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21)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21화(2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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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Ⅰ
신노아
1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었으니 이제 다시 분위기를 풀어 볼 타이밍이 되었다.
애당초 회귀 극초반부, 그러니까 20회차 이전의 나는 지나치게 진지했다. 이게 전부 ‘나만 제대로 정신 차리고 노력하면 분명 세계를 구할 수 있다’라고 믿은 탓이었다.
그 노력을 폄하할 생각까진 없다. 하지만 다소 오만했다. 지가 뭔데 세계의 무게와 자신의 무게를 동급으로 취급하지?
무한 회귀? 그거 그냥 각성 능력이야.
사람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내려놓아진 무게만큼 도리어 타인을 받아들일 여유분이 생기거든.
어쨌거나, 나의 ‘내려놓는 방법’은 ‘취미’다.
장담컨대 나만큼 다양한 취미를 가진 회귀자도 없을 거다.
자고로 회귀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멘탈 관리고, 취미는 멘탈이란 이름의 자택을 청소해 주는 살림꾼과 같다.
회귀자의 정신세계란 평수로 따지면 수천 평이 넘어가는 초호화 대귀족 전용 대궁전. 당연히 ‘청소’에 필요한 메이드들의 숫자도 좀 많을 수밖에 없지.
내가 고용한 메이드들의 직책, 요컨대 취미의 종류를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게임, SG넷 탐방, 바리스타, 쇠질, 요정 괴롭히기, 서규 갈구기, 요리, 산책, 음악 듣기, 음악 하기, 당서린 고깔모자 훔쳐서 몰래 침대 아래에 숨겨 놓기, 기타, 서규 갈구기, 바이올린, 피아노, 그림, 조각, 도자기, 라디오 수집, 쇼 노인 핸드폰 녹음파일 훔쳐 듣기, 목장 운영, 서규 갈구기, 아무 직업이나 선택해서 그 직업으로 살아 보기…….]하지만 저 모든 메이드들을 일일이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취미에 대해 떠드는 것만큼 지루한 일은 없을 터.
고로 내가 오늘 선정한 메이드의 이름은 ‘독서’.
그중에서도 ‘웹소설 읽기’ 되시겠다.
2
본래 나는 웹소설을 전혀 몰랐다.
어릴 때 무협지만 몇 권 읽어 봤을 뿐, 웹소설이란 장르를 알게 된 시기는 555회차 무렵이었다.
바로 555회차 때 인연을 맺은 사람에 의해 내가 웹소설에 입문했거든.
이 사람은 오독서라는 이름의 각성자였다. 얘에 대해선 바로 다음 에피소드에 말할 기회가 올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새로운 취미를 얻었으며 덕분에 행복해졌다는 사실뿐.
웹소설은 무엇보다 작품 하나하나의 분량이 많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자고로 독서란 마음의 양식이라 했다. 그리고 나는 밥을 먹을 때 질보다 양을 매우 중요시하는 스타일이었다.
적어도 이 웹소설이란 장르의 식당에서 내가 먹을 사료가 부족해질 걱정은 없는 듯했다.
물론 개 같은 착각이었다.
“볼 소설이… 없어?”
본인은 충격에 빠졌다.
폭식과 만찬을 만끽한 것은 고작 556회차까지. 그러니까 겨우 1회차~2회차 만에 내가 먹을 사료는 전부 떨어져 버렸다. 사실 웹소설은 비교적 새로 생긴 문화였으며 의외로 수량이 적었던 것이다.
“어. 음. 슬슬 다른 장르라도 파 봐야 되나……?”
목마른 사람은 우물을 가리지 않는 법.
처음엔 판타지 소설만 읽었던 내가 아카데미물, 괴담물, 로판, 무협, 이세계물, 전문가물, 패러디, TS물, 백합 등등 장르 불문하고 아무튼 간에 세종대왕님의 발명품으로 적힌 텍스트라면 뭐든지 퍼먹었다. 심지어 그걸로도 부족해서 알파벳과 일본어까지 받아들였다.
신세계가 열렸다.
행복했다.
558회차가 끝났다.
신세계가 멸망했다.
“볼 소설이… 없어?”
나는 다시 충격에 빠졌다.
이젠 정말로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어서 먹을 게 없었다.
본인의 입맛은 결코 까다롭지 않았다.
쌍따옴표(“”)를 리버스-쌍따옴표(”“)로 과감하게 대체해 버린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소설도 잘만 먹었다.
대사문 안에서 마침표를 생략해 버리는 미니멀리즘의 걸작도 먹었으며, 캐릭터의 개성 있는 목소리를 물결표(~)로 표현하거나 캐릭터의 침묵을 점점(..)으로 표현하고자 시도하는 신세대 음성학자들의 명작까지 먹었다.
원작 소설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리캐가 패러디에 튀어나와 본래 주인공이 가졌어야 할 기연들을 지 혼자 다 처먹은 주제에 주인공 보고 ‘저 녀석, 어째서 원작이랑 다르게 저렇게 허약해진 거지? (갸웃)’함으로써 현대인들의 이기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 풍자 소설마저 먹었을뿐더러.
소설 내의 웃음소리가 ‘호호’로 고정되어 모든 캐릭터들이 호호 증후군에 걸려 버린 전염병 연구자의 작품 또한 먹어 버렸다.
요컨대.
”흠~ 이상하다.. 주인공이 원래 저렇게.. 약했던가? 호! 호! 호“
라고 문장이 적힌 괴문서조차 본인은 기꺼이 일용할 양식으로 수용했던 것이다.
아아――.
이제부터 나를 각성자 장의사가 아니라 웹소설계의 잠수부라 불러도 좋다. 왜냐면 사실이니까.
여기가 나의 밑바닥, 나의 심해, 나의 마리아나 해구였다. 이것보다 더 아래의 수심으로 내려가게 되면 먹을거리를 찾는다 뭐한다 거론하기 이전에 아예 숨부터 안 쉬어졌다.
잔뼈 굵은 회귀자인 나조차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마경(魔境)!
그러므로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볼 소설이… 없다.”
나 말고도 수많은 독자들이 이것과 똑같은 상황에 언젠가는 마주치게 된다.
이때 독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보통 두 갈래로 나눠진다. 당분간 웹소설을 쉬기로 결심하거나 아니면 본인이 직접 사료를 제작하는 작가로 전직하거나.
우연찮게도 나는 ‘보통’ 독자가 아니었다.
본인은 무한 회귀자였다.
회귀자에겐 세 번째 길이 있었다.
“작가들을 모조리 납치해다가 글만 싸는 기계로 만들어야겠군.”
나는 가슴을 펼쳤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그렇지만 모든 독자가 한 번쯤 꿈꿔 봤을 길.
그 길을 향해 나 장의사가 당당하게 발을 내디뎠다.
3
한 회차 동안 웹소설 작가들의 신상정보 및 정보를 수집했고, 다음 회차가 시작되자마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작가들을 수집했다.
물론 작가들은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볼을 던진다고 해서 잡히는 괴생명체가 아니었으므로 일일이 수작업으로 컬렉션에 넣는 과정이 필요했다.
작가 감수성에 민감한 이라면 ‘그건 수집이 아니라 납치 아닌가?’ 하고 소소하게 이의를 제기했으리라.
그렇지만 560회차 무렵의 나는 좀 강했다. 저 험난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보다야 회귀자인 내 보호 아래 사육당하는 것이 더욱 행복하지 않을까?
마침내 나는 삼백 명이 넘는 작가들을 수집하는 데 성공. 작가몬 마스터에 등극했다. 작가들은 자신들이 누구한테, 어째서, 어디로 끌려왔는지도 몰랐을 거다.
“여기 어디야?”
“저기……. 혹시…….”
“어, 필력양아치 님? 필력양아치 님 아니세요?”
“아, 역시. 글쓰는노예 님이시구나. 지난번 그, 결혼식 때 잠깐 뵈었죠?”
“백합난입충아! 너도 여기 왔구나!”
“헉, 하렘순애 형!”
웅성웅성-
수백 명의 작가를 호텔 로비에 한꺼번에 모아 놨더니 역시 서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공포를 숨기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런데 우린 대체 왜 끌려온 거래?”
“누구 설명 들은 사람 없습니까?”
“죄송해요. 저도 갑자기 기절한 다음 깨어나 보니 여기여서……. 벌써 사흘이나 있었어요.”
“사흘이나요?”
“아, 전 나흘 됐어요.”
“와아. 너무 힘드셨겠다.”
“네? 아뇨? 영양 골고루 섞인 밥 아침점심저녁으로 차려 주고 잠자리는 편하고 매일 연재도 안 해서 너무 좋았는데요.”
“……?”
“……?”
슬슬 설명을 해 줄 시간이로군.
“아, 아. 들리십니까-?”
나는 마이크를 잡고 체크인 카운터에 올라섰다. 수백 명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였다.
사실 확성 마법을 써서 목소리를 키웠을 뿐 마이크는 장식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왠지 작가님들 앞에 서자니까 예의를 차려야 할 것 같더라.
저래 봬도 이 호텔에 납치된 335명은 엄선하고 또 엄선해서 뽑은 존잘들이었다. 장르 불문, 남녀노소 불문, 나 장의사의 심장을 단 한 번이라도 뛰게 만든 작가들만이 이곳에 모였다.
“안녕하십니까. 본인은 장의사라는 이명을 가진 각성자입니다. 이미 짐작하신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만, 여기 모인 여러분은 모두 웹소설 업계에 발을 담그고 계신 작가님들입니다.”
술렁술렁.
“작가들만?”
“여긴 어디예요?”
“작가들밖에 없다면 여기가 지옥일 텐데.”
“거기, 마이크 잡으신 분은 정체가 뭡니까!”
나는 진중하게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장의사라는 이명의 각성자 되겠습니다. 이곳은 인천 근방의 호텔입니다. 서울에 사달이 일어나면서 기존의 직원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본인은 이미 새로이 직원들을 채용했으며 이들은 모두 고도로 훈련받은 프로페셔널입니다.”
나는 로비 저편을 가리켰다.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요정 스무 명이 척, 경례했다. 나 또한 답례로 경례했다.
한때 나는 요정과 적대하였으나 560회차 무렵엔 [요정 혁명 동아리]와 매우 양호한 관계를 수립하고 있었다. 얘네들의 정체가 뭔지도 잘 알았고.
“사정이 그러하오니 부디 안심해 주시길.”
“미친! 요정이잖아?!”
“꺄아아아악! 사람 살려!”
작가들은 별로 안심하지 못했다.
약간의 소동과 소란이 벌어졌으나 아무런 문제 없이 제압했다. 작가들 중 99%는 거시 세계에서 물리적 이벤트를 일으키기엔 지나치게 미소한 존재들이었다.
나는 다시금 마이크를 잡았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안타깝지만 여러분은 도망칠 수 없습니다. 호텔 정문은 폐쇄되었습니다. 각 방의 창문들은 열어서 저편을 볼 수는 있어도 건너갈 순 없습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말입니다.”
“우리를 풀어 줘!”
“여러분은 풀려날 수 없습니다. 고도로 훈련받은 요정 혁명대원들이 24시간 여러분을 감시할 것입니다.”
“미친…….”
“저 사람 뭐야? 무서워…….”
“여러분. 이것부터 여쭙겠습니다. 설령 풀려날 수 있다 하더라도, 정말로 여기서 나가실 생각입니까?”
작가들의 머리 위로 ‘?’ 하고 물음표가 떠오른 듯했다. 나는 바로 그들의 의문을 풀어 주기로 했다.
“뉴스를 접하셔서 아시겠지만 세상은 절찬리에 멸망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 몬스터가 출현했고 게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께선 심히 좆 되셨습니다.”
“어…….”
“여러분의 밥줄인 소설 플랫폼들은 접속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설령 접속되더라도 독자들은 여러분의 글을 구매할 수 없습니다. 은행 시스템이 날아가고 있으니까요. 조만간 인터넷 네트워크도 다 절단 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의 필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진실은 통하는 법.
작가들의 안색이 본격적으로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야 여기엔 ‘육체노동 안 하고 그냥 혼자서 글만 쓰는데도 돈이 벌린다고? 개꿀’ 하는 마음가짐으로 작가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이제 개꿀은 다 사라진 것이었다.
“설령 여러분이 계속 글을 써서 발표한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겐 0.06%의 확률로 [환생 트럭]이 나타나거든요. 이 시대에 소설은 흉기 그 자체나 다름없습니다.”
“환생 트럭……?”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인가 봐.”
내가 헛소리를 지껄였다고 생각했는지 작가들이 수군거렸다.
음. 아닌데. ‘환생 트럭’은 정말로 존재하는 괴이인데.
119회차에 최초로 발견된 다음부터 목격 빈도가 급속하게 늘어난 놈이다.
뭐, 내가 이 호텔에 발라 놓은 방호벽으로는 트럭이 수천 대 몰려와도 절대 뚫리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럼……. 저희를 왜 데려오신 거예요……?”
“제가 여러분의 열렬한 애독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맨 앞줄의 작가 한 명을 가리켰다.
“거기.”
“네, 네엡?”
“배드엔딩애호가 님이시죠? 노벨캠퍼스에서 항상 백합물만 쓰시는.”
내게 지목당한 작가가 깜짝 놀랐다.
“저, 저를 어떻게… 아세요……?”
“팬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 감사한 말씀이지만. 저기. 제 소설을 그쪽이 읽으셨을 리가 없는데요……. 저 가장 잘나간 작품도 선호작 2000에 최신화 조회수는 겨우 100이구…….”
“작가님의 첫 작은 주인공이 세상의 모든 억까란 억까는 전부 당하고 다니는 피폐물이었지요. 하지만 다음 작부터는 노맨스 노선을 접목하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선 피폐물의 묘미와 노맨스의 견고함을 양립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극후반부에 가면 갑자기 조연이 급발진을 박아서 주인공과 커플이 되어 버리는 순애 엔딩으로 끝나 버립니다만, 그 투박함조차 배드엔딩애호가 님의 매력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진짜로 읽으셨잖아……?”
작가들이 경악했다.
나는 다음 타자들을 차례차례 지목했다.
“여천마는정통무협 님. 요즘 시대에 진중한 문체로 묵묵히 정통무협을 쓰시는 분입니다. 천마가 천박한 농담이 되어 버린 시대에 작가님께서 논하시는 협과 의는 언제나 제 마음을 울립니다.”
“누렁이밥상 님. 소재란 소재는 전부 고갈되어 가는 로판 시장에서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하시는…….”
“말박이조아 님. 한때 고인물 장르라 불렸던 대역물의 지평을 넓히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셨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1차 세계대전 배경의 헝가리 귀족으로 태어나서 최후의 기병대장이 되어 합스부르크 가문의 충신으로 칭송받는 소설이라니. 어마어마하게 희귀하면서도 동시에 재미까지 놓치지 않은…….”
그렇게 서른 명쯤 나열하였을 때.
내가 일일이 작품을 거론한 작가들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감동치고는 어째 필명이 불릴 때마다 얼굴이 상당히 붉어졌는데, 어쨌든 이제 호텔 로비에서 내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깐만.”
다만 엉뚱한 방향으로 의심이 흘렀다.
작가들이 소곤거렸다. 모기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강화된 내 청각에는 다 들렸다.
“그럼 저 독자님은 백합도 먹고 TS물도 먹고 순애도 먹고 하렘도 먹고 정통무협도 먹고 퓨전무협도 먹고 피폐도 먹고 약피폐도 먹고 정판도 먹고 메리수도 먹고 그 외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차마 언급할 수 없는 장르들까지 다 먹는다는 거 아닙니까……?”
“히익, 괴물……!”
“세상에. 뭐 저런 막입이 다 있어?”
“김독자가 아니라 김누렁이였네…….”
어허. 이 작가님들이 귀한 독자를 음해하네.
회귀자로서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 군것질을 피했을 뿐이었다. 내 취향은 무척 건전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오늘은 생략하겠습니다.”
“오늘‘은’……?”
“무엇보다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자기 장르가 발각되길 원치 않는 작가님들도 계시겠지요.”
몇몇 작가들이 움찔거렸다.
“그분들은 언젠가 따로 한번 모시겠습니다. 아무튼, 작가님들. 잘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물론 여러분을 납치해서 이곳에 감금시킨 장본인입니다만 이불 바깥 세상은 위험합니다. 실시간으로 망가져 가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로비가 조용해졌다.
실제로 내가 데려오지 않는 회차에서 이중 절반은 6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다. 나머지 절반은 1년 안에 사망했고. 기껏해야 두 명 정도만 비교적 오래 살아남았지.
“여기선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식주, 모든 것은 본인이 제공할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요정들조차 이곳 호텔에선 직원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하셔야 할 일은 단 하나. 바로 소설을 쓰시는 것입니다.”
“…….”
“기존에 연재하던 소설을 이어서 쓰셔도 좋고 차기작을 쓰셔도 좋습니다. 글만 쓰십시오. 대신, 다른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작가들이 술렁거렸다.
“저게 맞는 말이긴 해. 진짜 나라 망할 거 같더만.”
“나 원래 해외로 도망가려 했는데 거기도 다를 거 없다는 말 듣고 포기했어. 말도 잘 안 통할 테고…….”
“음식도 맨날 뷔페로 나와요. 여기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여기 오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운이 좋은 걸지도…….”
“그러게.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됐으려나.”
긍정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
그때 문득 누군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시발. 이거 그냥 통조림이잖아……?”
흠. 눈치 빠른 사람도 있었지만 이미 대세가 정해진 상황에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날부터 335명의 단체 합숙 미저리가 촬영되기 시작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