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47)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47화(14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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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살자 Ⅱ
신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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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안톤 체호프라는 러시아 출신 흙수저 의대생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때도 러시아는 기묘한 마력이 감도는 동토. 그 땅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글빨이 터지는 DNA를 가지고 있었다.
체호프는 44살에 불치병으로 요절했다.
‘러시아’ ‘흙수저’ ‘불치병’이라는 삼신기를 거머쥔 체호프는 자신의 수명을 바치는 대가로 가공스러운 필력을 손에 넣었다. 러시아의 온 악령들이 그에게 작가가 되라고 속삭인 격이었다.
희대의 흑마법을 통해 대문호로 거듭난 체호프가 말했다.
-만일 연극 1막의 벽에다가 총을 장식해 뒀다면, 최종막에선 총이 격발되어야만 한다. 안 그럴 거라면―― 애당초 장식해 두지 마라.
이른바 ‘체호프의 총’.
본래 체호프는 기껏해야 ‘그러니까 복선 좀 잘 써 먹어라 작가 새끼들아’라는 의도에서 발언했을 것이다.
하지만 흑마법이란 게 다 그렇듯 체호프 씨의 주문은 본의 아니게 후폭풍을 일으켰다.
참고로 체호프는 시베리아에서도 활동했으며, 이 시베리아 부근에서 발생한 기단은 겨울마다 한반도를 찍먹하기로 유명했다.
아무리 대마법사라 해도 기상현상을 피해 갈 순 없는 법. 체호프의 흑마법 역시 바람을 타고 한반도에 상륙했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어? 오빠, 여기 봐 봐! 총이야! 총!”
“오. 군부대가 떨구고 갔나 보다. 잘했어! 미로 네 덕분에 찾았네.”
“헤헤.”
서울에 사이좋은 연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괴이로 얼룩진 세기말에서도 순애물을 찍으며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군부대가 떨군 총기류와 탄창이 발견되었다. 두 연인은 이런 개꿀이 다 있냐면서 무기를 챙겼다.
그리고.
-타앙!
2주일도 지나지 않아 한쪽이 다른 한쪽을 총으로 쏴 죽여 버렸다.
“억……. 미, 미로야. 어째서……?”
“미안. 오빠. 나,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어. 그러니까 죽어서 하나가 되자.”
“아니…….”
분명히 오순도순 행복한 순애물을 찍던 연인이 갑작스레 피폐물로 드리프트를 꺾은 것이었다.
심지어 이건 약과였다.
-타앙!
어떤 가족들은 총을 주웠다가 바로 그날 밤, 일가족이 총상을 입어 죽었다.
한밤중에 괴이한테 홀려 ‘사방에서 적군이 기습해 왔다’라고 착각한 누군가가 가족들을 학살해 버린 것.
“아아아아아악!”
새벽이 되어 자신이 죽인 ‘적군’이 사실은 전부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론 총으로.
이와 비슷한 사례는 무수했다.
-익명: 내 옆동네에 아지트 지어 놓고 사는 생존자 집단이 하나 있는데 거기 어젯밤에 완전 아작 났다ㅋㅋ
-익명: 밤새도록 총소리가 들려온 걸 보니까 총을 쌓아 뒀던 거 같더라. 좀 궁금해서 살짝 접근해 봤는데, 서로 고함 지르고 비명 지르고 아주 난리도 아니더라.
-익명: 똑같은 고향 출신에 집안 사이의 정도 끈끈해 보였는데 역시 총<< 이거 하나에 전부 박살 났음ㄷㄷ;
이제 여러분도 짐작하시리라.
그렇다.
러시아 작가가 시전한 흑마법은 총기류 전체에 걸렸다. 모든 총은 ‘체호프의 총’이라는 괴이에 홀려 버린 것이었다.
고로, 이 세계에선 ‘총이 존재하면’ 반드시 ‘중요한 순간에 격발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총이 존재하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이 강제로 만들어진다’.
서로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
끈끈하게 뭉친 집단의 붕괴.
인물과 사건을 막론하고, 아무튼 총이 존재하면 반드시 그 총으로 인해 결정적인 장면들이 성립된다.
언제까지? 탄창에서 총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그야말로 현대판 파리스의 황금사과. 총이 존재하는 곳마다 불화와 비극이 상연되는 꼬라지였다.
“어? 어? 야, 너 그 총 내려놓지 못해?”
“닥쳐! 가족이 다 죽었다는데 내가 왜 군대에 있어야 하는데! 너희도 다 죽어!”
타앙, 탕, 탕!
한때 서울로 진격하면서 한반도의 새로운 왕좌를 거머쥐려 들었던 국군은 순식간에 전멸해 버렸다.
‘고독한 미식가’ 십족이 국군으로 먹방을 찍은 이유도 컸지만, 마지막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결국 체호프의 총이었다.
“아니, 여기서 우리끼리 내분을 일으키면 민족의 희망이 고스란히 없어져 버리…….”
“민족은 무슨 민족! 죽어! 죽으라고!”
“저 새끼 저거 말려! 아니, 씨발? 왜 너희들까지 장전하고 앉았어? 미쳤어?”
쉽게 말해 전 부대에서 총기난사가 터졌다. 소문에 따르면 여기에 휘말려 즉사해 버린 군단장까지 있다던가.
그나마 한반도는 총기류가 군부대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소소하게 군사력만 소멸되고 끝났다.
천조국. 즉, 집집마다 샷건쯤은 필수 아이템이라고 여겨온 미국은 사정이 좀 심각했다.
공허가 도래한 이후 약 1달도 되지 않아 미국인의 50%가 사망했다. 설마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총기규제 반대파도 한 번쯤은 더 숙고해 줬을 것이다.
그리하여.
-[삼천]재판장: 삼천세계 길드원뿐만 아니라 부산에 들어오는 모든 각성자에게 공지합니다. 부산시에서는 총기류를 엄금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를 위반할 시…….
-[백화]고등학교13학년: 세종시에서 금지된 총기류가 발각되었어요! 오늘 점심쯤에 청사 앞 광장에서 처형식 열리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_<);;
북아메리카 대륙은 물론이거니와 한반도, 아니 전 세계에선 거국적으로 총기를 극렬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총기 소유죄는 거의 99% ‘사형죄’다.
사람을 죽이는 짓보다 총기를 소유하는 게 더 나빴다.
당연했다. 총은 사람을 죽이는 걸 뛰어넘어 아예 집단에다 불화를 심어 버린 다음 기어코 비극을 상연해 버리니.
이 괴이에겐 어떤 의미로 ‘체호프의 총’이라는 본명보다 ‘강제 비극 상연’이라는 이명이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천요화가 자기 아지트에서 K5 권총을 발견하자마자 ‘이 미친 새끼’라고 음울하게 중얼거린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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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한차례 백화여고를 전부 수색했다. 다행히 창틀 아래서 발견된 권총 말고는 총기류가 더 없었다.
“네 길드원은 왜 K5 권총을 수집해서 숨겨 뒀다냐?”
“으음. 물 좀 먹여서 자백을 받았는데요. 가해자가 좋아하던 사람이 저희 학교 부학생회장이었어요.”
천요화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부학생회장이랑 사귀는 사람은 따로 있거든요. 걔가 이번 사건의 피해자였고…….”
“치정 싸움?”
“뭐어, 네. 그렇죠오…….”
나와는 인연이 먼 이야기에 조금 관찰자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럼 가해자는 총을 써서 피해자를 죽이려고 했던 건가? 어리석구나. 그래 봤자 부학생회장의 사랑을 얻을 순 없을 텐데.”
“아, 그게에……. 조금 애매해요.”
천요화가 뺨을 긁적였다.
“그보다는 ‘체호프의 총’으로 자기 살인을 변호할 계획이었대요.”
“뭐?”
“가해자 계획은 이랬어요. 왜, 저희 백화여고가 주기적으로 서울에 원정을 떠나잖아요? 그때 가해자가 우연히 길 위에서 총을 주운 걸로 연기하려 했던 거예요.”
천요화가 손가락총을 만들어서 까닥거렸다.
“그리고 순찰 도중에 꼭 ‘체호프의 총’에 홀려서 우발적으로 총을 쏜 것처럼……. 타앙!”
“…연기?”
“네. 연기예요. 오발탄에 피해자가 죽었다는 식으로 위장하려 그랬대요.”
“허어.”
“그러면 자기도 물론 질책에서 벗어날 순 없겠지만 ‘괴이에 홀려 실수했다’라는 변명거리가 생기잖아요? 학년이 1학년까지 강등되더라도 어쨌든 죽거나 퇴학당하진 않을 거라는 계산이 선 거죠. 으으, 요즘 애들은 진짜 영악하다니까요.”
나도 좀 당혹스러웠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괴이한테 홀린 척 위장해서 사람을 살인하려고 했다는 소리냐?”
“네에. 진짜 너무 나쁘죠?”
세상에.
공허로 탐사를 가서 눈꼴신 길드원을 몰래 버려 두고 왔다는 얘기야 종종 들어봤어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괴이를 변명거리로 삼으려는 경우는 드물었다.
인간의 악의는 정말로 끝이 없…….
“……?”
그때였다.
머릿속이 번쩍였다.
‘체호프의 총’을 도리어 역으로 이용하려고 든 어느 발칙한 학생의 아이디어가 내게 어떤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총. 파탄. 총. 악용. 총.
수많은 단어들이 이리저리 얽혔다.
“응? 선생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
“앗. 생각에 잠기셨구나.”
천요화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자기 할 일을 했다.
내가 깨달음을 전부 정리하고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진 약 3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천요화는 마치 동료의 운기조식에 호법을 서 준 것처럼 내 주변에 서 있었다.
“요화야.”
내가 입술을 열자 천요화는 기다렸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녹차팩으로 간단하게 우린 찻잔을 건네주었다.
“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신 거죠?”
“그래. 어쩌면, 잘만 하면, 내가 이번에 한반도 최강의 무기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한반도 최강의 무기… 요?”
천요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찻잔으로 손바닥을 덮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요화 네가 생각할 때 한반도 최강의 무기는 뭐라고 생각하니?”
“네? 어, 으음……. 북한 핵미사일?”
“그거 십족한테 생채기도 못 내고 사라졌잖니. 조금 더 사람이 쓸 수 있는 무기를 생각해 보렴.”
“아, 그럼…….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
과연 명문사립고의 학생회장답게 기묘한 물건도 잘 알고 있었다.
참고로 천요화는 수능에서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모두 1등급을 맞았다.
어떻게 정부가 망해 버린 세상에서 수능을 보았느냐면, 어. 한반도에선 매해 11월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괴이 및 공허가 출몰하거든.
출제 문제들이 굉장히 요상하지만 천요화는 거기서 완벽에 가까운 성적을 얻어 냈다. 얘 가방 뒤져 보면 ‘명예서울대학생증’까지 있다니까.
아무튼.
“그 검도 꽤 강력하겠지만 결국 내 지팡이검보다 약하지. 실제로는 아무런 신화를 써내리지 못했으니까. 결국 요즘 시대에 가장 강력한 무기란, 괴이들을 베어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일화’를 자기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무기다.”
“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무기 같은 거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무기가 있었나 싶은데요?”
“하나 있단다.”
나는 싱긋 웃었다.
“요화야. 혹시 야수의 심정이라고 혹시 들어나 봤니?”
“네?”
‘신을 죽인 탄환’.
독일제 발터 PPK 권총.
총번(銃番) 159270.
한반도 최강의 보구.
유신의 심장을 꿰뚫은 일격.
그렇다.
과거 대통령을 암살했던 그 총기류가 지금 나 장의사에게 어서 파밍해 달라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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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의외의 사실이겠지만, ‘대통령 암살’이라는 희대의 업적을 달성한 그 총기류는 박물관에 고이 모셔지지 않았다.
아예 행방부터 묘연했다.
중앙정보부 부장이 암살을 저지른 뒤, 해당 권총은 국방부 육군 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졌다.
과학적 감정이 끝난 직후엔 곧바로 보안사령부에, 그다음엔 육군본부에 이송되었다.
마지막으로 재판이 일단락된 다음엔 ‘어쨌거나 이 권총은 다른 기관 소유물이니까 돌려줘야겠지?’ 하고 중앙정보부로 돌아갔다.
대한민국에서 어떤 물건이 공무원 집단을 3개 이상 거친다는 것은, 그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영원히 반납하겠다는 뜻이다.
‘한반도 최강의 보구’도 예외는 될 수 없었다.
당연히 PPK 권총은 실종되었다.
중앙정보부에선.
-그거 보안사에서 압수해 갔는데요?
보안사령부에선.
-우리 그거 중정에 진즉 돌려줬는데요?
라고 서로 주장한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같다면 착각이 아니다. 지역구든 전국구든 공무원의 DNA는 동일하다.
하지만 마냥 비웃을 일은 아니다.
당시 공무원들은 신을 살해한 이 저주스러운 마검… 아니, 마총(魔銃) 앞에서, 어쩌면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것 아니었을까?
그것은 지상에 존재해선 안 될 귀물이었다. 감히 나약한 필멸자로선 하루빨리 신계(神界)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래. 결국 공무원들은 옳았다.
예부터 저주에 대처하는 방법은 아예 저주를 ‘없는 셈’치는 것.
대한민국 정부는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저주 걸린 귀물을 봉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나 장의사에겐 그 귀물이 필요했다. 제법 절실히.
천요화와 헤어진 직후, 나는 곧장 세종시에서 북쪽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서울의 어느 구역에 도착했다.
[…장의사 씨.]언제나 항상 나한테 달아 놓은 CCTV를 염탐하는 일로 소일거리 하는 성녀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네?”
[정말로 거기 들어가실 생각인가요? 제 말씀은, 저한테는 항상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공허잖아요. 거기.]“예. 성녀님은 들어가면 안 되지만 전 괜찮습니다.”
[…….]나는 성녀의 침묵을 가볍게 무시하고 눈앞에 놓인 풍경을 올려다보았다.
우선 배경엔 서울의 명물, 남산이 우뚝 솟았다.
또한 ‘남산’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건축물도 그곳에 존재했다.
중앙정보부 본청. 혹자에겐 ‘안기부’라는 명칭이 더 익숙할지도 모를 그 조직의 본거지.
작금에는 공허로 전락해 버린 곳.
그렇다.
앞선 에피소드에서 말했다시피, 장르문학의 정점이요 총화라 부를 수 있는 ‘기연 독식’은 우리의 세계에선 종말을 맞이해 버렸다.
이른바 행운총량제라 불리는 저 간악한 괴이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어찌 슬퍼하겠는가?
애초에 뷔페보단 전문중국집에서 먹는 탕수육이 더 맛있다. 모든 메뉴를 독식하는 게 금지당했어도, 그냥 제일 맛있는 일품요리만 먹으면 그만이었다.
나 장의사. 이래 봬도 한반도에선 당서린과 십족의 뒤를 잇는 미식가라 자부하는바.
“성녀님. 저는 오늘 ‘신을 죽인 보구’를 파밍하러 갑니다.”
[…….]“저를 지켜봐 주십시오.”
오늘 나는 한반도 최강의 기연을 먹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