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27)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27화(2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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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Ⅰ
신노아
1
이미 말했다시피 십족 말고도 전 세계에선 수많은 보스급 몬스터들이 등장했다.
내가 편의점을 운영했을 적 밤하늘에서 별똥별을 무한하게 폭격한 ‘유성우’라거나.
사실 몬스터, 그러니까 괴물이란 용어는 주로 초반부에 사용되었다. 유성우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괴물 중엔 생물체보단 그저 현상에 가까운 것들도 많았다.
후반부로 각성자들은 괴물이란 용어뿐만 아니라 괴이, 악귀, 요괴, 로스트 같은 단어도 혼용해서 쓰기 시작했다.
참고로 일본 쪽에선 보스급 몬스터만 따로 엔젤. 즉, 천사라 부르기도 했다.
참으로 기이한 용법이었다. 왜냐면 서구권에선 정반대로 악마라고 불렀거든. 나중에 인형사라고 일본에 거주한 적 있는 각성자의 말을 들어보니 무슨 고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비롯된 단어라더라.
게이트 또한 사정이 비슷했다. ‘문’의 형태를 띠지 않는 게이트들도 많았기에 나중 가선 공허, 심연, 어비스, 지옥이라는 용어가 더 자주 사용되었다. (사실 괴이와 공허는 엄밀히 구별하기 어려웠다)
오늘은 이러한 언어 변화를 본격적으로 일으킨 주범 중 하나―― 이른바 ‘신불(新佛)’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한다.
2
“어? 야, 너…….”
“응?”
“머리에 그거 뭐야?”
그 몬스터는 생물체가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생물인지 무생물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너 귀 옆에 난 그거……. 잎사귀 아냐?”
바이러스.
어디서 최초로 발병자가 생겨났는지는 오랫동안 불명이었다. 아마도 북한이나 한국일 가능성이 높았다. 부산역 대합실이 각성자들의 패현이었듯 한반도는 몬스터들의 맛집이기도 했다. 세상에 밸런스 패치가 작동하는 게 확실하다니까?
“조, 좀비 바이러스다!”
사람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고 난리를 쳤다.
본래 아포칼립스물에 등장해 주지 않으면 섭섭한 존재가 좀비 아니던가.
해당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인간의 몸에서 이파리나 꽃 따위가 돋아났다. 대머리에서 잡초가 자라난 경우마저 있었다.
그런데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초창기에 사람들의 대응은 의외로 미적지근했다. 이유가 따로 있었다.
“아니! 나 좀비 아니라고!”
“…어?”
“봐! 멀쩡하게 말하잖아. 기억도 정상이고 머리도 정상이야! 시발, 겨드랑이에 단풍잎이 돋아서 나도 기분 이상하긴 하지만 이런 걸로 죽긴 싫어!”
바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멀쩡(?)했기 때문.
사람의 신체가 졸지에 화분이 되어 버렸으니 미관상 괴상하게 생긴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의외로 외관만 신경 끈다면 바이러스에선 아무런 해악도 발견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어마어마한 이득이 발견됐다.
“개 같은 몬스터 새끼! 저 새끼가 우리 어머니를 죽였어!”
“아…….”
“반드시 죽여 버린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 괴물 새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족친다!”
“아들아…….”
“어머니, 천국에서 지켜봐 주세요. 불효자가 곧 뒤따라갑니다.”
“아들아!”
“어?”
“나 안 죽었다, 얘! 몇 번을 불러야 대답을 하니!”
“어, 어머니? 지금 배 한복판이 뚫리셨는데…….”
“왠지 몰라도 멀쩡하구나. 어제 보약을 잡숴서 그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웬만해선 ‘죽지 않았다’.
뇌만 파괴당하지 않으면 사지가 잘리고 내장이 손상되어도 목숨을 부지했다.
체내의 생명 활동이 끊어진다 하더라도 낮 동안에 햇볕만 쐬면, 수분만 제때제때 충분히 섭취하면, 아무리 심각한 부상자여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때 의료 체계가 붕괴해 버린 작금의 상황에서 일반인들의 반응은?
“신께서 우리를 도우셨다!”
“나도……! 나도 감염될 거야!”
사람들이 앞다투어 일부러 질병에 감염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안 그래도 치유 능력을 가진 각성자는 드물었다. 그리고 유능한 힐러들은 전선에 차출되어 다른 각성자들을 보조하느라 바빴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이 시대에 목숨 포인트가 공짜로 하나 더 늘어난다고? 이걸 어떻게 참겠는가. 침몰해 가는 타이타닉에 구명보트가 등장한 꼴이었다.
“좀비 바이러스? 아뇨. 생명의 축복이죠.”
“여러분도 식물이 되어 보세요! 굳이 어렵게 식량 구하고 다닐 필요가 없어져요. 햇빛과 물만 있으면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니까요?”
“이것이 신불(新佛)의 위엄입니다. 신불님을 믿으시면 모든 번뇌와 고통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육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온갖 사이비 교리들까지 난립했다.
좀비 바이러스는 새로운 부처. 즉, ‘신불’이란 신앙으로까지 숭배되었다. 딱히 불교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이비였으나 ‘생명을 해쳐 육식과 곡식을 먹어야 하는 번뇌에서 영원토록 해방된다(不殺永生)’라는 슬로건이 사람들한테 먹혀들었다.
신불교를 믿는 신도들은 모두 검은 머리를 깎았다. 하지만 진짜 불교도와 달리 신불교도들의 머리에선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라났다. 잡초와 꽃이었다.
속세에 속한 인간으로서의 표피를 던져 버리고 새로운 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나 뭐라나.
“어머나, 황장미 님. 간밤에 평안하셨는지요?”
“네. 백장미 님께서 염려해 주셔서 덕분에 심신이 깨끗했답니다.”
신불교도들은 법명을 따로 썼다. 기독교의 세례명과 유사했다. 재밌게도 이들은 각자 머리에서 어떤 식물이 자라났느냐에 따라 서로를 나무의 이름, 꽃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들은 백만 가지 종류의 꽃이 모인 집단이라 하여 스스로 화단(花壇)이라 칭했으며, 자신들의 사상을 화엄(花嚴)이라 불렀다. 머리에 꽃 달고 사는 사람들다운 작명 센스였다.
“…저 꽃쟁이들 때문에 다 죽겠네.”
언젠가 당서린이 그렇게 중얼거린 적 있었다. 아마 5회차였을 거다. 그때 당시 삼천의 부길드장이었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세상이 혼탁하니 사이비에 의탁하고 싶어지겠지요. 황건적의 난이 괜히 일어났겠습니까.”
“부길드장은 툭하면 삼국지 관련해서 비유를 하더라. 그거 좀 늙어 보이니까 자제해 줘.”
아니, 삼국지가 뭐 어때서? 요즘 애들은 다 유비 좋아한다. 효자들은 조조 좋아하고. 손권은 어……. 정신병자들이 좋아하지.
내 표정을 보더니 당서린이 피식 웃었다.
“어쨌든 나도 사람들 심정이야 이해해. 그래도 우리한테는 독이나 다름없는걸.”
당서린의 말이 옳았다.
신불에는 단점이 있었다.
일반인들에겐 아무런 악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러나 각성자들은 신불에 감염되고서 약 2주일이 지나 꽃이 완전히 활짝 펴 버리면 아예 ‘능력을 발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너무나 치명적인 극독(劇毒).
“길드장님도 조심하십시오. 요즘 그런 말 꺼내면 식물 혐오라고 뭇매를 맞습니다.”
“그치만 쟤네들은 각성자 혐오하는데?”
그 또한 올바른 지적이었다.
게이트 사태 초반엔 각성자들이 훨씬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각성자 우월주의에 대한 반발로 각성자 혐오 또한 생겨났으며, 신불은 이러한 감정을 체계화된 교리로 발전시켰다.
“각성자는 괴물과 다를 바 없으며 이는 신불의 은혜를 입었을 때 그들의 능력이 일제히 사라지는 것으로 증명된다.”
“모든 각성자들은 신불교에 입단하여 하루라도 빨리 살생의 죄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는 자, 화엄의 뜻에 반하는 것이니! 만인의 평등을 깨부수고 만물의 평화를 깨트리는 불적이다!”
“불살영생(不殺永生)! 영생화엄(靈生華嚴)! 억리궁정(億里穹定)!”
정말 골치 아픈 사이비들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당서린은 유능한 길드장이었다. 괜히 한국에서 다국적 연합 길드를 성사시킨 게 아니었다.
그녀는 쿨하게 거액의 현물을 신불교 화단에 기부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
“어허허. 당서린 도우(道友)께선 비록 부처의 은혜를 입진 않았으되 중세를 구제하는 데 진력을 다하고 있으니 어찌 저희 꽃들이라고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알아줘서 고마워.”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은 개뿔. 석가모니가 보았다면 당장 바리깡 들고 저 땡중 머리에 달린 참나리꽃부터 싹 밀었을 거다.
그나마 한국은 양반이었다.
한반도에는 특이하게도 ‘성좌’라는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던가. 덕택에 각성자들이 비교적 얌전히 사렸고, 각성자 우월주의도 별로 힘을 못 썼다. 그러니 일반인들의 각성자 혐오 또한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불이 주변 나라로 퍼지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물질적 바이러스인 전염병과 함께 정신적 바이러스인 신불교 역시 수출되었고, 이 사이비에 세계가 진동했다.
“여러분! 임이란 무엇입니까!”
“불살영생! 영생화엄! 억리궁정!”
“그렇습니다! 임이란 다만 꽃의 이름인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성좌의 감시가 부재하는 타국에선 각성자 우월주의가 판을 쳤다. 정부는 마비되었고, 법은 무너졌으며, 심지어 나를 감시하는 존재조차 없었다. 힘 좀 쓰는 각성자들이 모여 개판을 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당연히 이들에게 민폐란 민폐는 전부 입은 일반인들은 각성자를 증오했다. 그런데 신불교는 바로 그 증오를 정당화하는 데 특화되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K-사이비가 탄생한 것이었다.
북한 지역에 또 다른 사이비 세력도 하나 활동하긴 했지만 그쪽은 북쪽에 치우쳤는지라, 아무래도 민폐의 레벨에선 신불이 압도적이었다.
“…곤란해. 진짜 곤란해. 일본 쪽에서 원래 오기로 했던 의용병 숫자가 확 줄었어.”
당서린이 고깔모자의 해진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문질 비볐다. 그녀가 진심으로 난감해할 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버릇이었다.
잊어버렸을지 모르겠지만 5회차 때 우리는 십족에게 바로 맞서 싸우는 대신 부산으로 후퇴했다.
일본 쪽에서도 각성자들이 수백 명 합류하기로 약조되어 있었는데 그 규모가 갑자기 20명으로 쪼그라든 것이었다.
“20명은 너무 적은데요.”
“꽃쟁이들이 일본에서 엄청 세를 확산하고 있대. 규슈에서 간토까지, 거의 나라의 절반을 집어삼킨 수준이라던데. 함부로 본거지를 비우기 어려울 정도로 사정이 어렵나 봐. 얼핏 듣기로는 인도나 유럽, 아메리카까지 본격적으로 맛이 가고 있다더라.”
“인류의 미래가 암담하군요.”
사이비가 판을 쳐서 미래가 암담해졌는가, 미래가 암담하기에 사이비가 판을 쳤는가는 닭과 달걀의 문제에 불과하겠지.
십족이야 눈에 보이고 칼질로 좀 쑤시면 이길 가망이라도 보였지, 신불은 진짜 답이 없었다.
바이러스를 어떻게 퇴치하겠는가? 바이러스 연구소? 거긴 정말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들을 연구하느라 바빴다. 신불은 연구 순서에서 한참이나 뒤로 밀렸다.
회차가 거듭될 때마다 신불의 피해자는 그때그때 달라졌다. 때로는 당서린이 전염되기도 했고, 성녀가 전염된 적도 있었다.
나는 전염되면 큰일이라서 귀밑에 잎사귀 같은 촉감이 느껴진다 싶을 땐 바로 주저 없이 목숨을 끊었다. 전염되면 각성 능력이 발동을 안 한다니까? 잘못되어서 만일 회귀 능력까지 없어지면 어쩌겠는가. 얼른 죽어야지.
뭐, 만에 하나라도 쇼 노인이 존재하니까 문제가 생길 여지는 적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아. 참고로 지금까지 거론된 인물들이 신불에 걸릴 경우 머리에서 피어나는 꽃의 종류는 다음과 같았다.
성녀 – 파아란색에 연보라빛 물감이 몇 방울 떨어진 수국.
당서린 – 새까만 제비꽃. 밤하늘이 달무리를 품었다.
서규 – 모름.
심아련 – 흰 은방울꽃. 바들바들 떨어서 재밌다.
이주호 – 샛노란 해바라기.
고요리 – 모름. 수선화로 추정.
쇼 노인 – 모름. 그냥 클로버(네잎 아님)로 추정.
오독서 – 붉은 석산. 꽃무릇, 피안화라고도 알려진 그 꽃 맞다. 자기는 무슨 꽃이 필지 너무 궁금하다면서 일부러 감염되어서 기어이 알아냈다. 얘도 정상은 아니었다.
쇼 노인과 마찬가지로 나도 무슨 꽃이 피어날진 몰랐다. 신불에 감염됐다 싶으면 꽃이 피기 전에 얼른 죽어 버렸으니. 그렇게 두 번 죽었다.
대충 짐작해 보자면 아마 새하얀 백합 아닐까? 순수와 순결의 상징이잖아. 왠지 나랑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어쨌든 십족보다 골칫거리였던 신불.
그래도 민간인들에게 별다른 해악을 끼치지 않으니 내버려 둔다――라는 나의 전략은 회귀 17회차에 이르러서야 수정되었다.
“의사야! 큰일 났다!”
쇼 노인이 문을 벌컥 열었다. 이제 막 잠들었던 참인지라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아, 뭐요? 잠 좀 잡시다. 내가 어디 누구처럼 늙은 게 아니라서 아직 잠이 많다고요.”
“뭐? 씨부랄 잡것이……. 그게 아니라! 바깥! 창문 열어서 바깥 좀 봐, 이놈아!”
“뭔 일이길래 오밤중에 지랄이십니까…….”
창문을 열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창문틀을 잡은 채 굳어 버렸다.
“…뭐야, 저거?”
세계수.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거대한 붉은색 나무 한 그루가 온 밤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