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49)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49화(14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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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 Ⅰ
신노아
1
바야흐로 593회차.
나는 부산역 튜토리얼 던전에서 오독서를 끌어온 뒤, 성녀와 동맹을 맺고서, 곧바로 작전을 개시했다.
오늘 에피소드의 적은 다름 아니라 소외신.
여유를 부릴 틈 따윈 없었다.
“미안하다. 평소였다면 독서 너와 더 끈끈하게 라포를 형성하는 데 제법 공을 들였겠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서둘러야 한다.”
“아, 응…….”
오독서의 반응이 떨떠름했다.
당연했다. ‘소설 속 회귀자가 책에 빙의한 것이나 다름없는 자신을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다’라는 사태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약간의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괴이들에 의해 망가진 세계.
이 사태에 관해 얼마 전 소설로 읽었다는 자각. 그로 인한 자신감.
하지만 저 자신감은 튜토리얼이 시작되자마자 즉시 나에 의해 붕괴되었다. 오독서는 <전회시>를 통한 이점을 거의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어찌 불안해지지 않겠는가.
오독서는 아예 타인으로 취급하는 상대들에겐 리더십을 발휘했다.
반면에 친하다 여기는 지인들에겐 오히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약점을 개방했다.
마음에 불균형을 안고 사는 아이.
그리고 나는 오독서의 뒤틀린 천칭에서 지극히 미묘한 무게감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아주 타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친밀감이 형성되지도 않은 ‘작품 속 등장인물’.
느긋하게 튜토리얼을 깨며 친밀감을 형성하는 대신 거의 억지로 부산역 던전에서 끌고 나온 여파였다.
“그래서, 음……. 장의사 님?”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도 된다.”
“아니, 그래도 초면에 아저씨는 조금……. 아직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도 아니잖아… 요. 아무튼, 저를 왜 여기로 끌고 온 건데요?”
아주 조금 심장이 따끔거렸다.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독서야. 혹시 스피드런이라는 장르를 들어봤냐?”
“응? 스피드런?”
보통 사람들은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플레이한다.
하지만 이 세상엔 속도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인간도 많다. 한국인의 DNA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빨리빨리 정신은, 게임에 한정하자면 전 세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조금 더 빠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클리어를!
스피드런(Speedrun). 혹은 RTA.
최대한 게임을 빠르게 클리어하는 것이야말로 지상과제인 플레이.
그중엔 게임 속의 버그를 사용해서라도 시간을 단축시키는 경우도 있다.
내 예시를 들자면 ‘미움받는 약’과 ‘구원자’ 괴이를 서로 충돌시킨 것이 일종의 버그 플레이겠지.
수많은 게이머들은 단 한 줄의 스피드런 기록,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플레이어’라는 업적을 남기기 위해 무수한 실패를 반복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
오독서가 기억을 떠올리듯 위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게임 실황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거 같기도 하고. 스타튜벨리에서 어떤 미국인이 마을회관 업적을 2시간 만에 깨 버린 걸 본 것 같아… 요.”
“그래.”
나는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이 세계에는 ‘로그아웃 게임’이라는 소외신급 괴이가 있단다.”
그리고 설명했다.
최대한 간략하게. 그러면서도 ‘로그아웃 게임’이 어떤 소외신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오독서에게 특화된 단어와 문장만을 이용했다.
이 또한 몇 차례의 검증 끝에 완성된 설명 방식이었다.
오독서는 중간중간 “뭐?” “아니-” “어떻게 그런 괴이가”라고 경악했지만, 그럼에도 10분도 안 되어서 사태를 비교적 명확하게 이해했다.
오독서는 테이블에 놓인 노트북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이 랩탑이……?”
“소외신이 내게 남긴 아이템이지. 서버가 종료되려던 순간까지 계속해서 발버둥 치던 플레이어한테 주어진 특전이고. 동시에 로그아웃 게임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기도 하다.”
딸깍.
나는 노트북에 유일하게 깔려 있는 프로그램인 메모장을 켰다.
[만상유희의 운영자]가 최초로 세계를 멸망시킨 135회차부터 작금의 593회차까지, 메모장에 적힌 문장은 한 번도 변경된 적 없었다. [ 이 세 계 는 무 엇 입 니 까 ? ]간단한 문장.
그러나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오독서가 눈썹을 찌푸렸다.
“이 세계는 무엇입니까……? 뭐야, 이게?”
“우리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싸움이다.”
“뭐?”
“잘 들어라. 저 소외신은 이 세계를 ‘게임’이라고 규정했다. 애당초 소외신급의 괴이들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를 규정하려 들어.”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세계를 규정하려거든 그만한 힘이 필요하다. [만상유희의 운영자]는 이 세계가 게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상태창, 레벨업, 로그아웃 시스템 등 수많은 장치를 선보였어.”
“아하……?”
“이 장치들에 의해 사람들은 비로소 ‘이 세계가 게임’이라는 사실을 납득하고 받아들인다. 나는 이것을 ‘괴이에게 홀린다’라고 표현해.”
마법소녀협의체에선 똑같은 현상을 카미카쿠시(神隠し)라고 불렀다.
“달리 말해, 괴이들은 절대로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장치들을 스스로 부정할 수 없다. 그걸 포기하는 순간 사람들을 홀리게 하는 마력도 사라지니까.”
“오……. 뭔가, 알 거 같기도……?”
“[만상유희의 운영자]는 자기 자신을 게임 운영자로 규정했다. 그럼 운영자에게 허락된 행동밖에 할 수 없어.”
가령, 어째서 심아련만은 ‘로그아웃 게임’에 조금이라도 대항할 수 있었는가?
노도하나 성녀처럼 정신력이 비상한 인물들조차 속절없이 ‘로그아웃’을 당하던 와중에, 어찌하여 우리 중에 심아련은 예외일 수 있었나?
이유는 간단했다.
-혀, 현실? 충시일?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서 굳이 인터넷을 할 필요가 없다고요오? 바보 아니에요? 길드장님, 진짜 바보 아니에요?
-여기, 이 스마트폰 화면 안쪽이, 현실이에요! 진실이라구요!
심아련은 ‘로그아웃 게임’을 단순한 게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SG넷의 활동에 마음껏 자아를 투영했듯, 심아련은 세계를 공허로 물들인 ‘로그아웃 게임’에도 진심으로 몰입했다.
심아련에게 있어 SG넷을 끊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서린이 만들어 낸 부산의 유토피아에서조차 심아련은 마지막까지 커뮤니티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만일 심아련이 어떤 게임에 입문했다면 그 게임을 ‘접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심아련에게 있어 그런 행위는 현실에서의 죽음이나 다름없기에.
――따라서 [만상유희의 운영자]도 심아련만큼은 제거할 수 없었다.
명분도 사유도 없이, 자신의 게임에 이토록 과몰입해 버린 유저의 계정을 억지로 삭제하기란 불가능했다.
모든 괴이가 그렇듯, 소외신에게도 항상 허점은 있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이 세상이 게임임을 부정한 사람이다.”
“장의사 님이요?”
“…그래. 부적절한 비유가 되겠지만, [만상유희의 운영자] 입장에선 너희가 만든 게임 더럽게 재미없는 똥겜이라며 별점 테러를 날려 대는 악질이라고 할 수 있지.”
소외신에겐 반드시 없애 버리고 싶은 적.
그래서 저 괴이는 ‘그럼 어디 네가 직접 게임을 만들어 보시든가’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노트북의 메모장 파일에 적힌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만일 이 세계가 게임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이 세계는 무엇입니까?]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소외신은 나한테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거다.”
“오오오…….”
오독서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독심술] 기능을 켜서 오독서의 심리를 읽고 싶었지만 참았다.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예전에 약속했었다.“소외신과 내 승부는 간단하다. 만일 내가 [이 세계는 게임입니다]라고 타이핑을 치면 나의 패배. 스스로 백기 들고 항복하는 셈이지.”
“승리 조건은?”
“소외신도 납득할 수 있는, 아니. 납득할 수밖에 없는 대답을 내놓는 것.”
그리고.
여태까지 나는 노트북에 이 ‘정답’을 적어 내는 것에 계속 실패해 왔다.
[이 세계는 물질적 실체다.] [이 세계는 영원히 반복된다.] [이 세계는 괴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등등.
여러 대답을 적어 보았으나 소외신은 이를 정답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런 변화도 감지되지 않은 것이었다.
단순히 내 소망을 힘으로 밀어붙여서야 의미가 없었다.
내가 ‘로그아웃 게임’에 대항했듯, 소외신 역시 ‘회귀자’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우리 둘 다 서로에게 자신을 강요시킬 만큼 강하진 못했으되, 서로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당하지 않을 만큼은 강했으므로.
무승부. 타이. 교착 국면.
“하지만 독서야. 네가 나타나면서 희망이 생겼다.”
“어?”
오독서가 화들짝 놀랐다.
“나, 나?”
“그래. 나는 회귀자고, 너는 책 빙의자에 가깝다. 둘 다 창작물에서는 일종의 ‘예외적인 위치’. 즉, 주인공에 가깝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거의 반드시 주연으로 취급될 만한 비중을 갖고 있어.”
“…….”
“그러니까, 이런 묘기도 가능해진다.”
타닥.
나는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겼다.
손끝에서 퍼져 나온 활자의 까만 물결이 새하얀 메모장 파일에 번졌다.
[이 세계는 ‘스피드런’ 게임 실황 방송이다.]오독서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스피드런 게임 실황 방송……?”
“유튜브로 비슷한 걸 보았다니 이해하기 쉽겠지.”
나는 오독서를 가리켰다.
“독서야. 너는 이 게임의 ‘주인공’ 캐릭터다.”
그리고 나를 가리켰다.
“나는 주인공 캐릭터인 너를 컴퓨터로 조종하는 ‘플레이어’다.”
“…….”
“캐릭터와 플레이어. 두 존재는 하나로 여겨지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항상 분리되어 있다. 다만 둘 다 게임 세계에 있어서 ‘예외적인 존재’로 취급받는 것은 동일하지.”
“내가 주인공. 그리고… 장의사 님이 그런 나를 조종하는 플레이어.”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외신은 이 세계를 ‘캐릭터들만 존재하는 게임 속 세상’으로 규정했어.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로그아웃했다. 어차피 이건 플레이어인 자신들의 죽음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캐릭터로부터 로그아웃한 것에 불과하다며 괴이한테 홀려 버린 게야.”
“…….”
“우리는 이런 소외신의 전략을 정면에서 부정해야만 한다. 캐릭터인 독서 너와 플레이어인 내가 동시에 존재해야만 해. 즉, 이 세계는 ‘로그인’한 캐릭터들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언제든 ‘로그아웃’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도, 그러니까 진짜 인간들도 존재하는 세상. 캐릭터와 플레이어의 공존. 장의사 님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규정하려는 거네.”
나는 빙긋 웃었다.
“이해가 빠르구나. 맞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그림을 보여 주었다.
“컴퓨터 모니터로 보든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든, ‘게임 실황 방송’이란 대체로 이런 식으로 동영상이 보인다.”
그 그림은, 요약하자면 이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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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화면] [게임 화면] [방송인 얼굴] [게임 화면] [방송인 얼굴]――――――――――
유튜브에서 흔히 구경할 수 있는 형식.
“오른쪽 하단이나 왼쪽 하단에 방송인의 얼굴 및 상반신이 드러나고, 나머지 화면에선 게임이 진행된다.”
“응.”
“당연히 방송인은 플레이어에 해당한다. 게임 화면 속의 인물은 어디까지나 캐릭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게임 방송이라는 형식에선 캐릭터와 플레이어가 공존한다’라는 사실 자체다.”
“…….”
“소외신처럼 이 세계를 게임으로 규정해 버리면 로그아웃에 당해 낼 도리가 없어진다. 하지만, ‘게임’이 아니라 ‘게임 방송’이라고 규정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소외신을 무력화시킬 수 있어.”
나는 그림을 접었다.
“주로 소설을 읽는 너에게도 익숙한 형식일 거다. ‘성좌물’이 이런 형식을 띠지.”
“…맞아. 전회시도 성좌물이었어.”
“어떠니. 독서야. 나와 함께 [만상유희의 운영자]를 토벌해 보지 않겠냐?”
나는 손을 내밀었다.
오독서가 반사적으로 내 손을 잡으려 하기 전에, 미리 말해 두어야 할 것을 말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란다.”
“…….”
“플레이어인 내가 지시하는 대로 독서 너는 따라야 할 거야. 내가 지시하는 내용들은, 상당히 난이도가 있을 거고. 무서운 일도 역겨운 일도 잔뜩 생길 거다. 소외신에게 맞서 싸우는 일은 정말, 정말로 힘들단다.”
오독서가 침묵했다.
“그래도, 이게 장의사 님……. 으응. 아저씨가 생각한 최선의 시나리오란 말이지?”
“…현재까지로선.”
“그럼, 믿을게.”
오독서는 내 손을 잡았다.
“같이 클리어해 보자. 이 망겜.”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빨리 질주하는 스피드런. 시작하겠습니다.]움찔.
오독서가 눈을 깜빡거리며 ‘어? 어?’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지극히 무감정한 목소리.
그것은, 당연하지만 성녀의 텔레파시였다.
[이번에 제가 노리는 게임은 일명 ‘로그아웃 게임’. 만상유희의 운영자라는, 이상한 이름의 게임제작사에서 제작한 게임이지요.]하지만 오독서에겐 일부러 성녀와의 만남을 주선하지 않았다.
593회차인 작금엔 오독서가 읽고 온 <전회시> 역시 성녀와 만나는 회차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의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오독서에게는 정말로 ‘성좌가 게임을 실황하는 음성’처럼 들릴 터.
“어, 어어- 아저씨, 이건……?”
나는 미소를 지었다.
“말했지 않느냐.”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게임이지만 그렇다고 제가 최속의 클리어를 달성하지 못할 리는 없지요.]“우리는 지금 게임 방송을 하는 중이라고.”
[그중에서 ‘책 빙의자’라는 속성을 가진 오독서란 캐릭터는, 지금이야 별다른 능력치가 없어도 잠재력이 뛰어납니다. 스피드런을 이루는 데 가장 적격이네요.]“독서야. 나는 이번 회차를 위해서 정말 많은 준비를 해 왔단다.”
성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