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40)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40화(4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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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였던 자 Ⅱ
신노아
4
이 당시 내겐 성녀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
먼저 상술했다시피 치안이 별로 좋지 못했다.
“또 죽었습니다…….”
정기회의 시간에 노도하가 중얼거렸다. 국도관리대 대장에 취임하고서 꽤나 세월이 흘렀으나, 세상만사를 증오하는 듯한 특유의 음울한 눈빛엔 변함이 없었다.
“또요? 그 살인마입니까?”
“예에, 휠 살인마입니다. 이번엔 청주에서 죽었다는군요. 방금 SG넷에 올라왔습니다. 한번 직접 보십시오…….”
회의 도중에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성격은 절대 아니었지만, 잠깐 쉬어 가는 시간이기도 했거니와 노도하가 직접 권유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SG넷에 접속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난리가 벌어졌다.
-익명: 12월 24일, 청주.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제목엔 어떠한 특색도 없었다. 정회원이 아니라 익명이 올렸으며 날짜와 장소만이 적혔다.
제목뿐만 아니라 글의 내용도 단순했다. 아무 미사여구 없이 동영상 하나만 덩그러니 첨부되었다.
동영상을 클릭하자, 어떤 지하 주차장에 한 명의 남자가 묶여 있었다.
-으, 아아…….
지하 주차장은 이미 발목까지 침수가 되었다.
새까만 구정물.
한없이 혼탁한 오물 한복판에 의자가 놓였으며 그곳에 남자는 사지가 꽁꽁 묶여 있었다.
-저, 저는 청주에서 사는 29세 이소열입니다. 지, 지금까지 여섯 명의 인간을 살해했습니다. 첫 살해는 1년 전……. 제가 사는 동네에 부녀가 있었는데, 물자가 풍족해 보여서. 원래 죽일 생각까진 없었어요. 그런데, 부친 쪽이랑 싸울 때 거기 딸이 제 등을 뒤에서 찔러서, 저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자는 어째선지 자신의 범죄를 줄줄 말했다.
동영상이 계속해서 쉼 없이 이어지진 않았다. 해당 동영상은 편집된 게 틀림없었다.
가령 방금 남자가 말한 대사들도 중간이 끊겨 있었다. ‘지금까지 네 명의 인간을 살해했습니다’와 ‘첫 살해는 2년 전’ 사이에 공백이 있었다.
그 차이점을 알아볼 수 있었던 까닭은, 이전엔 없었던 대못이 남자의 손등에 박혔기 때문이었다.
즉, 동영상을 찍은 누군가는 남자를 고문하고 있었다. 다만 ‘고문을 받는 영상’과 ‘비명을 지르는 영상’은 철저하게 삭제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남자의 고백은 마치 순탄하게, 아무런 일 없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화, 화가 나서.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죽였어요. 고문하거나, 요, 욕보이거나 그런 일 없이…….
오른손에 대못이 박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조금 더 가늘게 떨렸다.
-사실 부녀가 보는 앞에서 각자가 죽을 때까지 괴롭혔습니다. 두, 두 번째 살인은 고은에서 저질렀습니다. 고은사거리. 거기에 청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거든요. 국도관리대랑 같이 오가는 사람들 말고, 혼자서. 아니면 두세 명이서……. 그런 사람들을 노려서……. 요즘 세상에 여행객들은 전부 자기 재산을 배낭에 넣어두고 다니니까……. 시발! 겁 없이 혼자서 다니는 새끼들이 잘못이지!
양 팔뚝에 대못이 박혔다.
대못이 박힌 부분에선 피가 흘렀다. 그러나 아무리 핏물이 떨어져도 주차장을 침수시킨 구정물의 색깔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새까만 그대로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렇게 살기 싫었어요. 세상이, 세상이 잘못한 거 아닙니까? 서울에 게이트 터졌을 때 저 12살이었어요. 초등학생이었다고요.
-…….
-삶이, 인생 절반이, 아니, 그냥 인생이 통째로, 전부 시궁창에 처박혔습니다. 시발. 너희들은 적어도 인생 절반은 행복하게 살았잖아. 잘 살았잖아. 학교라도 다녔잖아. 난 아니었다고! 못했다고! 너희들 잘못이야, 씨발!
-난 아무런 잘못도 안 했어……. 나도 각성자였으면 이딴 짓거리 안 했다고. 더러운 새끼들. 자기들은 뭐 노력도 안 하고 능력 각성해서, 어? 어디 길드 들어가서 떵떵거리고. 나 같은 일반인은 다 하찮다 이거지. 그런데 뭘…….
어깨에 대못이 박혔다.
-세, 세 번째 살인은.
-…….
-세 번째 살인은… 어떤 애새끼가 제 집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와서. 나, 남이. 어른이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훔치려고 하다니, 머리가 썩어빠진 거 아닙니까? 따, 딱히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굶어 보라고. 사흘만 묶어 뒀다가 풀어 줄 작정이었는데 걔가, 멋대로 이틀 만에 죽어 버려서. 정말이에요. 풀어 주려고 했어요. 아.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살려 주세요! 제발! 그만, 안 돼. 살려 주세…….
바로 다음 순간, 남자의 머리엔 무언가 이상한 것이 박혀 있었다.
그것은 자동차의 휠이었다.
휘발유가 고대 문명의 흔적이 되어 버린 이래 세상에 널린 자동차들은 고인돌 이상의 의미가 없어졌다. 하지만 동영상을 찍은 장본인은 용도 폐기된 자동차들의 잔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목격했다.
“죽었군요.”
“예에. 깔쌈하게 뒈졌네요. 아니. 더럽게 뒈진 건가……?”
연쇄 살인의 트레이드 마크.
범인은 항상 상대방을 죽인 뒤 두개골에 대못을 박아넣었다. 그리고 대못에다 자동차 휠을 걸어 둔 것이었다.
가로되 ‘휠 살인마’. 혹은 간단히 ‘휠’.
“벌써 16번째 아닙니까?”
“대충 그쯤 됩니다. 사실 동영상만 따졌을 때 16개지, 영상으로 올리지 않은 살인은 훨씬 많을 겁니다. 지난번에 대가리에 휠 달린 시체를 발견했는데 그건 영상으로 등장한 적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살인마가 남긴 개성은 당연히 ‘익명’에게서 ‘익명성’을 앗아갔다.
쉽게 말해 커뮤니티에서 네임드화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백화]고등학교6학년: 너무너무 무서워요……. ㅠ_ㅠ)
-익명: 캬아, 역시 휠 행님. 오늘도 나이스샷.
-[율도국]검후: 이것은 협행인가, 아니면 간악무도한 사파의 자기정당화인가. 본좌는 참으로 가름하기 어렵구나.
└고려장: 틀
-익명: 충주에 부녀 살인, 그것도 1년 전 사건이면 나 저거 뭔지 알 거 같은데? 그때 시체가 좀 잔인하게 난도질당해서 충주 안쪽에선 소문이 돌았음.
-익명: 난 너 응원한다. 더 죽여.
-dolLHoUse: 중립.
-[삼천]사관: 충주는 어디 길드가 관리하냐? 휠 없었으면 저 새끼 끝까지 못 잡았을 거잖아. 치안 관리도 똑바로 못 함? 거기 길드에 소속된 각성자들은 좀 창피한 줄 알아라.
게시판에선 실시간으로 댓글들이 달리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응? 뭐예요? 분위기 왜 이래요?”
때마침 회의실에 서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기 회의의 구성원은 노도하-나-성녀 이렇게 3인 체제였으나, 가끔은 서규도 참여했다. 노도하가 양지의 도로망을 통솔한다면 서규는 음지의 도로망을 관리했으므로.
“서규야. 또 휠 살인마가 게시글 올렸더라.”
“아…….”
서규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는 듯, 면목이 없다는 듯한 감정이 눈동자에 스쳤다.
“삭제할까요?”
“아니, 여론을 보니까 멋대로 삭제하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겠더라. 그보다 이 익명은 정말 추적하기 어렵냐?”
“네, 일단 정회원이 아니고……. 접속 기록을 봤더니 딱 게시글 올릴 때만 접속하고 나머지 시간엔 아예 SG넷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댓글 반응이 고파서 범행을 저지르는 유형은 아니란 뜻이군.”
“넵. 어쩌면 아예 댓글들을 보지 않는 걸지도 몰라요. 아니면 저의 능력에 잡히지 않는, 뭔가 되게 특이한 은신술 능력을 가진 걸 수도 있고요.”
“…그것도 가능하긴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능력들이 존재했으니까.
“살인마 얘기인가요?”
성녀도 서규를 뒤따라서 들어왔다. 잠시 쉬는 시간에 둘 다 회의실을 나갔다가 돌아온 것이었다.
“아, 네.”
“저도 방금 SG넷에 올라온 글을 봤어요.”
성녀가 자리에 앉았다. 여느 때처럼 그녀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SG넷에 접속해서 게시글을 작성했으니 각성자임에는 분명한데……. 아무리 계속해서 천리안을 돌려 봐도, 어째선지 저의 시야에는 범인이 잡히지 않아요.”
그렇다면 역시 은신술 계열의 능력인가.
“신출귀몰하군요.”
이날 회의가 끝나고서 서규를 내보낸 뒤, 우리 세 명은 한 번 더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의 주제는 물론 휠 살인마였다.
“어차피 공권력이 무너진 상황이니 사적 제재를 막을 방도는 없습니다. 명분도 이유도 없고요. 문제는…….”
“과연 이 살인마가 정말로 선한 존재라는 보장이 어디 있냐는 거지요…….”
노도하가 말을 이어받았다.
“여태까지는 정말로 명백한 악인만을 처단했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능력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미 죽였는데 시체에다 휠만 안 달았을 뿐일지도 모르고요…….”
“…….”
“최소한 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저희 입장에선 파악해 둘 필요성이 있습니다. 각성자님, 이런 유형의 살인마가 등장한 건 처음입니까……?”
“예. 제 회귀 인생에서 최초로군요. 애당초 16년 차까지 이렇게 안정적으로 진행을 해 온 회차는 이번이 처음인 만큼,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이번 회차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보통 이쯤 되면 소외신(疏外神)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우리 세계에 간섭하여 아주 난장판을 벌여 놓았다. 하지만 왜인지 몰라도 107회차는 잠잠했다.
기적에 가까운 회차.
따라서 더욱더 소중했다.
“그럼 장의사 각성자가 이번 회차에선 적어도 범인의 신상 정보를 좀 상세히 알아내주십시오……. 그래야 다음부턴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섭외하든, 제거하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일부 길드장은 휠 살인마가 혹시 저희 측에서 키우는 암살자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런 암살자가 있었으면 일이 훨씬 편해졌을 텐데요, 흐으…….”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16년 차에 이르니 국도관리대는 거의 모든 주요 도시들을 1차선으로 잇는 데 성공했다.
각 도시에선 길드장들이 봉건영주처럼 웅거했으나, 노도하는 영주들의 왕으로 군림했다.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유통망을 독점했으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무엇보다 현재 한반도 최대의 도시인 부산이 삼천세계 당서린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주지하다시피 당서린은 국도관리대의 창설에 기여한 장본인 중 하나였으며, 우리에게 극도로 호의적이었다.
여차하면 스스로 길드장들의 맹주로도 군림할 수 있을 만큼 당서린의 세력은 강력했다. 그런 사람의 협력을 등에 업었으니 아무도 국도관리대를 무시하지 못했다. 음. 중세에 비유하면 부르고뉴의 충성을 받아낸 프랑스 왕실이나 다름없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도관리대의 한계는 명백했다.
우리는 한반도 전체의 치안을 책임질 수 없었다. 행정을 도맡을 수 없었다. 사법을 관리할 수 없었다.
애당초, 한반도라는 면(面)을 다스릴 수조차 없었다. 기껏해야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선(線)을 지배할 뿐.
거미줄이 차마 감싸지 못한 부분들, 공허에는 언제나 괴물과 괴이가 도사렸다.
그것들이 거미줄을 찢어발기고 인류의 선을 침범하려 들 때마다 내가 대응해야만 했다. 국도관리대의 무력도 만만찮았으나 나만큼 재빨리 움직이긴 아무래도 어려웠다.
나의 시간이 근본적으로 부족한 이유이기도 했다.
“여력이 없군요. 여력이.”
“…….”
회의가 파장하고 우리는 각각의 숙소로 돌아갔다.
내가 이때 발길을 돌린 것은 전적으로 변덕이었다.
성녀가 폐관수련 생활을 청산하고 바깥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이후, 본래 성녀의 아지트였던 용산 동빙고동에는 내 발길이 뜸해졌다.
아무리 성녀 본인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해도,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남자가 너무 자주 들락날락거리는 건 외관상 좋지 않았다. 이전까진 성녀가 집에 틀어박혔기에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젠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연락이야 [텔레파시]로 언제든 주고받을 수 있었고.
‘하지만 휠 살인마 때문에 성녀님도 마음이 복잡할 거야.’
누구보다 윤리에 까다로운 인물이니 말이다.
공권력이 허물어진 상황에서도 사적 제재를 경계하는 까닭은 간단했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선 단 한 명의 일탈이 중대한 실수를 일으키기 때문.
1심, 2심, 3심에 거쳐 각기 다른 사람들이 판결을 내리는 까닭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았다. 한 명의 인간이 절대적으로 공명정대하며 영원토록 무오하길 기대할 순 없었다.
이런저런 번민 때문에 성녀의 머리도 어지러우리라.
‘마침 귀한 물고기도 얻었겠다. 선물하면 기뻐하겠지.’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비닐봉지에 열대어를 넣고 동빙고동으로 향했다.
툭, 하고 소리없는 감촉이 앞머리에 내려앉았다. 하얀 눈발. 어젯밤에도 함박눈이 내려 온길이 눈길로 변했는데 또 내리려는 모양이었다.
“음.”
혹시라도 열대어에게 너무 차가울까 봐 손바닥으로 비닐봉지를 감쌌다. 정교하게 오러를 일으켜 온도를 유지하는 것도 까먹지 않았다.
동빙고동으로 이어지는 길목엔 발자국이 두 겹 새겨져 있었다. 아마 전부 성녀의 발자국일 테지.
“성녀님, 계십니까?”
똑똑.
문을 두들겼지만 반응이 없었다.
‘회의 끝나고 바로 집에 가셨을 텐데?’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문고리를 돌렸다. 오늘 회의를 할 때 성녀가 신었던 신발이 현관에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 번은 집에 들렀다는 뜻이 되었다.
“성녀님?”
여전히 묵묵부답.
“음.”
…나는 무례를 감수하더라도 집안에 들어갔다. 옛날에 고요리한테 성녀가 당했던 기억이 약간 트라우마로 남은 탓이었다.
만일 성녀가 멀쩡할 경우엔 바로 사과하면 되었다. 성녀는 사과를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
나는 거실에 발을 들였고.
“……?”
곧 믿기지 않은 광경을 목격했다.
성녀의 거실을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던 어항들.
언제나 새파랗게 윤기를 흘리던 수조들이 텅 비어 있었다.
“어?”
나는 무심코 입을 벌렸다.
물고기들을 키우는 것은 성녀의 유일무이한 취미였다. 세상이 멸망하는 날까지 성녀는 절대로 물고기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90회차, 내가 편의점 점장 노릇을 하던 시절에도 이미 증명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항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잘 보니 물이 채워져 있는 어항도 두 개 있었다. 다만 수질을 정화해 주는 필터가 작동한 지 한참 흘렀는지 물의 색깔이 탁했다.
오물처럼 변한 수중에서 열대어 두어 마리가 배를 까뒤집은 채 죽어 있었다.
우연치 않게, 시체를 남긴 열대어들은 전부 내가 예전에 선물했던 물고기들이었다.
“장의사 씨?”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성녀가 막 현관문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선물로 주려 했던 열대어 비닐봉지를 손에 쥔 채 성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 함부로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아는 사람이 열대어를 선물했는데 저보단 성녀님께 드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미리 연락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물고기는 키우지 않으시는 건가요?”
성녀가 눈을 깜빡거렸다.
“…네.”
“왜요?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본래 키우던 아이들은 거의 다 죽기도 했고, 어항을 관리하는 일이 점점 더 힘에 부쳐서요. 남은 수조도 언젠가 정리해야지 생각했는데, 생각만 하고 아직까지 청소하지를 못했어요.”
나는 성녀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더블코트 옷차림. 움직이기 썩 편해 보이는 복장은 아니었다. 회의 때 입었던 옷과는 또 달랐다.
성녀가 평소에 즐겨 입는 패션도 아니었다.
“…그렇군요. 산책하고 돌아오시는 길인가요?”
“예. 장의사 씨가 올 줄 알았으면 차라도 준비했을 텐데. 잠깐 제가 바라보지 않던 도중에 방문해 주셨네요.”
달리 말해.
‘나는 집에 한 번 돌아온 다음 외출했고, 이런 옷차림으로는 간단히 산책하는 것 말고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강력히 어필하는 옷차림.
바깥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더블코트에도 눈이 묻어 있었다. 그렇지만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그래.
더블코트를 벗어서 눈이 쌓인 바닥에 살짝 털면 저런 눈자국이 묻지 않을까 싶은 흔적이었다.
“…….”
“장의사 씨?”
나는 성녀를 지나쳐서 집 앞의 눈바닥을 쳐다보았다.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두 겹으로만 새겨져 있던 발자국들은 ‘네 겹’으로 늘어나 있었다. 하나는 내가 오면서 찍은 발자국. 다른 하나는 성녀가 돌아오면서 찍었을 발자국.
나는 현관에 방금 성녀가 벗어둔 신발을 들어서, 밑창을 들여다보았다.
눈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과 밑창의 생김새가 달랐다.
“장의사 씨? 뭐 하시는 건가요?”
“성녀님.”
―――그건 일종의 직감이었다.
추리라고 하기엔 증거가 빈약했다. 물증도 없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서 어떤 섬광과도 같은 반짝임이 명멸했다.
배를 뒤집고 죽은 물고기들. 텅 빈 수조들. 이따금 멍하게 허공을 올려다보던 성녀의 모습. 서규의 미안해하는 눈동자. 더블코트. 발자국.
이때까진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가능성이 돌연 퍼즐처럼 짜맞추어져 내 입 밖으로 던져졌다.
“혹시 성녀님이, 휠 살인마입니까?”
침묵.
영원과도 같은 순간이 흘렀다.
마치 세계가 일시정지 버튼에 눌린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을 무렵.
“장의사 씨는.”
성녀의 입술이 열렸다.
“정말로 저를 잘 아시네요.”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