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28)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28화(2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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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Ⅱ
신노아
3
17회차에 쇼 노인과 나는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다. 쇼 노인이 교장이었고 내가 교감을 맡았다. 여러 국가의 각성자 유망주들을 더 쉽게 끌어들이고 더 쉽게 육성하려는 술책 중 하나였다.
한동안 이 아카데미를 진심으로 운영했는데 덕분에 각성자들의 데이터가 풍족하게 쌓일 수 있었다. 이 아카데미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거론할 때가 올 것이다.
“졸업반이랑 교사진 전부 집합시키십쇼!”
“이미 집합시켰다, 이놈아! 네가 마지막이야!”
쇼 노인이 구라친 거였다. 우리는 잠옷 차림으로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전투조를 전부 깨워야만 했다.
준비를 끝마친 뒤엔 출격했다.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모일 수 있도록 미리 다른 길드들과 약속해 놓은 장소로.
“삼천 길드장!”
“아, 장의사. 검성도 왔네?”
가는 길에 다른 길드들과도 속속 합류했다.
한국의 투톱 중 하나인 삼천세계 역시 재빨리 정예들만 이끌고 왔다. 예순 명의 각성자들이 죄다 고깔모자를 쓴 채 지팡이를 꼬나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으나 그 전력은 전혀 우습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랍니까?”
“우리도 정확한 원인은 아직 파악 중이야. 성좌들이 막 나한테 뭐라뭐라 알려 주고 있긴 한데, 일단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하니까. 일단 저 댑따 큰 나무는 오늘 새벽 2시부터 관측됐어.”
“갑자기 피어났습니까?”
“응. 1시간도 안 지나서 저 정도 크기까지 성장했다는데? 지금처럼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한 건 전부 다 커 버린 다음부터래. 그래서 약간 보고가 늦었나 봐.”
“…불길하군요.”
“동감이야.”
그때 삼천의 길드원이 다가와서 당서린에게 귓속말을 했다.
우리를 비롯해 합류 지점에 모인 길드장들은 모두 당서린을 쳐다봤다. 이미 십족이 토벌당한 시점이었으나 당서린은 여전히 맹주로서의 역할을 기대받고 있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뭐, 다들 봐야겠지. 가져와.”
“예.”
길드원들이 무언가를 끌어왔다. 밧줄로 단단히 묶인 그것은 인간, 더 정확히 말하면 신불교도일 게 분명한 복장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으며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인간이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밧줄에 묶였음에도 그것의 이빨질은 멈추지 않았다. 억지로 돌아가지 않는 목을 숙여 가면서까지, 팔꿈치를 역방향으로 뒤틀어 가면서까지, 어떻게든 자기 살점을 파먹었다.
밤이 어두워서 잘 몰랐지만 이제 보니 이미 두 다리와 왼쪽 팔은 먹어 해치운 상태.
길드장들의 얼굴이 굳었다.
“…저 새끼 저거 뭐 하는 거야? 좀비인가?”
“그래도 좀비치곤 착하네. 딴 사람이 아니라 지 살을 처먹잖아.”
“쟤가 특히나 겸손한 좀비일 수도 있지.”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래?”
실시간으로 사람의 살점이 뜯겨나가는 광경은 퍽 그로테스크했으나 여태까지 살아남은 길드장들의 담력도 만만찮았다. 표정이야 싹 다 썩었지만 빈틈없는 눈빛으로 좀비를 관찰했다.
“현재까지 관찰한 바로는.”
당서린이 입을 열자 길드장들이 조용해졌다.
“신불교도들은 전원 동일한 증상을 보이고 있어.”
“전원!”
주변에 경악이 흘렀다.
“정말로 전원이?”
“그래. 아, 내가 말을 잘못했구나. 굳이 신불교도가 아니어도 신불에 감염된 사람들은 모조리 똑같아. 일반인 각성자 가릴 것 없어.”
“내 이럴 줄 알았다.”
쇼 노인이 투덜거렸다.
“하여간 옛날부터 사이비 새끼들이랑은 엮여서 좋을 거 하나 없어. 뭐? 감염되기만 하면 공짜로 목숨 스택이 하나 늘어난다고? 그런 팔자 좋은 이야기가 있을 턱이 있나. 에잉! 난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다.”
“…….”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독일 노인의 꼰대력에 길드장들의 눈총이 쏟아졌다. 나는 헛기침을 쓸어내어 슬쩍 발언권을 가져왔다.
“삼천 길드장님. 좀비의 증상은 이게 전부입니까? 탐이란 괴물처럼 자기 자신을 먹는 거? 확실히 흥미롭긴 하지만, 세계수와 좀비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응? 탐이 뭐야? 아무튼, 조금만 더 지켜봐. 신기한 현상이 벌어질걸.”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에도 좀비는 포식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지 가운데 마지막 하나 남은 오른팔마저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좀비는 마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우뚝 섰다.
“…….”
좀비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계수가 서 있는 방향이었다. 좀비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더니, 입안으로부터 순식간에 붉은색 꽃이 자라났다.
길드장들이 저마다 숨을 삼켰다.
“세상에.”
“씨발, 뭔…….”
그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꼭 동충하초 같군…….”
숙주의 몸에 기생하였다가 이윽고 버섯을 피워 내는 균.
다만 이 경우엔 버섯이 아니라 꽃이었고, 그것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빛 꽃이었다.
붉은 꽃은 좀비의 육체를 화분으로 삼았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아파트 1층 높이까지 자라났다. 마치 시간의 흐림이 망가져 버린 것 같은 속도. 우리는 할 말을 잃은 채 붉은 꽃의 우듬지를 올려다보았다.
팡, 하고 팝콘이 튀듯 꽃잎들이 터졌다.
붉은 꽃은 10초를 하나의 계절인 양 피었다가 졌다. 그렇지만 다른 나무처럼 아래로 꽃을 흘리지 않았다.
길드장들이 입을 벌렸다.
“어, 어. 저거……?”
“올라가잖아?”
낙화가 아닌 승화(昇花).
붉은 꽃의 고향은 땅이 아니라 하늘인 모양이었다. 그것들은 아래가 아니라 위를 그리워하며 흩날렸다. 조금 더 가벼운 바람, 조금 더 가벼운 반딧불이, 조금 더 가벼운 벚꽃처럼.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어두운 밤하늘에선 무수한 붉은빛들이 반짝거렸다. 별빛보다 훨씬 가녀렸지만 또한 별빛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 폐빌딩에서, 공터에서, 온 사방에서 붉은 꽃잎들이 은하수처럼 펼쳐지며 밤하늘로 귀천했다.
“예쁘다…….”
그 또한 누군가의 중얼거림이었다.
지상에서 모든 빨간색을 수거해 간 세계수는 더욱더 탐스러워졌다. 세계수가 발하는 빛은 너무나 찬란하여 별빛도 달빛도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음.”
쇼 노인이 침음을 흘렸다.
고개를 돌려보자, 쇼 노인은 밤하늘이 아니라 좀비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깡마른 살집. 아니, 살집이라기보단 이미 오래전 괴사해 버린 나무의 껍데기 같았다. 붉음을 전부 빼앗겨 버린 인간의 시체는 이제 흔적만이 남았다. 쇼 노인이 칼집으로 툭, 건드리자 좀비-화분은 우스스 부서졌다.
“의사야.”
“…예, 영감.”
“아무래도 우리 좆 됐구나. 그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하기 싫었지만 올바른 진단이었다.
십족이 토벌된 이후 다시 등장한 보스급 몬스터.
아니, 사실은 십족보다 먼저 출현했으나 수년 동안 자신의 힘을 숨긴 채 숙주들에게 기생하여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괴이.
세계수―― 개체명 ‘우담바라’의 재래였다.
4
우담바라(優曇鉢華).
불교에서 전설적인 꽃으로 취급받는 영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존재했다.
지상에 강림해 버린 전설엔 정말 대책이 없었다. 십족보다 더 위험할 정도.
무엇보다 십족과 달리 우담바라는 굉장히 영악했다. 단순히 숙주에게 기생할 뿐만 아니라, 숙주 입장에서 오히려 이 기생체를 환영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세력을 확장해 나가다 한꺼번에 모든 힘을 터트린 것이었다.
우담바라가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이미 게임 오버. 붉은빛 세계수가 만개할 정도로 바이러스에 감염당한 숙주가 많아졌다면 그때부터 세계 멸망은 확정되었다.
“아이고, 이걸 어쩐담…….”
“그러게요.”
쇼 노인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렸다.
참고로 지금은 18회차였다. 17회차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냐고? 어……. 쇼 노인의 수염에서 잡초가 삐죽 튀어나오고 내 눈썹에서 풀이 돋더라고.
마지막 한 방이라 생각하고 길드연합 싹 다 끌고 가서 나무에 도끼질 좀 해 봤는데 택도 없더라. 어쩌겠는가? 쇼 노인이랑 깔끔하게 소주잔에 독약 타서 건배 갈겼지.
결국 쇼 노인이 휴가를 떠나게 된 이후로도 우담바라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은 수립할 수 없었다.
되도록 사이비가 퍼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각성자 우월주의를 억제하는 것 정도?
그래 봤자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국내야 어떻게든 제어한다 해도 해외까지 어떻게 조종하겠는가? 어떤 대책을 세운들 우담바라가 피어나는 시기가 조금 늦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36회차.
“성좌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구국의 성녀도 알프스의 정복자도, 전부 저 혼자서 만들어 낸 캐릭터에 불과해요.”
――성녀를 만나면서부터 사태는 순식간에 일변했다.
답이 없어 보이던 세계수 공략에 실마리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성녀와 혈맹을 맺은 다음의 회차들부터 본격적으로 우담바라 토벌에 나섰다. 토벌 작전의 핵심은 내가 성녀에게 건넨 의뢰였다.
“성녀님은 이제부터 한동안 [천리안]을 써서 제주도의 각성자들을 집중 관찰해 주십시오.”
“제주도를?”
성녀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예. 가만히 내버려 두면 3년 차부터 신불교라는 사이비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나는 좀비 바이러스와 신불교의 창궐, 각성자 우월주의 및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각성자 혐오가 들끓게 된다는 것, 무엇보다 화룡점정으로 붉은빛 세계수가 만개하는 것에 관하여 설명했다.
성녀는 내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히 경청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과연. 이해했어요. 장의사 씨는 바이러스의 최초 발병자가 누구인지 찾아낼 생각이시군요.”
“맞습니다.”
이전 회차까진 오리무중이었던 최초 발병자. 바이러스 사태를 일으킨 첫 번째 도미노.
나 혼자만의 힘으론 절대 알아낼 수 없었으나, 내 회귀 능력과 더불어서 성녀의 [천리안]이 사용된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이번 회차엔 제주도. 다음은 경상남도. 그다음은 경상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이렇게 회차가 시작될 때마다 전국의 지역을 한 곳씩 집중 탐색할 것입니다. 한반도의 아래에서 위로 쓸어담듯이. 그러면――”
“언젠가는 최초 발병자가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겠네요.”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원래 저는 장의사 씨처럼 유력한 각성자들을 위주로 [천리안]을 사용해 왔어요. 하지만 조금 무리를 하면……. 한국의 모든 각성자들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지역 하나 정도까진. 어떻게든.”
“유지원을 붙여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성녀는 양손을 모아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제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토록 수많은 각성자들을 관찰했는지 이때의 나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성녀가 밝히지 않은 ‘비밀’에 해당했다.
아마도 대한민국 정부(라기보다는 정부의 부스러기)에서 근무하는 각성자나 노도하와 같은 인물들과 협력하지 않았을까, 하고 내심 추측할 뿐이었다.
나는 성녀에게 퀘스트를 맡기고 다른 한편으로 신불교도가 성립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사이비 교주들을 처리했다. 얘들이 없어져도 어차피 비슷한 신앙들은 생겨났지만, 그래도 최소한 1년에서 2년의 시간은 더 벌 수 있었다.
그리하여 36회차.
“제주도는 아니에요.”
37회차.
“경상남도에는 최초 발병자가 없어요.”
38회차, 39회차, 40회차.
마침내 41회차에 이르렀을 때.
“…찾았어요.”
성녀가 눈을 떴다.
“충청남도. 아산. 온양이에요.”
더 정확히는 온양의 어느 오래된 여관이었다.
옛날에는 그럭저럭 번성했으나 시가지의 중심이 바뀌면서 쇠락해 버린 구 번화가. 잘 밟아 주지 않아 사람보다 잡초가 번성한 보도블록에 맞대어서, 여관은 아슬아슬하게 썩어 가고 있었다.
여관에선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탁한 미색(米色)의 페인트칠은 군데군데 각질이 벗겨졌다.
얼마 챙겨갈 것도 없어 헐거워진 여관 건물의 2층 202호실에 어미와 아들은 죽어 있었다.
“…….”
마치 조금 전에 눈을 감은 것처럼 모자의 시신은 멀쩡했다.
이곳을 발견한 건 기적에 가까웠다. 이곳의 주민센터 직원이 각성자였고, 그는 혹시라도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있을까 봐 주택과 숙소를 집중적으로 순찰했다(어쩌면 성녀가 성좌의 흉내를 내어 각성자를 부려먹었을지도 몰랐다).
주민센터 직원이 시체를 발견한 순간 성녀 또한 똑같은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센터 직원은 대수롭지 않게 다음 순찰지로 넘어갔다. 살아 있는 주민들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시기였으니까. 그렇지만 성녀의 눈길은 떠나지 않았고, 오늘 내가 찾아온 것이었다.
내 이명이 하필이면 ‘장의사’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음.”
어미는 벽에 기대어 아이를 꾹 안고 있었다. 아이는 갓난아기였다. 그리고 어미의 어깨 위로 아주 자그맣게, 거의 봄철의 어린 고사리처럼, 붉은 꽃들이 피어났다.
아이는 자신의 손목 두께에 비해 조금 커다란 염주를 걸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의 물건이었고 누가 걸어 준 것이었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어머니가 자신의 염주를 아이에게 걸어 줄 적의 마음에 대해 잠시간 생각했다.
피안으로 건너갈 때 자기 자식만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까.
나는 마치 불상을 마주한 불자처럼 한동안 우두커니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장의사 씨.]성녀가 텔레파시 능력으로 말을 걸었다. 여타 각성자들을 대할 때와 달리 나에겐 성좌를 연기하지 않았다. 곧바로 그녀 자신의 목소리를 썼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검에 오러를 흘려 휘둘렀다. 세상이라 부르기엔 조금 작은 단칸방에 붉은 꽃 몇 점이 흩날렸다.
우담바라는 환상의 꽃이었다.
5
이번 이야기에 후일담이랄 건 없다.
다만 그날 이후로 회차가 시작하자마자 내가 해야 될 스케줄이 하나 더 늘어났다.
부산역에서 서규와 심아련 챙기기. 백제병원 건물로 가서 쇼 노인의 카페오레 마시기. 성녀와 연락하여 동맹관계를 맺기. 그리고 충청도까지 올라와서 붉은 꽃을 본다.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는 사실이었지만, 아무리 회귀를 반복해도 모자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서울에서 게이트 사태가 터진 시점에 이미 어미와 아들은 죽어 있었다.
사인은 아사였다.
세상의 불행은 언제나 제철이었다.
“화아…….”
가끔씩은 일정이 살짝 늦춰지는 바람에 며칠이 지나서야 여관에 도착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어린 고사리 크기였던 우담바라가 벌써 작은 벚나무처럼 자라나 있었다.
“어, 엄청 예뻐요…….”
나는 매번 회차가 달라질 때마다 동료 한 사람을 데리고 꽃놀이를 하러 왔다. 가령 96회차의 동행자는 심아련이었다.
“이게 정말로 길드장님이 말씀하신 괴이인가요? 위험등급을 대륙급으로 등재해서 SG넷에 올려야 한다는…….”
“그래.”
“되, 되게 신기한 풍경이에요. 막 그림으로 그려 보고 싶어지구.”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심아련은 여기까지 이젤을 들고 와서 설치했다. 물감을 꺼내면서 “아”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저건 무슨 꽃이에요, 길드장님……?”
수도 없이 세계를 멸망시킨 꽃이지.
그렇게 알려 주는 대신 꽃가지를 치며 말했다.
“내가 죽는 계절마다 한 번씩 피는 꽃이란다.”
“호엑.”
내 고급진 표현에 심아련이 감탄했다.
“주, 중2병…….”
“…….”
“길드장님 나이에 중2병은 좀…….”
음.
다음부터 얘랑 놀러 갈 때는 무서운 심령스팟으로만 데려가야지.
– 불자. 結.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