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22)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22화(22/151)
──────
독자 Ⅱ
신노아
4
나는 스스로 구축해 놓은 ‘통조림 호텔’에 심히 만족했다.
양심의 가책?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른 회차들에선 개죽음을 당하게 될 작가들 아니던가. 윤리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녀조차 내 행동엔 엄지척을 날려주리라.
[…장의사 씨.]“예? 무슨 일입니까, 성녀님.”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무엇보다 나는 정말로 작가들의 생명을 구해 주고 있었다.
아까 ‘환생 트럭’이란 몬스터에 대해 언급했던 것 기억하는가?
환생 트럭이란 웹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수수께끼의 몬스터로, ‘당신이 좋아하는 소설의 설정이 실제로 고스란히 구현된 세계관으로 차원 이동을 시켜 드리겠습니다!’ 하고 독자에게 추돌사고를 일으키는 트럭이다.
구라가 아니고 진짜로 존재하는 몬스터다. 이거.
만일 당신이 웹소설 애독자라면 어느 날 갑자기 길을 걷다가.
-빠아아아앙!
하고 경적이 울리는 경험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보면 11톤짜리 화물 트럭이 당신을 향해 가열차게 폭주하고 있을 거다.
특징은 자동차 번호판에 숫자 대신 작품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 정도.
어쩌면 ‘아! 드디어 이 몬스터 지옥 아포칼립스 불반도에서 탈출할 수 있겠구나!’ 하고 기뻐하며 오히려 트럭에다 적극적으로 입술 박치기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관둬라.
내가 시험 삼아 3번 치여 봤는데 차원 이동은 개뿔 아무것도 없더라고. ‘용사 증후군’이랑 똑같은 개구라 몬스터다.
아무튼, 이 환생 트럭은 독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작가들에게도 발생한다. 왜냐면 작가야말로 본인의 소설을 제일 먼저 읽어 보는 독자이기도 하니까.
즉?
-빠아아아아앙!
-빵! 빠앙! 빠아아앙!
-빠아아앙! 빠아앙!
내가 구축해 놓은 ‘통조림 호텔’ 앞으로 화물 트럭들이 줄지어서 연달아 주차하기 시작했다.
“흐이에에……. 저희의 혁명적 아지트 앞에 이상한 트럭이 잔뜩 모여 버린 거예요!”
그 진풍경엔 몬스터에 이골이 난 요정들조차 신기해하며 고개를 갸웃갸웃거렸다.
저 트럭들을 우습게 보면 안 됐다.
창작물 속의 주인공이 언제 어디를 걷든 간에 환생 트럭은 축지법을 동원하여 반드시 쫓아오며, 뺑소니를 친 뒤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유유히 사라진다.
환생 트럭들이 그동안 창작물들 속에서 살해한 주인공들만 나열해 봐도 세계의 구원자, 용사, 파멸자, 흑막, 신, 엑스트라 호소인(제일 강함) 등등 전부 다 세계 하나 정도는 쥐락펴락한 일세의 영웅들.
가히 ‘신살자’라는 이명에 모자람이 없는 이력서를 가진 괴이!
마찬가지로 수많은 주인공들을 도륙해 온 ‘튜토리얼의 요정’이 아니고서야 저 무시무시한 괴이를 도저히 상대할 수 없었다.
“방호벽엔 문제없지?”
“넵, 지배인 동지! 저깟 반동분자들이 제아무리 시대를 거스르려 발악해 봤자 혁명의 변증법적 발전은 지고지순한 진리! 역사의 진화론적 선회는 저깟 부르주아지 용역 깡패들의 발악으론 감히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인 거예요!”
콰아아아앙-!
그 말을 증명해 보겠다는 듯 11톤짜리 트럭 중 하나가 저 멀리서 달려오더니(갑자기 지평선 너머에서 생겨났다) 호텔 정문에다 박아 버렸다.
하지만 나와 요정이 협업하여 바리케이트를 쳐 둔 호텔 정문은 멀쩡했다. 그저 트럭이 알루미늄 캔처럼 찌부러졌을 뿐.
-빠아아아앙…….
-빠아앙! 빠앙…….
마치 동료의 장렬한 죽음에 애도를 표하듯 주차장에 늘어서 있던 환생 트럭들이 크락션을 울려 댔다.
반대로 발코니에 나와 있던 요정들은 용기백배하여 체 게바라 초상화가 프린트된 빨간색 깃발을 마구 흔들어 댔다. 개중엔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요정마저 있었다.
“아, 레볼루씨옹! 레볼루씨옹!”
“뒈져 버리라는 거예요, 이 퍽킹 제국주의자들! 쁘띠 부르주아지!”
“만국의 요정들의 코뮌이여! 영원하라는 거예요!”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혁명전위대들은 앞으로도 계속 바리케이드 방어 작전에 임하도록. 혁명의 성패가 이 작전에 달려 있다니. 전원, 수고해라.”
“옙! 지배인 동지!”
“비바 레볼루씨옹!”
“우리의 꿈은 끝나지 않는다예요!”
1871년의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봤어도 기립박수를 쳤을 만한 기개를 보여 주며 요정들은 경례했다.
보아라. 내가 이토록 작가들의 신상과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통조림 호텔이 없었다면 저 수십 대의 트럭들이 다 어디로 출발했겠는가? 나는 작가들의 생명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독자들까지 구했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웹소설 업계 자체가 내게 목숨을 빚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이런 헌신의 대가로써 내가 작가들한테 뭐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소설. 소설만 써 주면 되었다.
다 떨어진 밥그릇에 새로 먹을 사료 좀 채워 준다면 까짓거 먹고 자고 입고 환생 트럭 막아 주는 것쯤이야 내가 10년 정도는 보장해 줄 수 있었다.
나는 경호대를 순찰하고 난 뒤에 서기국(편집부)으로 향했다. 경호대원들과는 확실히 조금 더 인텔리한 느낌의 요정들이 날 맞이했다.
“아, 지배인 동지. 어서 오시라는 거예요.”
“그래. 모두 수고하고 있다. 통조림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으니 작가님들도 충분히 연재분을 비축하셨겠지.”
나는 편집부장 요원에게 그윽한 눈길을 보냈다.
“264번 서기 동지. 어디 그동안 쌓인 소설들을 가져와 봐라.”
“알겠다는 거예요!”
이번 회차에선 서기국의 요직을 장악한 264번 요정이 프린트기로 인쇄한 신작들을 가져왔다.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기다렸고, 신작들을 받아들었으며…….
자기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수백 명의 작가들이 한 달 동안 썼다기엔 좀, 아니 지나치게 얄팍한 A4 용지.
소설책 한 권은커녕 좀 푸짐한 합동 동인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왜 이것밖에 안 돼?”
“그치만 정말로 이것밖에 없는 거예요!”
이럴 수가.
먹고 자고 입고 환생 트럭 막아 주는 대신 소설만 써 달라는 작가님들이, 정작 소설을 안 쓰고 있었다!
한 달 동안 회귀자 업무(서규 각성시키고, 성녀와 협력하고, 게이트 닫고, 유망주들 키우고, 길드장들과 협업하기 등등등)를 끝마치고 오늘 막 호텔로 돌아온 나는 망연자실했다.
아니, 한 달 내내 오늘만 기다리면서 버텼는데.
“작가를 자그마치 335명이나 데려다 놨는데 100편도 안 된다고……?”
파르르.
내 손에 들린 원고뭉치가 진동했다. 분노와 실망이 지진계로 환산되어 진도 7의 경련을 일으킨 것.
글을 안 쓰는 작가들이라니? 그게 대체 백수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나마 백수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자기가 시간을 무의미하게 죽이고 있다며 불안해하기라도 하지, 이 소위 작가란 것들은 ‘난 노는 게 아니야’ ‘경험’ ‘배움’ ‘영화와 드라마로부터 경험이란 것을 주입받고 있어’라며 자화자찬하지 않던가.
만일 두 직업군(혹은 비직업군)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왜 내가 회귀자로서 귀한 자원을 소모해 가며 날백수들을 보살펴야 할까?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는 말이냐!”
“전부 굴라그로 보내 버리는 건가요?”
“여기가 이미 굴라그……. 아니, 어쨌든 소중한 글노예들을 보내긴 어딜 내보내!”
나는 책상을 쿵 내리쳤다.
“작가들 당장 로비에 집합시켜!”
잠시 후.
작가들이 로비로 호출되었다.
그런데, 어라?
‘작가님들… 좀 살찌지 않았나?’
뒤뚱뒤뚱.
통조림 호텔에 납치해 왔을 때도 평균적인 건강 상태가 썩 양호한 편이라곤 말할 수 없었는데, 지난 한 달 동안 대체 식단 조절을 어떻게 했는지 아주 살이 통통 부어올랐다.
좀만 더 있으면 얼굴 가죽에서 24시간 내내 광택이 뿜어져 나올 수준.
“…작가 여러분. 본 독자는 깊이 실망했습니다.”
나는 일단 분기탱천하여 작가들에게 고했다.
“한 사람이 하루에 한 편씩만 써도 335편입니다. 한 달이면 10,000편이 넘습니다. 아시겠습니까? 10,000편이라고요. 그런데 지금! 본 독자의 손에 들린 원고를 보십시오.”
“…….”
“91편! 91편입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심지어 말이 91편이지 실제로 집필한 작가님의 숫자는 12명이에요! 335명 중에 고작 12명만이 작품을 썼다고요!”
휘익, 나는 단상에서 A4용지들을 뿌려 버렸다. 참고로 진짜 원고지가 아니라 그냥 텅 빈 종이였다. 일종의 퍼포먼스였지.
존잘들의 글을 내가 진짜로 바닥에 뿌려 버릴 순 없잖아.
아무튼 내 퍼포먼스는 먹혀들었다. 작가들의 안색이 변한 것이었다.
“지금도 본 독자는 여러분들의 안전과 안락을 위해 불철주야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어디 변명하실 말이 있다면 본 독자에게 해 보십시오!”
“으음…….”
“음…….”
작가들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 그렇지만… 독자님. 저기, 면목은 없는데요. 사실 신작이라는 게 그렇게 숨풍숨풍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서…….”
“…맞아요. 저희도 어떻게든 써 보려고 막 브레인스토밍 돌리고 산책도 하고 잠도 자고 그래 봤는데 딱 이거다 싶은 게 안 떠오르더라구요.”
“독자님! 작품은 실제로 쓰는 것보다 구상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려요! 신작을 준비할 때는 더 그렇고요.”
“얹혀사는 형편에 이런 말 드리기 싫습니다만,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고작 한 달 만에 신작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였다고 생각합니다.”
“옳소!”
“저희가요. 정말로요. 안 쓰려고 한 게 아니라 쓰고 싶은데도 안 써진 거예요. 저희도 글 쓰고 싶어요. 그런데 안 써져요. 미칠 것 같아요……!”
이후로도 작가들은 마치 아카펠라 합창단을 꾸린 지 10년은 넘어가는 원년 멤버들처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합창을 이어 나갔다.
작가들의 해명을 듣고 나는 멈칫했다.
‘…그럴싸한데?’
확실히… 창작은 고통의 연속이라 들었다.
한 작품을 완결한 다음에 신작을 쓰기까지 길면 3년, 4년이 걸리는 작가들도 있잖은가.
어쩌면 한 달 만에 신작을 내놓으라던 내 요구가 무리였을지도 모른……. 으음?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여기서 신작을 준비해야 하는 작가님은 겨우 126명이고, 나머지 분들은 기존 작품을 연재하고 계셨을 텐데요?”
작가들이 움찔거렸다.
“그분들은 왜 글을 못 쓰신 겁니까? 호텔에 입주하기 전까진 연재 펑크도 안 내고 잘만 쓰던 분들이?”
“환경 적응……!”
작가들이 합창했다.
“연재 환경이란 게 얼마나 섬세한데요. 집에서만 글을 쓰는 작가도 있고 카페에서만 쓰는 작가도 있고 작업실 따로 구해서 쓰는 작가도 있어요.”
“하지만 호텔에서 쓰는 작가는 없죠…….”
“잇츠 토털리 디프런쓰 스토리.”
“난 어제 비염이 심해서 잠을 못 잤더니 모니터 앞에 앉아도 머리가 멍한 게 아무것도 안 쓰이더라고. 키보드에 손도 갖다 대기 싫은 느낌?”
“앗, 그거 무슨 느낌인지 저도 알아요……!”
“난 시간이 너무 남아서 오히려 퇴고하고 수정하고 퇴고하고 수정하느라 무한 츠쿠요미에 갇혔어. 정신 나갈 거 같아.”
“처음 마주하는 작업 환경에선 글 쓰는 버릇을 아예 바닥부터 다시 만들어야 해요. 연재란 건 결국 습관이라니까요?”
“역시 글 쓰는 분들이라 그런지 말이 통하네. 하아. 이게 직접 길게 연재해 본 경험이 없는 문외한들은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아주 디테일한 부분이거든요.”
“맞아요. 진짜 쉽지 않아요.”
그런 건가?
확실히… 창작은 섬세한 감수성을 요구한다 들었다.
나는 되도록 편안한 집단주거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인천의 고급호텔을 점령했다.
매주 섭섭지 않게 용돈까지 제공되었다. 망해 버린 세상, 그것도 외출이 불가능한 폐쇄환경에서 화폐가 뭔 소용이냐 싶겠다만 의외로 그렇지도 않았다.
‘이 호텔 지하엔 카지노가 있으니까.’
본래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였으나 이제는 작가님들 전용의 파라다이스로 변신.
작가님들은 매달 지급되는 화폐를 게임 머니로 삼아서 얼마든지 카지노를 만끽할 수 있었다. 원래 호텔에 입점해 있던 명품 쇼핑몰도 당연히 돈 주고 즐길 수 있었다.
264번 요정에게 보고들은 바에 따르면 작가님들은 이런 환경에 지극히 만족하여 매우 높은 카지노 이용률을 보이고 있다던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복지!
‘하지만 낯선 환경이긴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창작자들의 깊은 고뇌와 섬세한 감성에 어찌 한낱 독자인 내가 개입하리오.
[독심술]을 사용하면 작가들의 심리를 읽을 수야 있겠다만 그건 내가 사랑하는 작가님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알겠습니다. 그럼 한 달만 더 기간을 드리겠습니다.”
“아니, 한 달은 조금……. 적어도 세 달은…….”
“어허. 아무리 어려운 작업이어도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성실함은 어느 직업에나 요구되는 것입니다. 저는 작가님들의 성실성을 믿습니다.”
“네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습니다…….”
한 달이 지났다.
내 손엔 75편의 연재분이 주어졌다.
“왜 더 줄어들었어!”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요정이 해맑게 웃었다.
“그치만 이게 전부인 거예요!”
“아니……. 서기. 이게 말이 되나? 335명이야. 335명! 한 사람당 일주일에 한 편만 써도 연재분이 천 편은 넘는다. 그런데 750편도 아니고 75편?”
재차 작가들을 소집하여 쪼아 봤지만 돌아오는 말은 똑같았다.
그리고 사람이 두 번이나 기회를 줬는데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면 그건 변명이라는 뜻이었다.
안타깝지만 작가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내 눈깔에 콩깍지 필터링이 씌었던 것 같기도 했다.
전문가.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였는지에 관해 객관적으로 분석해 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전문가에게 찾아가서 상담해 본 결과, 곧바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바보 아냐? 환경이 너무 좋잖아, 아저씨.”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