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35)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35화(3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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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 Ⅱ
신노아
4
“아아! 장의사님이었군요! 말씀은 여기저기서 항상 듣고 있었습니다. 미처 알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서로 통성명을 나누자 이주호는 봄날의 뙤약볕처럼 경계심이 스르륵 녹아들었다.
이래서 사람이 평소부터 착한 일 많이 하고 덕망을 널리 떨쳐 둬야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도 호감도 +20% 버프가 저절로 붙는데 왜 덕망을 안 쌓아?
“어휴, 죄송하긴요. 다 허명인데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제가 다 감사하죠.”
“아하하. 저희 길드가 약소한지라 십족 토벌전에선 2군, 아니 3군에 가까웠습니다. 먼발치에서나 장의사님을 본 게 전부였지요. 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여기 싸인 좀 해 주신다면…….”
“아이고. 제가 연예인도 아니라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품에서 순순히 붓펜을 꺼내 들어 뽕, 하고 펜 뚜껑을 열었다. 당서린만큼은 아니지만 나한테도 사인 요청이 종종 들어오는지라 붓펜을 상비하고 다니거든.
장의사(葬儀師). 세 글자의 한자를 해서체로다가 휘갈겼다.
회귀자 인생의 공력이 담긴 필적이었다. 내 사인을 보자마자 이주호의 눈이 동그래지는 게 느껴졌다.
“어, 와. 글씨가… 진짜 달필이시네요.”
“감사합니다. 그 반응 보는 재미로 죽어라 서예를 익혔습니다.”
“네? 아아. 아하하.”
숙련된 회귀자는 사람의 유형 및 성격에 따라 아이스 브레이킹 특화법을 익혀 두는 법.
사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한반도에서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은 얼마 없었다(노도하처럼 세상을 불신과 증오, 악의, 경멸로 대하는 인성쓰레기는 과연 예외다).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이주호와 나는 라포를 형성했다.
“아, 그럼……. 선배님께선 SG넷에 제가 올린 글 보고 일부러 올라오신 거네요?”
“그렇죠.”
“와, 이거 너무 부끄러운데…….”
아니나 다를까. 인증글을 작성한 ‘익명’의 회원은 이주호가 맞았다.
심아련에게 아버지를 모욕당했던 시절, 그러니까 50회차에서 이주호는 SG넷에서 ‘오늘가입함’이란 닉네임을 사용했다.
그때 이주호가 처음 올린 게시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원래는 익명으로 활동했는데 이 글 올리려고 가입했다.
즉, 심아련에 의해 아버지가 모욕당하지 않은 회차에선 이주호가 계속 ‘익명’으로 활동한다는 뜻.
“부끄러울 게 뭐 있습니까. 처음 출현한 괴이의 정체를 파헤치러 가는 길인데요. 괜찮으시다면 저도 이주호 씨 옆에서 돕겠습니다.”
“아니! 당연히 괜찮습니다! 장의사 선배님께서 도와주시면 완전 천군만마죠!”
우리 둘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딱 포천 세무서 빌딩이 우뚝 솟아 있는 오르막길까지만 유지되었다.
“흐음.”
“어…….”
뭔가 마뜩잖다는 ‘흐음’ 소리는 내가 흘렸고, 당혹감이 섞인 ‘어’는 이주호가 냈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세무서 빌딩이 우뚝 서 있었다.
그래. 마치 세기말 따윈 도래한 적 없다는 듯 말끔하게.
[성실납세에 감사합니다 – 포천세무서] [5월은 종합소득세 확정·신고 기간입니다. 신고납부기간: 5월 1일~ 5월 31일까지] [성실납세, 공정과세! 함께하는 稅미래]주변의 다른 건물들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반면 세무서 빌딩만큼은 회색 외벽이 영 깔끔했을뿐더러, 잡티 하나 없는 현수막들까지 위아래로 길게 휘날렸다.
“이주호 씨. 원래도 저 건물이 멀쩡했습니까?”
“예? 아뇨, 아닙니다. 그, 얼마 전에 여기서 불이 진짜 크게 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건물들 싹 다 무너졌습니다.”
이주호가 꺼림칙하다는 듯 빌딩을 올려다봤다.
“하. 분명히 그랬는데…….”
“그럼 저 건물 자체가 공허겠군요.”
인식 개변에 주변 환경 강제 변화. 제법 레벨이 높은 공허였다.
어젯밤 비가 내린 탓일까. 물기를 머금은 건물의 표면이 벌레 등껍질처럼 미끄럽게 번들거렸다.
그리고 그때였다.
“으허어어어억!”
건물에서 누군가가 굴러 나왔다.
나와 이주호는 반사적으로 무기를 꺼내 들었지만 상대방은 미처 우리의 무장 상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발! 아아아악! 내 발! 사, 살려 줘!”
왜냐하면 오른쪽 다리 한 짝을 상실하고 있었거든.
남자가 입구에서 털푸덕, 쓰러지자 사방으로 핏물이 튀었다.
이주호가 눈썹을 찡그렸다.
“박상현?”
“주호 씨랑 아는 사람입니까?”
“어어. 예, 뭐……. 각성자는 아닌데 이 근방에서 좀 깡패처럼 돌아다니면서 동네 어른들 겁박하는 놈입니다. 장의사 선배님께서 기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주호의 목소리 때깔에서부터 ‘나 저런 인간 별로 안 좋아한다’라는 기운이 풀풀 풍겼다.
“그런 사람이 잘도 살아 있군요.”
“지금은 돌아가신 예전 부길드장 형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저희 길드도, 아주 없는 사람 취급하긴 곤란해서…….”
부자 관계라.
“이, 이주호! 주호 씨!”
상대방이 우리를 눈치챘는지 화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음. 샹크스는 팔을 잃어버렸으니 저 사람은 하반신-샹크스로군.
“저 좀 살려 줘요!”
“하아. 무슨 일입니까?”
“가, 갑자기 건물이 생겨서 들어가 봤는데……. 여기 미쳤어요! 윽, 아니, 일단 좀 살려 주세요! 나 지금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찰캉-
건물 입구에서부터 기이한 소음이 흘러나왔다. 박상현이라 불린 남자가 움찔, 온몸이 경색되었다.
“오, 온다! 야! 얼른! 얼른 구해줘!”
그 소음은 쇳소리에 가까웠다. 의성어로 표현하자면 ‘찰캉찰캉’ ‘철컥철컥’에 가까웠다.
세무서 건물 저 안쪽, 입구멍 너머의 십이지장에서 찰캉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뭐, 뭐해? 구해달라니까! 야! 이주호! 너 나 죽으면 동욱이 아저씨가 가만히 내버려 둘 거 같아!”
나는 이주호를 슬쩍 돌아봤다.
“구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길드 안에서도 가끔 말이 나오던 망나니였습니다. 괴이한테 잡아먹혔다면 저희 길드 체면도 상하지 않겠죠.”
마침내 찰캉찰캉 소리가 박상현의 바로 뒤까지 접근했다. 박상현은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든 포복 자세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턱- 하고 무언가에 의해 발목이 붙잡혔다.
“아아아아아악! 악! 안 돼, 싫어! 살려 줘! 아아아, 아-.”
박상현의 몸뚱어리는 그대로 빌딩의 아가리 안쪽으로 쓱 끌려 들어갔다. 순식간이었다.
한동안 비명이 복도를 타고 전해졌으나 그것도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1분쯤 흘렀을까. 사방이 고요해졌다.
“아직도 저기 들어가 보겠다는 생각은 여전하십니까?”
“음…….”
이주호의 수심이 깊어졌다.
하지만 구태여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비명이 멎고 잠시 뒤, 세무서 건물로부터 누군가가 직접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세금 신고하러 오신 분이에요?
“…….”
“…….”
상대의 질문에 우리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럿 있었다.
첫 번째,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공허의 건물에서 튀어나온 존재가 정상일 리 없었다.
두 번째, 얼핏 인간처럼 보이는 존재는 접수처 공무원처럼 반듯하게 정장을 입었으나 어째선지 두발 규정을 완벽하게 어기고 있었다.
과장이 아니라, 산발처럼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앞뒤로 골반까지 흘러내려 얼굴뿐만 아니라 상반신을 통째로 가렸지 뭔가. 그 머리카락 사이로 흐적흐적- 하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마 저것도 개인의 헤어 스타일 취향이라며 넘어가 주기엔 내 마음속의 동방예의지국 출신 유교꼰대가 ‘갈!’을 외쳤다.
심지어 머리를 끊임없이 양옆으로 흔들어 대는 바람에 저 무지막지한 산발머리까지 시소처럼 연거푸 좌우로 흐느적거리는 것 아니겠는가? 요즘 공무원들은 근무 시간 도중에 헤비메탈 음악을 듣는 모양이었다.
세 번째로,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였는데……. 이 ‘공무원처럼 보이는 무언가’는 오른손에 30cm짜리 가위를 들고 있었다.
찰캉찰캉찰캉-
아까 전부터 들려온 기이한 소리의 정체가 바로 저 가위였다. 가윗날이 움직일 때마다 질척거리는 핏물이 튀었다.
가히 충격적인 비쥬얼이 아닐 수 없었다.
설령 눈앞에 서 있는 ‘공무원’의 평소 취미가 정원 관리라 할지라도 직장에까지 가위를 들고 나오는 게 공무원 근무수칙에서 용납될 것 같진 않았다. ‘대한민국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8조의2(복장 및 복제 등)에 따르면 ‘① 공무원은 근무 중 그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단정한 복장을 하여야 한다’라고 딱 적혀 있거든.
-세금.
공무원이 고개를 기울였다. 스르륵. 머리카락이 움직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휘발유 기름 냄새가 풍겼다.
-신고하러 오신 분이에요?
“어, 어어…….”
“네.”
얼타는 이주호를 대신하여 내가 치고 나갔다.
“종합소득세 안내 문자 받고 왔습니다. 포천 세무서로 가라길래 와 봤는데, 여기가 맞습니까?”
-네. 맞아요.
휙, 공무원의 머리가 꺾여서 내 쪽을 쳐다봤다.
-이번 달이 신고 시간이거든요. 납세자님 신원 확인하게 주민등록증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할까.
여기서 칼을 빼 들어 괴이의 목을 날리는 것쯤이야 십족 모가지 비트는 것보다 간단했다. 하지만 ‘괴이 대응 매뉴얼: 일단 주먹으로 패 버리기’는 나 정도 되는 각성자한테나 유효했다.
아무리 나라도 세상 모든 괴이들에 한꺼번에 대응하기란 불가능한 법.
‘공략법’은 되도록 모든 사람들, 설령 나보다 한참 허약한 각성자여도 참고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의미가 생겼다. 특히나 이번 ‘종합소득세 괴이’처럼 전국적으로 출현하는 괴이일수록.
“주호 씨. 여기선 일단 장단을 맞춰 주는 편이 좋아 보입니다.”
“…아. 네. 여기 있습니다.”
이주호는 다 헗어서 낡아빠진 에르메스 가죽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냈다. 본인이 명품을 선호하는 성격은 아니어 보이니 아마 가족의 유품이리라.
-감사합니다. 잠깐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겠습니다.
공무원이 주민등록증을 건네받더니 자기 머리카락 틈새로 가져갔다.
까드득- 커튼처럼 닫힌 머리카락 저편에서 까끌까끌거리는 소음이 울렸다. 앞니로 주민등록증을 갉작거리면 저런 소리가 들리려나.
“…아니, 내 주민등록증…….”
-확인되셨습니다. 만 26세. 이주호 님. 저희 포천 시민이시네요. 굉장히 소득이 적으시고요. 오늘 납부하셔야 할 세금은 신체세 노예세 총액 전부 합쳐서 100그램 되겠습니다.
“예? 100그램?”
아.
과연, 이런 유형의 괴이.
-저희가 세금 납부를 대신 진행해 드릴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할까요, 이주호 님?
“뭐. 어,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잠깐. 기다리십시오.”
나는 이주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
“괴이들이 거래를 제시할 때 그냥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면 안 됩니다. 아까 박상현이란 사람 몰골 보셨지요?”
“예? 아, 네.”
“그게 아마 세금 징수였을 거예요.”
“……?”
“지금 주호 씨 세금이 100그램 나왔다지 않습니까. 만약 50킬로그램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
이주호의 눈이 커졌다.
“어, 그, 그렇다면? 저도?”
“예. 아마도 이 ‘종합소득세 괴이’가 말하는 세금이란 건 사람의 신체 일부로 납부해야 될 겁니다. 아무리 100그램이 작아 보여도 어느 부위의 100그램이냐에 따라 천지 차이죠. 만에 하나라도 눈알을 빼가면 어쩝니까.”
“헉…….”
“이래 봬도 제가 괴이 전문가입니다. 이건 저한테 맡겨 보십시오.”
나는 비닐봉지를 꺼내고 손가락에 오러를 맺었다.
“그리고 일단 여쭤는 보겠는데……. 주호 씨, 머리 스타일 딱히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시죠?”
“…넵?”
잠시 후.
안 그래도 짧았던 이주호의 모발이 민둥산으로 진화했다. 흰색 비닐봉지 속엔 참담한 흔적이 새까맣게 담겨 있었다.
이주호가 좌절했다.
“아아아아아…….”
“흠. 이걸로는 100그램이 좀 많이 부족한데. 이거 드릴 테니까 거기에 잠깐 소변 좀 누고 오십시오.”
“…장의사 선배님, 이런 분이셨군요.”
왜. 뭘. 괴이를 상대하는 데 창피함이고 자시고 무슨 쓸모인가.
아무튼 이주호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100그램 용량의 비닐봉지를 완성했다.
공무원이 이주호한테서 비닐봉지를 넘겨받았다.
-세금 납부, 확인했습니다.
“…….”
-앞으로도 성실한 세금 납부에 동참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무원은 허리를 꾸벅 숙이더니 세무서 건물로 돌아가 버렸다.
이주호가 나를 쳐다봤다. 진짜 이게 되네? 라는 표정.
나는 푸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소변이나 침 따위가 안 먹혔으면 안 쓰는 팔 손가락 몇 개쯤 자르려고 했는데…….’
뭐, 먹혔으니 해피 엔딩 아닐까.
5
후일담이 있다.
-익명: 종합소득세 괴이 이거 조팝인데?ㅋㅋㅋ
서울로 돌아와 보니 어느새 이주호가 SG넷에 인증글의 속편을 연재했다.
-익명: 종합소득세 신고하겠다고 하면 웬 머리카락 존나 긴 귀신이 나와서 주민등록증 내놓으라고 말함. 이때 그냥 내주면 지가 알아서 세금 계산해 준다. 주민등록증 분실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ㅇㅇ……
-익명: 난 100그램 나왔는데 바로 머리털 다 밀고 비닐봉지에 오줌 싸서 건네줬다. 그러니까 이 멍청한 귀신이 좋다고 희희낙락거리면서 돌아감ㅋㅋ
-익명: 내가 볼 때 이거 종합소득세 알림톡 무시하지 말고, 그냥 지금 바로 세무서 달려가서 자기 세금 얼마냐고 물어봐라. 나처럼 100그램 정도 나오면 그냥 그 자리에서 납부해 버리고, 막 50kg 이렇게 뜨면 5월 31일 될 때까지 큼직한 쓰레기통에다가 소변을 계속 모아 두는 거임. 그러면 간단하게 괴이를 지나칠 수 있을 듯ㅇㅇ……
-익명: 아무튼 쫄지 말고 다들 세금 성실납부해라ㅋ
“음.”
내가 요청했던 대로 게시글엔 ‘종합소득세 괴이’를 물리칠 공략법도 잘 담겨 있었다.
다른 회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익명: 아니, 이걸 멀쩡하게 살아 돌아와……?
그 이후부턴 자신들도 각자 동네 세무서에서 세금을 납부하고 돌아왔다는 인증글이 SG넷에 속속 쇄도했다.
-고려장: 세금 300kg 떴다ㄷㄷㄷ 나보다 더 높이 뜬 놈 있냐?
-문학소녀: 10kg이면 SG넷 평균이지?
-익명: 씨발 세금 500kg 내놓으라는데 나 어떡함?
-[만족]요리왕비: 이번에 세금 환급 받아 왔네요. 공무원이 박스를 선물로 주던데 박스 안에 뭐가 들었을까요?
일명 세금 챌린지라고, 누가 더 세금이 무겁게 측정됐느냐를 두고 소소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괴이가 일종의 놀잇감으로 전락한 아주 희귀한 사례라고 볼 수 있으리라.
결국 종합소득세 괴이가 어떤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지는 밝혀 낼 수 없었고, 인간의 정부가 아니라 괴이한테 세금을 납부하게 된 작금의 현황이 꽤나 우스웠다만…….
‘이것도 시대의 흐름이겠지.’
나 역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세무서에 향했다.
본래 서울에 대규모 공허가 터졌을 때 한강 이남의 건물들은 싹 다 사라졌다. 하지만 매년 5월에 한정해서 세무서 빌딩만큼은 홀연히 생겨났다가 다시 6월이 되면 사라지는 것 아닌가.
어떻게든 국민의 혈세를 뜯어먹겠다는 집념에 감탄하면서 반포 세무서에 들르자, 포천 세무서 때랑 똑같이 생긴 난발머리 가위귀신이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납세자님 신원 확인하게 주민등록증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예,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잠깐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겠습니다. 만 이십…….
멈칫.
내 주민등록증을 받아 가서 이빨을 갉작거리던 괴이가 갑자기 작동을 정지했다.
그리고 온몸이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
-이십, 십, 이십육, 이십칠, 팔, 구, 십육, 이십사, 만, 백, 이백, 심삽, 칠칠칠칠, 칠칠칠, 사백, 오백이십칠.
파샤아악!
괴이의 몸이 급속하게 불어나더니 사방으로 새까만 체액을 분출하며 터졌다. 문자 그대로 풍선처럼 폭발한 것이었다.
“…….”
땅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진 주민등록증을 주워서 다시 지갑에 넣었다.
허리를 굽혔다가 펴 보니, 어느새 반포 세무서 건물은 신기루처럼 없어졌다. 허허벌판에 오직 나 혼자뿐.
“음.”
…아무래도 나 장의사가 세금을 납부하게 될 날은 좀처럼 오지 않을 듯싶었다.
– 납세자. 結.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