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75)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75화(7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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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 Ⅰ
신노아
1
기왕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이참에 내 취향을 밝혀 두자면 난 외계인 영화를 제일 선호한다.
더 정확히 장르를 세분화시켜 보면 #재난 #침공 #SF #아포칼립스 태그가 달린 영화들이 좋더라.
왜, ‘우주전쟁’(2005)이라든지 ‘화성침공’(1996)이라든지. 그런 영화 있잖은가.
누군가는 내 취향을 듣고 좀 뜻밖이라면서 의문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괴이들한테 지구가 침공당하는 처지에 굳이 영화로까지 똑같은 경험을 해? 그게 뭐가 즐겁지?
하지만 그건 뭘 모르고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랑 현실이 전혀 ‘똑같지’ 않기 때문에 재밌는 것이거든.
마치 판타지 작품을 관람하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일단 저런 류의 영화 속엔 각성자들이 없잖아. 벌써 거기서부터 사소한 ‘고증 오류’가 발생하지.
“와아……. 이, 인간의 피를 빨아먹어서 연료도 보충하고 환경도 조작하는 외계인이라니. 참신하네요. 그런데 외계인 로봇의 하체가 좀 부실하게 생긴 게, 오러로 싹독싹독 자르면 금방 무너지겠다아…….”
“저 외계인들의 전략도 이상하네요. 수천, 수만 년 동안 잠복을 할 줄은 알면서 지구의 생태에 대해 미리 정찰해 볼 생각은 못 했나? 왜지? 정찰대를 꾸려서 1년만 활동했어도 문제점을 다 파악했을 텐데?”
“바, 바보라서……?”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당장 같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심아련이랑 서규가 하는 말만 들어봐도 이 시대의 사람들이 SF 외계인 침공 재난영화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알 수 있으리라.
너무 고증이 엉망인지라 오히려 더 판타지처럼 즐길 수 있다. 비록 감독의 의도는 이게 아니었겠지만.
영화들 가운데 그나마 현실 고증이 잘 이루어진 작품을 꼽으라면 ‘서던 리치: 소멸의 땅’(2018) 정도? 일반인들 입장에서 공허가 어떤 식으로 인식되는지 잘 표현했다.
아무튼.
이런 영화들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자주 보이는 클리셰가 한 가지 있다.
‘완전히 무적처럼 보여서 인류를 절망으로 몰아넣은 외계인이지만, 짜잔! 사실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답니다-’
라는 클리셰.
개인적으로 나는 이걸 ‘아킬레우스 클리셰’라고 부른다.
아킬레우스도 엄연히 사람 아니었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겠다만 뭐, 트로이 사람들 입장에서 아킬레우스 정도면 충분히 외계인이지.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백신 반대 운동에 단체로 합류함으로써 지구의 바이러스에 의해 떼죽음을 당하거나, 컨트리 음악의 리듬이 일으킨 신묘한 파동에 뇌가 펑펑 터지지만, 현실의 괴이들은 그렇게 인류한테 상냥하지 않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가다가―― 정말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착하게도 ‘아킬레스건’을 가진 괴이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착한 외계인과 내가 조우한 것은 98회차의 일이었다.
2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엔 그게 괴이인지도 몰랐다.
내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얘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었거든.
“유성우다!”
“저기, 저기!”
“이쪽으로 오진 않겠지……?”
일단 멀리서 보면 생긴 게 ‘운석’을 쏙 빼닮았다.
이 녀석이 출현하는 시기 또한 공교로웠는데, 정확히 9년 차. 즉, 대륙급 괴이인 ‘유성우’가 이미 경상남도를 초토화시키고 전 세계에 자신의 오줌발을 신나게 흩뿌리고 다닐 무렵이었다.
당연히 내 입장에선 이때 운석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어휴. 또 유성우가 지랄하는구나.’
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심지어 이 ‘운석’은 내륙이 아니라 동해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것도 울릉도에서 가까운 쪽이 아니라 대화분지(大和海盆), 일본열도 인근에 말이다.
아직까지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에서 동해로 이사 왔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 없으니 해당 지역은 그야말로 무인지대였다.
그러니 당연히 신경을 껐다. 바다의 생태환경까지 챙겨 주기엔 회귀자란 직업이 너무 바쁘잖아.
하지만 유성우 토벌이 이루어진 회차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약간 묘해졌다.
“장의사 각성자. 간밤에 동해 쪽으로 운석 떨어지는 거 보셨습니까……?”
“예?”
“모르셨군요. 어젯밤에 별똥별이 떨어졌습니다. 흐. 전 또 유성우가 아닐까 걱정했지 뭡니까. SG넷에서 잠깐 화제가 되어서 글이 도배됐습니다. 근데 뭐,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 원래 이맘쯤에 동해에 운석이 떨어지곤 했는데 그게 그냥 평범한 운석이었군요.”
이후로도 여러 차례 목격담을 들었으나 나는 한참이나 이 일에 관심을 끄고 살았다.
어차피 지구엔 매일 100톤가량의 암석들이 우주로부터 떨어지고 있었다. 하필 동해에 떨어졌고, 하필 ‘유성우’랑 시기가 겹쳤을 뿐이지 딱히 특별한 사건은 아니잖은가.
그러던 어느 날.
98회차 때 나는 우연히 일본의 가나자와(金沢)시에 방문하고 있었다.
일본열도에서 최대의 세력을 자랑하는 집단, 우리나라로 치면 각성자 연맹에 해당하는 ‘마법소녀협의체’랑 만날 일이 있었거든.
참고로 이 집단은 우리랑 비슷한 레벨의 또라이들, 그렇지만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 자신들의 똘끼를 진화시킨 각성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마 나중에 언급할 날이 올 거다.
안 오면 더 좋고.
이날 회의가 늦어지는 바람에 마법소녀협의체에서 파견된 담당 마법소녀랑 좀 밤늦게까지 해변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말인데, 부디 언더테이커의 능력으로 이누나키 토벌전에서 우리를 도와주길 바란다는 것이다냥.”
“도와줄 수야 있지. 하지만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카메라를 넘겨줘라.”
“이야, 아무리 그래도 카메라는 좀. 그거 우리한테도 겨우 3대밖에 없는 귀물인 거 알고 있잖냥. 대신 다른 보수를 충분히……. 오?”
“음?”
제법 쌀쌀맞은 날인데도 프릴이 잔뜩 달린 고스로리 패션을 고집하며 한밤중에도 검은색 우산을 들고 다니는 마법소녀가 동해 방면을 가리켰다.
이 패션 센스야말로 지구상 어딜 가도 구경할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었을 테지만, 동해 쪽에는 좀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목격한 것이었다. 회귀자인 덕택에 오러 수련이 다른 사람들보다 몇 단계나 격이 높았으며, 덕분에 어마어마하게 강화된 시력으로.
“…….”
“화아! 나가레보시(流れ星)다냥!”
마법소녀가 모래사장에서 깡충깡충 뛰면서 신이 났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 텐션에 따라가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원반?”
“에?”
“아니, 저거……. 동해에 떨어진 거. 운석이 아니라 원반……. 접시 모양의 비행체인데?”
“엣. UFO?”
마법소녀가 깨물어 죽여 버리고 싶은 말투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미 이들의 행태에 익숙해진 나는 떨떠름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렇다. 미확인비행체(UFO).
외계의 존재들이 무대 전면에 본격적으로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3
괴이를 목격한 현장에 마법소녀도 함께 있었던지라 조사팀은 빠르게 구성되었다.
UFO라는 단어가 가진 위력 탓인지 마법소녀협의체에선 해당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항공모함 ‘화이트 블로썸’을 출격시켜 조사 임무를 수행하겠다냥. 언더테이커. 아무쪼록 우리랑 함께해 달라냥!”
“아, 예. 뭐…….”
참고로 마법소녀협의체는 총 13척의 정규 항공모함을 보유했다. 문명이 건재하던 시절을 기준으로 삼으면 미국 해군과 더불어 지구 최강의 해상 집단인 셈이었다.
죄다 소형 어선이랑 크루즈선을 불법으로 개조한 다음 항공모함이란 글씨만 적어 놓은 선박이라서 그렇지.
마법소녀랑 항공모함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어서 이런 코스프레 짓을 하느냐고? 내가 어찌 알겠는가.
얘네 본부 건물의 정식 명칭이 ‘제5신도쿄-네오구룡성채: 미지신사(未知神社)’다. 완전 또라이들이라니까? 게다가 맨날 나를 ‘언더테이커’라고 부른다. 나도 업무만 아니었으면 방문하고 싶지 않았어.
아니, 아무튼. 그래. 이번 에피소드는 결코 이 또라이들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왜냐하면 쟤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운석이 떨어진 곳으로 추정되는 해역에 도착하여 수색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비행체를 발견했다냥!”
해상에서 작업을 시작한 지 일곱 시간 만에 UFO를 발견했다. 정신적 똘끼와 별개로 아무튼 유능한 친구들이었기에 수면에서 표류하고 있던 비행접시를 정확히 포착해 냈다.
마법소녀들이 선상에 모여들어 왁자지껄 떠들었다.
“후와. 진짜 언더테이커 말대로 운석이 아니라 UFO가 맞았다냥…….”
“관측. 대기권에서 낙하하여 수면에 충돌. 판단. 외관은 비교적 양호. 결론. 인류의 과학기술을 아득히 초월한 문명의 산물.”
“……. ……!”
“굉장하군. 표면에서 물결이 일고 있잖나. 함부로 접근했다가 안에서 에일리언이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술렁술렁.
UFO는 파도가 치면 잠깐 수면 아래로 잠겼다가 다시 솟아나기를 반복했다. 마치 자동차 보닛 안쪽의 엔진룸처럼 비행접시의 표면에는 복잡한 파이프들이 빼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외계인들과의 첫 조우.
마법소녀들은 물론이거니와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어 본 나조차 살짝 긴장되었다.
“일단 반응이 없는데. 우리가 먼저 내부로 진입해 봐야 대화를 나누든 전투를 벌이든 결착이 날 것 같다.”
“후냐앙…….”
“내가 먼저 진입하지. 따라올 사람 있나?”
“냥. 7시간 동안 개고생을 했는데 여기서 물러서면 의미가 없다냥. 따라갈 테니 앞장서 달라냥.”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후방 경계를 마법소녀들에게 맡긴 채 망설임 없이 UFO로 돌입했다. 다시 말하지만 얘네가 정신머리가 이상해서 그렇지 괴이 사냥꾼이란 점에선 전문적인 인력이었다.
찰박, 찰박.
UFO 내부는 어두웠다. 이미 침수가 시작되어서 발목까지 물이 찼다. 통로에 발을 들이자마자 휘발유 비슷한 냄새가 훅, 콧속에 파고들었다.
“별은-인류의 새벽을-인도한다냥.”
반짝.
마법소녀가 주문을 외우자 그녀 주변으로 랜턴처럼 생긴 광구(光球)가 느릿느릿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다른 마법소녀들도 연달아서 마법에 시동을 걸었다.
“기척-탐지-시각화.”
“……. ……. …….”
“발소리도-없었는데-너의 발자국이-내 가슴에는 찍혀 있다.”
순식간에 우리 탐색조는 시야 확보, 레이더, 전음(傳音), 은신 마법으로 무장했다.
이것이 팔백만(八百萬)의 괴이들이 강림해 버린 열도에서 어떻게든 각성자들이 저항을 이어 나간 원동력. 당서린의 주가영창과는 다른 종류의 마법이었다.
주가영창은 노래와 리듬이 본체이며 라틴어 가사는 어디까지나 당서린의 취향이 덧붙인 부산물에 불과했다. 반면 이쪽의 마법은 오직 시어(詩語)로만 이루어져 있다.
사실 마법 계열 각성자들에겐 이런 ‘시어마법’이 기본이었다. 주가영창은 당서린이란 이단아가 혼자서 개발해 낸 학파였으니.
[이상하구려.]우리는 전음 마법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탐지 마법 범위를 아무리 넓혀봐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소이다. 기계, 기계, 기계. 그저 기계들로 가득 차 있소이다.] [추측. 비생명체 외계인. 가설. 전신을 기계로 대체한 지성체의 경우.] [여기 완전 미로다냥.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 절대 방심하면 안 되는 것이다냥.]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군. 언더테이커, 무언가 이상한 점 없는가?] [없다. 아니, 잠깐―.]척.
내 말에 마법소녀들이 일제히 멈추었다. 잘 훈련된 동작이었다. ‘무슨 일이지?’ ‘왜 그러냐?’라는 반문조차 없이 모두가 내 추가적인 반응을 기다리고 있단 점에선 더욱더 훌륭했다.
이상한 말투만 아니었다면 참 믿음직스러운 인재들이었을 텐데- 라는 감상을 삼키면서 나는 다섯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툭툭.
나는 칼끝으로 전방의 복도에 놓인 ‘물체’를 건드렸다. 오러까지 깃들여 보았지만 물체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발목까지 차오른 수면이 찰랑거릴 뿐.
“…죽었군.”
굳이 전음으로 통신해야 될 이유도 없어졌기에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냥?”
“이미 죽어 있다. 전부.”
어두운 UFO의 복도.
팔다리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 버린 채 사망해 버린 외계인들의 시체가 자그마치 120구가 넘도록, 빼곡하게 통로를 뒤덮고 있었다.
4
98회차에 벌어진 ‘동해 UFO 추락 사건’은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명백히 현존 인류의 문명보다 월등히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외계인들이 어째서 자신들의 함선 안에서 전멸해 있었는가? 애당초 동해로 추락하기 이전부터 죽어 있었던 것인가?
이 새로운 괴이에 대해 나는 호기심을 감추기 어려웠다.
어쨌든 외계인과 관련된 미스터리 아니던가. 이걸 어떻게 참아?
그리하여 바로 다음 회차, 99회차에서는 아예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었다.
이번엔 UFO가 떨어진 다음에 수색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추락 장소에 미리 가서 대기를 타 볼 작정이었다.
“냐앙? 항공모함을 쓰고 싶다고? 어허. 아무리 언더테이커라도 우리 협의체에 단 7척밖에 없는 군사적 자원을 함부로 빌려줄 수는…….”
“다음번에 너희가 이누나키 터널 토벌하러 갈 때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마.”
“1번함 화이트 블로썸, 출항이다냥!”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