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43)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43화(14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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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자 Ⅴ
신노아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노도하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벙커에선 비명이 터졌다.
동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마치 크툴루의 강림을 실시간으로 직관한 VIP 이교도처럼 경악하고 있었다.
-장의사! 장의사다!
-삼국지 괴이가 나타났도다!
-혀, 혐오스러워요……! 너무 싫어!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귓불을 잡아서 뜯어 버리고 싶어……!
동료들이 끝없이 절규했다.
참고로 나는 이때를 위해 벙커 입구 근처에다 물병을 쌓아 두었다. 동료들은 홀린 듯이 물병을 들어 나에게 던져 댔다.
사방팔방으로 물통이 훈훈하게 오가는 광경 속에서 오로지 나만은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계획대로.’
실로 당연한 현상이었다.
본래 ‘구원자’ 괴이가 어떤 효력을 발휘했는가? 바로 나에 대한 호감도를 최고치, 아니 한계치까지 돌파하여 올려놓는 것 아니었던가.
그리고 ‘미움받는 약’은 섭취자에 대한 호감도에 반전술식을 새겨 넣는 영약.
‘구원자’가 플러스 방향으로 한계 돌파시킨 호감도는 고스란히 마이너스 방향으로 돌려진 것이었다!
즉.
‘지금 이곳에, 나의 불행은 강림하였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동료들을 아꼈다.
저토록 귀여운 아이들에게 이토록 미움을 받는 일.
이는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할부지 손에서 냄새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참혹한 비극이었다.
-형님! 아니, 장의사! 죽어 줘라, 제발!
-저런 사람을 오빠라고 불렀다니. 나 자신의 과거가 수치스러워.
-아니, 미안한데 엄밀히 말해서 하율이 너는 부른 적은 없지. 넌 말을 못 하잖아. 지금도 인형 조종해서 한 말이고.
-저 불법 취직 경비원 옛날부터 싫었어!
-끔찍해.
당장 당서린이 나를 혐오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저 눈길을 보자니 나의 심장이 바느질로 콤보 연타를 당한 것처럼 콕콕콕콕 찔렸다.
“아아.”
보고 있는가. 행운총량제.
이것이 숙련된 회귀자의 보법이요, 이것이 괴이들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네놈이 제아무리 나한테 불행을 선물하기 위한 산타 얼터가 되어 기다리고 있다 한들, ‘그러기 전’에 ‘미리’ 나 스스로 어마어마한 불행을 수확해 버린다면, 네놈은 그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실직해 버린 핀란드인 1인에 불과하다.
회귀자가 스스로 불행해지겠다는데 한낱 괴이에 불과한 네놈이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세계 멸망? 흐음. 과연 그게 당서린의 진심 경멸 눈초리 한 방보다 더 불행할까?
사지절단? 글쎄. 지금도 실시간으로 성녀가 시간에 ‘일시정지’ 버튼이랑 ‘재생’ 버튼을 번갈아 눌러 가며 내 모가지에다 손도끼를 날리고 있는데.
불치병? 우습다. 천요화가 트렁크에서 백화여고의 귀신들이 수집된 모래시계들을 줄줄이 꺼내 들어 봉인을 해제하려 들고 있는……. 아니, 과연 저건 좀 많이 위험했다.
얼른 달려가서 천요화를 기절시켰다.
나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자 과거 동료들이 더욱더 경련하며 발작했다.
-죽어! 죽어! 제발, 죽어어어어!
-수백 번이나 세상을 구하지 못한 새끼! 무능! 너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수백 번 죽고 있어! 제재!
이들의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선 크기 약 2m짜리 바퀴벌레가 다가오는 광경을 상상해 보면 된다.
현재 나 장의사는 다른 사람들 시선으로 볼 때 그야말로 리버스-고요리.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호감을 사 버리는 악마와 정확히 상반되는 존재. 즉,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비호감을 이끌어 내는 천사가 이곳에 강림한 것이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것이… 평소에 그 분홍색 개체가 내려다보던 세상의 풍경이던가.’
가소롭고도 하찮구나.
“독서야. 잘 보고 있냐?”
“응! 아저씨가 나를 이름으로 부르니까 너무 혐오스럽지만 괜찮아! 나 아직 이게 괴이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거든. 근데 아저씨 손가락 하나만 부러트리면 안 될까?”
“그건 어렵겠구나. 이럴까 봐 내가 이번엔 동료들을 너무 강하게 육성시키지 않았단다.”
“역시 아저씨야! 나의 주인공! 존경스러워! 혐오스러워! 그러니까 슬슬 숨 참아 줄래, 아저씨? 아저씨랑 같은 공기를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이 끔찍하게 느껴지고 있어.”
“어허. 괴이에게 홀려서야 쓰겠느냐.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진실을 목도하여라. 너는 세상을 구할 운명의 소유자다.”
“씨발, 회귀자랑 책 빙의자가 나란히 사제지간으로다가 똥을 싸고 지랄이 풍년일세…….”
노도하가 스마트폰을 매만지며 욕했다.
점점 더 쑥대밭이 되어 가는 국도관리대 본부에서도 노도하만은 평소와 똑같았다.
호감도가 반전되든 말든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일절 바뀌지 않는단 점에서 노도하의 참된 인격을 증명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타인, 특히 나를 쥐좆의 사촌쯤으로 대한다는 뜻이었다.
“하아…….”
탁. 노도하가 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서류뭉치를 던져 버리는 것 아니겠나.
누르튀튀한 종이들(세기말이 좀 자원이 후달리는지라 국도관리대장도 재생지를 사용했다)이 나풀나풀 흩날렸다.
“언제까지 여기서 댁 오줌발 굵다는 거 과시하고 있을 겁니까? 갑시다…….”
“예? 가다니요? 어디를?”
“모릅니다, 썅. 조금 전에 성녀가 각성자들한테 단체톡으로다가 퀘스트를 띄웠습니다. 장의사가 타락하여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으니 모든 각성자들이 단결하여 제거하라고요. 댁한테만 카톡 안 간 겁니다, 왕따 새끼야…….”
“아.”
“방금 SG넷에도 공지글이 우르르 올라왔습니다. [이름 모를 무명의 성좌], [대도서관의 사서], [만상유희의 운영자], [재림의 새벽별], [모든 괴이의 수집가] 등등……. 흐. 아주 살심으로 대동단결해서 댁 하나만 족치기 위해 거국적 연합군이 꾸려질 판국이군요…….”
노도하의 말을 듣고 보니, 대열의 맨 꼬라비에서 서규와 심아련이 열심히 스마트폰을 꾹꾹꾹 연타하고 있었다.
성녀는 나에 대한 물리 공격이 안 통한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지원군을 요청한 듯싶었다. 눈을 감고 양손을 모으고 있는 것이 딱 [텔레파시]에 집중하고 있는 자세였거든.
“저, 이런 세상은 좆 같아서 일하기 싫습니다. 그러니까 얼른 갑시다…….”
“어.”
“때려치우겠다고요. 씨발놈아.”
나는 제갈량이 일에 지쳐 이만 귀농하겠다는 소리를 들은 유비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당신 없으면 이 나라 망하는데?
“알 바입니까? 처망하라지……. 어이, 유지원 부장.”
“아. 네?”
“당신이 차기 국도관리대장입니다.”
뭣.
“인수인계 안 할 거니까 알아서 하시고. 뭐 존나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곤란하다, 그럼 36번 금고 열어다가 수첩이나 참고하십시오. 어지간한 빡대가리가 아닌 이상에야 그럭저럭 건사할 겁니다. 그리고 나 어디로 사라져도 찾지 마십쇼…….”
“아아! 감사합니다! 각하!”
이럴 수가.
나는 경악했다. 유지원이 기어코 국도관리대장으로 승진했다!
만일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 장의사가 아니라 유지원이었다면, 일찍이 편의점 알바생으로 출발한 유지원이 한반도 최고 길드에 입사하여 차근차근 평사원-과장-부장을 달았다가, 마침내 정부에 전문가로 발탁되어, 무려 590회차 만에 대통령에 취임한 성공 일대기가 될 것이었다.
실화인가? 실화였다.
내가 사이코패스의 성공 신화에 몸서리치는 동안, 노도하는 트렁크에다 뭔가를 꾹꾹 담고 있었다.
옷가지 몇 개를 제외하면 사실 집어넣은 것도 얼마 없었다.
노도하는 언제든 자신의 직업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었다. 트렁크 안에 자신의 개인 도구나 일상용품 따위를 상비해 둔 것이었다.
항상 비슷한 결심을 하고 다니는 직장인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정말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것.
노도하가 트렁크 손잡이를 쥐고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뭐 합니까……? 가자니까.”
“음.”
“어디로, 라고 묻는 눈깔인데……. 뭐. 일단 한반도에선 벗어나야겠지요. 저 성녀가 [천리안]으로 정찰기 띄운 범위에서 벗어나야 일단 추격꾼들을 따돌릴 테니…….”
나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다소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노도하까지 ‘미움받는 약’에 홀려서 나를 저주할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도하는 멀쩡했다.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나에 대한 호감도가 별로 높지 않아서 새삼 반전되어 봤자 차이점이 안 생기는 건가?’
아니면 워낙 일상적으로 매도와 욕설을 쏟아부었던 탓에 내가 차이점을 못 느끼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확실치 않았다.
애당초 미움받는 약을 섭취한 것은 이번 590회차가 처음.
나 장의사의 기본적인 괴이 대처법은 회귀를 거듭하면서 공략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미움받는 약에 관해선 조금 더 연구가 필요했다.
그 연구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미움받는 약의 약효로부터 예외인 것 같은’ 노도하의 샘플은 꽤 귀중했다.
“안 갑니까? 안 가면 말고. 전 외딴섬에나 틀어박혀서 지내렵니다…….”
“아니, 잠깐만요. 같이 갑시다. 하와이는 너무 멀고 사이판이나 괌 정도면 어떻습니까?”
“사이판? 흐음……”
“예. 한반도에서 뭔 일이 벌어진다 싶으면 저 혼자서 잠깐 바다 건너 확인해 보고 돌아올 수 있으니.”
“휴양지라……. 어차피 이 세상에 어떤 동네든 개차반 꼬라지 난 건 비슷할 테지만 기분이라도 낼 수 있겠지요. 뭐어, 좋습니다…….”
“독서야. 너도 따라올 거냐?”
오독서가 활짝 웃었다.
“싫어! 아저씨, 물 빠져서 죽어! 아, 하지만 주인공 죽는 모습은 보고 싶으니까 이왕 내 눈앞에서 죽어 주면 고마울 거 같아!”
역시나 나는 불행했다.
8
즉석에서 대통령 사임과 사이판 여행이 결정되었다.
노도하가 미국인이었다면 에어 포스 원이 내려와서 방금 막 사임 발표를 한 전직 대통령을 친절히 모셔다 드렸을 텐데, 안타깝게도 USA는 한국의 51번째 주 가입을 받아주기 전에 망해 버렸다.
결국 우리는 제 발로 사이판섬에 갈 수밖에 없었다.
희대의 사임식이었기에 우리를 쫓아오려는 기자들의 행렬도 그만큼 웅장했다.
-장의사다! 저놈이 탈출한다!
-서기장 동지의 이념적 배신에는 치가 떨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배신자에 대한 처단이야말로 이념의 순수성을 지키는 방편인바……! 눈물을 머금고 기요틴을 대령한 거예요!
-잠깐만! 사격 중지! 저놈이 국도관리대장을 인질로 붙잡고 있다!
-뭣?
-저, 저, 저 악독한 테러리스트 새끼! 국도관리대장을 석방해라!
나로서도 쉬운 탈출길은 아니었다.
일단 검후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1년 차부터 나와 101합을 겨루었던 무인답게 지금은 200합 넘도록 승부를 끌고 갔다.
“장의사! 어찌 그대는 정도에서 벗어나 사마외도로 빠진 것인고! 과거 친우였던 자가 마도에 물든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단장의 아픔이 느껴지는 일이 또 없구나!”
“아니, 팩트로 말하면 이번 회차에서 가장 사마외도에 가까운 현상은 바로 당신이라서…….”
검후가 벌어 놓은 시간 동안 다른 각성자들이 놀자판을 벌이진 않았다. 그보단 적극적으로 난장판을 일으켰다.
“아――아―아아――.”
우선 당서린이 노래를 뽑기 시작했다. 이게 제일 큰 문제였고, 그래서 5번째 선율이 튀어나오기 전에 도주했다.
“나 보고 싶었어? 선배?”
그리고 천요화(千謠話)는 기어이 천요화(天寥化)를 해방시켰다. 천요화의 몸에 빙의된 무간이 부산 주변으로 고유 결계를 뿌려 댔다.
아, 참고로 두 존재를 구분하는 방법은 나에 대한 호칭이었다. 요화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무간은 ‘선배’라고 불렀거든.
[죽어.]그리고 하율이의 인형실이 내 모가지를 노리고 사방에서 조여 왔다.
한반도, 특히 부산에는 이하율이 쳐 놓은 거미줄이 빼곡했다. 괴이가 침략해 오는 사태를 대비하여 부산을 육지로나 해상으로나 전부 보호하고 있었다.
외부의 침략을 막을 수 있다면 내부의 탈출을 막을 수도 있었다.
여기에 성녀의 [천리안]과 [텔레파시]가 수시로 각성자들을 보조했다.
“이야아.”
내가 키워 놓은 한반도의 전력이지만 솔직히 감탄스러웠다.
제로 레퀴엠을 통해 북녘의 성녀로 레벨업한 심아련까지 있었다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이번 회차엔 외계인들이 만리장성을 쌓아 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검후의 검격, 당서린의 노래, 천요화의 고유 결계, 이하율의 17분할 거미줄, 성녀의 백업에는 과연 나조차 아무런 피해 없이 탈출하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왼발 하나를 넘겨주고 도주했다. 나 장의사의 하체는 하율이 50% 버전이 된 것이었다.
딱히 개의치 않았다. 내 동행자로 세계최강의 보장구 기사가 있었을뿐더러, 이런 소소한 ‘불행’마저도 내게 도움이 되어 줄 거란 계산이 있었다.
“아니, 진짜로 이걸 뚫어……? 댁 진짜 미친놈이긴 미친놈이군요…….”
내 등에 업힌 노도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난장판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노도하의 몸엔 생채기 하나 없었다.
“조금만 더 여유로웠다면 심사국 괴이를 이용했을 텐데 어쩔 수 없군요. 이대로 계속 바다를 건너 사이판까지 가겠습니다.”
“안 그래도 계속 물 튀고 있습니다. 조금 더 파도를 피해 갈 수는 없으신지……?”
“파도는 이제 막 태어났고 저는 만 살도 훌쩍 넘겼는데, 어린놈의 파도가 저를 피해야지요.”
“하아…….”
전선 돌파 성공.
당분간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나는 대마도에 미리 대기시켜 둔 비행정 사보이아 S-21에 올라탔다. 천요화와 무간을 공략할 때도 써먹었던 경비행기였다.
비행정을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과거 휴양지로 이름을 떨쳤던 사이판에 착륙할 수 있었다.
-우끼긱.
어디선가, 파도 소리에 뒤섞여 원숭이 웃음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