서 뛰쳐나오는 꼬락서니.
그런데 바퀴벌레가 좀 강했다. 많이.
나는 멀리서 수풀에 몸을 숨기고 외계인들을 관찰했다.
외계인들은 SF 출신 종족 주제에 숨 쉬듯 자연스럽게 보법을 펼쳐 내며 이리저리 사방을 탐색해 댔다.
하긴, 만일 장르가 SF가 아니라 스페이스 오페라라면 정통 무협과 크게 다르지 않기도 했다.
-캬?
그중 어떤 외계인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개천에다 발목을 담았다.
참방, 참방.
대단한 도전정신이었지만 족욕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오직 인간과 일본원숭이의 특권이었다.
외계인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례차례 녹아내렸다.
-캬아아아아!
-캭! 캬아아악! 캬악!
외계인들이 부산을 떨었다.
아마 지들 딴에는 ‘맙소사! 어떻게 세상에 이런 끔찍한 물질이 존재할 수 있지?’ ‘그저 닿는 것만으로도 동족의 몸이 촛농처럼 흘러내리는 광경을 목격해 버린 당신은 SAN 체크입니다’ 하고 떠들어 대고 있겠지.
그 후로 외계인들의 움직임은 더 분주해졌다.
-캬아아아!
-캬앗! 캬아악!
외계인들이 품속에서 레이저 건을 들어 올렸다. 그것으로 주변의 바위, 땅, 광물 따위를 모조리 수집했다.
지이이이잉-
인간으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테크놀로지에 의해, 지구의 광물은 외계인들에게 안성맞춤으로 NTR을 당했다.
-캭캭!
-캬아아아.
외계인들은 레이저로 온갖 물질을 끌어와서 무언가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레이저빔을 얻어맞은 광물질들은 허공에 떠오른 채 실시간으로 조형되었다. 벽으로, 기둥으로, 수수께끼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고작 30분도 지나지 않아, 만주 일대 한복판에 기이하기 짝이 없는 건축물이 올라갔다.
어, 외형을 최대한 지구상의 존재에 가깝게 비유해 보자면……. 흰개미집?
다만 색깔이 새까맸다. 흰개미집 표면에선 거무죽죽한 용암 같은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척 봐도 모독스러운 형체였다.
-캬아아아.
-캬아, 캬아.
외계인들은 자신들의 NTR 솜씨에 감탄했는지 서로 어깨를 안고 둥실둥실 춤을 췄다.
그들은 한동안 댄스 파티를 즐기더니 자신들만의 흰개미집… 음. 검은개미집 요새에 쏙 들어갔다.
“…….”
뭐지?
혹시 저 흉악한 요새는 지구 침략을 위한 교두보인가? 아니면 아직 우주를 떠돌고 있는 동족의 난민선들에 신호를 보내는 안테나 타워?
“허억! 헉, 흐어어억! 호억! 거, 검공. 드디어……. 허억, 따라잡았구려. 과연 경공의 달인, 본좌가 이리도 늦어질 줄은…….”
“쉿. 조용히 하십시오. 들킵니다.”
“후어억……. 호억? 저 기괴하게 생긴, 흐어. 탑은 당최 무엇이오?”
“저도 모릅니다. 괴이들이 지었다는 것밖엔.”
나는 본격적으로 위장 참호를 파서 잠복했다.
이번 회차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것들의 행동 원리를 파헤칠 작정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잠복 생활이 오래 이어질 필요는 없었다.
외계인들이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저 기이한 건물을 쌓아 올렸는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후두드드드드-
비가 내렸다.
외계인의 시각에서 서술해 보면 ‘죽음의 물질’이 하늘에서 공습을 퍼부었다.
검은개미집 요새에도 지구의 특산품인 H₂O가 원 없이 쏟아졌다.
검은개미집의 표면에서 왈칵왈칵 흘러내리는 구정물이 빗물을 끊임없이 흘려보냈다.
빼꼼-
비가 그치고 한참이 지나서, 외계인들이 검은개미집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캬?
-캬아, 캬아.
-캬아아아아.
놀랍게도 외계인들은 멀쩡했다.
우선 외계인들이 두르고 있던 갑옷부터 약간 형태가 달라졌다.
저걸 우비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무튼 검정색 우비 비슷한 무언가를 뒤집어썼다.
아무래도 검은개미집 안에서 쉼 없이 제봉틀을 돌린 모양이었다.
-캬아아아악!
그런데 우비를 써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의외로 방수력이 좋지 못하다.
외계인들이 새롭게 개조한 갑옷도 완전무결하진 못했다. 수증기 가득한 지구의 표면을 지나치게 오랜 시간 돌아다니면 슬금슬금 녹아내린 것이었다.
너희가 무슨 3분 제한이 달린 울트라맨이냐.
어쨌거나 이 지옥과도 같은 멸망의 행성에서 생존할 희망이 보였다는 사실 자체가 외계인들에겐 소중한 듯했다.
-캬아아아! 캬아!
외계인들은 검은개미집을 점차점차 확장공사 했다.
단, 위로 층을 올리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동산 면적을 늘렸다.
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야심 차게 추진했다가 규모를 확 축소시킨 ‘더 라인(The Line)’이란 프로젝트에 관해 들어보셨는가?
만리장성을 떠올려도 무방하다.
요컨대 외계인들의 검은개미집은 모양새가 점점 더 ‘장벽’처럼 변했다. 건물은 끊임없이 양옆으로 늘려 갔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라?”
그리고 그 장성이……. 서쪽으로는 서해를 향해서, 동쪽으로는 동해를 향해서 자꾸자꾸 증식해 갔다.
‘아니. 아니. 아니, 잠깐만.’
마침내 외계인들의 ‘검은 장성’은 만주를 가로로 휙 가로지른 꼴이 되었다.
달리 말해서.
‘이러면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해도… 검은 장벽에 가로막혀 버리잖아!’
실제로도 그랬다.
몇 년 뒤, 대양급 괴이인 ‘몬스터 웨이브’가 세계를 집어삼킨 뒤 마침내 동쪽의 변방인 한반도까지 먹방하기 위해 몰려왔다.
하지만 한반도에 상륙하기 직전에 몬스터 웨이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맞닥뜨렸다.
-꾸륵?
-크르륵?
웬 거지같이 생긴 장벽이 진격로를 떡하니 막아세우고 있지 뭔가.
처음에 몬스터 웨이브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진격했다. 저까짓 것들이 벽을 세워 봤자 거인들 앞의 월 마리아 아니겠는가?
-캬아아아악!
-캬아아아아! 캬아아아!
문제는 그 월 마리아에서 뛰쳐나온 외계인들 하나하나가 리바이 병장 수준의 무공을 자랑한다는 점이었다.
총합 116명(그동안 좀 죽었다)의 리바이 병장들 앞에서 몬스터 웨이브는 쪽도 못 쓰고 전멸당했다.
자그마치 20만 대군을 족치는 과정에서 외계인들은 한 마리도 안 죽었다.
물론 몬스터 웨이브는 병력이 자동으로 생산되었기에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똑같이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똑같이 처발렸다.
당연히 검은 장성 남쪽의 한반도는 안전했다.
모광서의 동방신성국 똥꼬쇼를 펼칠 이유도 없이. 심아련의 제로 레퀴엠 작전을 발동할 필요도 없이.
정말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은 채, 사실상 토벌 불가능 판정을 내렸던 ‘몬스터 웨이브’의 위협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났다.
“이게… 진짜 돼?”
내 입이 벌어졌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내 입은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채 다물려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몬스터 웨이브’에 대한 공략법이 사실은 어찌저찌 유성우를 이용해서 UFO를 물수제비 시킨 뒤, 그걸 만주에 안착시켜서, 외계인 전용 만리장성을 쌓게 유도함으로써 몬스터 웨이브의 유목민 침략을 막게 하는 것이었다고?
지금 이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냐, 괴이야?
“운이 좋군요…….”
내 얘기를 들은 노도하가 커피를 홀짝이며 평했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다른 회차들에 비해 눈 밑 다크써클이 옅어진 것 같았다. 그야 하는 사업이 족족 잘 풀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거, 댁이 ‘원숭이 손’인가 뭔가에 소원을 빈 여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흐.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결국 몇 년 뒤에 당신은 좆 되시는 거 아닌지……?”
“…….”
“어떤 지랄 블루스가 당신을 덮치게 될지 몹시나 기대되는군요. 저 미리 VIP석 티켓 뽑아 두고 대기 타겠습니다…….”
진짜 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