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78)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78화(78/151)
──────
승진자 Ⅱ
신노아
“뭐?”
“각하. 생각해 보니 저는 여태까지 제 인생을 별로 즐겨 본 적이 없습니다.”
유지원이 말했다.
“설령 시간 봉인을 당하여 ‘제일 행복한 하루’를 반복한다 해 봤자 그 행복이 객관적으로 별로 값어치가 높을 거 같지 않군요.”
어…….
얘 뭐라는겨?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봉인된 시간 안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하루를 보내거나 연인과 꽁냥거릴 때, 저는 기껏해 봤자 대학교에서 합격한 날이나 학과에서 수석 먹은 날을 영원토록 반복하고 있겠지요.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각하. 그게 정녕 가장 가치 있는 행복입니까? 저는 억울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아니……. 뭔……. 그래서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존경하는 부길드장 각하. 부디 다음 회차에는 저에게 미리 각하께서 회귀자이시며 영원한 하루의 복음을 약속해 주실 예언자요 구원자임을 알려 주십시오. 그렇다면 이 비루한 한 마리의 양은, 자신이 안락하게 누리게 될 천국의 나날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최고로 행복한 하루를 만들고자 동분서주하겠습니다.”
“…….”
막사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어,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다면, 나는 너한테 시간 봉인을 써 주겠지만 그 전에 너는 영원히 반복하게 될 행복한 하루를 직접 꾸며 보겠다는 거냐?”
“역시 각하. 영민하신 이해력입니다.”
“너 진짜 또라이 새끼 아니냐?”
“부길드장 각하! 이번 세계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충직한 개처럼 각하를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디 이 못난 부하와 약속해 주십시오.”
“이미 거의 다 멸망했어! 아니, 지원아. 미안하다. 이 부길드장이 잘못했다. 사실 내가 거짓말한 거다. 상식적으로 회귀자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냐, 어?”
“저는 부길드장 각하를 언제나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쌓은 우정이 가볍진 않지 않습니까? 물론 다음 회차의 저는 지극히 어리석은지라 각하께서 구원자이심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네가 15살 때 사람을 살해해서 북한산 미나리꽝에다 토막 내어 던진 걸 알고 있다’라고만 말해 주십시오.”
“뭐? 너 중학생 때 사람을 죽였어? 아니, 그보다……. 야! 바짓가랑이 붙잡지 말고 놔! 어? 야, 놔라? 어쭈? 놓으라니까? 야아! 유 부관! 이 미친 새끼야!”
회귀자로 살면서 수많은 또라이들을 경험해 봤지만 유지원 얘처럼 오직 철두철미 자신의 쾌락과 행복을 위해 내 회귀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싸이코패스는 처음이었다.
자그마치 1183회차까지 온 지금에 와서 반추해 봐도 유지원 같은 새끼는 달리 없었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이 녀석이 입으로만 야부리를 턴 게 아니라, 정말로 자기 목숨이 끝장나는 바로 그 순간까지 내게 충성을 바쳤다는 것이었다.
-그҉오҈҈҉위҉우҈҉그҉오!
5회차의 나는 십족과 싸움을 개시한 지 2분 만에 대가리를 헌납했다.
하지만 해당 전투에선 나보다 먼저 죽어 나간 각성자들도 수두룩했다. 그중엔 유지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부길드장 각하! 위험!”
심지어 유지원은 나한테 날아드는 십족의 촉수를 솔선수범 대신 맞아 주었다. 옆에서 휙- 하고 튀어나와 자기가 몸빵을 대준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왜냐면 얘가 끼어들지 않았어도 방금 일격은 회피할 수 있었거든.
만일 ‘올해의 개죽음상’이란 대회가 있었다면 훌륭하게 최종후보까지 입상할 만한 명장면이었다.
그 장본인이 나랑 같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직속 부관만 아니었다면 나도 솔직히 손뼉 치며 웃어 줄 용의가 있었다.
“야……. 유 부관, 아니 지원아……. 이건 또 무슨 신종 지랄이냐……?”
“쿨럭.”
유지원은 가슴에 깔끔하게 빵꾸가 뚫린 채로 피를 토했다.
푸른 눈동자가 이 세상에 다시는 없을 진지한 눈빛을 쏘아내며 나를 올려다봤다.
“다음 회차… 각하, 약속…….”
털썩.
그리고 죽었다.
“…….”
환장하시겠네.
4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튼 나를 대신해서 죽어 준(개죽음도 죽음의 일종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유언을 무시해 버릴 만큼 내가 잔혹한 성격은 못 되었다.
조금은 잔혹해져도 괜찮았을 텐데 후회해 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나는 다음 회차의 유지원한테 유언을 전달해 주고야 말았다.
“과연.”
은빛 머리 쿨시크가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직 세상이 본격적으로 망하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물자가 제법 풍부했다. 유지원은 도끼 한 자루로 편의점을 털어 버린 뒤 그곳을 요새로 만들어 놓았다.
유지원의 주장에 따르자면 예전부터 자기가 소유한 편의점이랬지만 딱히 신뢰하진 않았다. 얘가 숨 쉬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구라를 깔 줄 알아서.
“당신이 스스로 회귀자임을 주장하시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시간 봉인이란 능력을 소유했다는 것도 알겠고요. 하지만 전부 입증되지 않은 주장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네가 싸이코패스인 것도 알고 있다.”
“별로 놀랍지 않군요. 제 주변의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캬아아아아악!
대화 도중, 괴이 한 마리가 편의점 창문을 와장창 깨부수며 난입했다. 바퀴벌레처럼 생긴 괴물이었다. 나는 지팡이에 오러를 실어다가 그놈의 아가리에 예쁘게 피어싱 자국을 뚫어 주었다.
콰직! 유지원이 다가와서 도끼날로 괴이의 대가리를 까부셔 확인 사살까지 끝냈다. 괴이가 파르르 떨었다.
원래부터 유지원은 전투 센스가 발군이었다. 그 재능의 편린이 이때부터 잘 엿보였다.
우리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양 대화를 재개했다.
“뭘 더 증명하란 거냐? 네가 삼국지를 좋아하고 라틴어 전공자라는 사실도 알아.”
“예? 음. 흐으음……. 과연. 그렇군요. 꽤나 흥미롭습니다만 여전히 증명되지 않은 주장에 불과합니다.”
“씨발, 15살 때 사람 죽여서 북한산 미나리꽝에다 토막 내서 던져 버린 것도 알고 있어. 좀 믿어라, 이 싸이코패스 새끼야!”
“…오.”
유지원이 눈썹을 깜빡거렸다.
“알겠습니다. 방금 발언으로 귀하의 주장에 신빙성이 확 올라갔지 말입니다.”
“왜? 아무도 알지 못하던 진실이라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잘못된 지식’이어서 그렇습니다. 15살이 아니라 14살이었고 북한산이 아니라 도봉산입니다.”
“…….”
“만일 귀하의 능력이 속마음을 읽는 독심술이거나 상대방의 비밀을 캐내는 종류라면,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즉, 귀하께선 다른 누군가한테서 잘못된 정보를 접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제 살해가 절대로 발각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를 여럿 보유하고 있습니다.”
“…….”
“흐음, 회귀라. 그리고 지난 회차의 제가 회귀자를 우편배달부로 삼아서 저한테 서신을 보내다니……. 매우 흥미롭습니다. 인생에서 이토록 진귀한 경험을 겪어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지요.”
환장하시겠네, 진짜.
나는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 중에 캔커피를 따가지고 입에다 털어 넣었다. 유지원도 그런 내 행위를 막진 않았다.
“배달료는 이 캔커피로 퉁치자. 난 유언도 전달했겠다, 이만 가 보마.”
“아. 죄송한데 2분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뭐?”
나는 기겁했다.
뒤를 돌아보자 유지원은 편의점 카운터에 펼쳐 두었던 전국지도와 도시지도를 돌돌 말아서 트렁크에 욱여넣고 있었다.
참고로 이 편의점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테리어는 바로 ‘튜토리얼 요정’의 가죽이었다. 방금 난 단어를 잘못 말하지 않았다. 유지원 이 새끼, 요정 가죽을 벗겨다가 카운터 벽면에 무슨 전리품처럼 박제해 놨다.
장담컨대 얘가 가죽으로 만들어 본 생명체의 종류가 최소한 두 개 이상은 될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야, 따라오긴 뭘 따라오냐? 여기 물자도 많이 쌓아 놨는데. 그냥 여기서 버텨.”
“그건 하책입니다.”
유지원이 안경을 쓱 밀어 올렸다.
“지난 회차의 저도 결과적으론 이곳을 떠나 귀하의 길드에 투신하게 된 것 아닙니까? 어차피 떠나게 될 곳, 아예 지금부터 그쪽에 합류하는 편이 훨씬 더 빨리 출세하겠지요.”
“내 길드가 아니라 당서린이란 사람의 길드다.”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 편달이고 나발이고 그냥 따라오지 말라니까? 야. 야아. 싫어, 새끼야! 나 너 이제 싫어! 꺼져, 좀!”
유지원은 꺼지지 않았다.
꺼지기는커녕 오히려 기생충처럼 달라붙었다. 이 싸이코패스가 숙주로 삼은 곳의 이름은 삼천세계.
유지원은 어느 길드원보다 열정적으로 마녀 코스프레에 임함으로써, 자신이 ‘미니맵’뿐만 아니라 ‘당서린 호감작’이란 스킬도 보유했음을 몸소 증명했다.
“와아, 부길드장. 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구해서 데려왔대?”
“삼생의 영광입니다. 대마녀 각하.”
“…….”
삼천세계 초창기 멤버로 선정된 유지원은 5회차의 자신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승진했다. 아주 꼴값을 떨었다고도 표현할 수 있었다.
정식 직함은 작전부장, 부길드장인 나의 부관 겸 길드장인 당서린의 특무비서. 요컨대 길드 내 3인자로서 입지를 단단하게 굳힌 것이었다.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기업의 3인자니까 멸망 이전의 세상이랑 비교하자면 재계 서열 1위 대기업에서 3인자를 찍은 셈이나 다름없었으니, 이만하면 어딜 가도 잘 출세했다는 평가를 들을 만했다.
하지만 우리의 은발 싸이코패스 유지원은 타인들의 평가 따위엔 연연하지 않는 위인이었다.
“유 부장.”
“예, 부길드장 각하.”
“…조금만 있으면 십족이랑 싸우게 될 텐데 그 전에 네 장례식부터 치러야 하지 않을까?”
“아.”
“아무튼 내가 볼 때 저번 회차보다 지금 회차의 유 부관이 훨씬 더 행복해 보이거든. 뭐, 내가 유 부장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저승 생활을 보낼 수 있지 않겠어?”
“음.”
음, 이라고 말했다. 이 새끼.
이 싸이코패스가 방금 무표정하게 허공을 돌아보면서 ‘음’이라고 말했다고.
시각적 자료까지 곁들이자면 지금 녀석의 입술 모양은 정확히 ‘ω’ 에 가까웠다.
“부길드장 각하.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5회차의 저보다 지금 6회차의 제가 더 행복했다면……. 상당히 괜찮은 확률로 7회차의 저는 조금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지원아. 그게 무슨 말이니, 지원아…….”
“다음 회차의 저한테도 부디 최대한 노력해서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든 다음 장례식을 가지라고 유언 좀…….”
“야!”
이제 슬슬 이번 에피소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그림이 그려지시리라.
그렇다. 후일담 따위도 필요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지원 이 천하의 개쌍것은 직속상관인 나를 매번 유언장 배달원으로 써먹었다.
6회차에서 7회차로, 8회차로, 9회차로, 10회차로, 11회차로.
내가 이제 드디어 좀 행복해졌냐면서 장례식을 치러 줄까 넌지시 물어보면 그때마다.
“음. 다음 회차엔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겠습니까?”
라며 자신의 봉인을 끝도 없이 연기한 것이었다.
진짜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는가?
내가 이래 봬도 550회차 이후로 수많은 웹소설을 읽어 봤고 정말 무수한 회귀자 주인공을 접해 봤다고 자부하는데, 명색의 무한 회귀자를 이딴 식으로 써먹는 캐릭터는 어디서도 본 적 없다.
심지어 이 녀석……. 나중에 국도관리대를 창설된 회차부터는 이따금 당서린이 아니라 노도하 아래로 들어갔다.
“미니맵 이거 참 완전 저희 국도관리대에 딱 필요한 능력이군요……. 덕분에 실시간으로 관리대원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아주 쉬워졌습니다. 흐으. 이렇게 좋은 인재를 공짜로 소개해 줘서 고맙습니다, 장의사 각성자…….”
“…….”
그리고 몇 회차가 지났을 무렵, 유지원은 국도관리대에서 노도하 바로 아래 직급인 작전통제실 실장까지 순조로이 승진해 있었다.
그러니까 아주 길게, 수백 년이란 세월을 기준으로 삼아서 관찰하자면―― 유지원은 정말로 조금씩 더 높은 직위를 향하여 ‘출세하는 중’이었다.
평길드원에서 내 부관으로. 내 부관에서 삼천세계의 3인자로. 다시 삼천세계 간부에서 국도관리대의 실세로.
가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는 기적! 성공 신화의 산증인!
도대체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나로서는 감히 짐작하기 어려웠다.
회차가 지날 때마다 계속해서 승진해 가는 권력욕의 괴물이 있다고? 이게 진짜 괴이 아니냐?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을 이 괴물이 1183회차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에서 단 한 번도 나를 배신한 적 없었다는 것이다.
언제 한번 술자리에서 소주 마시면서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예? 제가 장의사 각하를 배신하란 말씀입니까?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니, 왜? 너 싸이코패스잖아.”
“싸이코패스에 대한 편견을 멈춰 주십시오. 장의사 각하께선 회귀자인데다 완전 기억 능력까지 갖추셨으니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저장해 둔 다음 인물을 평가하실 것 아닙니까. 그럼 모든 회차에서 철저하게 자중하여서 장의사 각하의 심기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요. 당연한 상식 아닙니까?”
유지원이 투명한 소주잔을 쥔 채 무표정하게 밤하늘의 보름달을 올려다봤다. 눈빛만큼은 퍽 아련했다.
“저는 도리어 각하를 배신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정말 신기합니다. 어째서 수많은 사람들은 이토록 어리석을까요?”
“…….”
난 진짜… 얘를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바꿔 말해서, 나만큼 유지원이란 인간을 깊이 파악하는 사람도 세상엔 달리 없었다. 50회차쯤에 이르렀을 때 나는 유지원에 대해서 한 가지 확신하게 되었다.
설령 다른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시간 봉인을 받길 원하더라도 유지원 이 새끼만큼은 절대로 안 받을 거란 사실을.
한때 나는 얘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틀렸다. 이 녀석은 어떤 시대에 태어나도 잘 먹고 잘살 위인이었다. 그건 문명이 쫄딱 망해 버린 아포칼립스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이 시대에 최적화된 생존자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이쯤 되면 나도 반쯤은 의무감으로, 나머지 절반은 농담으로 유지원한테 예의상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지원아.”
“예?”
“이제는 좀 행복해졌냐?”
마침 체스말이 지도를 돌아다니다가 픽, 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그럼 내 은빛 머리의 부관, 거의 유일무이한 삼국지 동호회원이자 내 회귀 인생의 원년 멤버, 싸이코패스 친구는 잠시 턱을 짚고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다음번엔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승진자. 結.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