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29)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29화(2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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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자 Ⅰ
신노아
1
서울 한복판에서 공허가 터지면서 강남 일대는 쑥대밭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이미 내 썰에서 여러 번 언급했으니 여러분에게도 익숙하겠지.
이른바 ‘강남 공허 사태’, ‘강남 백야(白夜)’ 혹은 ‘서울의 여름’이라 불리는 사건. 쇼 노인의 사모님 역시 ‘여름’에 휘말려 작고하셨다.
그렇지만 공허로 싹 다 물들어 버린 강남 일대에도 멀쩡하게 남은 건물이 몇 채 있었다.
만약 ‘멀쩡함’이란 단어를 바깥에서 볼 때 건물의 외관이 반듯하다는 걸 뜻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문제 나가신다.
Q. 공허에 잠식되어 버린 토지에서 어떤 건물이 예전이랑 똑같이 멀쩡하게 유지된다면, 어머나 깜짝이어라. 도대체 어떤 원리로 그럴 수 있을까요?
A. 그것도 공허다.
그렇다. 눈에는 눈, 독에는 독.
이열치열의 원리와 똑같이 공허를 버텨 내려거든 그냥 더 강력한 공허로 제압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해? 만일 여러분이 강남에서 아직도 ‘멀쩡한’ 건물을 목격한다면, 그 건물은 서울의 인구 절반을 한 큐에 날려 버린 공허 한복판에서도 ‘괜찮다, 튕겨 냈어’를 시전한 건물임을 뜻한다.
그야말로 최고 난이도의 던전들.
한반도에서 가장 튼튼하며, 무섭고, 무지막지한 공허들은 거의 전부 서울 강남에 몰빵된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부동산 시장은 폭망해 버렸지만 괴이들 사이에서 강남은 여전히 핫플레이스로서 명성을 구가하고 있다.
그중 특히 유명한 던전 중 하나가 일명 ‘사우론의 탑’이라고도 불리는 빌딩에서 운영하는 호텔.
그렇다. 지난 에피소드에선 여관 이야기를 했으니 오늘은 호텔 이야기를 해 볼까 싶다.
2
‘사우론의 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건물은 여러분들도 익히 아시다시피 서울에서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하는 바로 그 마천루다.
원래는 약간의 농담이 가미된 별칭이었으나 강남 일대에 공허가 터지면서, 본래 해당 빌딩에 입주해 있던 거주민들, 회사원들, 호텔 직원 등등이 모조리 소멸되었기에 이제는 진짜 ‘사우론의 탑’이라고 불린다.
사실 공허가 터진 직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사우론의 탑에 굉장히 큰 기대를 걸었다.
“저 건물은 멀쩡하잖아!”
“빌딩 안에 생존자들이 많지 않을까?”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당연히 서울의 빌딩 평균 고도가 50년 전으로 회귀해 버린 작금엔 더욱더 눈에 띄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저 타워는 진도 9 지진이 터지더라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거 같기도…….”
“설마 내부까지 멀쩡한 거 아냐?”
“저 빌딩 꼭대기 부근에 이세계로 통하는 관문이 있다더라.”
“들어가자! 가 보자!”
그리하여 일차적으로 한강 이북의 주민들이 사우론의 탑에 들어갔으며.
출입 직후 실종되었다.
물론 아포칼립스가 막 터진 상황에 실종자 서너 명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실종자 숫자 뒤에 0을 두 개 덧붙여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흐르자 과연 사우론의 탑에 관해 기이한 소문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문을 열고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가면 절대 나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조사대를 꾸린다.”
이 시점까진 그래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대한민국 국군이 작전에 돌입했다.
십족이 군인들을 특식으로 여기고 한창 싹쓸이 사냥에 나서는 도중이었기에, 여태껏 살아남았다는 건 해당 부대가 정예병이란 소리였다.
군인들은 옛 선인들의 지혜를 빌리기로 결정했다. 다만 조금 많이 옛날인.
“우리는 이열종대를 이루어서 타워에 돌입한다. 모든 병사들은 허리에 밧줄을 묶는다.”
“네? 밧줄 말입니까?”
“그래. 이 밧줄로 병사들을 모두 한 줄로 잇는 것이다. 작전의 이름은 ‘아리아드네’로 정한다.”
먼 과거, 테세우스가 크레타섬에 상륙하여 인류 최대의 미궁을 앞두었을 때와 똑같은 심정으로 군인은 작전을 지휘했다.
“맨 앞줄이 가장 먼저 진입한 뒤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다시 뒷걸음질을 쳐서 호텔 바깥으로 나온다. 만일 맨 앞줄의 병사들에게서 반응이 사라진다면, 즉시 나이프로 밧줄을 잘라 나머지 인원들은 탈출한다. 이해했나?”
“예!”
“좋아. 그럼 밧줄을 준비하도록.”
신중하면서도 좋은 방법이었다.
문제는 사우론의 탑이 그냥저냥 평범한 던전이 아니라 ‘서울의 여름’에서 생존한 마왕성이었다는 것.
“문을 열고 들어간 애들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줄을 당겨 봐!”
“주, 줄이 안 당겨집니다. 윽, 안 움직입니다! 바위처럼 무겁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아리아드네 작전을 중단한다. 밧줄을 잘라라!”
“예. 어? 밧줄이, 이거, 왜? 어어?”
“뭐 하는 거야, 새끼야! 줄 자르라고!”
“아, 안 잘려! 줄이 안 잘려!”
“무슨 개소리……. 어어어? 끌려간다!”
“아아아악! 살려 줘! 살려 줘!”
“안 돼! 버텨! 끌려가면 죽는……!”
놀랍게도 밧줄은 어느 사이부턴가 재질이 티타늄으로 대체된 것 같았다. 군용 나이프가 이도 박히지 않았다.
사우론 탑의 유리문들이 활짝 열리면서 군인들을 끌어들였다. 면발을 후르릅 삼키듯 밧줄을 단번에 집어삼킨 것이었다.
실로 완벽한 먹방이었다.
“아, 아아아악……!”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고 문틀을 잡았던 군인까지 훅, 하고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2초 정도 비명이 들려왔으나 그 또한 순식간에 멀어졌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문들이 다시 얌전해졌다. 아마 사우론의 탑 입장에선 꺼억- 이라 말하고 싶었을 거다.
조사대 전멸.
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겁도 없이 사우론의 탑에 덤벼드는 일반인들의 대기열은 뚝 끊겼다.
그렇다. 일반인들은 그랬다.
나 장의사는 일반적인 감성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다 자아를 두고 살아가는 자였다.
탑에 들어갔다가 죽으면 어쩌냐고? 응, 회귀하면 그만이야.
그리고 나는 호텔로 함께 놀러 갈 희생양을 물색했다.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아련아. 올여름엔 호캉스 어떠냐?”
“호, 호캉스요?”
심아련이 귀를 쫑긋거렸다. 천성적 아싸인 주제에 인싸를 향한 동경이 심장에 여드름처럼 돋아 있는 애다웠다.
“좋지만서도……. 서, 설마 길드장님이랑 저랑 둘이서만요?”
여드름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 그건 쫌…….”
“얼씨구. 그런 여행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냥 한반도에서 제일가는 호텔에서 며칠 묵다 올 생각이거든. 관심 있으면 따라오고, 없으면 다른 애들한테 물어보고.”
“어…….”
심아련이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내 무심하면서도 시크한 반응에 ‘진짠가?’ 하고 혹한 듯했다. 얘는 정말 1회차부터 지금까지 쭉 일관되게 쉬운 녀석이라니까.
“그, 그럼……. 좋아요, 가, 갈래요!”
이틀 뒤.
심아련은 호텔 입구 앞에서 여행배낭을 맨 채 비명을 질러 댔다.
“호텔이라며! 호, 호텔이라면서요! 길드장님! 사우론의 탑이잖아요――여기이!”
“무슨 소리냐. 여기 호텔도 있어.”
“있어, 가 아니라 있었어, 겠죠! 망했잖아요! 이것도, 저것도, 저, 전부 다 망했잖아요! ‘강남’했잖아요!”
“씁, 잔말 말고 따라와라. 네가 같이 들어가서 풍경화랑 지도를 그려 줘야지.”
“꺄아아아악! 호, 호캉스라고 말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사람 살려요! 싫어여기서죽은사람만수천명인데아무리길드장님이어도싫은건싫――”
장의사의 신나는 공허 탐사, 시작.
3
사우론 탑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놀라운 광경이 우리를 반겼다.
“어? 불빛이……?”
바깥에서 관찰했을 때는 새까맣게 암전되어 있었던 건물이 정작 안에서 둘러보니 조명이 환하게 밝혀진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건물 입구 양옆으로 각각 엘리베이터가 두 대씩, 그러니까 총 4대의 엘리베이터가 말끔하게 대기 타고 있었다. 천장에서 드리운 샹들리에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마치――
“시간이 전혀… 흐, 흐르지 않은 거 같아요. 어떻게 이럴 수가…….”
“흐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삼아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봤다. 스르륵. 아무런 문제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히엑. 우, 움직이고 있어……?”
“놀라운걸. 단순히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건물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군. 그리고 아련아, 눈치챘냐?”
“네, 네에? 뭘요?”
“문밖을 봐라.”
샹들리에와 엘리베이터에 눈이 팔린 심아련이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특유의 “히익!”거리는 비명과 함께 내 팔뚝에 애벌레처럼 들러붙었다.
“뭐, 뭐예요? 누구예요, 저거?”
문밖. 요컨대 조금 전에 우리가 지나쳐 온 유리문 바깥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정중하게 서 있었다.
“아마도 호텔 직원이겠지. 손님이 들어오면 문을 열어 주는 직원.”
“하, 하지만 아까는 아무도 없었는데에…….”
“아련아, 명심해라. 공허에서는 기존의 선입견으로 감각을 다루면 안 된다. 우리가 바깥에서 본 유리문이랑 지금 여기서 내다보는 바깥은 서로 다른 공간이야. 저건 그냥 액자 속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아…….”
“문제는 우리가 그 액자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거지. 아마 문을 열려고 해 봤자 안 열릴 거다. 가서 시험해 봐.”
“…….”
심아련이 조심조심 대문을 열려고 시도해 봤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근처에 있는 호텔 직원도 심아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정말이다…….”
“이래서 ‘게이트’라는 용어보다 ‘공허’라는 용어가 더 어울리는 거다. 이제 문처럼 보이는 것들은 입구로서든 출구로서든 의미가 없어. 공허에서 빠져나가려면 제대로 된 절차를 밟든가, 아니면 보스를 토벌해야만 한다.”
“보스…….”
“물론 보스가 없는 공허도 많지만. 그럼 공략법이 좀 더 까다로워지지. 그럼 이 공허는 어디까지 제대로 호텔을 흉내 내고 있을지 구경해 보실까.”
나는 심아련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한국 최고 호텔 중 하나라는 과거의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에 엘리베이터조차 고급스러웠다.
최대 층수 123층을 자랑하는 빌딩이었으나, 우리는 이 공허에 진입하는 루트로 호텔 정문을 선택했다.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엔 버튼이 딸랑 4개밖에 없었다.
[81F – 양식당, 한식당, 바] [79F – 로비, 게스트 라운지] [76F – 대연회장, 소연회장] [01F – 입구]심아련은 신기하면서도 불안한지 자꾸 어깨를 꼬물꼬물거렸다.
“버튼 눌렀는데 갑자기 막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도중에 떨어지면 어쩌죠……?”
“그럼 다행이지.”
“엑? 주, 죽는데요?”
“그래, 죽을지도 모른다. 대신에 코스가 극단적으로 짧아지잖냐. 이 커다란 공허가 꼴랑 엘리베이터 하나 만들어서 인간들 떨어트리는 재미로 만족한다는 소리인데……. 아무래도 급이 낮아지겠지.”
그 경우엔 사우론 탑은 그저 ‘호텔 엘리베이터’라는 이름의 공허 혹은 괴이로 등록된 다음 끝날 것이다.
전혀 위험하지 않을뿐더러 파훼하는 방법도 굉장히 간단해진다. 그냥 엘리베이터만 타지 않기. 끝.
자신이 엘리베이터의 진동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변태가 아닌 이상에야 다음 회차부터는 아예 신경을 쓰고 살아도 무방하다.
“그게 대체 무, 무슨 소리예요, 길드장님……. 죽는다니까요?”
“진짜로 무서운 공허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 오히려 계속해서 여기 살고 싶다고 느끼게 만들어.”
“네?”
꾹. 나는 [79층]을 눌렀다.
왜냐하면 우리는 호텔 입구를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럼 상당히 높은 확률로 이 호텔에 묵으러 온 투숙객일 터.
투숙객이라면 당연히 제일 먼저 ‘호텔 로비’에 들러서 ‘체크인’부터 처리해야 한다.
움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심아련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등을 톡톡 두들겨 주면서 말했다.
“공허에서 얼마나 오래 성공적으로 살아남느냐는 그 공허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달려 있다.”
“…….”
“아까 유리문 너머로 호텔 직원이 서 있었지? 그런 사소한 점도 놓치면 안 된다. 공허에서 무의미한 단서 따윈 하나도 없어. 만일 문밖에 호텔 직원이 서 있다면, 그건 아마도 ‘공허가 자기 자신을 호텔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어.”
“자기 자신을 호텔이라고…….”
“그래. 로마에서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너도 처음부터 깽판을 칠 작정이 아니라면, 일단은 공허의 룰에 복종해 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옛날에 여길 진입하려 했던 군인들은 운이 안 좋았지.”
“예? 왜, 왜요?”
“세상의 어느 투숙객이 고급 호텔에 들어가는 데 온몸에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들어가겠냐? 아마 들어가자마자 테러리스트로 인식되어서 몰살당했을걸.”
“…….”
나는 내심 엘리베이터가 이대로 추락하길 바랐다. 온몸을 오러로 둘러서 심아련까지 보호하면 어쨌거나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이 세계는 인간을 엿 먹이는 일에, 그중에서도 특히 나한테 호박엿 고구마엿 가락엿 물엿 종류별로 엿 맥이는 일에 굉장히 진심이었다.
스르륵-
겨우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엘리베이터는 79층에 도착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우아하게 열린 순간, 나는 이번 공허 또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세계에 속한 공간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세, 세상에. 길드장님! 보세요! 여, 여기 완전 고급스러워요……!”
완벽하게 청소되어 반딱반딱한 대리석 로비가 나를 반겨 주었다. 심지어 저 멀리 체크인 카운터에는 직원들이 멀쩡하게 서서 우릴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
이건 좀 빅엿이로군.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