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51)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51화(5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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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자 Ⅰ
신노아
1
저번 에피소드에 이어서 네크로맨서의 이야기를 계속하자.
2
내가 갑자기 한반도에서 둘째가는 또라이(첫째는 물론 율도국의 검후이시다)인 백화여고 학생회장을 등용한 까닭은, 물론 또라이들이랑 베프를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여기엔 다 넓고도 깊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나 장의사가 흑막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주의시켜야겠다.
자기 혼자서 계획을 그려 놓은 다음 그게 망가져 가는 모습을 관음하며 음흉하게 쪼개는 놈이 아니란 말씀.
그런 하라구로 계열 캐릭터들은 다 유년기 때 의사소통의 실패를 겪으면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인류에 대한 경멸로 바꾸어 놓은, 요컨대 지극히 유아적인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끝끝내 벗어나지 못한 어른들의 말로라 할 수 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그 말씀을 하시면서 하필 절 야려보고 계신지……?”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닙니다. 노도하 씨.”
“그렇군요. 댁 눈깔을 확 파내다가 소금에 절여 버린 다음 간장에 찍어 먹어 드릴까요……?”
“너무 짠 음식은 몸에 안 좋습니다.”
“이 씨발 회귀자 새끼가…….”
유년기를 험악하게 보낸 사람답게 노도하는 금방 화를 내고 욕을 뱉었다.
물론 나는 심성 올바른 어른이었기에 상대방의 분노에도 차분히 대응할 줄 알았다.
“이번에 제가 단독으로 섭외한 천요화는 우리 계획에서 매우 핵심적인 자원으로 분류될 겁니다.”
“왜요? 네가 세라복 패티쉬를 가진 변태라서……?”
“저 교복 안 좋아합니다. 노도하 씨도 한번 제 나이 먹어 보세요. 전부 꼬맹이로 보이지.”
“아니, 댁 이미 주관적인 기준에선 거의 1000살 가까이 처드신 틀딱 아닙니까? 그 나이를 내가 어떻게 먹어요……?”
“그건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아무튼 천요화의 네크로맨시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안정적으로 ‘인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입니다.”
“흐음…….”
노도하는 커피를 홀짝였다. 내가 내려준 커피였다.
1000살(정확히 말하면 이 시점엔 아직 771살밖에 안 되긴 했다)을 먹는 동안 내 바리스타 실력은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탔다. 여전히 쇼 노인의 카페오레를 완벽히 흉내 내는 건 불가능했으나 그것만 제외하면 가히 정점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매사에 냉소적인 태도를 자기 시그니처쯤으로 여기는 노도하조차 내 커피를 마실 때는 따뜻해졌다. “썅, 이게 왜 이렇게 맛있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뿌듯하구먼. 이게 회귀자의 보람이지.
“인력이 그리 중요합니까? 솔직히 요즘 시대에 남아도는 건 인력밖에 없는데…….”
“국도관리대의 인력을 말하는 겁니다.”
“아-”
노도하가 양손으로 커피잔을 쥔 채 끄덕였다.
“음, 하긴. 여기 조직 관리하면서 저도 슬슬 깨닫고 있는 참입니다. 국도관리대원 이거 그냥 자살특공대랑 이음동의어더군요. 어디 공허에 보내놓으면 20% 확률로 머리에 꽃 달린 외계인들 되어서 돌아오니까 뭐…….”
“이제 위험한 업무를 좀비 시체들한테 맡기면 생환률이 대폭 높아질 겁니다.”
“그럴싸한데……? 해 보죠.”
“거기에 앞서서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태껏 아무런 대사도 없었지만 성녀도 말없이 봉다리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나는 믿음직스러운 ‘회귀동맹’ 앞에서 빵긋 웃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백화여고 졸업생들입니다.”
“…….”
“자, 이거 96기생 졸업앨범인데 제가 미리 조작해 뒀습니다. 여기 2반 사진 보이시죠? 대충 노도하 씨랑 성녀님 어린 시절이라고 구라치시면 됩니다. 저는 부학생회장이었고요. 노도하 씨가 학생회장이었고 성녀님은 서기였다는 설정입니다.”
“…….”
“그리고 이건 제가 따로 작성해 놓은 백화여고 전용 자료입니다. 기숙사 이름, 학생들이랑 자주 접촉했던 교사들 목록, 이 학교만의 은어, 다 적혀 있으니까 외우십시오.”
“…….”
노도하가 성녀를 쳐다보았다.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미 외웠어요.”
“…씨발, 이게 실화라고……?”
실화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처음 뵙겠습니다!”
며칠 뒤.
우리는 바로 앞에서 대가리를 박는 천요화의 모습을 직관할 수 있었다. 천요화뿐만 아니라 백화여고 학생회, 그러니까 좀비가 아닌 진짜 생존자들도 일렬로 쫙 섰다.
“아, 예에……. 노도하라고 합니다…….”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선배님! 에헤헤. 학생회장이셨다구요? 저희 후배 학생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장의사 선배님께 얘기 들었어요. 얼마든지 개처럼 부려 주세요!”
“애를 얼마나 조져 놓은 겁니까……?”
노도하가 나를 힐난하듯 꼬라봤다.
나로선 애석할 수밖에 없었다. 실로 무지하면서도 무식한 반응 아니겠는가? 백화여고가 어떤 또라이 집단인지 아직 109회차의 각성자들은 겪어 보지 못해서 저러는 거지.
“방심하지 마십시오. 얘네 컨셉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저는 경고했습니다.”
“아니, 되게 착한 애들 같은데요……?”
“착하죠. 근데 기간 한정 착함이라서요. 쟤네들 전부 최소한 4일에 1번꼴로 인육을 섭취 안 하면 미쳐 버리는 식인종들입니다.”
“…….”
백화여고가 국도관리대에 합류했다.
바로 그날 밤, 국도관리대원 6명이 백화여고에 ‘입학’했다.
입학 조건은 별로 빡세지 않았다. 그냥 두개골에 구멍만 뚫으면 되었다.
“이런 시발?”
그제야 노도하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장의사 각성자, 당신 대체 뭔 미친 새끼들을 데려다 놓은 거야……?!”
“제가 미리 경고했잖아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참고로 어쩌다 죽었답니까?”
노도하가 나한테 경위서를 넘겨주었다. 참 전직 공무원답다고 해야 할지. 이렇게 멸망해 가는 세계에서도 사건이 터지면 꼭 문서로 정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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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A: 뭐야? 신입 대원이야?
천요화: 안녕하세요! 백화여고 학생회장 천요화입니다!
피해자B: 응? 여고? 학생회? 그게 뭔데, 컨셉질이야?
천요화: 네? 아뇨, 정말로 백화여고 학생회장입니다!
피해자A: 아이고. 우리 신입이 어디서 이상한 것부터 배워 왔네. 딱 얼굴만 봐도 고등학교 졸업할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뭔…….
피해자B: 그래, 야. 컨셉질도 당서린 정도 되는 사람이 해야지 주변에서 간섭을 안 하지. 너 같은 쩌리 각성자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가 않아요. 학생회는 무슨 학생회.
천요화: (기묘한 웃음)
――――――――――
음.
여기까지만 읽어도 충분했다.
첨부자료에 따르면 피해자A와 피해자B의 시신 일부는 통조림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나는 희생자들의 사망 사유를 진단했다.
“이건 자살이로군요.”
“실화입니까…….”
노도하는 전율했다.
하지만 그녀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검후’를 상대하는 데 도가 튼 인물. 또라이들을 대상으로 특화된 ‘또라이-사교술’이란 스킬에 만렙을 찍은 위인이었다.
천요화가 검후과의 또라이임을 파악하자마자 노도하는 곧바로 태세를 정비했다.
“천요화 후배 씨…….”
“네! 노도하 선배님!”
“요즘 수능 준비 어떻게 되어 갑니까?”
“넹?”
“어휴. 제때는 그래도 학생회장이라면 당연히 서울대 정도는 들어가 줘야 한단 말을 선배들로부터 들었는데. 천요화 후배도 높은 곳을 노리고 있겠지요……?”
“…….”
노도하는 즉시 기강을 잡은 뒤 천요화를 개처럼 부려먹었다. 참고로 나도 노도하도 서울대 입학 증명서를 만들어다가 천요화한테 떡하니 보여 줬다.
이번에도 위조문서였다. 그래서 어쩔 건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심지어 나는 독어독문학과 출신이란 설정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내 독일어 실력은 완벽했다.
하물며 [완전기억능력]이 더해진 이상, 그 자리에서 괴테의 파우스트와 실러의 시를 줄줄줄 읊어 버린다는 묘기마저 부릴 줄 알았다.
나는 곤란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들었다.
“흠. 이 정도는 백화여고 학생회장이면 기본 아닌가?”
“…….”
천요화는 선배들의 위엄에 눈물을 흘리며 굴복했다.
만일 그녀가 ‘가짜’였다면 이 시점에서 백기를 들고 컨셉을 버렸겠지. 하지만 천요화는 진짜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백화여고는 존재했고 당연히 학교의 전통 또한 건재했다.
“열심히 선배님들의 지도편달 받겠습니다아…….”
한때 과거의 회차에서 한반도의 모든 각성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학원도시의 괴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저 가여운 학생 한 명이 남았을 뿐.
자승자박이란 바로 이런 꼬라지를 뜻하리라.
“오. 정말로 좀비 군단이 쓸모가 있군요……?”
그리고 노도하는 ‘이따위 컨셉질을 지속하면서까지’ 써먹을 가치가 천요화에게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실리주의의 화신인 노도하는 당장 국도관리대의 파견을 ‘교외 실습’이란 이름으로 바꿔서 천요화한테 강요했다.
국도관리대의 부대 편제는 진화에 성공했다.
-정찰대: 백화여고 경비대(좀비). 최소 1명의 각성자가 좀비들을 통솔한다. 먼저 공허를 돌파하면서 어떤 위험이 있는지 확인하여 본대에 보고하는 역할. 좀비들은 세밀한 판단을 내릴 수 없으므로 최대한 간단한 임무만 수행한다.
-본대: 최소한 두 명의 각성자로 이루어진 타격 부대. 도시에서 도시로 오가며 길을 점검하고, 함께 이동하는 이주민이나 상단 등을 호위하며, 좀비 정찰대를 지휘한다.
-지원대: 길이 파손되었을 경우 즉시 임시로나마 수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부대. 요컨대 노가다.
천요화에 의해 ‘정찰대’가 추가됨으로써 국도관리대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무려 20%에 이르던 대원들의 실종률이 5% 미만까지 줄어든 것이었다.
대신 좀비들이 진짜 시체들로 변하는 비율이 그만큼 늘어났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인권도 없어진 마당에 좀비권까지 고려해 주기엔 세상이 좀 각박했거든.
“이게 시체들의 참된 유용성……?”
시체란 좋은 것이었다.
밥을 안 먹어도 일할 수 있고, 고통도 느끼지 않으며, 인권을 고려해 줄 필요도 없을 뿐 아니라, 사전에 입력받은 대로만 행동하는 좀비. 이건 가히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마약과도 같았다. 특히 노도하처럼 실용주의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노도하는 새로운 취향에 눈을 떴다.
3
“장의사 각성자. 좀비란 무엇일까요……?”
어느 날, 그런 질문을 받았다.
“예?”
“생각해 보십쇼. 천요화가 만들어 낸 좀비들은 전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경비원, 학생, 교사……. 미리 입력받은 대로만 행동할 뿐이라서 돌발 사태엔 대응하지 못합니다만, 아무튼 그 역할에 한정해선 꽤나 사람처럼 보이죠…….”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이거, 좀비가 아니라 그냥 NPC 아닙니까……?”
노도하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
“장의사 각성자는 외견의 특징을 보고 좀비라 말한 거겠지만, 제가 볼 땐 그리 정확한 명명이 아닙니다. 천요화는 네크로맨서입니다만 ‘좀비’를 양산하는 게 아니라……. ‘NPC’를 만들어 내는 일종의 디자이너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AI’를 탑재시킨다고도 말할 수 있고요…….”
“호오.”
좀비가 아니라 NPC.
상대를 겉모습이 아니라 순전히 쓰임새로만 판단하는 노도하다운 작명법이었다.
“흥미로운 해석이군요. 그런데 그렇다고 한들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뭐, 그건 이제부터 차차 알아봐야 합니다만…….”
노도하가 히죽거렸다.
“제가 보기엔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에. 그런 의미에서 당서린 길드장 좀 불러주십쇼…….”
아무리 국도관리대장이라 해도 당서린은 오라 가라 명령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일한 ‘맛집 순례 동호회’ 회원인 내 말이라면 당서린은 순순히 따라 주었다.
다음 날, 당서린이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국도관리대 본부로 찾아왔다.
“무슨 일이니? 나 요즘 바빠.”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장의사 각성자한테 부탁해서 모셨습니다. 이게 참, 오직 삼천세계의 대마녀님만이 해 주실 수 있는 일인지라……. 아. 그리고 이건 제가 지난번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네크로미콘 사본입니다. 보자마자 대마녀님의 서고에 어울리는 장정본이다 싶었지 뭡니까…….”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길드장이라면 마땅히 국도관리대의 업무에 협조해야지.”
“마법 영창 좀 써 주시겠습니까……?”
쿵.
당서린이 테이블에 거대한 책들을 내려놓았는데, 책 제목이 회귀자인 나에게도 아주 낯설었다.
[대법원판례집], [3개념 최신판례집], [민사집행법], [핵심쟁점별 조세 판례집], [형사소송법: 조문과 판례집]…….다 하나같이 두께가 흉악했다. 사람의 대가리를 물리적·정신적으로 파괴할 목적으로 제작된 게 틀림없었다. 그 압도적 존재감에 당서린조차 잠깐 머뭇거릴 정도였다.
“이걸 뭐에 쓰려고?”
“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마녀님은 그냥 [반복] [음성 읽기] [재생]만 써 주시면 되니까요…….”
“그, 그래? 알았어.”
당서린은 창고에 들어가 주가영창을 시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창고에선 수많은 판례집들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넘어가며 자동으로 ‘음성 읽기’를 지원했다. 당연하게도 꽤나 마법적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노도하는 당서린을 떠나보낸 뒤, 즉시 천요화를 창고로 데려왔다.
“천요화 후배…….”
“네, 선배님!”
“경비원 세 명쯤 데려와서 여기 놔두십쇼. 그리고 그 사람들한테 부탁해 주지 않겠습니까? [여기 창고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전부 기억할 것]이라고…….”
“넹? 어, 그렇게까지 입력을 많이 하려면 체력이 엄청 소모되는데요.”
“선배 명령입니다…….”
“흐아앙…….”
그리고 나는 이 시점에서 입을 벌린 채 경악했다. 도대체 어떤 정신세계를 가져야 이런 발상에 도달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으며 바로 그렇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노도하, 당신 설마……?”
“예에.”
흐, 하고 노도하가 이죽거렸다.
“국도관리대가 자리 잡았으면 슬슬 법원도 만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 사람……. 좀비들을 갖고 ‘AI 판사’를 만들어 내려 하고 있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