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34)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34화(3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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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 Ⅰ
신노아
1
마침 공무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한국의 현대판타지에선 수상쩍을 정도로 공무원 등장 비율이 높다.
‘안녕하세요- 아, 게이트 입장하신다고요? 헌터 자격증 보여 주시겠어요?’
‘아이고. 이거 자격증 유효기간이 끝나셨네. 선생님. 이러면 들여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얼른 헌터관리국에 가셔서 갱신하고 오십쇼.’
‘네? 이번만 봐달라고요? 허, 이 사람이 우릴 뭐로 보고 이러는 거야?’
예를 들어 ‘게이트 관리 공무원’.
대대로 동아시아인이란 공무원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지옥에조차 관료제를 적용해 버린 공무원 성애자들.
참된 동아시인이라면 몬스터 웨이브에 공포를 느끼기보단 마땅히 ‘아니, 저 오랑캐 괴물들이 미련하고 불운하여서 아직도 문명을 깨우치지 못했구나!’라고 한탄하며 관료제를 전수해 줌으로써 대왕몬스터-중간관리몬스터-하급관리몬스터의 국가 체제를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다.
지엄하신 국법의 행사에 세기말 난장판이라고 어찌 예외를 두랴.
물론 우리 세계엔 게이트 관리원 따윈 없었으나 다른 종류의 공무원은 엄연히 실존했다.
“장의사 각성자.”
“예?”
“슬슬 6월인데 국세청에 종합소득세 신고는 하셨는지……?”
“아.”
노도하의 말에 내가 헛,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게요. 벌써 그런 시기가 되었군요. 지적해 줘서 고맙습니다.”
“흐. 그거 귀찮다고 뒤로 미루면 골치 아파집니다. 나중에 자기 마음대로 징수해 가지 않습니까. 오늘 업무만 끝나면 바로 세무서 뛰어가시는 것이……?”
“맞는 말이네요. 뭐, 전 세금을 납부하지도 못하겠지만……. 얼른 처리해 버리고 오죠.”
그렇다.
청춘을 불사르던 군대의 노여움도 잊혀지고 국회의원의 금배지가 사토 속에 묻혀 버린 그리고 그런 것들에 누구도 좆도 신경 쓰지 않는, 생존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에――
국세청은 여전히 존재했다.
오늘은 대한민국 정부 최후의 유산, 무너져내린 폐건물의 흔적, ‘국세청 세무서’라는 이름의 사소한 괴이에 대해 얘기해 볼까 싶다.
2
까톡-
내가 저 익숙하면서도 낯선 까톡 알림음을 최초로 접수한 것은 56회차. 5월 4일의 봄날이었다.
“…음?”
처음엔 내 귀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지구의 장르가 아포칼립스물로 화려하게 드리프트를 꺾은 이후부터 우리 인류의 국어사전에서 ‘전화’ ‘문자’ ‘통신’ 따위의 단어들은 삭제되었거든.
‘방금 까톡 소리가 울린 거야?’
설마- 하는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열어 봤다.
그런데 이럴 수가. 거의 1년 만에 까톡앱 위로 [1]이라는 빨간색 글자가 위풍당당하게 새겨져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생전 처음 까톡을 받아 본 유치원생처럼 허겁지겁 메시지를 확인해 봤다.
――――――――――
[알림톡 도착]‘다시 추락하는 대한민국’
‘함께 죽는 국민의 나라’
국세청에서 발송한 전자문서가 도착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국세청에서 안내드립니다.
매년 5월은 종합소득세를 신고·납부하는 달입니다.
국세청에서 종합소득세를 미리 계산하여 안내해 드리니, 아래 안내문을 확인하신 후 ARS 전화(☎4444-4444)로 간편하게 신고 후 납부하시기 바랍니다.
■ 신고문의: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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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지를 확인한 이후의 내 표정은 확인하기 이전의 상태에 비해 압력이 내려갔다.
다른 말로는 김이 샜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에이, 씨. 뭐야. 귀신 문자잖아.”
귀신 문자.
세기말이 도래한 이후부터는 종종 이런 괴이들이 출몰했다.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들이 1급 위험유해물질로 취급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괴이들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무한경쟁 시대.
조금이라도 남들과 다른 개성을 어필하려면 귀신 문자뿐만 아니라 귀신 전화, 귀신 사이트, 귀신 라디오, 귀신 텔레비전 등등 품종의 다양화를 노려야만 했다.
사실상 한반도에서 안전한 통신망이라곤 SG넷이 유일했는데, 그 SG넷조차 ‘용사증후군’에 의해 오염된 경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온 세상이 안전사각지대였다.
그리고 이런 귀신 문자에 대응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무시하자.’
바로 생까기.
영어에는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엔 호기심이 좀 더 레벨업해서 고양이는 물론이거니와 인류도 심심찮게 사냥한다.
애당초 이 시기 한반도에선 국세청은커녕 정부 조직 자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히 종합소득세를 독촉하는 문자 따윈 개무시하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아, 형님. 문자 받으셨습니까?”
“응? 무슨 문자?”
“그거 왜, 국세청에서 세금 내라는 문자요. 지금 SG넷에서 아주 난리입니다.”
“…너도 받았어?”
상황이 좀 달라졌다.
“아, 그, 저… 저도 받았어요. 편지.”
“뭐? 편지?”
“네, 네에…….”
심아련이 우물쭈물 편지를 내밀었다. 봉투는 이미 뜯어진 상태. 편지를 슥 훑어보니, 알림톡과 정확히 똑같은 내용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건 좀 심각한 문제로군.”
불길함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차가운 손자국이 척추뼈를 만지작거리는 듯한 감각.
“그, 그쵸? 전 길드장님이 장난친 건 줄 알았는데 서규 씨도 똑같은 문자를 받았다고 그래서…….”
“어디서 편지를 발견했냐?”
“이, 일어나니까 침대에 놓여 있었어요. 베개 바로 옆에…….”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만……. 내 길드 아지트의 보안은 미친 수준을 자랑했다. 89회차 때 고요리한테 길드가 한 큐에 박살 나 버리긴 했지만 그건 고요리가 이상한 거고.
설령 뤼팽이 아니라 뤼팽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내 감시를 피해 심아련의 침실에다 편지를 덩그러니 놓아두고 떠나기란 불가능했다.
만일 상대가 인간이라면 말이다.
[저도 똑같은 메시지를 받았어요.]성녀의 증언이 결정타를 날렸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어 보니 문틈에 편지가 끼어 있었네요.]“다른 각성자들은 어떻답니까?”
[동일한 현상이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스마트폰을 소유한 사람들은 알림톡을 받았고, 그 외의 사람들에겐 편지가 발송되었어요.]본래 무감정한 성녀의 목소리가 한층 더 무기질적으로 낮게 깔렸다.
[장의사 씨. 더 중요한 사실은 아무도 ‘편지가 도착하는 순간’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예?”
[그러니까, 편지를 전달한 우편 배달부의 모습을 어느 누구도 관측하지 못했어요.]성녀의 말은 이러했다.
오늘 아침, 성녀가 ‘천리안’으로 감시하고 있는 인천의 어느 길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길드 역시 나만큼은 아니어도 아지트가 상당히 튼튼했다. 해당 아지트는 지하에 위치했으며 여러 겹의 강철문 그리고 여러 명의 경비병으로 이루어졌다.
간단히 그림으로 표시해 보면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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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문 경비 문 경비 문 경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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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병들은 각자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섰다. 요컨대 이 길드엔 언제나 ‘잠을 자지 않는 인력’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오늘 아침 길드원들은 눈을 뜨자마자 한 명도 빠짐없이 우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의 베개 밑에서.
“…….”
[똑같은 메시지가 각성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한테도 발송되었습니다. 장의사 씨. 제가 판단할 때 ‘국세청 종합소득세 편지’는…….]“보통 괴이가 아니로군요.”
[예. 적어도 한반도 전역에 영향을 행사하는 괴이인 것이 확실해요.]나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귀신이 되어서라도 세금을 뜯어 가려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있었다.
3
-익명: 국세청에 전화 걸어 봄ㅋㅋ.
이 험난한 세기말을 헤쳐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을 뽑아 보라면, 돌다리를 건널 때 두들겨 보고 그냥 안 건너는 조심성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각성자들 중에는 간을 배 밖으로 출타시켜 놓은 채 인생을 살아가는 막가파가 간혹 있었다. 보통 그런 인물일수록 삼도천 티켓을 일찍 끊기 마련이었는데 가끔 멀쩡한 희귀종자도 있긴 했다.
그날 SG넷에 올라온 인증글의 작성자도 그런 극소수의 멸종위기종이었다.
-방금 알림톡에 적힌 대로 4444-4444에 전화 걸어 봤음. 주변에선 절대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아 까짓거 죽기밖에 더하겠느냐고ㅋ
-번호 찍으니까 진짜로 전화가 걸리더라? 뚜르르르뚜르르르 소리 울리더니 몇 초 안 지나서 통화 연결됐음. 안내원? 통화원? 아무튼 기계금 비슷한 목소리 있잖아. 그게 흘러나오더라고ㅇㅇ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국세청 ARG 신청 신고 센터입니다,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해 주세요’라고 말했던 거 같음.
-그다음엔 스마트폰에 이상한 화면이 뜨는 거임. 막 바탕은 빨간색에 글자는 하얀색인데 이건 캡처 떠 왔다ㅇㅇ……
게시글에는 작성자가 첨부해 놓은 이미지 파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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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National Tax Service
국세청 ARS 신청 신고 센터입니다.
[1. 종합소득세 신고] [2. 부가시체세 신고] [3. 노예사업장 무실적 신고]3G, LTE 환경에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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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이 고르지 못해서 군데군데 노이즈가 낀 이미지 파일. 붉은색 바탕+흰색 글씨라는 조합이 안구를 찔렀다.
이 정도면 돌다리가 흔들거리는 수준을 뛰어넘어 아예 탭댄스를 추는 지경이었으나 놀랍게도 인증글 게시자는 멈추지 않았다.
-부가시체세랑 노예사업장이란 글자 보자마자 솔직히 쫌 쫄리긴 했음ㅋㅋㅋ 여기가 1차 쫄림 포인트.
-그나마 제일 멀쩡한 ‘종합소득세 신고’ 이거 클릭했다. 아무튼 알림톡으로도 신고하라는 건 종합소득세였으니까ㅇㅇ
-클릭하니까 노이즈가 막 지지직거리면서 안내원 음성 들리고 주민등록번호 누르라고 그러더라? 본인 주민등록번호 입력한 지 너무 오래돼서 까먹을 뻔ㅋ
-뭔가 진짜로 세금 납부하는 것처럼 안내가 진행됐는데 맨 마지막에 가서 계좌로 납부해 달라는 거야. 그런데 씨발 요즘 세상에 계좌가 어딨어? 아, 있어도 은행이 업무를 안 보는데 어떻게 돈을 보내냐고요ㅋㅋ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세무서에 가서 직접 납부해도 된대. 나보고는 ‘포천 세무서’로 가라더라.
-여기가 2차 쫄림 포인트인데……. 내가 사는 지역이 진짜로 포천이거든ㅋㅋㅋㅋ. 문자 커신 이 새끼들 어떻게 내가 사는 지역 알고 있음?ㅋㅋ
-근데 내가 알기로 이 동네 세무서 옛날에 쫄딱 무너진 거로 알고 있는데 왜 가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조금 있다가 한번 가 보고 인증글 올리겠음ㅇㅇ……
게시글은 거기서 끝났다.
당연히 댓글 반응은 안 좋은 의미로 폭발적이었다.
-익명: 미친놈아 그걸 왜 전화 걸어??
-고려장: 하느님 한 놈 더 올라갑니다.
-[국도]사관: 인증글 꼭 올려라.
-익명: 포천이면 거기 각성자들 어차피 다 똑같은 길드에 소속돼 있을 텐데 얘 신상 다 파일 듯?
-문학소녀: 아직도 이런 용자가 살아 있으셨네…….
-dolLHoUse: 우둔.
-[만족]요리왕비: 사람의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랍니다. 욕망은 한순간에 불과해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보려는 행위보다 조금 더 중요한 일이 인생에는 많지 않을까요?
└익명: 역시 요리왕비님, 말씀 너무 친절하시다ㅠㅠ.
-[백화]고등학교6학년: 호에에. >_<);;
-익명: 이 머저리병신 100% 뒈진다에 내 전 재산 걸어도 됨ㅇㅇ
나는 게시글 작성자를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 기회를 이용하고자 마음먹었다.
“서규야. 나 잠깐 포천 좀 올라갔다 내려올 테니 그동안 집 잘 지켜라.”
“네? 포천이요? 갑자기 왜……. 아, 혹시 SG넷에 올라온 인증글 때문에 가시는 겁니까?”
“그래. 새로 출현한 전국구급 괴이인데 확인은 해 봐야지.”
“와……. 형님도 진짜 성실하다니까요.”
나는 가볍게 행장을 꾸려서 즉시 북쪽으로 향했다. 거의 산책하는 기분으로.
내 기준에서 서울에서 포천까지면 그리 멀지도 않았을뿐더러, 포천은 옛날 50회차 때 심아련이 ‘치유의 천사’로 활동하던 지역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익숙한 동네였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포천에 도착했다. 그리고 세무서를 찾아가던 도중, 나는 정말 의외의 인물과 맞닥뜨렸다.
“어?”
“음?”
건장한 체격. 짧게 다듬은 스포츠머리.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살아간다기엔 지나치게 건실한 관상.
‘똑바로 자라난 젊은이’란 관념을 고스란히 현실에 옮겨 담아 놓은 듯한 청년.
“아, 음. 죄송합니다. 저를 아시는 눈치인데……. 제가 사람 얼굴을 원체 잘 기억하지 못해서요. 어디서 만나신 분입니까?”
청년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자기 동네에서 보지 못했던 외지인을 살짝 경계하는 낌새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완전 기억 능력]을 지닌 후천적 인싸. 덕분에 웬만한 각성자는 다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나 이번 경우엔 상대방의 얼굴이 퍽 익숙했다.
‘얘 이주호잖아?’
이주호.
50회차 시절, ‘고려장 빌런’ 심아련에 의해 아버지가 모욕당한 피해자. 그럼에도 심아련을 용서해 준 대인배이기도 했다.
그 대인배 청년이 배낭을 챙긴 채 포천 세무서로 이어지는 길목에 떡- 하니 서 있었다. 오른손으론 스마트폰을 쥐고 말이다.
얼핏 곁눈질로 훔쳐보니, 스마트폰 화면엔 낯익은 SG넷 홈페이지가 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설마.’
불현듯 모종의 깨달음이 내 뇌리에 꽂혔다.
‘…네가 인증글 작성자였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세상 참 좁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