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18)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18화(1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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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자 Ⅰ
신노아
1
삼천세계 길드장 당서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눈에 독기가 살아 있네.”
“…….”
“당신이 그거라면서? 부산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맨날 사람들한테 이상한 질문만 하고 다닌다는 기인.”
당서린과 최초로 만난 것은 4회차.
안타깝게도 이 당시 나는 아직 [완전 기억 능력]을 터득하지 못했다. 그 능력을 터득한 것은 5회차였다.
그렇기에 내가 추억하는 당서린과의 첫 만남엔 약간의 오차가 있을런지 모르겠다. 아니, 인정하기 싫을 뿐이지 분명히 오류가 있을 것이다.
벌써 천 년도 넘게 흘러 버린 과거 아니던가.
“이름이?”
“…장의사. 이명이다.”
“사람을 묻고 다니는 사람이란 거야? 나쁘지 않네. 사람의 깊이란 건 자기 심장에 시체를 몇 구나 파묻어 두었느냐에 달렸지.”
어쩌면 당서린은 ‘눈에 독기가 살아 있네’가 아니라 ‘눈에 총기가 살아 있네’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당신’이 아니라 ‘너’라고 호칭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비가 내렸을 수도 있고 내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다만 내 심장에서 흐르는 물소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분위기, 공기의 윤곽만큼은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지금 눈앞에서 떠돌아다니는 산소로만 숨을 쉬는 게 아니라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의 공기에서도 호흡해야 되기 때문에.
“어때? 우리 길드에 가입하지 않을래?”
“길드 이름이 뭐지?”
“삼천세계. 줄여서 삼천. 언젠가 정말로 삼천 명의 각성자를 모집하겠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포부야. 장의사. 나를 도와줘. 십족을 토벌하는 데 당신의 힘이 필요해.”
내 호흡에서 어느 정도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손을 내밀었다.
당시의 나에겐 그 손을 잡지 않을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아, 그런데 우리 길드에 가입한 사람은 누구든 장소 불문하고 고깔모자를 써야 돼.”
“…고깔모자?”
“응. 그 왜, 동화에서 마녀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 있잖아? 그게 우리 길드 심볼이거든. 빗자루 지팡이도 들고 다녀야 해. 점심 아직 안 먹었지? 나만 아는 맛집 있는데 가입 기념으로 데려가 줄게.”
“가입을 철회하겠다.”
철회할 수 없었다.
나중에 빗자루를 지팡이칼로 바꾼 것이 최선이었다.
당서린은 영악했고 고집이 강했다. 그리고 지역 맛집에 정통했다. 사람들은 그런 당서린을 기차역의 마녀, 주가영창의 창시자, 고독한 미식가라고 불렀다.
…잘 생각해 보면 마지막 별명은 나 혼자서만 불렀던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제일 자주 쓴 호칭은 따로 있었지만 말이다.
무엇을 숨기겠는가?
한때 그녀는 나의 길드장이었다.
2
지금 와서는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과거의 일이겠다만, 내 회귀 인생의 극초반―― 그러니까 10회차 이전까진 마치 통곡의 벽처럼 한국 각성자들을 가로막던 보스 몬스터가 있었다.
“잠깐만. 저건 뭐야?”
“어, 어어……. 이쪽으로 온다!”
십족(十足).
후일 도서관학회라는 위키 집단에서 제정한 괴이 분류법에 따르면 도시급(Polis) 위험도. 식별명 ‘기어 다니는 새끼 크툴루’.
“미친! 뭐가 저렇게 빨라?”
“크툴루다! 크툴루야!”
“그게 뭔 씹……. 경계경보! 경계경보부터 울려, 새끼야!”
십족이 어쩌다 십족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그 어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리는 없고 웬 사람의 팔처럼 생긴 것이 수십, 수백 개의 촉수처럼 꿈틀거려서 십족이라 불렸다는 썰이 제일 유력했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저 씨발 좆 같은’이 어쩌다 와전되어서 씹족이라고 안착하였다는 썰을 지지하고 있다.
그만큼 한반도 최초의 보스 몬스터 십족은 우리에게 크나큰 절망을 안겨 주었다.
“저걸 잡아야 한강 이남을 수복해서, 이중으로 분리되어 버린 전선을 휴전선으로 밀어 버릴 수 있어.”
당서린은 절망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절망한 각성자들을 규합하여 길드 연합을 꾸린 다음 연합의 맹주로 추대되었다.
이른바 반십족연합군이라고 할까.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반동탁연합군과 다른 점이라면 원소 본초와 달리 당서린은 지극히 유능한 맹주였다는 것이다.
“장의사. 당신은 전선에서 다른 길드의 정예들을 이끌고 최대한 오랫동안 십족의 움직임을 막아.”
“알겠습니다.”
쇼 노인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는 그가 무투파를 이끌었으나 이전까진 아쉬운 대로 내가 최전선을 담당했다. 당시 각성자들의 수준이 얼마나 허접스러웠는지 짐작되는 대목이었다.
아, 참고로 삼천의 길드원이던 시절엔 당연히 당서린에게 존댓말을 썼다.
“어제 부관이 죽어서 저도 좀 후달립니다……. 해 봐야지요. 몇 분을 버텨 드리면 되겠습니까?”
“어떻게든 30분만 버텨 줘. 내가 대마법을 구축해서 결사대를 백업할게.”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일이로군요.”
쉽지 않았다.
-그҉오҈҈҈҉위҉우҉҈҈그҈҉오!
십족이 울부짖었다.
정확히 교전이 시작된 지 2분 만에 십족의 촉수질에 내 대가리는 구멍을 하나 더 뚫고야 말았다. 뭘 어쩌겠는가? 뇌 한복판에 경부고속도로가 깔리면 제아무리 회귀자여도 곱게 뒈질 수밖에.
그나마 2분 버틴 내가 용했다. 다른 각성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통들이 추수되었다. 가을철 농부들이 보았다면 군침을 흘릴 법한 낫질 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나마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당서린과 함께 벼머리가 되었다.
4회차 끝.
5회차 스타트.
“장의사. 당신은 전선에서 다른 길드의 정예들을 이끌고 최대한 오랫동안 십족의 움직임을 막아.”
“존나게 어렵습니다.”
나는 길드장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대신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당서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려워?”
“예.”
“지금 우리가 확보해 놓은 연합 전력에 네가 더해지면 충분히 지연전은 펼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데이터에 잘못된 부분이 있어?”
“데이터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십족 그 새끼, 자기 힘을 숨기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 건지 통탄스러웠다. 힘숨찐 메타는 회귀자인 내가 해야 되는데, 개 같은 보스몹이 하고 앉았다니.
“평소에 꺼내놓고 다니는 다리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체내에서 언제든 또 다른 다리가 촉수처럼 튀어나올 수 있더군요. 솔직히 30분은커녕 5분도 버티기 힘듭니다.”
“…부길드장.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공략 자체를 포기해야 할 수준이잖아?”
“예. 포기합시다.”
“응. 그러자. 부산으로 도망치면 적당할까?”
“좋군요. 전통과 신뢰의 피난처 아닙니까.”
“맛집 많겠지?”
우리는 부산으로 회군했다. 어느 지역에 가나 맛집부터 찾는 당서린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기엔 충분한 지역이었다. 애당초 우리 길드 본진이기도 했고.
문제는 십족이 게이트 붙박이가 아니라 마음대로 필드를 돌아다니는 참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사실이었다. 당서린 못지않게 이 새끼도 각 지역을 순회하며 맛집을 찾아다녔다. 메뉴는 인육 고기 하나로 고정됐지만.
십족은 서울을 초토화시킨 뒤 온 국토를 지그재그로 닦아 가며, 자신 역시 충분히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에 출연해도 될 만한 인재임을 과시했다.
애당초 이 녀석은 ‘사람이 밀집되어 있는 구역’만을 찾아다닌다. 아마 인간의 생명을 느끼는 6감이라도 장착된 모양이지. 덕분에 한반도의 도시들은 초토화, 십족은 그동안 어느 정치인도 성공하지 못했던 지방분권을 이룩했다.
거기까지 걸린 세월이 불과 5년.
-구҉로҉҈҈오҉҉위҉҈҈우҉오҉!
십족이 울부짖었다.
“이런 씨발.”
우리는 낙동강에서 최종 방어라인을 펼쳤다가 사이좋게 각성자 꼬치구이가 되어 버렸다.
설령 토벌을 포기해 봤자 십족이 건재한 이상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에 불과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5회차 끝.
6회차 스타트.
‘이거……. 혹시 답이 없는 거 아닌가?’
5회차는 십족한테 전멸당하고 쫑났으나 내 회귀자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가졌다. 바로 이때 [완전 기억 능력]을 습득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내가 무슨 고민에 잠겼는지, 언제 누구와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똑똑히 기억했다.
“부길드장님. 혹시 지금 시간 되십니까?”
“음? 왜 그러냐?”
세상이 인류를 억까하나 싶어 고심에 잠겼을 무렵, 도저히 보이지 않던 돌파구를 열어젖힌 것은 세상의 억빠였다.
“부길드장님 보러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은발이 예쁜 길드원이 KTX 열차의 통로문을 열고 내게 말했다.
유지원이라는 애로 5회차부터 발탁하여 내 부관으로 써먹은 인재였다. 얘가 아주 골 때리는 싸이코패스인데 그건 나중에 언급하자.
“외부 손님? 어디에 있는데?”
“저희 기차역 플랫폼까지 왔습니다.”
“아니, 보안팀은 뭐하고?”
“말리려고 했는데 이 손님이 워낙 강해서 제대로 말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플랫폼에 대기시켜 둔 게 최선이었다는군요.”
“흠.”
왜 우리가 KTX 기차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느냐면, 어……. 삼천세계 길드의 본거지는 항상 열차였거든.
딱히 나를 포함한 삼천 길드원들이 이젠 움직일 수도 없는 고철 덩어리에서 형이상학적 아름다움을 느끼는 철도 오타쿠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건 전적으로 우리들의 보스, 당서린 각하의 취향이었다.
당서린에겐 길드를 끌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마다 그 동네에서 가장 상태가 멀쩡한 명품 기차를 본거지 아지트로 삼아 버리는 기이한 습성이 있었다.
본인 말로는 ‘역시 마녀라면 기차에서 지내는 편이 낭만 있지 않아?’라던가.
고깔모자를 쓰고 다니는 점에서 알 수 있겠지만 얘도 정신세계가 정상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손님 이름이 뭐라냐?”
“예, 이름이……. 에밉……. 쇼펜하워? 아, 쇼펜하우어.”
지지직.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소음을 듣고 내 부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일인 같다고 합니다만?”
3
에미트 쇼펜하우어.
소드마스터. 검성(劍星).
수많은 별칭을 두르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몬스터 대가리를 칼질한 각성자.
그렇지만 나에겐 단지 쇼 노인이라 불릴 뿐인 남자.
“음……. 헬로?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
쇼 노인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첫인상은 솔직히 ‘거참 성격 더러워 보이네’였다.
아직은 6회차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
아내를 따라 한국으로 왔다가 졸지에 게이트 사태에 휘말려 버린 독일 노인은 한국어를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드문드문 영어와 보디랭귀지, 스마트폰 번역기를 돌려 써 가며 의사소통을 시도했다.
내가 영어만 잘했더라도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아쉽게도 난 언어에 재능이 전무했다.
“퍽킹 몬스터.”
“퍽킹 몬스터……. 혹시 십족? 십족을 말하는 겁니까? 러커? 촉수? 막 벌렁벌렁?”
“예스.”
“어. 쏘리,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쉬.”
“…….”
쇼 노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무척 답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다르다. 작전.”
“……?”
“너는 옛날에 죽었다. 여기서.”
KTX 식당칸. 길드 응접실로도 사용하고 있는 이곳의 테이블엔 대한민국 전도가 펼쳐져 있었다.
툭. 그중 한복판을 쇼 노인이 손가락으로 짚었다.
서울에서 과천으로 이어지는 라인. 4회차에 뭣도 모르고 십족을 조지려 들다가 역으로 조져진 장소였다.
“그런데 안 죽었다.”
스르륵.
쇼 노인의 손가락이 아래로 향했다. 검지가 멈춘 곳은 정확히 낙동강을 가리키고 있었다.
“……!”
“5년. 너무 큰 차이.”
쇼 노인의 회색빛 시선이 내게 똑바로 향했다.
혹시. 아니, 설마?
심장이 울렁거렸다.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우리는 한참이나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심장의 유속이 서로 똑같은 속도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았다.
노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리턴?”
내가 아무리 막귀였다지만 저 질문의 의도를 알아듣지 못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탁자에 숫자를 그렸다.
6.
노인이 그제야 인상이 풀리면서 씨익 웃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삶을 반복한 숫자였다.
내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배려하기 위해서였는지 쇼 노인의 문장은 길지 않았다. 짧은 소리에 강한 감정을 담는 법을 독일의 늙은 검사는 알고 있었다.
“마이 프렌드.”
쇼 노인이 합류하면서 전장의 양상은 일변했다.
괜히 내가 역대 각성자들 가운데 제일 무력이 강력한 사람을 꼽으라면 항상 쇼 노인을 거론하는 게 아니었다.
물로켓이 아니라, 1000회차가 넘은 지금 와서 평가해라 시켜 봐도 쇼 노인의 포텐셜은 미친 수준이 맞았다.
“이 사람을 최전선에 세워야 한다고? 확실해?”
“예, 길드장님. 확실합니다.”
“흐응. 외모만 놓고 보면 그렇게까지 신뢰가 안 가는데. 부길드장이 확실하다고까지 말할 정도라면 뭐……. 그래도 실력 테스트는 한번 해 봐야겠지?”
“물론입니다.”
50분 뒤.
“당장 이 사람을 이번 공략의 핵심 자원으로 삼을게.”
다시 말하지만 당서린은 유능한 맹주였다.
삼천 길드에서 내로라하는 각성자들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난장판 한가운데서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예 통역관까지 구해다가 쇼 노인의 옆에 심었다.
“통역관. 혹시 고깔모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봐 줄래?”
통역관이 쇼 노인과 담화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분은 길드 가입에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혼자 다니는 편을 선호한다는군요.”
“그래? 아쉽네. 그런데 방금 알로호모라라고 말하지 않았어? 내가 잘못 들었나?”
“아, 뭔가 이분 딴에는 조크를 하신 것 같은데 제가 못 알아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
“그럴 수도 있지. 부길드장, 이 근처에 순대국밥 맛집 있지 않던가? 독일인도 국밥 좋아하려나.”
“순무만 아니면 다 잘 먹지 않을까요?”
나는 보았다. 옆에서 통역관이 희미하게 웃는 모습을.
그는 현명한 인간이었다.
이때는 독일어를 몰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실제 쇼 노인의 발언은 “그게 뭔 병신 같은 소리냐? 뭐, 너희가 쓰고 다니는 그 해리포터 짝퉁 모자? 좀만 더 있으면 아예 부엉이까지 기르라고 지랄하겠군. 알로호모라다, 머저리야! 우리 집 개도 그런 건 안 쓴다고 전해.”였거든.
참고로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한다.
내가 7회차부터 삼천 길드에 가입하지 않고 쇼 노인과 따로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엔 사실 저놈의 고깔모자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했다. 그 패션……. 아니, 패션조차 아니지. 마녀 코스프레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당서린 정도밖에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당서린은 마녀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마녀를 자칭하는 대마법사이자 다중 능력 각성자였으니까.
“장의사. 검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25분……. 아니, 30분만 버텨 줘.”
한강 이남. 무수한 민간인이 영문도 모른 채 일순에 증발해 버린 저주의 땅.
그곳에서 쇼 노인과 나, 삼천 길드장 당서린을 비롯하여 총 천오백 명의 각성자가 집결했다. 군부대와 민간지원자들까지 셈하면 더욱 많았다.
한국에서 끌어다 쓸 수 있는 거의 모든 전력이 집중된 전쟁터, 그 최전선에 우리는 서 있었다.
-그҉어҉으҉우҉오҉!
이제는 익숙해진 포효가 울려 퍼졌다.
멀리서 십족의 거대한 본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평선이 진동했다. 폐허가 되어 버린 빌딩들이 녀석의 몸부림을 버티지 못하고 수수깡처럼 꺾여 무너졌다.
“25분. 버틸 수 있겠어?”
“어렵습니다.”
공략대를 대표해서 내가 말했다.
이전 회차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이 말에 한마디를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할 만하군요.”
당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나고 나면 우리 맛집이나 찾아서 가 보자. 참. 그런데 서울은 지역을 대표하는 메뉴가 뭐니? 좀 향토적인 거로다가.”
“글쎄요. 딱히 유명한 건 없을걸요.”
“그래?”
흠, 하고 당서린이 지평선을 쳐다보았다.
인간의 팔을 닮은 촉수들이 무수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늘 이후부터는 문어회가 되겠네.”
“아, 문어숙회 나쁘지 않죠.”
“그래. 총원 전투배치. 오늘 우리는 서울을 탈환한다.”
전투 돌입.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