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353)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 353화(35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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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선배! 응? 뭐야, 표정이 왜 그렇게 칙칙해? 앗. 혹시 드디어 우리의 위대하신 대마녀 령도자 국도관리대장 각하께 정이 떨어진 걸까?”
“에이, 언니도 참- 선생님이 그럴 리 없잖아! 선생님은 저열한 낙오자들까지 끌어안고 나아가는 대인배이신걸. 그건 365일 사시사철 할로윈인 줄 알아서 매일매일 마녀 코스프레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국도관리대로 품어 준 선생님의 은덕만 봐도 알 수 있어.”
“앗- 차아. 내 생각이 또 짧았구나. 아무리 추악하고 비열한 버러지여도 버리지 아니하는 선배의 비범한 마음. 나 같은 범인으로선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이긴 해!”
“으응. 자책하지 않아도 돼, 언니……. 사실 나, 고백할 게 있거든.”
“엇. 뭐니, 동생아?”
“사실 나, 바벨탑에 올 때마다 고깔모자들이 득실득실거리는 광경을 볼 때마다 인류애에 대한 한계를 체감해……. 흐읏. 그래서 오늘도 계단 오르면서 고깔모자를 세 개나 뽑아다가 창밖으로 던져 버렸어.”
“세상에! 우리 마음 수양이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동생아!”
“으응. 따라갈 수 없는 거야, 이 세상의 속도를…….”
“역시 우리 같은 낙오자는 선배가 챙겨 줄 수밖에 없겠네!”
“선생님. 분노의 삼국지 정사 촉서, 원문으로 읽기 500배 들어갈게요. 저를 지켜봐 주세요!”
“…….”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도무지 새벽 2시에 불려 나온 인간이라곤 믿기 어려운 저세상 텐션을 만끽하고 있는 장본인은… 두 사람.
쌍둥이 자매.
낡은 표현이지만 낡은 만큼 전통적인 문법에 따를 때, 둘은 나비의 날개를 접었다 편 것처럼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었다.
주황색 머리카락. 붉은 눈동자.
오직 교복 색깔이 한쪽은 새하얗고 다른 한쪽은 새까맣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외견만으로는 절대 두 사람을 구분할 수 없을 듯싶었다.
“요화… 야?”
막힌 목구멍을 게워 내며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안 그래도 하이텐션을 유지하던 쌍둥이 자매가 요란스럽게도, 서로 손을 맞잡은 채 포즈를 취하였다.
“예- 이!”
“두 자매는 문제아지만 최강!”
“한반도의 천만 사이비 전통이 길러 낸 기린아! 설마 이 땅에서 최후까지 살아남을 이단이 기독교 계열도 불교 계열도 아닌 도교 계열이었다니, 누가 상상했으랴……!”
“요화요화☆시스터즈! 강림!”
“예- 이!”
짝! 하고 두 사람이 손뼉을 마주쳤다.
“…….”
고요했다.
다시 말하지만 새벽 2시였다.
아무리 오늘이 축젯날이었다 해도 바른생활이 장착된 유토피아 시민들은 대부분 곯아떨어졌다. 자연히 주변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옆에서 당서린의 한숨 소리가 아나콘다처럼 길게 이어졌다.
“아, 이래서 이 또라이 자매들을 불러들이기 싫었는데…….”
당황스럽긴 이쪽이 더 당황스러웠다.
‘아니. 진짜, 얘들, 왜 이러는 거냐?’
굉장히 낯설었다.
동생 천요화야 언제 어디서든 방긋방긋 웃고 다니기로 유명했으나 그렇다고 지금처럼 텐션이 미친 건 아니었다.
도리어 웃는 낯으로 사람을 찔러 버리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언니 천요화도 마찬가지.
무간이었던 시절에도, 사계절의 교실에 [시간봉인]을 당했을 때도, 어느 쪽인가 하면 속을 알 수 없이 교묘하게 능글거리는 성격에 속했다.
누가 사이비 교단 출신의 무녀들 아니랄까 봐 음험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어. 이렇게 사상 최초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장면을 목도해 보니까, 느낌이 전혀 달랐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이 두 사람이 보스로 등장한다면, 한쪽은 마법 공격만 통하고 다른 한쪽은 물리 공격만 통하는데, 둘 모두 동일한 턴에 쓰러뜨리지 않으면 무한하게 부활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저기- 선배, 선배.”
처억. 왼팔에 걸리는 팔짱.
“있잖아요- 선생님, 선생님.”
꽈악. 오른팔에 걸리는 팔짱.
“우리 둘 중에 누가 요화게-요?”
“잠깐! 교복 색깔로 정체를 알아맞힌다는 그 나이브한 발상. 아아, 좋지 않아. 아주 좋지 않아…….”
“과연 선생님은 고려하고 있을까요? 이럴 줄 알고 미리 저희끼리 옷을 바꿔 입고 왔다는 가능성을.”
“존댓말과 반말, 향수. 그조차 간단히 우롱할 수 있는 우리의 지능을 얕보면 곤란해. 선배.”
“뭐라는 거니, 동생아. 네가 선배라고 부르면 안 되지! 내가 언니인걸!”
“무슨 소리야, 동생. 내가 먼저 태어나고 너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이다지도 선명한데- 벌써 패륜을 저지를 작정이니?”
“응애애. 하우, 우우우.”
“헉, 귀여워! 역시 내 동생! 나랑 똑같이 생겨서 너무너무 귀엽고 예뻐! 그냥 확 깨물어 주고 싶…….”
“선 넘진 말자.”
“네, 언니.”
아-. 아아. 아-.
‘기운이. 기운이 빨려 나간다!’
당서린이 옆에서 실시간으로 지긋지긋하단 표정을 지었는데, 그 감정이 너무도 공감되었다.
단언컨대 이 쌍둥이 자매는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를 피해 목젖에다 핵 발전소를 건설한 게 틀림없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반영구적으로 두 사람끼리 떠들게 되리라.
“흠.”
쌍둥이와 마찬가지로 아닌 밤중에 호출당한 유지원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신기하군요.”
푸름과 보라가 뒤섞인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가만히, 신중하게 내 동태를 훑어보고 있었다.
당서린에게 ‘인격 교정’을 받은 173회차라서 그런가. 묘하게 인간적인 냄새가 표정에서도 감돌았다.
“본래 이쯤이면 장의사 각하께서 맞장구를 치실 텐데 조용하십니다.”
“뭐? …내가 이, 혼돈의 도가니에다 직접 발을 들여놓는다고?”
“예? 아, 네. 물론입니다. 각하께서 알아들으실 만한 비유를 들자면 두 자매가 로사와 로이, 각하께선 냐옹이의 역할을 담당하셨지요.”
진심인가?
173회차는 시종일관 진지한 루트 아니었나? 과거의 나란 대체?
“…….”
바벨탑 본부에 소환된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하율이 졸린 눈을 비비며 꼬벅꼬벅 머리로 시소를 타고 있었으며, 심아련은 일상복(더러움)을 입은 채 이쪽을 또렷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심아련이 입술을 열었다.
“누, 구세요?”
테라스에 모인 인간 전원이 심아련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내 팔뚝을 양쪽으로 찢고 있는 쌍둥이 자매 또한.
“응? 누구냐니. 선배잖아.”
“…우음. 네에. 길드장님, 처럼 보이지만요. 조금 느낌이 달라서……. 으응.”
심아련이 고개를 휘잇휘잇 저었다.
“되, 되게 많이 달라서.”
“…….”
“길드장, 님? 웅. 길드장님인데. 길드장님이 아닌 거 같구……. 뭔가, 이상한 느낌. 그러니까. 으으음. 누, 누구신가요?”
“아니. 그니까 선배―.”
“그, 신경 거슬리니까……. 입 좀 닥쳐 주세요.”
밤공기가 싸늘해졌다.
흡- 하고 누군가가 숨을 들이마셨다. 테라스 구석에 기어들어서 불안한 눈초리를 짓던 오독서였다.
“…….”
조금 전까지 쿠션을 끌어안고 졸았던 이하율도 어느새 심아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
쌍둥이 자매의 변화도 극적이었다.
싱글벙글 웃음기가 맴돌았던 얼굴이 완전히 무표정해졌다. 물끄러미-. 동공과 홍채의 경계선이 흐릿한 붉은색 눈동자 2쌍이 심아련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곤충의 눈처럼.
“…….”
정작 누구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 터인 심아련은 평소와 달랐다. 주변의 눈길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나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문득 깨달았다.
쌍둥이 자매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텐션은 어쩌면, 공허에 물든 멤버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체온을 끌어올리려는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아직 오독서가 합류하지 않은 시절.’
555회차 이후부턴 달랐다.
오독서는 항상 멤버들 사이에서 겉도는 심아련과 룸메이트로 지냈으며, 매사에 진지한 성녀한테조차 가볍게 핀잔을 듣고 살았고, 매일 무표정하게 돌아다니는 이하율이랑도 곧잘 말을 섞었다.
자기 성격에 문제가 있음을 자각하는 서규가 일부러 다른 멤버들과 따로 생활할 때, 오독서만큼은 ‘서규 아저씨!’라며 졸졸 말을 붙였다.
천요화랑은 사이가 미묘하게 안 좋았지만. 그렇다고 오독서가 천요화한테 말을 안 붙이는 건 아니었다. 그저 말로 처맞았을 뿐.
하물며 노도하한테도 들러붙어 ‘와! 노장커플! 흑흑(黑黑) 조합 근본 지렸다!’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강심장 따위, 천하에 문학소녀 말고 누가 보유했겠는가.
아슬아슬한 인간관계.
모두가 한 걸음만 더 걸어가면 타락해 버릴 잠재력을 소유한, 저주받을 운명의 소유자들.
그런 집단이었다.
그런 집단에서 오독서는 작가답게, 회귀동맹의 광대로 살았다.
아직 광대가 음유시인이라는 낱말로 불린 태곳적부터 작가란 그런 존재였으니까.
‘과연.’
이렇게 놓고 보니 173회차의 내가 왜 쌍둥이 자매의 놀음에 어울렸다는 것인지 이해되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문제.”
“……?”
“친애하는 회귀동맹 여러분. 대부분 기억하시겠지만 지금은 173회차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세계를 완벽하게 구하기 위해선 몇 회차쯤 지나야 할 것 같습니까?”
“…앗, 길드장님이다.”
심아련은 내 말을 듣고 급격하게 관심이 식었는지 평소처럼 쭈그러들었다.
다른 멤버들은 정반대였다. 시선보존법칙이라도 존재하는 것마냥 머리 위로 ‘?’를 띄우며 나를 돌아보았다.
“어, 으음……. 그래도 선생님은 유능하시니까. 아무리 길어도 300회차쯤이요?”
“에이. 선배 멘탈도 생각해야지, 동생아. 휴가회차 넉넉 잡아서 350회차! 앗. 다음 휴가엔 나도 데려가 줘! 선배!”
[몬스터 웨이브 토벌했음.] [이제 만상유희만 잡으면 됨.] [200회차 예상.]“저 또한 이하율 양의 의견에 동조하겠습니다. 장의사 각하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한 구원자로 거듭나시겠지요.”
음.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답 공개.”
“…….”
“실패했다. 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실패했다.”
“……?”
애들 머리 위에 떠오른 물음표가 ‘???’로 진화했다. 한글 맞춤법에 대한 야심 찬 도전이었다.
“아무런 성과도 얻어 내지 못했습니다!”
“……??”
“미안하군. 999회차에 가서도 세계를 정상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아, 참고로 내가 방금 당서린의 황금천칭으로 불려온 999회차의 회귀자고- 저기 구석에서 생쥐처럼 오들오들 떠는 녀석은 555회차 이후 회귀동맹에 합류한 만상유희의 무녀야. 잘 부탁한다.”
“…….”
조용.
모두가 입술을 다문 가운데 시종일관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을 지켜온 오독서가 그제야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아, 아저씨. 방금 그건 진격의 거인에서 나온 거밍아웃을 따라 한 거지? 때마침 슈타게는 타임루프물이구, 진격거도 한창때 루프물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으니까! 작금의 상황에 대한 자기고백적 비유랄까. 하아. 야레야레, 정말이지……. 나 정도 되는 대문호가 아니고서야 그런 가변형 문제는 좀처럼 풀 수 없으니까! 좀 자제해 줘.”
“…….”
국도관리대 본부 바벨탑의 테라스가 고함과 고성으로 얼룩지기 정확히 12초 전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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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으음. 선생님. 제가 이해한 게 맞는지 한번 들어주세요.”
“그래, 요화야. 아직 네가 언니랑 둘이서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만 최대한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해 보마.”
“…으아. 괜히 머리가 더 복잡해지니까 그쪽 언급은 제쳐두고요! 아무튼!”
천요화가 휙 돌아보았다.
“저기, 오독서? 독서 양? 당신 같은 경우엔 [외전 작성]이란 권능이 있어요. 그걸 미래의 저희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써 버렸더니, 당신도 999회차에서 173회차로 넘어왔다. 맞나요?”
“아, 응. 맞아… 요.”
“그리고 선생님은 대마녀의 황금천칭, 등가교환으로 ‘지금의 목숨과 기억’을 희생하여 ‘미래의 지식’을 불러들였어요.”
“정확하구나.”
“하아.”
천요화가 이마를 짚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요…….”
회귀동맹 구성원들이 제각각 상념에 잠겼다. 쉬이 받아들이기 버거운 현상을 각자의 이빨로 씹는 중이겠지.
[무척 현명한 결정이에요.]그중 가장 시간이 여유로운 성녀가 제일 먼저 사고를 정리하였다.
참, 성녀가 여태껏 조용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당서린의 부탁을 받아 오늘 하루만 [천리안]을 켜 놓지 않기로 약속했었다나.
하지만 회귀동맹이 전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조금 전에 약속을 깨트렸다.
[장의사 씨의 말씀에 따르면, 앞으로 회차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클리어 조건이 까다로워져요.] [오러의 사용량이 제한될뿐더러.]성녀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모두 그녀의 텔레파시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천요화(天寥化) 양의 탈락.]쌍둥이 자매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까부터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아 서로의 손을 꾹 잡고 있었다.
[그 부분이 뼈아프네요.] [사실상 한반도의 중앙에 머무르면서,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기동대의 두뇌가 사라지는 셈이니까요.] [물론 흑막이라는 소외신에 대한 설명을 종합해 보았을 때, 충분히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겠어요.]“…언니.”
“…….”
동생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음에도 언니 쪽은 묵묵부답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척 깊은 생각의 바다에 빠진 듯했다. 언니 천요화는 가느다란 눈길을 허공에 고정시킨 채 무언가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흠.”
성녀 다음으로 사고의 정리를 끝마친 사람은 유지원이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오독서 씨. [외전 작성]은 본래 지금처럼 과거의 회차를 드나들 수 있는 타임루프 능력입니까?”
“아, 아니. 전혀! 그냥 다른 사람의 인격을 다운로드할 뿐인 능력이었어. 솔직히 나도 뭐가 뭔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
“그렇습니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유지원의 눈동자에 ‘아쉬움’이라는 상념이 얼핏 지나쳤다.
문득. 내 단전으로부터 참을 수 없는 욕망이 떠올랐다.
“그래, 지원아. 지금은 비록 네가 레비아탄의 무녀라는 정보를 우리한테 공유하지 않았지만 나중 가면 진정한 동료로 거듭나니 너무 걱정하지 말렴.”
“이를 말씀인지요? 저도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한테 밝힐 작정이었습니다.”
“각성자들이 오러를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레비아탄이랑 네 힘이 강해지니까 자동사냥 한번 달콤하구나- 같은 생각으로 방관한 건 아니고?”
“어허, 그럴 리 있겠습니까. 각하. 저 역시 소외신의 정체에 관해선 잘 알지 못했습니다. 레비아탄이라니! 끔찍하군요.”
“그래? 참고로 내가 마티즈 씨란다.”
“………예?”
“거기 사실은 도봉산 아니었지? 기억 떠올리는 데 고생 좀 했다.”
바로 화제를 돌렸다.
“성녀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 도대체 이런 기적이 어떻게 벌어졌는가에 관해선 나중에 규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기, 장의사 각하. 마티즈 씨라니요? 그건 대체.”
“저는 173회차에 무슨 짓을 벌이든 지금부터 이뤄질 일에 관해 잊어버릴 것입니다. 애당초 망각을 전제로 한 소환이었으니까요.”
“――장의사 각하? 듣고 계십니까, 각하?”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이제부터 할 일이 완전히 무의미하단 것은 아닙니다. 이 기회를 살려, 최대한의 전력을 뽑아내어, 지금밖에 토벌할 수 없는 소외신을 공략해야만 합니다.”
“――각하. 제발 저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른 멤버들이 이해에 도달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준 당서린이 입술을 열었다.
“지금밖에 토벌할 수 없는 소외신이라면, 어떤 존재를 말하는 걸까? 장의사.”
“밤의 여신.”
나는 심장에서 분노가 짓이겨지는 것을 느끼며 이빨로 감정을 씹었다.
“누트.”
“…….”
“거울세계. 천동설. 호루스의 눈. 회귀를 한낱 바이러스로 만들어서 퍼트릴 정도의 권능을 가진 괴이. 여러 이명으로 부르고는 있지만, 아직 정체를 완벽히 밝혀 내지 못한 소외신이지. 그리고…….”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도 달이 휘어져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버린 지상과 달리, 언제나 표표하게 제 순백을 자랑하는 구체로서.
“천요화가 희생하여 흑막을 봉인했듯, 성녀님이 희생해서 시간을 멈춰 놓은 적이다.”
[…….]“나는 이번에, 반드시 망각되고 말 보너스 스테이지에서―― 그놈을 기습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래.”
당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강대한 적이라면, 내가 타락해 버린 기회에 일찌감치 한 방 먹여 주는 편이 현명하겠네.”
“이해해 줘서 고맙다.”
“응. 그런데 말이야. 슬슬 지원이한테 대답해 줘야 하지 않을까? 조금, 딱 봐도 심상찮은 오러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는데…….”
“아.”
속보.
유지원, 타락 일보직전에서 돌아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