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6)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6화(1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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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자 Ⅱ
신노아
3
우선 전국의 편의점 물류 센터들을 가볍게 털어 주었다.
물론 한 줄로 요약될 만큼 간단한 과업은 아니었다. 국회가 날아가서 반쯤 마비 상태에 빠져 버린 상황.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물류센터들에 또아리를 틀고자 했다.
“거기 누구야!”
“멈춰라! 접근하지 마!”
하지만 내가 누구? 이 시점에선 90번의 인생을 산 회귀자.
물류센터의 바리케이드 입구에선 비명이 울려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센터 담당자들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아시겠습니까. 이번 주 금요일까지 트럭들 도착하지 않으면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겁니다.”
“예, 예에! 알겠습니다!”
곧 경기권 북부와 동부의 물류센터들에서 트럭 행렬이 쏟아졌다. 도착지는 당연히 우리 가게. 제6인터내셔널 편의점이었다.
도중에 군부대와 경찰의 방해가 있었지만 가볍게 물리쳤다.
나에겐 이전 회차들에서 국정원 및 정부와 협력한 경험이 있었다. 쇼 노인이랑 내가 같이 다니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공무원 우두머리들의 개인적인 약점을 수집하는 일이었다.
결국 우리 가게는 편의점 관련 물류를 순식간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버렸다.
“호에엑……. 점장 동지! 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거예요! 이게 전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물적자본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픈 거예요!”
“이제는 우리 거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 거예요……!”
전형적으로 혁명가가 타락하는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는군.
편의점 지하에는 거대한 창고가 착공되었다. 인력을 동원했다면 완공 기일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대공사였으나, 요정의 힘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요정들은 초거대 지하 창고를 완성한 뒤 상품들을 보기 좋게 정렬했다.
“음?”
그렇다. 요정이 아니라 요정‘들’.
어느새 세 명으로 불어난 요정들이 빨빨빨 날아다니면서 제품들을 이동시키고 있었다.
나는 264번 요정을 호출했다.
“264번.”
“옙! 점장 동지!”
요정이 차렷 자세를 취했다.
“대답해라. 왜 갑자기 요정이 증식했지?”
“옙! [요정 혁명 동아리]에 제가 지원을 요청했어요! 점장 동지의 위대한 혁명노선에 감화한 동아리 동지들이 우리의 대의에 동참하기 위해 속속들이 전선에 합류하고 있는 거예요!”
뭣.
“설마 여기서 요정들이 더 늘어나는 것인가?”
“아마도요? 혁명의 대의란 아래로 내려갈수록 부풀어 오르는 강줄기와 같은 거예요. 더럽고 추악한 왕당파 반동분자들만 제외하면 말이에요!”
“음…….”
이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태였다. 그냥 유능하면서도 무급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노예가 한 명 필요해서 264번을 데리고 다녔던 것인데.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모름지기 ‘휴가 회차’에선 내가 계산하지 못한 이벤트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즐거운 법.
“호, 혹시 저의 독단이 지나치게 모험주의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인가요?”
“아니다. 잘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대충 뭐 없나?
마침 물류 상자에 초록색 새마을 모자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비닐을 뜯어서 새마을 모자를 264번 요정에게 씌워 주었다.
자기 머리보다 면적이 큰 모자를 뒤집어쓴 채 요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은?”
“모든 요정은 평등하지만 어떤 요정은 다른 요정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혁명에 대한 264번 동지의 순수하고도 가열찬 열정은 본인을 감동시켰다. 이에 자네를 앞으로 제6인터내셔널에 참여할 모든 요정들의 좌장으로 임명하는 바다.”
“……! 점장 동지이……!”
점원들 확보 완료.
요정들은 마법을 쓸 줄 알았고, 특정한 영역을 현실로부터 분리시키는 능력까지 가졌다. 이 능력 때문에 부산역 대합실이 외부로부터 고립된 것이었다.
“지하 창고에 영역을 전개하도록.”
“넵!”
해당 능력과 빙결 마법을 응용하여 지하에 저장된 제품들의 유통기한을 한없이 연장시켰다.
발전기들을 구해다가 배선작업과 설비작업까지 끝마치니 24시간 내내 전등이 번쩍거리는 편의점이 완성되었다.
이젠 정말로 손님을 받을 일밖에 안 남았다.
신장개업 6일 차, 드디어 첫 번째 손님이 방문했다.
“어서 오십시오!”
“…….”
딸랑, 하고 유리문이 열렸다.
두꺼운 옷을 입고 포니테일을 한 여자.
무엇을 숨기랴. 기념비적인 첫 손님은 다름 아니라 성녀였다. 애당초 이 근처에서 사는데다 나의 기행을 [천리안]으로 염탐했을 테니 당연히 방문해 올 수밖에 없겠지.
계산대에 서 있는 나를 성녀가 슬쩍 쳐다보았다.
“…영업하세요?”
“예. 저희 가게는 24시간 정상영업합니다.”
“저건 무엇인가요?”
성녀가 내 뒤편을 가리켰다.
그곳엔 [가게 이용 규칙]이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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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점의 직원들에게 친절히 대해 주세요. 인간과 생김새가 다르더라도 모두 본점의 소중한 인적자본이고 사유재산입니다.
2. 본점에서는 원화뿐만 아니라 엔화, 달러화 등 해외 통화도 취급합니다.
3. 점내 흡연과 파라솔 흡연을 철저히 금지합니다.
4. 본점에는 구매 수량에 제한이 있습니다. 1인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의 개수는 한 사람이 ‘상식적으로’ 하루 안에 소모할 수 있는 정도로 한정됩니다. 상식의 기준은 본점의 점장에게 있습니다. (예시: 샌드위치 100개를 한꺼번에 구매할 수 없습니다)
5. 본점 인근 300m 내에서 일체의 물리적 분쟁을 금지합니다.
6. 해당 규칙을 어길 시 무제한적인 제재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7. 행복한 쇼핑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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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업용 스마일을 띄웠다.
“적힌 그대로 규칙입니다, 손님. 규칙만 제대로 지켜 주시면 본점은 언제나 손님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성녀의 얼굴은, 음.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한껏 경계심이 오른 고양이처럼 점내를 배회했다. 끝까지 내 눈치를 살피다가 어떤 코너에 다다른 순간, 성녀가 멈칫했다.
애완동물용 제품 코너였다.
“아. 물고기 모이…….”
“본점에선 세계가 멸망해 가는 가운데에도 반려동물을 포기하지 않는 손님들을 위해 특별히 애완동물 전용 코너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항에 유목, 여과재, 소일, 접착제, 수초, 유막 제거기에 여과기까지…….”
성녀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전문적……. 이거라면, 어항들 관리하는 게 훨씬…….”
“마음에 드십니까, 손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성녀가 편의점을 나갔다.
잠시 뒤, 그녀는 5만 원권 현금 뭉치를 바리바리 싸 들고 재입점했다. 그리고 홀린 듯이 장바구니에다 수족관 관리 용품들을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카운터석에서 성녀와 마주했다.
지름신이 강림한 눈빛이 그곳에 있었다.
“이거, 전부 주세요…….”
“감사합니다! 손님! 이 커피는 서비스입니다. 저희 가게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요. 주변에도 많이 홍보해 주십시오.”
“…네. 자주 올게요.”
단골손님 획득.
제대로 된 마케팅 수단이 전부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성녀를 단골손님으로 포섭했다는 것엔 어마어마한 이점이 있었다. 성좌들이 알아서 광고 에이전트 일을 해 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편의점에 방문하는 손님들 숫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담배 한 보루 사 가면 안 돼요? 네? 제발요!”
“여기 가게 오려고 충주에서 올라왔습니다.”
“사장님,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저희 부대에 협력만 해 주시면…….”
그야말로 대성황.
물론 손님들이 늘어난 만큼 손놈들도 늘어났다. 밸런스 조정을 위한 세상의 이치란 언제나 지엄했으므로.
“씨발, 여기 사장 새끼 나와!”
“예. 나왔습니다, 손님 새끼야.”
“어?”
손놈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나한테 개처럼 두들겨 맞았다.
욕심이 앞서서 지나치게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사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놈, 기어이 파라솔에 앉아서 담배 연기를 풀풀 발산하는 놈, 소주병을 까고 술판을 벌이는 것까진 상관없는데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싸움판까지 벌이는 놈 등등등.
그들은 모조리 형벌을 받았다.
“인터내셔널을 붕괴시키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이 심어 놓은 간첩 놈들! 너희들에겐 일말의 자비심도 허락되지 않는 거예요! 전원 굴라그 행인 거예요!”
“씨발……. 어째서 요정이…….”
“시끄러운 거예요! 반동들!”
264번의 감독 아래 손놈들은 한강 변을 청소하는 데 쓰였다. 덕분에 우리 편의점 주변만큼은 마치 혼자서 세계 멸망을 비끼어 간 것처럼 깨끗했다.
이쯤 되니 인터넷에서도 반응이 올라왔다.
-ㅇㅇ: 아니, 인터내셔널 점주 왜 이렇게 강하냐?
-ㅇㅇ: 어제 봤더니 각성자 6명이 한 번에 달려들어도 뭔 몇 초도 안 지나서 다 나가떨어지더라. 심지어 우리 길드장도 한 큐에 발렸다. 이게 편의점 점주야 소드마스터야? 그냥 얘가 최강 아니냐?
-ㅇㅇ: 그 사람 진짜 쎄더라.
-ㅇㅇ: 아직도 인터내셔널에서 난리치는 애들이 있다고? 미친놈들일세.
-ㅇㅇ: 거기 요정 소굴이잖아…….
-ㅇㅇ: 그런데 왜 요정들 거기서는 체 게바라 티셔츠 입고 다니는 거냐?
-ㅇㅇ: 모름.
-ㅇㅇ: 저번에 물어보니까 그게 걔네들 직원복이라던데.
-ㅇㅇ: 아니, 대체 왜 요정들이 체 게바라 티셔츠를 직원복으로 입고 일하는 거임?
-ㅇㅇ: 진짜 모름.
아, 참. 여기 사이트는 SG넷이 아니었다. 애당초 SG넷이란 이름 자체가 나의 아이디어였으니 말이다.
서규가 나 없이 홀로 활동할 때는 ‘헌터 커뮤니티’, 약칭 헌커라는 이름으로 사이트가 개설되더라. 회원제도 아니고 누구나 자유롭게 접속하여 익명으로 글을 쓰는 공간이었다.
그런 내 명성을 들었는지 가끔씩 편의점엔 사라는 물건은 안 사고 나를 보러 오는 각성자도 생겼다.
“본인은 화산파의 검수인 검후(劍侯)라고 하오. 국제점주의 고강한 무공에 대해선 익히 풍문으로 들었소이다. 한 수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소?”
“…….”
무협지를 너무 많이 읽어 버린 나머지 맛이 가 버려서 몬스터를 요귀라 부르며 각성자를 무인이라 부르고 점원을 점소이라 칭하는, 미친 컨셉종자 60대 노인이라든지.
이 노인에 대해선 언젠가 또 얘기할 기회가 올 것이다. 내가 90회차가 아니라 다른 휴가 회차 때 함께 돌아다닌 양반이라서.
어쨌거나 제6인터내셔널은 성공했다.
게이트가 터져서 황량하기만 했던 한강 변으로 군소 길드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고, 더러는 길드에 가입하지 않은 채 꿋꿋이 외로운 늑대 놀이를 하던 각성자들까지 주변에 터를 잡았다.
이른바 편세권이 형성된 것이었다.
세계가 멸망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현재 한국에서 편세권은 단 한 곳. 어쩌면 지구에서 유일무이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12년 정도가 흘렀다.
4
어느 날.
“점장 씨도 대단한 사람이네.”
계산대에서 손님이 말했다. 길드원들을 통째로 데려와 편의점 앞마당에서 회식하도록 한 길드장이었다.
한국에서 양대산맥 중 하나로 대접받는 초대형 길드. 삼천(三千). 나와도 꽤나 인연이 깊은 집단이라 할 수 있었다.
삼천 길드의 특징 중 하나인 고깔모자를 뒤집어쓴 채 그쪽 길드장이 싱글벙글거렸다.
“뭐가 말입니까?”
“여기만 오면 세계가 이 모양이 되었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져. 더 이상 어디에서도 지폐 따윈 취급해 주지 않는데. 그거 알아? 오늘 감자칩을 사려는데 가격이 3,500원이 넘는 걸 보고 순간 움찔하더라. 이 가격이 맞나 싶어서.”
그녀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살짝 열린 유리문 너머로 멀리서 각성자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런 고민을 아직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쁘지 않았어.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도대체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손님.”
“참. 그리고 점장 씨의 가게 덕분에 이 주변은 치안이 비교적 안전하잖아. 우리끼리 점장 씨네 가게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편의점?”
“아니, 경찰서. 무슨 분쟁 생겨도 이 가게만 오면 적당히 해결되니까. 아무리 머리에 피가 올라도 체 게바라 티셔츠 입고 새마을 모자 쓴 요정들을 보면 어이가 없어서라도 차분해지지 않겠어?”
“음.”
서규는 안 그럴 것 같은데.
부산역 대합실에서도 항상 이 씨발 새끼야 소리부터 나가는 녀석이니까.
“아무튼……. 우리 길드는 어제 열린 게이트를 봉합하러 출전하려고. 결행일은 내일모레 1100시. 혹시 점장 씨도 생각 있으면 말해 줘. 부길드장 자리까진 줄게. 우리 길드가 외부에 좀 폐쇄적이긴 한데 그래도 실력자는 언제나 환영이야.”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직접적인 싸움엔 개입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 역시 그렇구나.”
“손님도 너무 무리해서 싸우진 마십시오.”
“뭐래.”
삼천 길드장이 피식 웃으면서 돈가방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회식비겠지.
264번 요정에게 돈가방을 건네주었더니 삼천 길드장이 천 원권 지폐를 한 장 더 꺼내었다. 그리고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이게 놀랍게도 파란색 천 원권이 아니라 붉은색 천 원권이었다. 요즘 세상에선 없어서 못 구하는 지폐.
“손님, 이건……?”
“팁.”
삼천 길드장이 키득거렸다.
“거기 뒷면에다 내 싸인 적어 놨어.”
지폐를 뒤집어 보았다.
[이 집 커피 맛집이네요. 三千世界, 당서린]붓펜으로 쓴 건지 글씨가 아주 달필이었다. 정식으로 서예를 배운 티가 났다.
그녀가 붓펜으로 뭔가를 적는 것은 아주 기분이 좋을 때가 아니고서야 드문 일이었기에 내심 놀랐다.
“귀한 물건이군요.”
“왜, 맛집 가면 연예인들 싸인 걸어 놓고 그러잖아. 점장 씨도 그럴 마음 생기면 내 지폐나 전시해 둬. 나 스스로 연예인 행세하는 거 같아서 겸연쩍긴 하지만……. 어차피 한국에 남은 각성자도 얼마 없으니까. 이만하면 유명인 맞겠지?”
삼천 길드장이 걸어갔다.
등 뒤로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바이바이- 게이트 닫고 또 올 테니까 그때는 아포가토 서비스 부탁해. 점장 씨.”
며칠 뒤, 모처럼 준비해 놓은 커피 원두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쓰일 일은 없었다. 삼천 길드는 게이트 공략에 실패했고, 길드원 301명은 전원 사망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