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68)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68화(6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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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자 Ⅵ
신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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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에에에에엥!
과거 김해평야라고 불렸던 일대.
이곳은 도시 개발붐이 일면서 마치 톰과 제리의 치즈 덩어리와 같은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여기 파이고 저기 파이고. 이리저리 좀먹다 보니 온전히 ‘평야’라고 부를 만한 지역이 좁아진 것.
달리 말해 도시 개발만 멈추면 모든 것이 원상복구되었다.
자연과 문명, 환경과 인류가 각자의 운명을 걸고 지난 10,000년 동안 펼친 엘리전에서 승부의 균형추가 다시금 자연 쪽으로 기울었을 때, 김해평야는 급속도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물론 용병으로 참전해 준 괴이들한테 승전의 대가로 자연의 영토를 상당 부분 넘겨야 했다. 덕분에 이게 정말로 자연인지 공허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으니, 자연사가 돌아가는 꼬라지도 인간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김해평야는 좀 신속하게, 어쩌면 너무 빠르게 문명이 제거된 지역에 속했다.
-웨에에에에에에엥!
약 7년 전, 김해평야 서쪽에서 갑작스러운 공습경보가 발령되었으며 그곳에 소규모 ‘폭격’이 이루어졌다.
정확히 이 인근에서 사건이 어떤 경위에서 어쩌다 발생하였는지 알 순 없었다.
내가 부산역으로 강제 소환당하여 회귀자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벌어진 사태였기에.
근방에 폭격이 벌어졌다는 정보 자체도 만일 내가 회귀자가 아니었더라면 얻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폭격이 아니라 포격이었다는 증언도, 갑자기 게이트가 터졌다는 소문도, 정부의 비밀 연구 시설물이 폭발했다는 유언비어도 있었다.
그야말로 오리무중.
-콰아아아아앙!
어쩌면 김해평야에서 소규모 게이트가 발생하였고 이를 없애 버리기 위해 폭격이 벌어졌던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서울이 쑥대밭이 되었는데 부산마저 잃어버릴 순 없다는, 누군가에겐 그 나름대로 구국적인 결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도심 밀집 지역에 비해 그나마 주거하는 사람들이 희박해서 ‘이 정도 희생은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단순히 명령 전달에 오류가 있어서 벌어진 비극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의외로 이 가능성을 제일 높이 본다.
하지만 이제 와서 진실을 파헤칠 순 없다. 진상을 조사해야 할 정부도 민간기구도 사라졌는데 어쩌겠는가? 하물며 사건과 관련된 문서나 증인조차 구할 길이 요원하거늘.
공허에 잡아먹힌 것은 자연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역사 또한 공허 속으로 실종되었다.
그럼에도 자명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폭격이 이루어진 김해평야가 정말 이름 그대로 ‘평야’뿐이어서 허허벌판이었을 리는 만무하다는 것.
증명할 길이 실종된 곳에서도 다만 사람들은 살고 있었다.
9
후일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장의사 씨.] [정신 차리십시오, 장의사 씨.]깜빡,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시간 동안 나 자신이 잠깐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찰나의 블랙아웃. 다행히 회귀자로 살아오면서 기절 따윈 수도 없이 겪어 봤다. 오래전 익숙해진 일에 새삼 당황하진 않았다.
[정신 차리셨습니까?]기절한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아마 ‘유성우’가 부른 자장가의 영향 때문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겨 버린 것이겠지.
다른 각성자들과 달리 나는 최전선에서 비행하고 있었다. 요컨대 당서린의 백마법, 자장가를 무효화시키는 ‘반공명’ 노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졌던 셈.
“예,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녀님. 제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습니까?”
“1초 만에 제가 기절한 걸 눈치채셨단 말입니까? 대단하군요.”
순수하게 놀라웠다. 그야 아까 말했다시피 성녀가 ‘시간 정지’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이 당시의 나는 몰랐으므로.
이렇게 중요한 전투 도중에 성녀는 틈틈이 시간을 정지해 가며 전장을 관찰하였다. 그녀의 천리안에 내가 빗자루에서 잠시 기웃거린 모습이 잡혔으리라.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장의사 씨.]성녀는 능숙하게 화제를 돌렸다. 단순히 내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등골이 싸해졌다. 굳이 당서린의 마법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감정이 공명했다.
“말도 안 돼! 설마, 유성우의 토벌에 실패한 겁니까?”
[아니요. 토벌 자체는 성공한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렇지만……. 저기를.]성녀가 가리키는 ‘저곳’이 명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유성우의 별빛이 존재하던 밤하늘.
700인의 각성자들이 수년 동안 준비해 온 일격은 과연 날카로웠다. 우리가 만들어 낸 오러의 폭풍우에 유성우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그렇다.
찢어졌다.
“뭐……?”
심장이 두근거렸다.
확실히 유성우는 토벌되었다. 한곳으로 뭉쳐서 강하게 별빛을 발산하던 구체(球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상엔 토벌되자마자 연기처럼 흩어져 버리는 괴이도 있었지만, 동물처럼 사체를 남기는 괴이 또한 많았다.
나는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별빛의 시체……?”
혹시, 백린탄을 본 적 있는가?
정확히 그것과 비슷한 광경이 내 눈앞에서, 아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찢어진 별빛들.
갈기갈기 형해화되어 버린 별빛들이 지상을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등줄기에서 솟구친 소름이 내 심장을 꿰뚫으며 불길하게 울렁거렸다.
왜, 어째서 예상하지 못했는가.
만일 하늘에서 떨어지는 운석이 있다면 그 유성을 요격하여 파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설령 파괴에 성공한다 해도, 지상으로 무수하게 떨어지는 운석의 파편들 또한 문제라는 사실을.
“시발!”
그야 당연히, 오크나 고블린 따위도 아니고 순도 100% 별빛으로 이루어진 괴이가 설마 시체를 남길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빛의 사체? 그딴 걸 누가 예측할 수 있어?
그렇기에 이것 또한 ‘모르면 당해야지’에 속하는 억까였다. 빌어먹을.
회귀자의 기습에 초전박살이 나 버린 유성우가 인류를 위해 마지막으로 아껴 둔 빅엿이랄까.
어디까지나 유성우를 ‘최초’로 토벌하는 데 성공한 42회차에선 이 함정 카드에 당해 줄 수밖에 없었다.
“끝났어! 끝났다고! 우리가 진짜로 특급 괴이를 사냥했다!”
“한반도 각성자 총연맹 만세! 만세!”
“미친……. 특급 괴이 토벌은 세계 최초잖아. 이걸, 정말로 인간이 해낼 수 있었다고……?”
“성좌는 무적이다! 장의사는 신이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 공중의 전쟁터에서 유성우의 사체에 신경을 쓰는 전투원은 없었다.
다들 역사에 길이 남을 대전투에서 압승을 거두었다는 사실에 흥분할 뿐.
오직 성녀와 나 정도만이 밤하늘의 기이한 울렁거림에, 그 밤하늘을 스스로 뚫고 낙하하기 시작한 별빛의 파편들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대로 파편들이 지상에 떨어지면―― 아니, 아니지. 괜찮다. 설령 경상남도 일대가 잿더미의 영역으로 변하더라도 최악의 상황까진 아니야.’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믿음을 가진 유형의 회귀자가 아니었다. 그런 자기 확신은 딸랑 2번, 3번의 회귀만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다이아몬드 수저형 회귀자들이나 소유할 수 있는 사치품이지.
당연하게도 나의 작전이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상남도 전역에서 최대한 주민들을 소개시켰다.
“인프라가 다 파괴되겠지만…….”
감당할 수 있었다. 뭐, 이 시대의 진정한 인프라는 자본이나 물질이 아니라 각성자들 아니겠는가.
입안에서 쓴맛이 올라오는 걸 삼키고 있자니, 성녀가 아까 전보다 조금 더 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장의사 씨. 별빛들이 점점 더 넓게 퍼지고 있습니다.]“예?”
퍼뜩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살펴봤다.
정말로 별빛들이 수직 낙하 운동이란 개념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다. 과연 심심할 때마다 물리법칙에 의문을 표하는 괴이들답게 반지성주의적 행태였다.
[부산의 상공으로만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한반도 전역을 가뿐하게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아니, 이런 미친 억까가 다 있나.”
42차의 내가 부지불식간에 중얼거렸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억까라고 말하긴 힘들었다.
이미 묘사했다시피 유성우는 이대로 가만히 방치해 둘 경우 장장 7년에 걸쳐서 전 세계를 폭격해 버린다. 하와이, 잉그리아, 중국, 프랑스 등등.
즉… 이놈은 첫 번째 데뷔에서부터 자신의 힘을 모조리 쏟아붓는 열혈 괴이가 아니다. 오히려 음흉한 힘숨찐에 가깝지. 세계수 우담바라랑 비슷한 타입이다.
그런 힘숨찐의 배때기를 한 방에 푹찍 찔러 버렸으니 줄곧 숨겨 왔던 힘의 여파 또한 줄줄이 풀려 버릴 수밖에.
결론은 간단하다.
유성우는 설령 죽음에 이르더라도 자신의 사체 조각들만으로도 한반도 정도는 얼마든지 멸망시킬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한반도를 버려?’ ‘700인의 각성자는 멀쩡해. 본진을 버리고 멀티를 띄워도 될 만큼.’ ‘하지만, 지상에서 백업하고 있는 비전투조 900인은.’ ‘죽을까?’ ‘당서린이 멀쩡하잖아?’ ‘성녀님은?’ ‘성좌들의 신뢰가 깨지고 나서도 각성자 연맹이 지금처럼 끈끈한 단합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윤리 장치가 제거된 후에도?’ ‘잿더미의 영역.’
별빛들이 느릿느릿하게 낙하했다.
판단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이번 회차는 버린다.’ ‘그렇지만 최대한 많은 정보를 획득해야만 해.’ ‘유성우의 사체들도 똑같이 지상을 잿더미의 영역으로 만드는가? 단순히 떨어지고 나선 소리 없이 소멸할 것인가. 아니면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광원(光源)을 제공하는 불가사의로 남을 것인가.’ ‘죽더라도, 죽기 전까진 발버둥을 친다.’
[장의사 씨.]머릿속에 목소리가 고요하게 울렸다.
[장의사 씨, 어서 지시를.]모든 각성자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성좌들의 흑막이, 회귀자인 내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전군,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다들 아래를 주목하도록! 유성우의 사체가 수백, 수천 갈래로 찢어져서 떨어지고 있다! 토벌이 종료되고도 사체가 소멸하는 대신 계속해서 잔존하는 유형으로 판단!”
각성자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능한 정예였으나 그 웅성거림이 명료한 판단으로 모이고 정확한 행동으로 제련되려면 5분, 10분이 걸릴 터.
지휘관은 그 속도를 수십 초로 단축시켜 주는 존재였다.
“성좌들의 정보에 따르면 유성우는 지상에 접촉하는 즉시 일대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구국의 성녀’ 및 지상에 있는 관측 요원의 보고에 따르면, 유성우의 사체들은 한반도 전역으로 낙하 중이다!”
“뭐?”
“이런, 썅…….”
여기저기서 욕지거리가 터졌다. 하지만 동시에 진기한 일이 벌어졌다.
각성자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고요함이 찾아든 것이었다.
지금이 중요한 타이밍임을 나는 알았다.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지휘관이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렸다는 확신을 저들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성녀님.’
나는 성녀에게 아무런 지시도 사전에 내리지 않았다.
[‘구국의 성녀’가 긴급 퀘스트를 하달합니다!]하지만 그녀는 마치 내 속마음에 반응하는 것처럼 바로 그 순간 모든 각성자들의 눈앞에 메시지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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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운석의 잔해]여러분은 세계 최초로 대륙급 괴이 ‘유성우’를 토벌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축배를 들긴 이릅니다. 유성우의 시체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메테오 카니발을 저지하십시오.
부디 무운을.
-보상: 생존
-실패 시: 한반도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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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어떠한 자료도 없어 판단이 오리무중에 빠진 이때 각성자들은 성좌의 증언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리쳤다.
“우리가 막는다!”
밤하늘이 물결쳤다.
“지상에는 아직 비전투원 900인이 남아 있다! 그들이 남아 있는 한 한반도는 끝장나지 않아! 여기서 우리는 비전투원들에게 미래를 맡기고 죽음을 불사한다!”
각성자들이 전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동공에서 일순 불타오르는 흑색화약을 나는 보았다.
“1조에서부터 12조까지! 각 전투조원들은 팀장의 명령에 따르도록! 괴이의 사체 중에 단 한 조각조차 감히 우리의 땅에 떨어지도록 허락하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장의사님!]무전기가 지직거리며 팀장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출격! 전군, 출격! 내가 앞장선다!”
“와아아아아아!”
원뿔처럼 뭉쳐 있던 700인의 전투 대열이 단번에 산산이 흩어졌다.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는 전투기들처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비상하는 것이 아니라 강하한다는 것.
“아아아아――아―아아―――.”
맨 후방에 있었던 당서린 역시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역시 작전에도 예정에도 없었으나 그녀는 기민하게 대처했다.
제7선율, 신속.
우리가 타고 있던 빗자루가 단숨에 가속했다. 먼저 떨어지기 시작한 유성우의 사체들도 금방 따라잡았다.
“아아아―――.”
당서린의 마법은 자기 수명을 태우면서 밝게 타올랐다. 그렇기에 웬만해선 4선율까지만, 정말 중요할 때도 6선율 이상을 노래해선 안 되었다.
제7선율. 그것이 바로 사지(死地)에 발길을 들여놓는 경계선.
그녀의 목숨이 증발하면서 얻어 낸 속도로, 이번엔 내가 사선으로 돌진했다.
“큭!”
유성우로부터 찢어져 나온 사체 하나에 근접하여 검을 휘둘렀다. 그저 한 조각의 사체를 없애 트렸을 뿐인데도 온몸이 격통에 시달렸다.
당연했다. 있는 오러 없는 오러, 혼신의 힘까지 다 쥐어짜 내서 최후의 일격을 날렸던 게 불과 2분 전.
체내에 잔존한 오러량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오른손은 출력을 버티지 못해서 살갗까지 전부 벗겨져 근육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당장 입원해도 모자랄 판에 싸움을 지속하다니 자살행위나 다름없겠지.
간신히 바닥까지 긁어모아서 칼날에다 오러를 둘렀건만 유성우의 사체에 접촉한 부분 중 일부가 잿가루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쉬지 않고 곧바로 다음 사체를 향해서 돌격했다.
불나방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악!] [11시 방향! 11시 방향은 다른 조가 커버해! 이 새끼 이거, 점점 더 넓어진다! 퍼지기 전에 없애 버려야 돼!] [12조, 전멸.] [죽어! 죽어, 죽어! 죽으라고!] [대마녀님, 감사했습니다! 사랑해요! 삼천세계 만세!] [10조, 2시 방향 클리어.]700인 전원이 목숨을 등한시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분명히 뒷짐을 지고, 전투에 참여하는 척하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살려 낸 전투원들도 있었다. 어쩌면 멸망해 버린 한반도에서 자기 길드의 입지를 올리겠다고 재빠르게 결론을 낸 각성자마저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 펜은 그것과는 다른 사람들을 서술하기 위해 존재했다.
[3시 방향 클리어. 10조, 궤멸. 남은 인원 6명. 4시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7조, 전멸했어요. 그래도 11시 방향은 클리어. 이제부터 10시로 합류……. 아. 남은 사체 하나 발견. 합류 불가.] [먼저 가겠습니다. 장의사 형님. 세종에서 있었던 일, 잊지 않았습니다. 항상 감사했습니다.] [4조, 전멸.]별들이 떨어졌다.
전신에 마지막으로 남은 진기를 불태우며 별빛의 잔해를 껴안고서, 온몸이 잿가루로 흩날리면서.
그리고 밤하늘이 끝나 갔다. 일찍이 유성우가 퍼트린 어둠의 물결이 저 하늘의 가장자리에서부터 점점 더 연해졌다.
그 연해져 가는 밤하늘 아래로 무수한 잿가루들과 함께―― 툭, 툭, 주인을 잃은 빗자루들이 소리 없이 침몰하고 있었다.
[장의사님.] [장의사 형님!] [장의사 씨――.]낙하. 낙하.
끝없는 낙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소음이 흘렀을까.
“장의사!”
깜빡.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나는 추락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바람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정신을 잃은 건 전혀 기이한 일이 아니었으되 이번만큼은 무척 기이한 점이 있었다. 그것도 세 가지나.
첫 번째,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높은 상공에 있어서 즉시 깨닫진 못했지만 현재 나는 추락하고 있었다. 빗자루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번 회차의 사인은 추락사가 되리라.
두 번째, 당서린이 내 눈앞에 있었다.
단순히 눈앞에 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언제나 소중하게 쓰고 다니는 고깔모자는 사라져 버린 채, 그녀 또한 나처럼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나를 껴안고 있었다.
“당서린?”
나는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입안에서 피 냄새와 납 냄새, 철 냄새, 잿가루 냄새가 뒤섞여서 느껴졌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강렬한 확신과 더불어서 어째선지 모든 것이 꿈속과 같았다. 이 꿈을 더 꾸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닌지 불확실한 몽유병자처럼.
“지금, 전황은 어떻게…….”
당서린이 활짝 웃었다. 우리는 지금 추락하고 있으며 곧 그 추락의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역시, 꿈인 것일까.
당서린의 미소가 조금 더 내게 가까워졌다. 가까워지고 또 가까워졌다.
이윽고 그녀의 미소는 시각이 아니라 윤곽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마지막 세 번째로 기이한 점이었다.
“나, 인간을―― 사랑해!”
피와 땀, 잿가루로 범벅이 된 당서린의 얼굴이 다시 한번 활짝 웃었다.
“너, 방금 무슨…….”
“사람이 싫어. 짜증 나고. 사실 나, 사람들 많은 곳은 딱 질색이거든. 나한테 어떻게든 아부하려고 꼬리치는 인간들 정말 지겨워.”
파르르륵-
바람 소리가 우리 두 사람의 살결을 연거푸 때렸다. 꾸욱. 하늘의 물살에 맞으면서 당서린은 조금 더 강하게 내 허리를 안았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세상이 멸망해 버리기 전부터 싫었고, 세상이 멸망하고 난 이후로도 쭉 싫었어. 그런데, 그렇지만. 인간이란, 대단해!”
“…….”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응. 아무런 기록도 남지 못하겠지만. 우리, 방금 세계를 구한 거야! 그렇지, 장의사?”
“…….”
“그리고―― 당신도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
바람.
“나는 원래 그런 걸 물어보는 성격이 아니니까. 아- 물어봤어야 했는데. 왜 당신이 자꾸 그런 표정을 짓는 건지. 예전에는 어디서 뭘 하면서 살았는지. 왜 카페오레를 좋아하는지. 왜 당신의 눈은 슬픈지. 잔뜩 물어봤어야 했고,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물결.
“나, 싫어해? 장의사?”
“그렇지 않아.”
즉답.
“그렇지 않다……. 절대로.”
“응.”
미소.
나의 꿈. 나의 질병. 내가 삶을 꿈꾸기로 결심한, 내 몽유병의 이유.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나를 좋아해 주는 만큼만. 딱 그만큼만 조금 더 인간을 사랑해 줘.”
그리고.
노을.
밤하늘이 사라져 간다.
노을이 번져 간다.
유성우가 밤하늘을 펼쳤을 때 본래 세상은 아직 막 노을이 지고 있었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루의 석양이 시작하고 끝나는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성우가 토벌되고 우리가 낙하하는 무렵, 아직도 세상에선 한창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
밤하늘에 삼켜지는 노을이 아니라.
밤하늘을 밀어젖히면서 펼쳐지는 노을.
이 세상에서, 이 지구상에서, 오직 단 한 번만 일어날 수 있는 역(逆)의 노을.
“아…….”
영원한 지평선까지 이어지는 붉음.
“정말로, 정말로――. 아름다운 하늘――.”
10
후일담은 여기까지로 하자.
43회차부터는 사체들에 대한 대책도 빠트리지 않아서, 700인의 각성자들은 무사히 지상으로 귀환할 수 있게 되었다.
유성우에 대해서 아직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은 많았다. 유성우가 어디서 어떻게 기원했을지에 대한 추측, 별빛을 사로잡아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
그럼에도 오늘 에피소드는 여기서 끝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의 노을이 지나치게 붉었고, 인간이란 다만 영원토록 노을이 지는 수평선을 향해 날아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보스전.
괴이 유성우.
이명: 메테오 스트라이크, 아마겟돈, 기우(杞憂), 뉴클리어 런치, 은하수
위험등급: Lv.3 대륙급(Continent)
패턴: 제1페이즈 출현, 제2페이즈 낙하, 제3페이즈 광역 수면, 제4페이즈 충돌.
전사자 추산 불가. 실종자 추산 불가.
세계멸망 전적 다수.
토벌 완료.
– 몽유병자. 結.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