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24)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24화(2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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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Ⅰ
신노아
1
웹소설 오타쿠, 너드 패션의 선두주자, 힙찔이 중2병 오독서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이전 에피소드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녀석과 처음 만난 시기는 555회차. 아니, 사실 안면을 튼 것이야 한참 예전이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인연’을 맺은 건 555회차였다.
당시 나는 여느 때처럼 부산역 대합실로 회귀했다.
‘심심하군.’
그리고 이때의 나는 웹소설이란 취미도 얻지 못했다.
아무리 내가 모든 창작물을 통틀어 [인생에 제일 긍정적일 것 같은 무한 회귀자 뽑기 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찰할 만한 긍정주의자라 해도, 555번째 맞이하는 스타팅 포인트엔 좀 심드렁해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테마파크도 555번 방문하면 지겨워질걸?
하물며 부산역 대합실은 테마파크라기엔 심히 유흥이 부족한 장소였다. 기껏해야 서규의 우렁찬 시발 개새끼야 소리 정도만이 기대되는 포인트라고 할까.
대합실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것은 나중에 얘기하고.
‘…독심술이나 켜 볼까?’
이번에 나는 약간의 묘미를 더해 보기로 했다.
[독심술]은 554회차 때 획득한 능력이었다. 나보다 격이 떨어지는 존재들에 한하여 마음의 소리를 엿들을 수 있었다.‘격’의 기준이 엄청 애매모호했고 능력 자체도 만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냥 재미를 위해선 운용해 볼 만했다.
[이재희: 휴대폰이 안 터지잖아?] [우에하라 시노: 사람이 너무 많아. 숨쉬기 어려워.]독심술을 켜자마자 부산역 대합실에 모여든 사람들의 심리가 일제히 귓속으로 밀려들었다. 그중엔 익숙한 목소리도 비교적 낯선 목소리도 있었다.
[서규: 씨발, 이게 무슨 상황이야? 개 같네.] [박예담: 부장님한테 연락을 드려야 하는데…….] [이백: 뭐야? 다른 애들은 다 어디로 갔어?] [고요리: 어҉҉라҉҈라҉.] [정소희: 교주님? 교주님, 어디로 사라지신 거예요?] [심아련: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김시운: 엄마.]잠깐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독심술]은 내가 원하는 상대에게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능력을 발동하는 순간 주위에 있는 모든 표층의식이 언어로 변환되어 들려왔다.하지만 견딜 만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부산역 대합실에서 [독심술]을 써 본 소감은…….
‘별거 없구먼.’
그냥저냥 뻔한 생각밖에 안 보였다.
‘하긴. 다들 익숙한 얼굴들이지.’
나는 이미 부산역 대합실의 원년 멤버들과 관련해 거의 모든 걸 파악해 두고 있었다. 이름, 인상착의, 출신, 나중에 어떤 능력을 각성할 것인지까지.
그러니 이들이 뭔 짓을 벌이고 무슨 생각을 품든 전혀 새로울 게 없었다. 얼굴만 봐도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수준까지 왔으니 [독심술]이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혹시나 싶었던 고요리는 역시나 안 읽히고.’
역시 저 아이랑은 절대 엮이지 말아야겠다.
나는 고요리랑 최대한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대합실 한편에 놓인 자판기에서 느긋하게 음료수를 뽑아 마셨다.
주변 사람들이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저 여유는 뭐야?’ 하고 눈총을 뿌렸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중 가면 이런 음료수도 엄청 귀해진다. 저들 입장에선 이제 막 대합실로 소환당한 거겠지만, 난 20년 만에 아직은 덜 망가진 세계로 돌아온 거라고.
“캬하아.”
오랜만에 마신 실론티는 최고로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얼른 한 캔을 비우고 또 사 먹었다. 그렇게 4캔을 연속으로 해치우니 사람들이 어이없단 듯 쳐다봤다.
음. 이백 쟤도 정말 1회차부터 바뀌질 않는군.
다시 한번 들어봐도 딱히 흥미로운 의식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래서 [독심술]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사용한 순간엔 과연 다들 무슨 재미진 생각을 몰래 하고 있으려나- 싶어서 두근두근거리지만, 정작 확인하고 나면 ‘에이 별것 없네’ 하고 실망해 버린다. 그래서 [독심술]은 역설적으로 사용하기 직전이 제일 재밌다.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와서 원년 멤버들에게 참신한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나의 과한 욕심이자 말도 안 되는 요구―――.
[오독서: 와. 부산역 대합실. 나 이거 소설에서 봤어! 조금 있으면 튜토리얼의 요정이 나타나서 야 이 씨발 새끼야 소리하는 남자 대가리를 날려 버리겠네.]가 아니었다.
“풉!”
난 마시던 5번째 실론티를 공중에 뿌려 버렸다. 석양빛깔의 실론티는 음료수 캔에 새겨진 그림 그대로 이 세상을 노을로 물들였고, 졸지에 7시간쯤 빠르게 석양을 구경하게 된 사람들이 기겁했다.
[이재희: 악! 더러워!] [정소희: 더러워. 추악해.] [박예담: 아이고, 더러운 놈.] [심아련: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백: 씨발, 더러운 새끼.]성격, 성향, 출신, 지지정당, 신념, 모든 것이 저마다 천양지차여서 1회차 때부터 언제나 기적의 궁합을 보여 준 원년 멤버들이 모처럼 대통합에 합의했다. 가히 불가능에 가까운 업적을 이루어 냈으나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나는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오독서: 어디 보자. 일러가 별로 없던 소설이라서 잘 알아보기 어렵네……. 오. 그치만 저 새낀 알겠다. 이백! 금태양! 이야아. 저 남자 때문에 대합실 공략 파트는 개발암이었지…….]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오독서. 555번째까지 이르는 기나긴 회귀 생활 동안 언제나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세상만사에 묘하게 달관한 것 같은 얼굴만 보여 주던 사람. 특징은 동태눈깔. 후드티. 캡모자.
내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에야 매우 높은 확률로 부산역 대합실에서 사망하는 희생자가, 어째선지, 여전히 동태눈깔처럼 죽은 눈이긴 하되 아주 살짝 생기 넘치는 눈빛으로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독서: 뭐, 확실하네. 어제 내가 밤새워서 정주행한 전회시… 전지적 회귀자 시점의 프롤로그 파트가 맞아.]전지적 회귀자 시점? 프롤로그?
[오독서: 그럼 내 능력은 뭐지? 상태창. 야, 상태창. …스테이터스? 오픈? 능력창? 스킬창? 와. 꼴에 최신 트렌드라고 홀로그램 쪼가리도 안 던져 줘? 이거 상태창 혐오네요.]최신 트렌드? 쟤 뭐라는 거냐?
“이 씨발 새끼야! 그게 뭔 개소리야!”
“호이.”
헉. 오독서의 생각에 너무 집중해 버린 나머지 서규의 머리통이 터져 버리는 걸 막지 못했다.
‘미안하다! 서규야!’
264번 요정이 정말 오랜만에 1킬을 적립했다. 사방에 피가 비산하자 심아련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물론 나는 ‘아니 대체 이게 얼마 만이지?’라는 감정이 들었을 뿐 놀라워하진 않았다.
[오독서: 오. 튜토리얼 머리터짐남 클리셰 수고요. 이런 구닥다리는 다 따라 주면서 왜 상태창은 안 준대?]오독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서규를 SG남도 아니고 머리터짐남이라고 부르는 건 좀 가혹하지 않나 싶었지만.
[오독서: 뭐, 아무튼. 부산역 파트에서 어차피 중요한 건 해운대에 숨겨진 영약을 얼마나 초반에 확보해 두느냐, 그것뿐이니까.]해운대에 영약이 있는 걸 쟤가 어떻게 알았지?
[오독서: 그리고 대합실 스테이지에서 눈여겨볼 각성자는 우에하라 시노 정도일까? 지금은 폐급 취급받지만 쟤 나중에 상급 연금술사로 각성하고…….]그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오독서: 우에하라랑 정반대 케이스가 심아련이지. 쟨 나중 가면 쓸모없지만 프롤로그 파트까진 힐러 요원으로 쏠쏠하게 써먹기 쌉가능……. 어, 도망친다. 맞다. 쟤 겁쟁이였지.]그건 또 어떻게……. 아니. 심아련이 나중 가면 쓸모없다고?
오히려 지금이 제일 저점이고 SG넷만 개설되면 ‘NET의 세계는 넓네요?’ 하면서 우화등선해 버리는 인재인데.
하지만 자잘한 부분에서 딴지를 걸 틈 따윈 없었다. 마치 샛노란 꿀이 마르지 않는 히말라야 벌집처럼 오독서는 계속하여 꿀잼 생각을 줄줄 흘렸다.
[오독서: 일단 우에하라 시노 호감작부터 해 둬야겠네. 쓰읍. 원작 파괴 오리주 무쌍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상태창도 없는 고자죠? 찬밥 식은밥 진밥 가릴 때가 아니죠?]원작 파괴? 오리주 무쌍?
일전에 말했다시피 이 당시의 나는 아직 웹소설을 전혀 몰랐다. 그 취미를 내게 선교한 장본인이 바로 저곳에 있는 꿀독서였으니 말이다. 당연히 꿀독서가 속으로 중얼거린 말들은 내 귀에 외계어로만 들렸다.
[오독서: 그치만 우에하라 시노도 2순위에 불과하긴 해.] [오독서: 여기서 제일 중요한 인물을 딱 한 명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저 남자.]그 순간, 오독서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시선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하고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가 주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꿀독서가 빤- 히 이쪽을 쳐다보았다.
[오독서: 저기 있네.] [오독서: 이 세계의 주인공. 코드명 장의사.]?
[오독서: 생각보다 잘생……. 아니, 표지 일러가 더 좋았던 거 같기도 하고? 으음. 실물이 더 낫나? 애매하네. 뭐 저렇게 표지랑 애매하게 닮았대.]??
[오독서: 하지만 얼굴에 속으면 안 돼. 그럼. 장의사는 이미 몇 번이나 회귀를 경험한 주인공. 피도 눈물도 없지.] [오독서: 몬스터에 대한 증오로만 살고 있는, 전형적으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회귀자……. 특히 지난 회차에서 당서린을 십족한테 잃어버린 탓에 지금 세상에 대한 분노가 MAX로 차올랐을 테니까.] [오독서: 그냥 미친놈이야, 미친놈. 수상한 낌새가 보이기만 하면 바로 나를 죽여 버릴지 몰라. 조심해서 다루자.]???
피도 눈물도… 증오… 분노, 뭐요?
죄송한데 그 사람 누구입니까?
애당초 지난 회차에서 당서린은 십족에게 사망하지 않았다. 십족 그거 초반에만 잠깐 통곡의 벽처럼 느껴졌을 뿐이지 20회차 정도부턴 나한테 5분컷 당한 물로켓이잖아.
혹시 이 녀석.
‘설마 과거의 나를 알고 있는 존재인가?’
그때였다.
[오독서: 어이, 거기 아저씨.]“어이, 거기 아저씨.”
독심술과 실제 목소리가 겹쳤다.
오독서의 검지가 나를 가리켰다. 어느새 부산역 대합실엔 열 명 남짓한 사람밖에 안 남았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저씨도 일로 와 보세요. 저 요정 새끼가 피분수를 만들어 버려서 사람들 다 토꼈는데, 우리끼리라도 모여 봐야지. 안 그래요?”
“264번은 아무 잘못이 없는 거예요! 선배들이 잘못된 가이드라인을 넘겼어요! 도리어 어느 쪽인가 하면 264번은 불쌍한 피해자인 거예요…….”
“아, 넌 됐으니까 아가리 여물고. 지금 어른들이 얘기 좀 하겠다는데 어디서 끼어들어.”
“히엑.”
생존자 집단의 한복판에서 오독서는 마치 리더라도 된 것처럼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사람들이 전부 요정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맞서 대거리를 하는 모습이 생존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음이 분명했다. 사실 264번 요정은 정말로 지침서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고 인간에 대한 악의 자체는 없었기에(부르주아지 제외) 급격히 쭈구리가 되었다.
“그래서? 아저씨, 이쪽으로 올 거예요? 말 거예요?”
“…….”
오독서가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마음의 소리로.
[오독서: 와라. 시발, 제발 좀 와. 너 없으면 다 죽어! 첫사랑도 잃어버리고 유일하게 길드장으로 모셨던 당서린도 죽어 버리고 몬스터는 좆 같고 세상도 좆 같은 거 알겠는데 제발 우리 좀 살려 줘라!]솔직히 이 꼬맹이가 하는 말 중에 절반은 이해하지 못하겠고, 대체 뭘 어떻게 착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얘 따라다니면 이번 회차는 꿀잼 예약인 거 같은데?’
재미에 대한 충동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이유, 어떤 괴이를 토벌하는 데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건 한참 나중에 얘기하자.
아무튼.
나는 옛날, 엄청 옛날, 그야말로 천 년도 더 된 과거의 나를 기억해 냈다. 그때의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고 어떤 눈빛을 보냈으며 어떤 말투를 썼는지.
“…너희를 따라가지는 않겠다.”
대충 이런 느낌이었나? 맞지? 맞는 거 같은데.
오랜 회귀자 생활 동안에도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굉장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단지, 너희를 관찰하마.”
“아. 뭐, 그러시든가.”
오독서가 별것 아니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나는 기념품 가게에서 은방울만 파밍한 다음 바로 오독서의 심리를 읽었다.
[오독서: 와, 씨. 목소리 살벌한 거 실화냐? 존나 후달리네……. 음. 하지만 주인공 없이는 부산역 대합실을 빠져나가는 것부터가 불가능에 가깝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어떻게든 호감작을 해야만.]음.
역시 재밌는 녀석이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