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45)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45화(14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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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자 Ⅶ
신노아
“…고요리?”
노도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댁이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던 그 사람? 하지만, 어떻게 저런 크기로…….”
“물리적인 크기는 별로 상관없을 겁니다. 아마도 이곳뿐만 아니라 지구 어디에서도 저 붉은 거탑이 관측될걸요.”
나는 수평선을 노려보았다.
“왜, SF에 등장하는 궤도 엘리베이터 같은 거 있잖습니까. 저건 그런 풍경 자체를 구현해 내고 있습니다. 그런 괴이예요.”
“하…….”
고요리가 일본 열도로 건너갔다는 소식은 예전에 들었다.
그 사건이 어찌저찌 스노우볼로 굴러서 저토록 참담한 결과물을 낳았겠지.
“일본 열도엔 팔백만(八百万)이라 불리는 대양급 괴이가 있습니다. 백화여고의 학교괴담이 100마리의 귀신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팔백만은 문자 그대로 팔백만의 괴이로 구성되어 있어요.”
“거참 뒤지게도 많군요……?”
“예.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아마 고요리는 ‘바다 건너로부터 전래되어 온 재앙신’이라는 역할을 점유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추정해 보자면 고요리가 팔백만을 집어삼켰겠지요.”
상성이 좋지 않았다.
특히 무엇이든 신이 될 수 있는 열도의 관념이 고요리에겐 너무도 유리했다. 아니, 애초에 고요리와 상성이 좋은 상대를 말하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유지원 정도밖에 없겠지.
“신이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적어도 소외신을 자칭할 만한 수준은 되겠군요. 저러다 인도의 항하사까지 먹어 치우면 어찌 될련지.”
어쩌면, 내가 미움받는 약을 통해 적극적으로 불행을 가져온 덕분에 ‘그나마’ 저 정도 수준에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바로 옆 동네가 핑크색으로 물들었는데 한반도라고 멀쩡할 리 만무했다.
“노도하 공방주. 잠깐 한반도 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뭐, 다녀오십쇼. 더는 잘라낼 사지도 없을 테니 이번엔 멀쩡히 돌아오겠군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나는 사보이아 S-21 비행정을 타고 한반도로 정찰을 감행했다.
해당 기체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를 모티브로 삼아 생성된 일종의 괴이. 귀물(鬼物)이었다.
현실보다도 공허에서 오히려 더 강력한 방호력을 자랑했다.
‘세뇌’나 ‘최면’에도 약간이나마 저항할 수 있었다. 본작 애니메이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드르르르르-
오리지널과 다르게 복엽기로 개조된 비행정이 엔진음을 웅얼거리며 날아올랐다.
비행 도중 엔진이 꺼질 확률이 50%나 되는 골동품. 그러고도 여전히 지상에서의 생존율에 비해선 월등히 뛰어났다.
“…이건 끝났군.”
한반도 역시 초토화되었다.
만주에서부터 확장된 외계인의 ‘검은 장성’은 어느덧 북한 지역까지 전부 포식해 버렸다.
새까만 구정물을 끊임없이 토해 내는 외계의 건축물이 사방을 뒤덮었다. 그곳에서 끊임없이 괴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캬아아아.
-캬아, 캬아악.
지구에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120마리에 불과했던 외계인들의 숫자는 어느덧 저글링떼처럼 늘어났다.
형태 역시 달라졌다. 온몸에 갑옷을 두른 것 같았던 ‘외계인’의 모습은 조금 더 기괴한 ‘외계 생명체’에 가까워졌다. 저그의 울라리나 히라리처럼.
아마 몬스터 웨이브와 외계인, 두 괴이가 합체해 버린 것 아닐까?
하긴 장벽을 때리는 거인들과 그걸 지켜 내던 조사병단이 DNA의 합일을 이루는 것도 클리셰라면 클리셰겠지.
‘부산도…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인걸.’
삼천세계의 아지트인 부산역 열차도, 국도관리대의 본부 건물도 모조리 파괴되어 불길한 연기만을 토해 내고 있었다.
유지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이누나키 터널로 대피하는 프로토콜을 작성해 두긴 했다. 성녀와 이하율, 심아련, 서규, 네 사람은 프로토콜을 숙지하고 있었을 터.
“성녀님? 성녀님, 보고 계십니까?”
묵묵부답.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
성녀가 죽은 것인지, 아니면 죽은 척을 가장해서 내가 지상에 내려오기만을 기다린 뒤 기습할 작정인지, 지금으로선 판단하기 어려웠다.
미움받는 약에 의해 불행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선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성녀가 집행자로 타락했을 경우까지 염두에 둬야만 했다.
콰아아아앙!
어디선가 발포 소리가 들렸다.
대공사격인가 싶어서 순간 긴장했지만, 정작 어디에서도 포를 쏘아올린 무기는 발견할 수 없었다.
사이판의 해변에서 울려퍼진 함포 소리와 똑같았다. 소리만 있었을 뿐, 실체가 없었다.
콰아앙! 콰아아앙!
포격음은 낙동강 인근에서 절정에 달했다. 그것이 어느 전쟁의 재현임을 뒤늦게 눈치챘다.
‘6.25 전쟁’이라는 공허가 한반도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온갖 지역에서 이념의 이름 아래, 나와 너를 구분하기 위한 도끼의 서늘함으로 사람을 사냥하였다.
그러나 사이판의 해변 절벽과 마찬가지로, 사냥하는 사람도 사냥당하는 사람도 모조리 괴이의 연극에 불과했다.
정말 살아 숨 쉬는 인간은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장의사뒷담넷도 접속이 끊겨 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나라는 회귀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행운이었던 것인가?’
문득 그런 상념이 들었다.
‘그렇다면, 쇼 노인의 거듭된 죽음은 사람들에게 있어 똑같이 거대한 불행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행운총량제]에 의해 균형이 맞춰진 것일지도 모르겠어.’
-캬아?
그때 외계인들이 나를 발견한 듯 하늘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이 비행정이 귀물이라도 SF 세계관에서 튀어나온 UFO를 당해 내긴 힘들었다.
나는 외계인들에게 격추되기 전에 행로를 틀어 사이판으로 돌아왔다.
“흠…….”
해변 오두막에선 노도하가 앉아 있었다.
힐끗. 그녀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뭐, 그럭저럭 멀쩡히 돌아왔군요…….”
노도하는 부산에서 탈출할 때 갖고 나왔던 원두로 커피를 우린 다음, 내게 한 잔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녀의 침묵이 고마웠다.
참고로, 노도하는 생긴 것과 다르게 커피를 정말 맛없게 탔다.
12
그간 되도록 유쾌한 어조로 썰을 풀어 왔다마는 여러분에겐 솔직히 고백하겠다.
590회차에 내 멘탈은 제법 흔들렸다.
아니, ‘제법’이라는 표현은 너무 얌전했다. 상당히 흔들렸다.
‘너무 섣불리 원숭이 손을 사용했나?’
물론 나에겐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었기에 원숭이 손을 시험해 본 것이었다.
다다음 에피소드쯤에 가서 밝혀지겠지만, 원숭이 손이 없이는 퇴치하기 어려운 괴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건 미래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아직 나의 실험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기 이전. 즉, 590회차에는, 여러모로 마음이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런 불안감이야말로 내게 불행을 안겨다 주는 감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손을 놓았다.
평소였다면 수많은 방법을 통해 멘탈을 도로 복구했을 것이다. 한반도를 잠식한 외계인들을 일본열도로 안내하여, 고요리 vs 외계인이라는 희대의 매치업을 감상한다든지.
하지만 590회차의 나는 최대한 불행해지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 정신을 학대했다.
‘아무리 소외신에 대한 공략법을 찾으려는 일환이었다지만 행운총량제에 의지하는 건 멍청한 일이었다. 내 선택이 불러일으킨 재난이야.’
‘적어도 주변 동료들한테 미리 말해 둘 것을. 그랬다면, 아니. 아니다. 오독서도 결국은 정신이 침식당했잖나. 결과는 똑같았을 거야.’
‘과연 그럴까? 가령, 성녀는 오독서보다 아득히 견고한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다. 내 목적과 의도를 설명했더라면――.’
‘구원자와 원숭이 손, 미움받는 약, 자그마치 세 개의 괴이가 간섭해서 일으킨 현상이야. 아무리 성녀님이래도 그걸 어떻게 대항해?’
‘그래도 말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였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렇게 도리를 지키겠다고 나섰을 경우 [더 큰 불행]이 자초되었을지도 모른다. 동료들이 이미 나한테 경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괴이들한테 정신이 홀려 버린다면…….’
‘그러지 말았을 것을.’
후회. 자책. IF에 대한 망상.
인간을 끊임없이 불행으로 몰아넣는 관념은 언제나 ‘그때 그러지 말았을걸’이라는 생각이었다.
멘탈 관리의 귀재는 멘탈 파괴의 천재이기도 했다. 나는 능숙하게 자기 자신을 고문했다.
시시때때로 비행정을 타고 멸망한 세계를 둘러봤으며, 그때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과다’라고 되뇌었다.
“…….”
그런 내 모습을 노도하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진실로 불운해지기만을 원했다면 이때 노도하까지 쳐내야 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해변의 오두막에서 차마 노도하를 쫓아낼 수 없었다.
590회차의 내 심리는 알게 모르게 노도하한테 의존하고 있었음을 그때 알아차렸다.
‘그래. 무의식 세계에서도 결국 노도하 공방주가 타락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부패할 수 없는 자.
어쩌면 노도하에겐 그런 특성이 숨어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미움받는 약이 자아낸 효과에서도 면역인 것은 아닐까?
――냉정하게 고찰하면 그럴 리 만무했다.
만일 노도하한테 정말로 [정신면역]이 달려 있었다면 고요리의 세뇌에도 멀쩡해야 했다. 여러 차례의 회차에 걸쳐서 그런 모습은 관측되지 않았다.
‘그래도 미움받는 약에 한정해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멀쩡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망상을 적극적으로 탐닉했다.
‘미움받는 약에 내가 모르던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령, 노도하 공방주가 나를 싫어했던 만큼 도리어 내게 우정을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야.’
‘안 그랬다면 국도관리대장직을 내려놓자마자 나와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했겠는가? 노도하가 어디 그런 제안을 자발적으로 건넬 위인이었던가?’
망상. 망상. 또 망상.
내 심장의 어딘가, 인간 심리 밑바닥 저 깊은 곳에 새겨진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라는 욕망에 마음껏 살점과 육즙을 던져 주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격언이 옳았다. 인간의 마음은 굶주린 늑대여서 살점을 던져 줄수록 강해졌다.
나의 심장은 불행한 늑대로 자라났다.
‘구원자 괴이의 활용법. 원숭이 손과 미움받는 약의 검증. 거기에 더해 노도하 공방주의 특성까지.’
‘이만하면, 590회차에서는 얻을 걸 충분히 얻었다.’
‘애당초 처음부터 이번은 반쯤 휴가 회차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
나는 노도하에게 한결 부드러워졌다.
한정된 식량을 사용해서 맛있는 식사를 차렸다. 100회차 때 노도하도 말했듯이 나의 요리 솜씨는 미슐랭 4 스타급 셰프였다.
함포 소리와 비명 소리로 가득해진 사이판에서도 절묘하게 괜찮은 산책로를 개발하여 노도하와 함께 거닐었다.
요컨대, 나는 노도하의 호감을 붙잡기 위해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흐응…….”
이러한 내 정신적 발악질에도 노도하는 별말을 보태지 않았다.
아니.
“오늘도 커피가 맛있군요…….”
오히려 친절해졌다.
항상 날카로웠던 독설이 점점 더 부드럽게 변했다. 흐으, 하고 웃는 예의 비웃음도 어딘지 모르게 상냥해졌다.
자신도 음식을 배워 보겠다며 내게 요리 수업을 자청했고, 나와 거니는 산책에서 잡담을 떠들었다.
소소한 일상. 평범한 즐거움.
마음 붙일 곳 하나 없이 몰아세워진 나의 정신이, 노도하의 작은 호의에 쏠려 버리고 매달리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년이 지났다.
이제 노도하는 내게 행복을 수혈하는 유일한 공급자였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장의사 각성자…….”
“아, 예. 공방주도 좋은 밤 되십시오.”
나는 여느 때처럼 오두막의 침실에서 잠에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아.”
노도하의 목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저런. 깨셨습니까아……?”
조금, 너무 근처였다.
노도하는 내 위에 올라타 있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졌다.
“다시 주무셔도 좋습니다만…….”
그럴 수는 없었다.
꾸우욱-
노도하의 무게감이 주로 전달되고 있는 부위는 다름 아니라 목이었다.
전직 공무원. 공방주. 관리대장.
나의 공범자를 자칭했던 노도하가, 내 목을 전력으로 조른 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13
“……, …….”
나는 입을 뻥긋거렸다.
상대는 노도하였다. 각성자들을 순전히 전투력 순위로만 정렬시켰을 때 가장 마지막에 거론될 인물.
내가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그녀의 두 손을 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코앞에서 올려다본 노도하의 새까만 눈동자가 말하고 있었다.
“아, 저항하진 말아 주십시오…….”
입술로도 말하고 있었다.
“일이 좀 귀찮아질 테니까요. 당신이 오러를 일으키는 순간,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다. 그건 싫으시겠지요……?”
“……!”
“뭐어. 제 사지를 잘라다가 자살도 시도할 수 없는 신세로 만드실 수는 있겠습니다만……. 흐으. 과연 거기까지 당신이 영락해 버릴 것 같지는 않군요.”
노도하의 무게가 점점 더 내 기도를 조여 왔다.
콜록, 목구멍에 남은 숨이 기포처럼 들끓었다.
팔다리를 움직여 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째선지 노도하가 달아 준 의족과 의수가 미동조차 안 했다.
“어, 째서……?”
“아. 죄송합니다. 그거, 제가 만들 때부터 조금 조작을 해 두었던 터라.”
“…….”
“오. 대충 언제부터냐고 묻는 눈깔이군요. 뭐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실 테니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장의사 각성자. 그날 부산의 벙커에서 각성자들이 난리 칠 때부터 곧바로 생각했습니다…….”
노도하가 히죽거렸다.
지금까지 지켜본 그 어느 때보다 노도하의 웃음기는 진했다. 독처럼.
그녀의 독은 눈에서부터 양손으로 흘러내려 내 숨구멍을 잠식했다.
꾸욱. 꾸우욱.
“당신이 일부러 불행해지기를 선택했을 때 저는 조금 다른 부분을 걱정했습니다. 과연, 애시당초, 당신이란 존재가 ‘충분히 불행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압박.
“당신은 아주 사소한 일들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줄 아는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겠지요. 회귀자의 삶이 얼마나 좆 같았을지, 저로선 짐작만 해 볼 따름입니다…….”
압착.
“당신의 정신적 방벽은 견고하고 또 견고합니다.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이 지상의 과제라 가정할 때, 제가 계속 한반도에 머무르며 국도관리대를 통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지요…….”
압력.
“그래서, 관두었습니다…….”
유지원은 유능하다.
하지만 유지원의 유능함은 부관이란 지위에서 가장 극대화된다.
정작 거대한 조직의 우두머리에 오른 순간부터, 모든 인간과 사물을 도구로만 취급하는 유지원의 경향성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수많은 길드들과 타협해야만 하는 국도관리대는, 유지원의 아래에서 폭주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백화여고의 길드장, 천요화가 홀로 바다를 헤쳐 조난당한 것 또한 하나의 징조였으리라.
노도하는 그 사태를 노렸다.
“당신이 정성껏 계획해서 키워 낸 조직이, 한반도가, 엉망진창으로 망가진다면 당신에게 꽤나 묵직한 불행감을 안겨 줄 수 있었겠지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삼천세계 길드장이나 다른 사람들은 무작정 당신을 족치려 들었습니다만, 제가 볼 때 그런 일차원적인 공격은 당신에게 별 타격을 주지 못합니다. 아. 물론 타격이 있긴 있겠지만 그래도 결정타는 못 된다고 할까요……. 저에겐 좋은 기회였습니다.”
기회라니. 어떤.
“장의사 각성자.”
노도하가 몸을 기울였다.
우물처럼 까마득한 눈동자.
빛이라곤 일점 깃들지 않을 것 같은 흑색의 눈동자가 나를 코앞에서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제 인생을 망쳤습니다.”
소곤.
내 귀에 대고, 노도하가 속삭였다.
“조용히 살다 조용히 죽겠다는 소망만을 가지고 있었던 저를 국도관리대라는 곳에 끌어다가, 어떻게든 세상을 구해 보겠다며 애쓴 주제에……. 500번? 600번? 흐.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저를 불행하게 만들 작정이신지……?”
“…….”
“개자식.”
독이 스며들었다.
“장의사 각성자. 당신이 싫습니다. 예전부터 싫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저주할 것입니다. 저에게 미안하다면, 아주 약간이라도 저의 인생과 운명을 망쳐 버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품고 있다면…….”
“…….”
“지금 여기서 저에게 죽어 주십시오.”
내 몸이 떨렸다.
그것이 점점 더 희박해지는 산소 때문인지, 아니면 노도하의 검은 독물 때문인지, 나로선 분간하기 어려웠다.
-끼기기기긱! 힉! 끼기긱!
허공에서 원숭이 손이 울부짖었다.
오두막의 서까래가 무너져서 노도하를 덮치려 들었다. 내게 찾아온 불행의 근원을 말살하기 위해 원숭이 손이 발악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러를 일으켜 그 서까래를 부숴 버렸다. 별다른 소음도 없이 가루가 되어 버린 나무에, 노도하가 작게 웃었다.
시야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노도하가 조금 더 깊이 고개를 수그리는 모습이 보였다.
“어떠신지……?”
노도하가 소곤거렸다.
“저의 살해라면, 당신에게 충분한 불행이 되겠습니까……?”
나는 헛웃음을 짓고 싶었다.
되다마다.
하지만 입술을 움직일 여력도 없어, 노도하의 눈동자처럼 새까매진 시야 속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590번째 죽음의 사인이었다.
14
짧은 후일담이 있다.
결론부터 말해 원숭이 손은 나의 회귀를 뛰어넘어서까지 빚을 갚으라며 쫓아오지는 못했다.
노도하 공방주가 마지막으로 선물해 준 ‘불행’은 원숭이 손 입장에서도 충분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자칫 잘못했다가는 대양급을 뛰어넘은 위험도의 괴이로 성장했을지도 모를 [행운총량제]는 무사히 토벌되었다.
“……? 뭘 꼬라 보시는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591회차의 노도하에게 이전 회차의 일을 들려줄까 고민했지만, 관두었다.
만약 얘기를 들려주면 노도하가 어쩐지 모르게 진심으로 혐오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굳이 이번 회차에서도 불행을 자초할 이유는 없을 터.
“흠……?”
멀찍이 집무실 책상에서 나를 쳐다보던 노도하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일어서더니 나한테 가까이 다가와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흐음. 장의사 각성자. 지금 보니까 탈모 끼가 좀 생긴 거 같습니다만.”
“예?”
이건 또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탈모는 무슨 탈모. 저 591번 회귀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머리 빠진 적 없습니다. 체모가 아주 건강해요.”
“그렇습니까? 그럼 뭐, 제 착각이겠군요. 흐으. 하지만 제가 볼 땐 지금부터 조심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10년이 흘렀다.
거울을 바라보니, 노도하가 경고했던 대로 M자 급성탈모가 내 대가리를 폭격하고 있었다.
“…….”
마치 이것이 너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불행의 값을 추심한 결과라는 듯이.
-우끼긱.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역시나 괴이는 위험했다.
-운수 좋은 자. 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