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74)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74화(7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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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인자 Ⅱ
신노아
노도하의 불길한 중얼거림 따윈 우리 사파리 탐험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웬만해선 흥이 오르지 않기로 유명한 심아련과 서규조차도 뒷좌석에서 왁자지껄 떠들었다. 아마 이날을 위해 내가 준비해 온 공장제 감자칩과 초코과자가 크나큰 역할을 수행했겠지만.
“저, 저 이렇게 다른 사람 초대받고 막 사람들이랑 노는 거 처음이에요…….”
“저도 형님이 이렇게 어디 오라고 부른 적은 처음이라서 기대가 많습니다.”
“역시 부산역팸……. 다, 다른 허접 출신들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끈끈함……!”
나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핸들을 돌렸다. 나 장의사, 오늘만큼은 길드장이 아니라 한낱 겸손한 가이드로서 이들을 안내해 줄 요량이었다.
“여기부터 이데아 목장 입구가 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
“와아아아! 아? 아아아……?”
창문을 열어 목장 전경을 구경하던 심아련의 환호성이 마치 소프라노처럼 정점을 찍었다가 차츰차츰 하산했다.
“어……. 길드장님……?”
“왜 그러냐?”
“말 목장에 왜… 음. 시, 십 미터짜리 쇠가시 철책이랑 콘크리트 장벽이 쳐져 있나요?”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미관상 별로 보기 좋은 실외 장식은 아니지.”
“네, 네에. 약간 무섭다고 할까, 좀만 더 솔직하게 말하면, 어. 거의 휴, 흉물스럽다고 할까… 요……?”
“동의한다.”
리모컨 버튼을 꾹 눌렀다.
크르르릉……. 사파리 테마파크를 육중하게 봉인하고 있던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하지만 아련아. 외관의 생김새란 어떤 사물에 있어서 부차적인 속성에 불과하지, 결코 본질을 이루진 않는단다.”
“네, 네에……?”
“생각해 봐라. 목장엔 원래 울타리가 쳐져 있어. 기르던 동물들이 함부로 도망쳐선 안 되니 당연하지. 우리 이데아 목장은 그 울타리를 조금 더 견고하게, 조금 더 튼튼하게 세웠을 뿐. 목장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거란다. 알겠니?”
“에…….”
내 사파리 트럭의 타이어는 철문이 열린 틈새로 우아하게 굴러갔다.
“참. 창문은 열어 둬도 상관없지만 바깥으로 고개를 빼밀진 마라. 운전하는 도중에 위험해질 수도 있잖니.”
“아, 네. 네에…….”
심아련이 차 안으로 도로 상반신을 밀어넣자마자 나는 다시금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촤르르륵-
창문틀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쇠창살이 올라와 차창을 보호했다. “힉”, 하고 심아련이 움찔거렸다.
“기, 길드장님? 창문에 쇠, 쇠창살. 어째서 갑자기, 쇠창살이?”
“이야. 이번에 트럭을 사파리 용으로 개조하면서 내가 손 좀 봤지. 어때? 죽여주지? 네 길드장이 이렇게나 재주가 다양해요.”
“대, 대단하긴 한데. 물론 대단한데, 그러니까, 왜 그 대단함이 필요한 건가요오……?”
“…….”
이쯤 되자 어째선지 서규도 노도하처럼 입을 다물었다. 백미러를 통해 보니까 상남자스러운 얼굴에 슬슬 식은땀이 맺히고 있었다.
“그야 물론 우리 소중한 여행객 여러분의 안전을 철두철미하게 지키기 위함이 아니겠니?”
“아, 아니. 제 말씀은, 그러니까요. 애, 애당초 왜 그냥 목장 한번 쓱 둘러보는 일에 안전이…….”
“아련 씨.”
서규가 비장하게 말했다.
“네, 네?”
“안전벨트 매십시오.”
“엑. 저, 안전벨트 끼면 막 불편하고 숨이 답답해서 싫…….”
그때였다.
-끼이에에에엑!
“히에에에엑?”
차 바깥에서 들려온 말의 앙증맞은 투레질과 동시다발적으로 차 안에선 심아련의 비명이 터졌다.
“아. 여러분, 지금 시선을 2시 방향으로 돌려주십시오. 보이십니까? 본 이데아 목장에서 여러분께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첫 번째 말, 낑낑이 되겠습니다.”
“말……?”
노도하가 차게 식은 눈으로 쇠창살 밖을 쳐다보았다.
“저게 말입니까……?”
그곳에선 말이 우리 사파리 트럭을 몹시도 경계하고 있었다.
말답게 기다란 목엔 ‘낑낑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는데 그새 또 부숴 먹었는지 ‘낑■ㅣ’만 식별할 수 있었다. 정말. 말썽꾸러기가 따로 없다.
물론 공허에서 양육한 만큼 평범한 말과는 다소 외관에 있어서. 즉, 결코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 부차적인 속성에 불과한 생김새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했다.
가령 낑낑이는 다른 말들과 달리 사족보행이 아니라 이족보행이 가능했다. 뭐, 인간처럼 곧은 자세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구부정하게 말이다.
아무튼 말이니까.
피부 역시 갈색이나 흑색, 백색 따위가 아니라 제법 녹색에 기울어진 색감을 자랑했다. 아마도 잡초가 우거진 대산면 일대 평야에 적응한 결과 아니려나?
그리고… 음. 이빨이 날카로웠다. 그렇지만 말들은 원래 이빨이 잘 발달된 생명체. 낑낑이는 거기서 약간의 수렴진화를 거쳤을 뿐이었다.
아무튼 말이니까.
마지막으로 말발굽, 요컨대 손톱과 발톱 또한 살짝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이것 역시 말발굽이 본래 존재했던 기관인 점을 고려하자면 사소한 변경점에 불과했다.
그 모든 속성들을 둘러보고 나서, 노도하는 삭막하게 중얼거렸다.
“저건… 공룡이지 않습니까…….”
그것과 동시에 낑낑이가 입을 벌렸다.
-끼에에에에엑!
음. 지난 반년 동안 목장의 말들과 상당한 유대관계를 쌓은 내 입장에서 해석해 보자면 ‘무슨 개소리니, 노도하야? 난 말이 맞단다’ 정도의 의미를 지녔다.
“예? 공룡이요? 어허, 음해하지 마십쇼. 우리 애들이 어딜 봐서 공룡이랑 닮았습니까? 애당초 공룡은 몸 군데군데가 솜털로 뒤덮인 흉측한 생명체인데 저희 아이들의 피부는 매끈매끈합니다.”
“흐. 일단 말에도 갈기털이 자라난다는 건 둘째치고, 대체 언제부터 말의 피부가 파충류랑 교미해서 매끈거리는 초록색을 자랑하게 되셨는지……?”
“베, 벨롭시랩터?”
뒷좌석에서 서규가 소리쳤다.
“랩터! 랩터잖아요, 형님!”
“랩터?”
“옙! 쥬라기 공원에 나온 그――. 잠깐. 세상에, 설마 형님, 쥬라기 공원도 안 보셨습니까?”
“당연하지. 그거 나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잖냐.”
“아니, 그건 옛날에 나온 3부작이고요. 맙소사. 형님이 영알못이었다니. 비교적 최근에 나온 시리즈도 얼마나 많은…….”
“히에에에엑!”
노도하는 식겁했고 서규는 흥분했으며 심아련은 환호했다. 역시 우리 낑낑이의 귀여움에 모두가 행복해진 게 틀림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사파리 트럭을 몰았다.
“아. 아. 지금 9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주십시오- 그럼 우리 목장에서 서른세 번째로 인자작에 성공한 말, 뾰족이를 직관하실 수 있겠습니다. 말답게 사족보행으로 걷는 것이 특징입니다.”
“트리케라톱스다!”
“그런 근본 없는 이름으로 우리 뾰족이를 부르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서규 학생.”
“또 공룡입니까……. 도대체 말들한테 무슨 짓거리를 쳐하면 대갈통에서 코뿔소 뿔이 돋아나는지……?”
“자아. 이제 11시 방향을 봐주시면, 콩콩이가 보이시죠? 두상이 참 예쁜 아이랍니다.”
“파키케팔로사우르스! 박치기 공룡!”
“어이쿠, 콩콩이가 우리가 참 반가웠는지 트럭을 똑똑 노크해 주네요? 하하. 우리 모두 손 흔들어서 콩콩이한테 인사해 볼까요?”
“히에에엑……. 차가, 흔들려, 히엑…….”
예상했던 대로 사파리 구경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우리 목장의 식구를 하나하나 소개시켜 줄 때마다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졌지 뭔가.
내 회귀 인생 전체를 통틀어도 이만큼 호스트로서 보람이 넘치는 하루가 달리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여러분, 안전하게 보호된 트럭 안에서 쇠창 너머로만 말들을 구경하는 건 아무리 그래도 심심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제 마음도 여러분과 같습니다! 그럼 본 가이드의 인도 아래 특별히 여러분께서 말들과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아아! 아아아……!”
심아련이 울부짖었다. 나 원 참,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도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데아 목장의 자랑거리, 저의 원픽, 컹컹이를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컹컹이……?”
“아주 얌전하고 착한 놈이죠. 자자, 다들 차에서 나오십쇼. 아련아? 좋은 말로 할 때 나오려무나. 안 나오면 SG넷에다 네가 고려장인 거 까발릴 거다.”
“흐엑. 히익, 흐에에엥…….”
나를 필두로 사파리 트럭에서 우리 일원들이 줄줄이 내렸다.
“컹컹아! 이리 온!”
휘익. 나는 트렁크에서 염소 바비큐를 꺼내 저 멀리 숲속까지 던졌다.
잠시 뒤.
퍽! 하고 숲속으로부터 염소 뒷다리가 찢겨진 채로 날아들었다. 우연히도 뒷다리는 정확히 심아련의 얼굴 옆을 지나쳐 트럭 창문에 부닥쳤다.
“꺄아아아악!”
“자아, 이제 컹컹이가 등장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컹컹이가 참 착하지만 아직 어려서 침착함과 차분함이 부족해요. 그러니 되도록 자극하지 말아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우린 그걸 [성격 나쁘다]라고 부르기로 합의했습니다만…….”
쿠웅. 쿵. 쿠우웅-
숲의 나무들 사이로 컹컹이가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지금까지 봐 온 말들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크기. 다소 앙상한 앞발에 비해 우람하기 짝이 없는 뒷발.
무엇보다 아름다운 대가리.
서규가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지! 당연히 티라노사우르스가 나와 줘야지! 심지어 털도 없는 버전이야! 시발, 과학적 엄밀함 따윈 좆 까라고!”
“꼬르륵…….”
오랜만에 서규가 SG남으로서 시발 소리를 입에 담은 가운데 그 옆에서 심아련이 폴싹 쓰러졌다.
아마 감동에 겨워서 기절해 버린 듯했다. 우리 컹컹이가 좀 잘생겼으니까 그럴 만했다.
-크러어허어어어엉!
아빠를 봐서 그런지 컹컹이가 반가움을 표시했다.
“방금 들으셨죠? 컹컹이는 컹컹 우는 것이 특징인 우리 목장의 막둥이로 염소 고기를 가장 좋아합니다.”
“육식성 말……?”
“그럼요. 우리 아이가 고기 좀 먹을 수 있지 왜 먹는 거로 구박하세요?”
“아하. 저는 지금까지 장의사 각성자가 왜 가정을 꾸리지 않는지, 하다못해 왜 애완동물이라도 키우지 않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당신한테 자식이나 반려동물이 없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쿠웅! 쿵!
컹컹이가 뒷발을 맹렬하게 치달으며 나한테로 달려왔다. 나 역시 전신에서 오러를 끌어올려 컹컹이의 머리를 양팔로 안아 주었다.
“어이고, 그래그래. 욘석. 아빠 많이 보고 싶었어요?”
-크러어허어엉!
“옳지, 옳지. 밥 먹다가 흘리면 안 되지. 여기 컹컹이 네가 흘린 염소 뒷다리 있단다. 꼭꼭 씹어먹으렴.”
-크르으흐으응! 커러어엉!
“어때요? 우리 컹컹이, 참 귀엽죠?”
“…….”
이미 기절해 버린 심아련에게선 안타깝게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고, 서규는 눈을 반짝이며 이리저리 관찰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이 없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노도하가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댁이 무식하게 강해서 티라노사우루스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있을 뿐이잖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사파리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뒤 유유히 숙소에 돌아왔다. 참고로 심아련은 쭉 기절해 있었다.
나는 활짝 웃었다.
“그래서 노도하 대장. 저희 목장의 성과를 감찰해 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흐음…….”
“제 생각엔 우리가 양육할 기병대의 기마로는 컹컹이가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흐으음…….”
“양육하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지만, 시간과 예산을 허락해 주신다면 반드시 장차 1000마리의 컹컹이를 육성하여 전 세계 최강의 기마대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 물론 모든 기병들은 제가 만든 뿔나팔을 착용하여 돌격할 때마다 나팔을 불어야만 합니다.”
“음.”
노도하도 활짝 웃었다.
그녀치곤 참으로 드문 미소였다.
“지랄.”
우째서?
3
후일담 1.
결국에 컹컹이의 기병대 데뷔는 무산되었으나 이데아 목장이 거두어 올린 성과가 전부 무시당한 것은 아니었다.
“장의사 각성자. 뾰족이인지 뭐시긴지 그 댑따 큰 공룡, 거, 사료를 많이 처먹습니까……?”
“아뇨. 공허 유전학의 신비 덕분에 생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 대부분은 그냥 피부로 상시 흡입합니다. 그리고 공룡이 아니라 말입니다.”
“공룡 새끼든 말 새끼든 아무튼 그건 희소식이군요. 그럼 앞으로 국도관리대에서 짐 옮길 때는 뾰족이를 애용하죠…….”
더불어 각성자들이 타고 다닐 군용마로는 컹컹이 대신 쿵쿵이, 그러니까 박치기에 특화된 말이 선정되었다.
당연히 이 참담하기 그지없는 결정에 대해 나는 격렬하게 반항했다.
“아니! 자고로 기병대란! 멋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쿵쿵이를 타고 다니는 기병이라니 여기에 대체 무슨 낭만이 있단 말씀입니까!”
“그치만 댁이 밀어붙이는 컹컹이는 하루에 고기만 100kg 가까이 처먹는다면서요……? 반면에 쿵쿵이는 먹이도 별로 필요 없고 온순하기까지 합니다. 망설여야 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만……?”
“갈! 기병대는 효율을 따져서 육성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기병대 말고 기동대라 하죠, 뭐. 아니면 공룡대라고 부르든지요. 시발. 저만 해도 국도관리대라 쓰고 저로서는 아무 불만 없습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사람이 이런 감수성을 지니는 게 가능하지?
결국 380회차 이후부터 이따금 한반도 각성자들은 쿵쿵이를 타고 돌아다니게 되었다. 비록 내가 이데아 목장을 경영하는 회차들에 한정하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나는 쓸쓸히 돌아와서 홀로 컹컹이 목에 올라탔다. 지평선 너머에선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미안하다. 컹컹아. 네 짝은 만들어 주지 못할 거 같구나…….”
-크르어허엉.
괜찮다고, 내 인생은 철학적 탐구에서 가치를 찾지 결코 애욕으로 점철된 연애 관계로부터 비롯하지 않노라고 컹컹이가 답변했다.
아! 이 어찌 애달프지 않을쏘냐.
나는 슬픔에 젖어, 컹컹이의 등에 올라탄 채 뿔나팔을 불었다.
-후부우우우우웅!
-크러어허어어엉!
뜨거운 석양을 배경으로 한 마리의 말과 인간이 포효했나니.
기병대에 대한 인류의 로망이 마침내 종막을 고한 것이었다.
4
후일담 2.
“서규야. 지난번에 네가 추천해 준 공룡 영화 찾아다가 봤는데 말이다. 글쎄, 나는 좀 별로더라.”
“예? 아니, 몇 편을 보셨길래요?”
“6편. 그게 최종편이라길래 먼저 봤지. 부제는 도미니언이던데. 넌 뭐 이런 영화를 추천하고 그러냐.”
“아니, 형님, 시발…….”
– 유전인자. 結.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