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41)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41화(14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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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자 Ⅲ
신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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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끝나지 않았다.
리버스-만리장성이 대륙에서부터 쏟아지는 물량공세를 상대로 무한 디펜스 게임을 찍는 와중에도 ‘기연’은 연거푸 찾아왔다.
[장의사 씨. 지난번에 경고하셨던 ‘분홍색 개체’가 일본 규슈로 이사를 간 게 확인되었어요.]회귀자의 최대 적, 가스 라이팅의 귀재 고요리는 자기가 알아서 탈조선을 감행해 주었다.
전례 없는 희소식. 내 입장에선 이민정착금이라도 후하게 쥐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상태창 괴이가 출현하지 않았어요.]“예?”
[장의사 씨가 알려 준 날짜와 장소에 집중해서 관찰했지만, 아무도 상태창을 보지 못했어요.]“…….”
[아마 이 또한 ‘원숭이 손’의 영향 아닐까요?]어디 그뿐이랴².
행운은 비단 현실 속 공간에서만 펼쳐지지 않았다. 넷 커뮤니티에서마저 나의 행운은 그칠 줄 몰랐다.
한마디로 말해, SG넷의 소설 연재 게시판에선 삼국지 패러디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여포가 애비를 숨김 (★9.9)
-십상시 대장군 (★8.7)
-[대체역사] 북벌을 명령받아 진격했는데 눈떠 보니 북한이 아니라 한중이었다?! (★9.2)
-삼형제는 항상 같은 이불을 썼다[19금 완전판] (★9.8)
-빙의 첫날 조조의 아버지를 죽인 장개가 되다 (★9.9)
-황건적으로 빙의했는데 내 손에 자본론이 들려 있는 건에 대하여 (★9.6)
게시판의 어디를 둘러봐도 순위권엔 삼국지 패러디물들이 도배되었다.
바야흐로 요즘에 삼국지는 완전 YOUNG하고 MZ한 콘텐츠.
소설연재 게시판뿐만 아니라 SG넷의 본체라 할 수 있을 자유게시판에서도 삼국지 떡밥이 쿨타임도 없이 돌았다.
-익명: 삼국지<<< 틀딱 전용 콘텐츠인 줄 알았는데 소설 먹고 연의 먹고 정사도 먹어 보니까 이만한 작품이 없음
-익명: 마속의 등산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이었는가? 직접 체험해 보자는 취지로 중국 여행 산악팀 꾸려 봅니다. 각자 길드 휴가 맞춰서 떠날 예정이고요. 죄송하지만 해외가 위험한지라 심도 600m급 이상만 받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문의 주세요!
-dolLHOuse: 요즘 SG넷 왜 이럼? 다들 단체로 돋보기안경 맞춤?
└익명: 아직도 삼국지 안 읽은 풀피 새끼가 있네ㅋㅋㅋ
└dolLHOuse: 읽었는데?
└익명: 그래서 님 지지하는 세력이?
└dolLHOuse: 귀 큰 새끼만 아니면 아무나 상관없음. 어차피 거기 등장하는 애들 전부 오호십육국 엔딩으로 끝나는 범부들 아님?
└익명: 차단합니다.
-[삼천]마녀재판장: 오늘따라 밤하늘이 예쁘네. 오장원에서 별을 올려다보던 승상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고려장: 와 진짜 요즘 여기 븅신 새끼들 다 관짝에 파묻어 버리고 싶네;;
-[國道]사관: 부산에서 매주 함께 정사 삼국지를 원본으로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4/6)
눈치채 보니 어느새 나는 6시간 내내 스마트폰에서 눈도 떼지 않고 커뮤질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허억.”
나는 전율했다.
맨날 아련이한테 그놈의 인터넷 폐인 생활 좀 끊으라고 닦달했건만.
나 역시 590회차 만에 처음으로 커뮤질의 참맛을 깨달아 버린 것이었다.
‘이것이 원숭이 손의 진정한 힘?’
도저히 SG넷에서 손가락을 뗄 수 없었다.
마치 나 장의사를 위해 특별히 장인의 손길로 제작된 벌꿀이 스마트폰 화면에 발라진 것처럼!
“큭. 두렵구나, 원숭이 손!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미 홀리고도 남았을 마력이다!”
“…….”
마침 거실을 건너가던 하율이가 나를 한심한 놈 쳐다보듯, 그러니까 건실한 여동생이 백수 오빠놈을 보듯 꼬라 보며 사라졌다.
그래.
590회차에 나는 사이비 교주의 삶(희망편)이란 어떤 것인지 절찬리에 느끼고 있었다.
세상이 내 마음대로 풀렸다!
내가 손을 대는 사업마다 일이 기막히게 진행됐으며, 내가 감당하지 못할 트러블은 아예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사이비 교주가 아니었다.
리무진보다 지하철을 더 애용하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따라서 내 운명의 다음 정거장 역명이 ‘파멸’이라는 사실쯤은 노선도를 안 보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바야흐로 7년 차.
내가 원숭이 손한테 미뤄 달라 부탁했던 행운의 반작용 채무만기일인 10년 차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자살할까?’
특단의 결단이 필요했다.
‘극단적 선택’은 7년 동안 빚쟁이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루트 선택지였다. 남들과 달리 회귀자에겐 별로 극단적이지 않기까지 했다.
여기서 ‘와, 행운총량제 님 덕분에 이번 회차에선 낭낭하게 꿀 빨았네요^^ 그럼 저는 다음 회차로 이만 총총…….’ 하고 카톡을 남긴 뒤 채팅방에서 나가 버리면, 저 미래의 빚더미로부터 안전히 도망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삼국지 천국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게 너무나 원망스러웠으나 회귀자라면 잠시간 사리사욕을 접어둘 줄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아……. 그건 별로 추천하지 않아요, 선생님.”
다른 전문가의 생각은 달랐다.
“왜?”
“으음.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될걸요?”
내 고민상담을 들은 천요화가 쓴웃음을 지었다.
왜 하필 천요화한테 이토록 내밀한 고민을 털어 놓았느냐면, 얘가 우리 멤버들 가운데 나를 제외하면 ‘괴이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모두 알다시피 천요화는 모래시계 안에 무간(無間)을 봉인했다.
학교괴담의 괴이들까지 헤아리면 자그마치 100마리의 포켓몬을 수중에 들고 다녔다.
다른 트레이너가 봤다면 포켓몬 소지 한도 횟수를 혼자만 초과했다며 고소했을 것이다.
다행히 이 세계의 장르는 마조히스트적 본능을 가진 짐승들을 감금시킨 뒤 콜로세움에서 싸우게 만드는 조교물이 아니었지만, 바로 그렇기에 괴이들은 자신들을 투옥시킨 간수장에게 마땅히 증오심을 느꼈다.
요컨대 무간을 필두로 한 백화(百話)의 괴이들은 틈만 날 때마다 반란각을 재고 있었다.
괜히 천요화가 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를 폭식하는 게 아니었다.
성녀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각성자가 강력할수록 타락의 위험에 가까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더 상황이 악화될 거라고?”
“네. 제 예상이지만요.”
“글쎄.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원숭이 손’은 회귀를 절대로 눈치채지 못했다. 원주인이었던 쿠로에게 회귀 능력을 안겨 줄 힘도 없었고. 그냥 눈 딱 감고 회귀하면 채무도 사라지지 않겠냐?”
“아하하. 바로 그 쿠로인가 뭔가 하는 사람 때문에 ‘원숭이 손’이 일개 개인을 뛰어넘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되어 버렸잖아요?”
“…….”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얼핏 보면, 자기들이 ‘원숭이 손’이란 괴이에 기생하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제가 볼 땐 정반대. 오히려 ‘원숭이 손’이 기생형이에요.”
“사람에게 기생하는 괴이다?”
“네!”
천요화가 손뼉을 짝 쳤다.
사뭇 진지한 대화였음에도 나와 이런 얘기를 공유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365일 내내 소외신급 괴이와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천요화 입장에선 나 역시 소중한 대화 파트너겠지.
우리 둘만큼 괴이의 무서움에 관해 공감할 수 있는 인간도 그리 많진 않았다.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 아마도 원숭이 손은 절대 자력으로, 자기 혼자서는 강해질 수 없어요. 누군가가 자기한테 소원을 빌어 줘야만 그 소원을 계기로, 일종의 변명으로 삼아서 자신의 힘을 증대시키는 거예요.”
“호오.”
“원숭이 손 입장에선 쿠로가 굉장히 고맙지 않았을까요? 그냥 평범한 욕망을 들어달라고 기도했으면, 원숭이 손도 그저 그런 괴이로 계속 남았겠죠. 하지만 쿠로가 지나치게 ‘수준 높은 소원’을 빌어 버린 탓에, 원숭이 손도 덩달아 그 소원만큼 격이 높아진 거예요!”
“그럼 만에 하나, 회귀자인 내가 어차피 회귀하면 그만이라며 도망쳐 버린다면…….”
“원숭이 손은 그 회귀마저 뛰어넘어 행운과 불행을 주관하는 힘을 가지게 되겠네요.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지만.”
“음.”
“그러니까 자살은 추천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모습을 제가 보기도 싫고요. 헤헤…….”
일리가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여태껏 쿠로의 어리석음을 지적했던 나 장의사조차 결국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셈이었다.
‘평범한 사람의 행운’과 ‘590회차 회귀자의 행운’은 아무래도 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이번 회차에서 원숭이 손이 저질러 버린 일의 스케일을 생각해 보시라.
치매 노인 검후가 반로환동을 겪었다.
본래 한참 뒤에 나타나야 했을 유성우를 동해 앞바다에 출현시켰고, 심지어 절묘한 타이밍에 UFO를 끌어다가 서로 충돌시켰다.
그로 인해 본래라면 존재할 일 없었던 검은 만리장성이 한반도 북쪽에 생겨났다.
즉, 이만한 레벨의 ‘기연’을 얼마든지 벌일 수 있을 만큼 원숭이 손의 힘이 커져 버린 것이었다.
도서관학회 분류법에 따르면 이미 위험도가 대양급에 이르렀다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혹시 나 좀 심하게 좆된 것인가?’
경각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어떻게든, 불행이 본격적으로 밀어닥치기 전에 사태를 미리 해결해야만 했다.
“오히려 저는 선생님이 이번 회차에서 엄청, 어엄청 끈질기게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또 왜?”
“만일 이번 회차에서 누린 행운만큼의 불행을 다 겪지 않은 채 돌아가신다고 해 봐요. 그럼 ‘아직 다 갚지 못한 불행’이 다음 회차로까지 이전될지 모르잖아요?”
“음…….”
나는 턱을 짚었다.
천요화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딘지 모르게 머리가 간질간질 자극받은 탓이었다.
‘잠깐.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락 말락 하는데……?’
이 시점의 나는 그 ‘좋은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아직 떠올리지 못했다. 그건 다음 에피소드에서 다룰 예정이었다.
다만 방향성만큼은 제대로 잡혔다.
“그럼, 요화 네 말대로라면 이제부터라도 최대한 불행해져야겠구나.”
“아하하. …네에. 그런데 일부러 불행들만 골라서 경험하는 것도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니까요. 곤란하네요.”
“아니, 방법이 있다. 그것도 아주 절묘한 방책이 하나 있어.”
“어? 정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요화야.”
“네, 선생님.”
“혹시 ‘미움받는 약’이라고 들어봤니?”
“……?”
5
‘미움받는 약’.
그런 장르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밈이 있다.
천요화는 생전 처음 들어봤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당연하다. 원산지가 한반도의 바다 건너편 옆 동네였기 때문이다.
흔히들 일본에는 창의성,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다.
-돈까스? 그거 커틀릿의 변용 아냐?
-일본 카레? 인도식 카레를 일본인 입맛에 맞춰서 바꿨을 뿐이잖아.
하지만 그건 편견에 불과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각막에서 [전체이용가] 필터만 제거한다면, 불현듯 일본 열도에서 후지산처럼 용솟음치는 창의성을 목도할 것이다.
당장 삼국지의 인물들 성별을 전환시켜 ‘TS 삼국지물’, 일명 연희물이란 기형종을 배출시킨 곳도 일본 열도 아니던가.
그 밖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언급하기 곤란한 발명품들이 즐비했다.
일찍이 이보다 더한 창의력을 뽐냈던 지역은 고대 그리스 정도밖에 없었다. (그리스인들은 자기들이 모시는 주신의 허벅지까지 임신시켰으며, 역사상 가장 무적에 가깝다던 인간 영웅한테 여장을 시켰다.)
아무튼.
‘미움받는 약’ 역시 열도의 기열찬 창의력이 발휘된 하나의 예시.
-이 약을 먹으면 호감도가 반전됩니다!
-호감도가 반전된다고요?
-예. 여태껏 당신을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들도, 가족들도, 모든 인간들이 당신을 꼭 그만큼 증오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미움받는 약’이지요.
-……?
-지금까지 당신에게 은근슬쩍 호감을 드러내던 인물들이 모조리 얼굴이 싹 변해서 당신한테 얼른 죽으라고 저주를 토해 낼 것입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원래부터 당신을 싫어했던 사람들의 호감도는 변함없이 유지돼요!
-도대체 왜 그런 약을 작품 속에 등장시키려는 거죠?
-왜냐하면 약효에 유효기간이 있거든요.
-……??
-약효가 끝나고 나면, 이제 주변 인물들이 후회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신들의 저주 때문에 잔뜩 피폐해져 버린 주인공을 보면서요. 아, 내가 좋아하던 주인공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러 버린 거지?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었지……?
-거기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네?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한테 잘못을 저지른 뒤 후회하는 피폐물이 맛있지 않나요?
-……???
수십 화에 걸쳐 서사 빌드업을 쌓아서 주인공을 불행하게 만드는 작업은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비효율적이었다.
언제나 효율성을 따지는 현대인들은 얼른 편의주의적으로 #후회 #집착 #피폐 태그를 달아 버리고 싶었다.
그 수단이 바로 ‘미움받는 약’.
일본인들이 개발해 낸 즉석 3분 요리 불행짜장이었다.
쉽게 말해 ‘호감도 반전약’이라 불러도 좋았다. 그냥 먹기만 해도 불행해졌거든.
그래서 이렇게 마이너한 해외 장르를 나 장의사가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면, 어…….
다시 공지하건대 이건 590회차 시점에 벌어진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가 세상의 모든 웹소설을 다 파먹은 다음 작가들을 상대로 미저리를 찍었던 게 560회차 부근이었지.
이상, 설명 끝.
“그러니까 ‘미움받는 약’을 섭취해서 의도적으로 ‘불행’을 일으킴으로써 행운총량제의 마수에서 벗어나겠다고?”
“잘 이해했구나.”
“아저씨 진짜 곱게 미쳤구나.”
나에게 웹소설을 전파한 장본인, 그리고 동료들 가운데 유일하게 ‘미움받는 약’에 관해 알고 있는 덕력의 소유자.
오독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다. 역시 나의 주인공 아저씨. 당장 시험해 보자!”
참고로 오독서는 피폐물을 좋아했다.
“그런데 미움받는 약은 어디서 파밍해? <전회시>에는 그런 거 안 적혀 있던데.”
“어허. 독서야. 자고로 인삼은 조선에서 구하고, 변발은 청나라에서 구하는 법. 그렇다면 미움받는 약을 파밍할 수 있는 사냥터 지역이 어디인지는 일목요연하지 않겠느냐?”
“아.”
그렇다.
우리는 곧바로 ‘원산지’로 돛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