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33)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33화(3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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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Ⅲ
신노아
3
“잘도 저를 골탕 먹이셨군요…….”
행사 타임이 그럭저럭 마무리되고 회식 타임으로 넘어갔다. 사실 이쪽이 오늘의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었다. 전국의 주요 길드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
나는 술자리가 시작되자마자 화장실 핑계로 잠깐 유람선의 갑판으로 나왔다. 그런 나를 노도하가 귀신처럼 찾아서 따라온 것이었다.
나는 시치미를 뚝 뗐다.
“골탕이라뇨? 제가요?”
“도로 관련 사업을 이렇게까지 키워 버렸잖습니까…….”
“에이. 그건 제가 아니라 연합 맹주가 한 거죠. 왜 애꿎은 사람을 탓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삼천세계 길드장 당서린…….”
노도하가 중얼거렸다.
“무척 훌륭한 사람이긴 한데 자존심이 매우 강합니다……. 사적 감정과 공적 감정을 구분할 줄 알지만, 그렇기에 공적으로 일이 진행되어도 사적 감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가슴에 담아 두는 스타일……. 일부러 ‘병신’이라는 말까지 써 가면서 삼천세계 길드장의 자존심을 건드려 놨는데, 아예 저를 전국의 길드장들 앞에서 소개시켜 준다……. 그건 저를 순전히 공적인 인사로 다루어야 될 만큼 높이 평가하지 않고선 불가능합니다…….”
노도하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삼천세계 길드장이 저에 관해 누군가에게 문의해 봤다는 뜻이고, 그 누군가가 저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입발림을 쳐 놨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게 누구일까요?”
“제가 삼천세계 길드장과 얘기를 나눌 때 마침 손님 응접실에 같이 있던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하죠…….”
노도하는 양손에 각각 들고 있는 유리컵 중 하나를 내밀었다. 차갑게 식힌 레몬차. 나는 감사히 받아서 마셨다.
유람선이 정박한 부산항 너머로 야밤의 도시가 펼쳐졌다. 예전처럼 전깃불이 하늘의 별빛을 훔쳐 와 지상에다 은하수를 펼쳐 놓는 야경은 더 이상 구경할 수 없었다. 약간의 불. 약간의 그림자. 그리고 많은 달빛.
갑판에선 바다의 풋내가 훅 풍겼다.
노도하와 나는 한동안 물소리에 파묻힌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잘도 저를 골탕 먹이셨군요…….”
“아까 하신 말씀인데. 그거.”
“사람한테 공짜로 일을 시키려 들다니 양심이 좀 출타하신 것 아닌지……?”
“공짜 아닙니다. 필요한 자원, 재원, 인력, 뭐가 되었든 노도하 공방주가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맞춰 드릴 겁니다.”
“흐으.”
노도하가 음습하게 웃었다.
“제가 요구하는 거요? 좋습니다. 그럼 세계를 원래대로 돌려놔 주시죠…….”
“…….”
“장의사 각성자님께선 무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뭘 떠올리십니까? 공간? 시간? 저는요. 이 세상에 무한한 것은 사람의 불행이라고 믿습니다…….”
노도하의 어조는 이 시대의 야경보다 조금 더 어둑했다.
“한 사람 목숨 살리는 거? 할 수 있습니다. 해 봤고요. 그런데 한 사람의 불행을 없앴다고 끝이 납니까? 불행이 사라지면 행복이 옵니까? 그건 전적으로 그 사람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그걸 다른 사람이 책임져 줄 수가 없어요. 언제 끝날 줄 알고……?”
이렇게 된 세상에서조차 아무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장애인들을 마지막까지 다루는 사람이 말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도움은 한정되어야 해요.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돕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잘려 나간 팔 한 짝만 돕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책임질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아주아주 잘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노도하가 목을 내밀어 이쪽을 쳐다보았다.
마치 목이 긴 뱀처럼.
막 달인 레몬차의 향기가 바다의 비린내에 섞여 흔들렸다.
“부산도 아니고 전국의 도로망을 책임져 달라……?”
보름달을 각각 반절로 쪼개어서 얼굴에 붙여 놓은 것 같은 두 눈알이 내 얼굴을 빈틈없이 담았다.
“뭐,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잘할 거 같고요. 그런데 그다음은? 도로는 인프라죠. 장의사 각성자님. 인프라를 전담하는 애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혹시 아십니까……?”
“정부.”
“민영화 사업엔 부정적인 모양이군요. 정답입니다…….”
노도하가 길게 웃었다.
반달에 구름이 그늘을 드리웠다.
“나, 사람들의 전부를 책임질 생각 없습니다…….”
“…….”
“병신이 된 사람을 다루는 것도 고작인데 병신이 된 나라를 다룰 생각은 전혀 없어요. 압니다. 지금이야 내가 길드장들 앞에서 자기소개하고 알랑방귀 떨어야 하지만, 도로가 하나씩 놓이다 보면 거꾸로 길드장들이 나한테 무릎부터 꿇어야 한다는 거. 오오. 망가진 세상의 새로운 권력자. 한반도의 왕. 달콤하겠죠. 그런데… 싫거든요. 내가 싫어. 왜? 권력 몰아준다니까 좋아할 줄 알았습니까? 니 좆이나 빠세요…….”
“노도하 공방주님.”
“아, 셀프 펠라는 좀 가오가 상하시나? 그럼 삼천세계 길드장한테 빨아 달라 부탁하십쇼. 흐. 세상 구하려거든 고귀하신 지들끼리 구할 것이지 어디 애먼 사람을…….”
“저 회귀자입니다.”
유람선의 선체를 파도가 가볍게 쳤다.
그 진동 때문인지 노도하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유리컵에 반달처럼 쪼개어져 담긴 레몬 슬라이스도 슬쩍 미끄러졌다.
“으응……?”
“공방 지하에 몰래 와이너리 파두셨죠? 거기에 샤토 디캠 1990년산 와인을 20병이나 쟁여 둔 거 압니다.”
“어…….”
“그중 한 병은 반송에서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도로를 놔 드려야겠다고 결심한 날 몰래 까신 것도 압니다. 왜 하필 반송인가. 왜냐면 거기 사는 분들이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으니까. 겸사겸사 그쪽 나와바리 잡고 있는 길드장이랑 면을 터놓으면 여차할 때 간섭할 수도 있고.”
“어라……?”
“공무원 하던 시절, 사실은 복권 1등에 당첨되셨는데 아무한테도 밝히지 않았지요? 그 돈으로 와인이나 사 모으면서 보장구 제작에 필요한 기기를 사적으로 수집했고요.”
“…….”
노도하가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입술을 짚었다.
“흐음. 아하? 으으으음. 흠……. 매우 흥미로운 주장이군요. 만약 그게 진실이라면…….”
노도하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다리, 손, 가슴, 신체를 차례대로 시선이 훑었다.
“그래서 항상 그런 꼴이었군요. 아하아, 확실히. 그렇지. 장의사 각성자님의 행보가 여러모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침묵.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 하더라도, 장의사 각성자님이 무능한 인간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 각성자님이 진짜로 무능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제 말은,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려 둘 만큼은 유능해야 한다는 얘기라서……. 십족 대가리 따신 건 알겠는데 그것만으로는 좀.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증명해 주시죠.”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성녀님. 보고 계십니까?”
[네.]“노도하 씨한테 메시지 좀 쏴 주십시오.”
성녀는 나의 판단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으므로.
“……!”
내 옆에서 노도하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노도하의 표정에 당혹감과 신기함 그리고 모종의 희색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성좌가 사실 구라였다고요……?”
“예. SG넷도 제가 운영하는 것입니다.”
“어? 오, 성좌가 만든 사이트니까? 아하. 과연, 아하…….”
침묵.
“나쁘지 않습니다…….”
노도하의 동공이 차분해졌다.
“정보의 독점이란 정보의 내용을 석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보가 오가는 창구 자체를 확보해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지요. 흐으음. 이게 전부 독심술이나 뭔가 조작을 통해 벌어진 사기극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말해 그만한 조작 능력을 가졌다면 회귀 능력이나 마찬가지로 유능한 것이고…….”
노도하가 휙, 다시 내 쪽을 쳐다봤다.
“회귀라면, 몇 번 회귀하신 겁니까? 이번이 2회째……?”
“54회차입니다. 공방주와 처음 만난 건 11회차였고요.”
“거, 뒤지게도 많이 구르셨네요……?”
노도하는 살짝 질겁한 듯했다.
“하긴, 뭐……. 세상이 좀 창났어야지. 그런데 나 말고 적임자도 많았을 텐데 말입니다? 권력 주겠다면 위아래로 침 질질 흘리며 달려드는 변태 새끼들 천지삐까리 아니신가……?”
“대충 다 시험해 봤습니다.”
제2 임시정부도, 군부 쿠데타 세력도. 비록 언급하진 않았으나 그나마 유력했던 정치인들도.
노도하가 눈썹을 오므렸다.
“개중에서 내가 제일 낫다고요? 그럴 리 없는데. 성좌 흉내 내는 사람한테 맡기는 편이 제일 좋지 않을까요……?”
“아. 그분은 진성 히키코모리라서 안 됩니다.”
[…….]성녀의 말 없는 압박이 느껴졌지만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54회차 동안 뺑이 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뭐든지 제가 하려 들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까 공방주가 말한 불행무한론과 비슷하군요.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는 분야는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러면 알아서 자생하여 기어 올라오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그게 나입니까……?”
“제가 간섭하지 않아도 공방주는 굉장히 높은 확률로 부산에서 도로망을 재건했습니다. 저번 회차에도 당신, 맹주를 만나러 갔어요. 그땐 제가 없었지만.”
“…….”
사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시점에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해당했지만 90회차, 그러니까 내가 튜토리얼의 요정을 꼬드겨서 편의점을 운영했던 회차.
그때 편의점 앞마당에서 펼쳐진 최후의 만찬에 노도하도 참석했다. 각성자들에게 비장의 와인들을 뿌려서 찬양을 받은 사람이 바로 노도하였다.
그리고 다른 각성자들과 함께 마지막 레이드 파티를 꾸려서 유성우로 돌격하기 전, 노도하 또한 내 편의점에다 유서를 남겼다.
[오는 길이 너무 불편합니다. 와인병 들고 오느라 죽는 줄. – NDH]나는 그 유언이 내게 남긴 하소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회한.
만일 세상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자신이 더 무리해서 도시로부터 도시까지 도로를 이었다면, 어쩌면 세계 멸망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가 담겨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과거에나 미래에나 항상 그런 감정을 심장 한편에 살고 갈 인간이었다. 노도하는.
그렇다면, 그녀의 언행과 태도는 일종의 위장색 아닐까?
노도하가 중요한 인물이란 건 누구나 다 알았다. 이 인재를 어떻게 하면 더 요긴하게 써먹을까 궁리하는 권력자들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노도하의 얼빠진 독설을 들으면 ‘이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로서 좀 하자가 있구나’ 하고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엔 내가 있었다.
본인 역시 노도하를 처음 봤을 때는 크게 써먹지 못할 인물이라 여겼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자신의 편견을 바로잡을 기회가 내겐 끊임없이 주어진다는 것.
지난 회차에선 노도하의 공방에 들어가서 그 됨됨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했다. 환자들을 대하는 모습, 다른 길드장들과 협상하는 모습, 결국 멸망이 목전에 다다랐을 때도 자기 환자들부터 점검하는 모습…….
무려 9년이 넘도록.
결과는 합격.
당서린에게 말했듯, 노도하는 선인(善人)이 맞았다.
“혹시라도 실패할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되도록 다양하게 실패해 주십시오. 노도하 공방주가 이번에 겪는 실패들은 다음번의 노도하 공방주한테로 고스란히 데이터로 인계될 것입니다.”
“하…….”
“길, 내고 싶은 대로 내세요. 꼴리는 대로, 자기 직감이 외치는 대로 사업을 벌이세요. 언젠가 최적의 루트가 나타날 겁니다. 조직을 꾸릴 때도 이런저런 사람들 다 써 보십쇼. 누가 당신의 조직에 어울리는 인재인지 결국은 전부 판가름 나게 되어 있습니다.”
“회귀란 게 사기긴 사기군요. 이런 말로 사람을 꼬실 수도 있고요…….”
노도하가 옆머리를 긁적였다.
“으으음. 셀프 펠라나 하라고 욕한 건 미안합니다. 그, 삼천세계 길드장님한테도 미안하게 됐고요…….”
“신경 안 씁니다.”
“이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아까 전에도 노도하가 한 말이었다.
나는 노도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혼자로는 안 됩니다.”
“…….”
“도와주십시오.”
노도하가 길게 탄식했다.
밤바다의 파도 소리가 그에 공명하듯, 이제는 항구에 정박한 채로 영원히 항해하지 않을 크루즈선의 선체를 차갑게 두들겼다.
“이건 질병이야.”
불빛이 닿지 않은 파도가 중얼거렸으며 움직이지 않는 유람선이 웅얼거렸다.
“그것도 지독한 역병이지. 좆 같은 전염병 보균자들. 대의니 선의니……. 지금까지 수많은 병신들을 고쳐 왔지만 정작 가장 큰 병신은 나였고요. 자기 자신을 고치는 처방전은 어딜 뒤져 봐도 없고 언제 뒈질 때까지도 없죠…….”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또한 자신에 대한 술회에 불과하리라.
노도하가 축 처진 어깨로 컵을 내밀었다.
“뭐, 까짓거 해 봅시다. 공공사업…….”
짤랑.
우리 두 사람의 유리컵이 작게 건배했다.
레몬 향기가 코밑에 흘러들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거, 앞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겁니까……?”
“노도하 공방주가 유능한 사람이라면 그렇겠죠.”
“좆 됐네…….”
4
후일담이 있다.
다음 날, 정식으로 하나의 단체가 발족했다.
국도관리대(國道管理隊).
심플한 명칭답게 해당 단체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급속도로 망가져 가는 도로망을 복구하여 유지할 것. 지역별로 쪼개어져 각자도생하는 도시와 도시를 선으로 잇는 것.
“작금에 정부는 필요 없습니다. 유지될 수도 없고요…….”
일주일 뒤 노도하는 우리 앞에서 브리핑했다. 여기서 ‘우리’란 전국의 길드장들을 일컫는 게 아니었다.
나. 성녀.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거의 언제나 공유하는 그룹에서 밀실 회의가 벌어졌다. 나중에 가면 이 집단에 오독서라든가 몇 명이 추가되겠지만, 지금 당장은 3인의 혈맹에 지나지 않았다.
“도시들은 지금까지처럼 각 지방의 유력 길드장들한테 알아서 운영하라고 내버려 둡니다. 이들은 일종의 봉건영주와도 같습니다. 비유컨대 국도관리대는 그저 봉건영주들과 계약을 맺은 왕실, 아니 왕실 산하의 관료 집단으로 자기 자신의 포지션을 정의해야 합니다…….”
성녀가 손을 들었다. 성격 보였다.
“네, 뭡니까……?”
“지나치게 권력이 적어지지 않을까요?”
“예. 나대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권력은 원래 차지하는 분야가 많을수록 넓어지지만, 다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분야를 점유할수록 강해집니다. 그리고 넓은 권력은 저희한테 필요 없어요. 괜히 능률만 떨어지고 부패만 하지……. 자급자족의 시대, 다른 도시는 신경 쓸 수도 없는 시대, 그때 도로망의 연결 및 관리를 저희 국도관리대에서 전담합니다…….”
노도하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국도관리대는 노가다꾼들과 건설업자 그리고 전투조로 이루어졌다. 1차선 도로를 확보한 다음엔 전투조들이 흩어져서 매달 정기적으로 도로를 ‘순찰’했다.
“이 정기 순찰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른 도시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이나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국도관리대가 ‘순찰’하는 날 따라붙었다. 노도하는 그들에게 각각 정해진 사용료를 징수했다.
“사용료랄까, 사실상 세금이죠……. 그래도 세금이라고 이름 붙이면 즉각 반발할 테니 사용료라고 끝까지 우깁니다…….”
도로가 이어진 도시들 또한 도로 사용료를 내야만 했다. 물론 무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으나 그 경우엔 도로를 습격해 오는 몬스터 등으로부터 스스로 목숨을 지켜야 했다.
“마치 다른 선택지들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고, 실제로도 고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강압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라는 믿음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럴 때 비로소 국도관리대의 존재의의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매번 각인됩니다…….”
길드들 또한 여차하면 자기들끼리 조를 이루어서 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먼 도시까지 가려거든 경유지들을 들러야만 했고, 도시 하나를 지나쳐갈 때마다 해당 도시의 길드에 세금을 내야만 했다.
“엄청 꼽겠죠……?”
그러느니 차라리 국도관리대에 약간의 세금을 내고서 얹혀서 이동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일반인들과 각성자들까지 국도관리대에 이동을 맡기자 자연스럽게 노도하의 발언권은 높아졌다.
노도하가 선별한 국도관리대의 대원들은 그 자체로 ‘외교관’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서로 붙여 두면 싸움밖에 일어나지 않는 적대 길드들도, 중간에 국도관리대를 한번 쿠션으로 두면 비교적 대화가 통하는 것이었다.
노도하는 각 도시에 웅거한 길드장들의 관계, 자존심, 경쟁 심리를 이용하여 최대한의 효율성을 뽑아냈다.
물론 시행착오도 없잖아 있었다. 아니, 많았다.
“이런 좆 같은 새끼들…….”
외교를 하랍시고 보내놨더니 착복을 하고 앉은 국도관리대원들이 수두룩했다. 믿고 맡겼더니 사실은 다른 길드에서 보내온 첩자인 경우도 있었다. 최대한 빨리 가는 도로를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몬스터들의 소굴을 지나치는 경우 또한 잦았다.
그래도 조금씩 국도관리대는 자리를 잡아갔다.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말로 정확하다니까?
어째선지 노도하는 나를 증오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말이다.
“다음 회차에 가면 내가 실패한 자료들 넘기면서 나한테 꼭 좀 전해주십쇼.”
“뭐라고 전해드릴까요?”
“개꿀 빨아서 좋냐고, 씨팔 새끼가…….”
전해줬다.
그에 대한 55회차 노도하의 반응은 매우 담백했다.
“지랄.”
– 제작자. 結.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