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66)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66화(6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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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자 Ⅳ
신노아
6
나는 십족을 단칼에 끝내 버릴 수 있다.
나는 본래 이 세계에서 오직 검성(劍星)에게만 허락되었던 이적, 별빛의 오러, 가로되 검강(劍罡)을 터득하였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해선 십족을 원턴킬로 끝장내지 않았다.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반드시 ‘한반도 각성자 연맹’을 창설하여 십족과의 전쟁터로 끌고 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의사님. 그간 별래무양하셨는지요?”
“아이고, 장의사님! 안녕하십니까!”
왜냐하면 약간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쓰자면 각성자들에겐 ‘각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전쟁터에서 십족이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 자기 자신을 초월자처럼 여겨 온 당신들의 오만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굳이 일일이 강의할 필요도 없이 깔끔하게 실전으로 보여 주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비로소 아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숙명.
십족과 생사를 가르는 혈투를 벌이고 난 뒤에야 한반도의 각성자들은 ‘아, 미리미리 연합을 꾸려두지 않으면 A급 괴이가 떴을 때 사이좋게 뒈지겠구나’라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여기에 나의 술책이 하나 더해졌다.
“오랜만입니다. 잘들 지냈습니까?”
“그럼요. 잘 지냈죠!”
“오러는 슬슬 익숙해지셨고요?”
“아하하. 그게, 아직은 잘…….”
바로 ‘연맹에 가입한 각성자들에게만 무료로 오러운용법 심화 단계 학습을 특별히 과외해 드립니다’라고 광고한 것.
문명이 망해 버렸어도 교육열은 한민족의 DNA에 각인되어 있었다. ‘심화’ ‘학습’ ‘특별과외’라는 단어는 그들의 뇌를 마비시켰다.
애당초 오러가 얼마나 유용한진 십족과의 싸움에서 수많은 각성자들이 직관한 바 있었다. 십족의 촉수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질긴 오징어 다리보다도 질겼으며, 오러 때깔이 곱게 스며든 칼날이 아니면 거의 이빨도 안 박혔다.
“장의사님!”
“장의사님, 제가 요즘 수련하는 데 꽉 막힌 부분이…….”
말하자면 한반도 각성자 연맹은 나를 마치 대사조처럼 모시는 하나의 문파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
원래는 이 역할을 쇼 노인이 했었는데 그 양반이 은퇴해서…….
물론 각성자들은 죄다 또라이였다. 상전 알기를 개처럼 아는 종자들 따윈 지천에 널리고 널렸다.
그렇기에 나는 각성자들한테 오러 심법을 알려 주면서도 일부러 뭔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길드 운영? 거기에 내가 왜 간섭해? 네 길드는 네 거니까 네가 다 알아서 하렴. 수업료? 아이고, 그딴 건 됐고 그냥 나한테서 심법의 단물만 쪽쪽 빼먹어 가렴. 응. 아예 그냥 이것도 가져가고 저것도 가져가고 간도 쓸개도 다 가져가. 괜찮아. 난 아무것도 필요 없단다.
아포칼립스에서 이런 행동은 호구로 취급받기 딱 좋았다.
하지만 만일 그 호구가 괴이들이 넘쳐나는 공허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와서, 이 도시 저 도시로 여행하면서, 자기들은 쪽도 못 쓰는 십족 대가리를 순살 치킨처럼 발라 버리면서, 성좌들의 애호를 듬뿍 받으면서, 심지어 삼천세계의 길드장 및 국도관리대장과의 친분을 과시한다면?
아무리 두개골에 선택적으로 이성을 출입시키는 각성자들일지라도 ‘호구’의 개념 정의에 관해 좀 더 숙고해 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저희는 대체 언제 빚을 청산할 수 있는 겁니까?
-응. 나는 언제든 너희에게 대가를 받아 낼 수 있지만 일부러 받아 내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란다. 그러니까 너에게 딱 맞는 오러 교육이나 더 받으려무나. 넌 이 심법 덕분에 죽을 위기도 넘기고 길드장으로서의 권위도 공고해지겠지만 역시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건네주고 입을 싹 닦을 것이며, 네가 입을 닦았다는 사실을 너 나 우리 당서린 노도하 모두가 알고 있을 거란다.
-선생님! 아니, 형님! 제발 좀!
이른바 슈퍼 을 현상.
좀 과장되게 말해서 내가 적당한 명분 하나를 들고 나와서 ‘허어, 요즘 보니까 인천 쪽 길드장이 한반도 물을 많이 흐리는 것 같던데……’라고 중얼거리면 여기 모인 길드장들은 ‘대사조님께서 인천시 길드를 조지시란다!’ 하고 전 병력을 이끌고 깽판을 쳐놔야 한다.
심지어 유성우 토벌전에는 그냥 적당한 명분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명운이 걸렸다. 나한테 뭣 좀 받아먹은 길드장들은 당연히 꽁지 빠지라 집합할 수밖에.
“언제 봐도 인기인이네. 당신도.”
한차례 악수 행사를 찐하게 찍고 돌아오자 당서린이 질렸다는 얼굴로 반겨 주었다.
“당신도 그냥 도시 하나에 정착하면 될 텐데 맨날 전국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참, 성실한 건지 불성실한 건지…….”
“왜, 정착했잖나. 서울 강남이 전부 내 나와바리다. 설마 지금 강남 땅값 무시하는 거냐?”
“거기 이젠 당신들 길드 건물 말곤 아무것도 없는걸.”
“저점 매수란 거지. 문명이 재건되기 시작하면 나 장의사의 인생은 역대급 부동산 전설로 길이길이 회자될 거다.”
당서린이 피식거렸다.
“그래서 아예 정착할 생각은 없어? 누구 사귈 생각도 없고? 당신 좋다는 사람 꽤 많은 걸로 아는데.”
“연애는 좀…….”
어차피 유성우가 도래하려면 노을이 져야 했다.
우리는 각자 빗자루를 쥔 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면서 밤을 기다렸다. 왜 다들 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있느냐면, 음. 좀 있다가 곧바로 알게 될 것이다.
바싹 긴장된 공기.
그 분위기의 굳은살을 일부러 깎아 내기 위해 농담 따먹기, 신변잡기 따위가 군영에서 조곤조곤 흘렀다.
일상을 유지함으로써 비일상을 무시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터득해 온 지혜였으니까.
“왜? 혹시 고자야?”
“그냥 연애에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정신 연령이 1000살쯤 되거든.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들이랑 지지고 볶고 사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프흡. 뭐래.”
비단 당서린과 나뿐만 아니라 모든 각성자들이 시시껄렁한 농을 주고받았다.
당연했다. 유성우가 경상남도 상공으로 낙천(落天)하는 것은 회귀 7년 차에 해당했다.
이곳, 김해평야에 모인 정예병들 가운데 생사의 벽을 수십 차례 넘어 보지 않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투 직전까지 정신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사실 형님이 누군가랑 사귀는 모습이 좀체 상상이 안 가긴 합니다.”
“마, 맞아요. 분명히 겉만 보면 어디 모난 구석이 없는데 묘하게 평생 독신으로 살아갈 관상이 있잖아요. 길드장님이 딱 그, 그런 느낌.”
만일 지금이 50회차 이후였다면 이 농담 따먹기에 SG남 서규와 고려장 빌런 심아련이 합류했을 테고.
“흐. 무엇보다 사귀게 될 상대방을 걱정해야지요……. 연인 간에 나누게 될 대화의 70%는 삼국지 얘기고 20%는 초한지 얘기, 나머지 10%는 수호지 얘기인데 누가 견디겠습니까……? 천년의 사랑도 식어 버릴 것입니다…….”
55회차 이후였다면 국도관리대장 노도하가 생강차를 홀짝거리며 뜨거운 입김 및 그만큼 뜨거운 독설을 흘려보냈을 것이며.
“아하하. 저도 선배님이 삼국지 얘기는 그만해 주셨으면- 하고 가끔 생각해요! 솔직히 그게 왜 재밌는지도 잘. 아, 동탁이란 캐릭터가 낙양 불태우는 장면은 재밌었지만요!”
109회차 이후였다면 백화여고 학생회장 천요화가 방실방실 웃으며 추가타를 날렸으리라.
“…….”
[…….]이하율과 성녀는 언제나 조용했을 테고 말이다.
그 후로도 1183회차에 이르는 내 인생에서 이따금 아군들이 추가되기도 했고 줄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42회차.
아직 우리의 혈맹이 완성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가장 험난했고 치열했던 회차의 전투를 그려 볼까 한다.
“―――, ――.”
“―. ―――. …….”
“……. ……, …….”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하늘 위로는 오직 당서린과 나, 두 사람의 입김이 하얀 연기가 되어 올라갔다.
2인분의 입김이 발갛게 물들었다.
내 시간의 동행자가 중얼거렸다.
“하긴. 나도 연애에 관심 없긴 해.”
하늘에서 노을이 가라앉았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전신에 스며들었다.
[――옵니다.]성녀의 나지막한 중얼거림.
순간, 세상의 주홍빛이 좀 더 붉게 작열했다.
그것은 마치 불꽃, 거대한 화환(火環)과도 같았다.
하늘의 정중앙인 천원은 새빨갛게 타올랐으며 가장자리는 파랗게, 검게, 새까맣게, 조용히 물들었다.
불꽃은 살아서 움직였다. 중앙부의 새빨간 노을빛이 주변부의 검푸른 밤하늘로 끊임없이 날숨을 내뱉었으며, 그 반대로도 들숨을 들이마시었다.
하늘이- 세계가, 노을빛과 별빛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당서린.”
“응. 알고 있어.”
당서린은 이미 마법의 영창에 돌입했다.
그녀의 입술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하늘 가장자리의 어둠이 순식간에 온 하늘의 천장을 집어삼켰다. 언제 노을이 있었냐는 양 천지가 어두워진 것이었다.
밤하늘.
그것은 물리적이고 천체적인 변화가 아니었다. 마치 어미가 아이의 눈을 손바닥으로 조용히 덮어 주듯, 세계 전체가 일순간 무언가에 의해 가려졌다.
“…왔다.”
“시발. 진짜였구나.”
웅성웅성.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일부 각성자들이 술렁거렸다. 철두철미한 작전회의와 공략법 작성, 능수능란한 농담으로 기껏 억눌러 왔던 긴장감이 순식간에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어떤 각성자들은 드디어 6년 전부터 그 존재가 예고된 괴이의 등장에 주먹을 꾹 쥐었다.
송전탑도 가로등도 눈을 감아 버린 시대에 유일하게 정예병들의 눈만이 어슴푸레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계획된 진영을 꾸린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국의 성녀’가 공지합니다.] [특급 괴이 ‘유성우’가 한반도 상공에 출현합니다.]파앗-
밤하늘의 어둠이, 한없이 농축된 별빛을 토해 냈다. 마치 어떤 거인이 장난스럽게 하늘의 풍선을 비늘로 쿡쿡 찍어누른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결코 장난스럽지 않았다.
“별빛이다!”
“정말로 공략법이 맞았잖아……?”
“세상에. 저건 별똥별 같은 게 아니야. 하늘 전체를 조종하는 괴이라니.”
본래라면 이때부터 무려 6시간 동안 유성우는 상공에서 체류한다.
하지만 여러 회차들을 통해 관찰한 결과, 유성우는 저 6시간 동안 단순히 자기 별빛이 얼마나 예쁜지 공짜로 관람하라며 밤하늘에서 런웨이 워킹, 아니 밀키웨이 워킹을 하는 게 아니었다.
사실 저것은 6시간에 걸쳐 천천히 지상의 인간들에게 ‘주술’을 걸고 있었다.
최면이라 불러도 상관없고 세뇌라 칭해도 좋았다. 요점은, 저 밤하늘의 별빛을 올려다보고 있는 인간의 비율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유성우가 강력해진다는 것이었다.
[‘구국의 성녀’는 비전투원들에게 되도록 밤하늘을 올려다보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따라서 이번 보스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동과 속전속결.
유성우가 충분히 힘을 길러 떨어질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저 녀석이 가장 약한 시점을 노린다.
즉, 초반부에 승부를 보는 것이야말로 나의 공략법이었다.
“아――.”
그 작전을 위해 당서린이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제1선율, 반복. 제2선율, 확장.
대규모 전투를 벌일 때는 언제나 애용되는 노래가 평야에 가득 울려 퍼졌다.
이것만으로도 노래가 닿는 범위 내에서 아군들이 당서린의 마법에 백업을 받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전투에 한하여 아예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지직, ……아…….
전투조의 가슴팍이나 허리춤엔 빠짐없이 무전기가 장착되었다. 오직 이날의 전투를 위해 준비한 물품이었다. 근방엔 기지국까지 건설되어 있었다.
회귀자로서 전쟁터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기에 가능한 수법이겠지.
이번 일전에 우리가 그야말로 문명의 바스라기, 찌꺼기들을 모조리 집중시켰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저 당서린의 노래를 전파하는 것만으로 무선기 하나하나가 마법을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해 주면 편하련만 그런 형편 좋은 사기까진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 줄기 노래가 더해져야만 했다.
“아――아, 아――.”
제3선율, 매개체(Medium).
미리 지정된 물질들이 마치 일종의 거울처럼 당서린의 노래에 공명하도록 만들어 주는 마법.
당연히 각성자들에게 나누어진 무전기들은 전부 ‘매개체’로 지정되어 있었다. 매개체로 지정시키는 것에도 또 다른 마법이 필요했던지라, 당서린은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무전기들에 미리 마법을 걸어두었다.
이 작업에 소요된 시간만 총 3년.
그리고 당서린이 ‘매개체’로 지정해 둔 장비품은 싸구려 무전기뿐만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준비한, 당서린이 실행으로 옮긴, 가장 중요한 주가영창이 울려 퍼졌다.
“아아―― 아아아―――.”
제4선율, 비행.
네 번째 노래가 하늘을 한차례 휘감고 다시 [반복]에 의하여 끊임없이 다카포를 휘몰아쳤다.
꾸욱.
김해평야에 집결한 각성자 900인, 그중에서 전투조로 선별된 700인이 사전에 약속한 대로 손에 힘을 넣었다.
그들의 주먹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빗자루를 쥐어 잡고 있었다.
“이제 와서 지적하긴 좀 늦은 감이 있다만……. 정말로 빗자루가 최선이었을까?”
“응. 당연하지.”
제4선율을 끝내서 여유로워진 당서린이 대답했다. 뭐 이상하게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이었다.
“마녀가 하늘을 날아오르려면 빗자루 말곤 없는걸.”
탓, 당서린이 익숙한 발놀림으로 흙바닥을 찼다. 수천, 수만 번 반복하여 이미 몸에 익을 대로 익은 것일까. 대마녀의 포즈는 여유로웠으며 우아했다.
퍼르르륵- 자그마한 몸집에서, 그것보다 세 배는 더 큼직한 검은색 망토가 깃발처럼 휘날렸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전원, 출격 개시.”
그것이 신호였다.
연맹의 각성자 700인이 동시에 평야를 딛고, 밤하늘로 비상했다.
보스전.
대륙급 위험도.
유성우(流星雨).
전투 개시.
제1페이즈, 테이크 오프.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