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8)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8화(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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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론자 Ⅰ
신노아
1
여러분이 생각할 때 웹소설의 주인공 3인방. 즉, 회귀·빙의·환생자의 가장 큰 숙적은 무엇일 것 같은가?
강력한 몬스터? 어차피 주인공이 다 이긴다.
스트레스? 트라우마? 강박관념?
이것도 오답은 아니다. 하지만 딱히 회귀자 특유의 적수라고만 보긴 어렵다. 자고로 스트레스란 35살 무직백수부터 시작하여 60살 미국 대통령까지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호모 사피엔스 공통의 약점이니 말이다.
대머리?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의외인 듯 의외가 아닌 정답은… 바로 ‘나비효과’ 되시겠다.
-중국 베이징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하여 지구 반대편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을까?
나비효과.
초기값이 달라지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히 감당하기 어려울 수준으로 변화의 폭이 쫙쫙 커진다는 이론.
나는 자신 있게 말하겠다. 우리한테 퍽 익숙한 이 나비효과야말로 사실 회귀자의 빌런 중 빌런이요, 외나무다리에서 피할 수 없는 아치 에너미이자 불구대천지의 원수임이 틀림없노라고.
오호통재라!
이 나비효과에 의해 스러져 간 회귀자들이 (창작물들 속에서) 얼마나 많던가.
-나는 온갖 웹소설에 통달한 독자이며, 지금 내가 들어온 세계관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업계의 권위자다. 그런 내 해석에 따르자면 우선 초반부에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는 메이드를 구출함으로써 비극의 첫 단추를 막아 세워야만……. 어라? 왜 메이드를 구했더니 마왕이 침공해 오는 거냐?
-황궁 담벼락 아래에서 굶고 있는 꼬마가 불쌍해서 상냥하게 대해 줬더니 10년 후에 황태자가 저한테 청혼을? 저, 단지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싶었을 뿐인데 이제부터 어쩌면 좋을까요?
-아니, 왜 (원작의 주인공이 해결해야 될 퀘스트를 전부 해결하고 주인공 파티에 합류했어야 할 동료를 포섭한 다음 주인공이 먹었어야 할 아이템 및 기연들을 독식한 뒤) 이렇게 주인공이 약하지? 야레야레,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는가.
물론 후자의 경우엔 나비효과보다는 양심과 지성의 문제에 가깝겠다.
판타지, 현대판타지, 로맨스판타지, 대체역사를 막론하고 회빙환 삼인방 입장에서 나비효과만큼 끔찍한 상황은 없을 터.
그러므로 오늘은 고도로 숙련된 회귀자인 나 장의사가 나비효과를 살해하는 이야기를 해 보자.
2
내가 처음으로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낀 시기. 즉, 나비효과의 위력을 체감한 것은 30회차 무렵이었다.
“음?”
처음엔 가벼운 위화감에 불과했다.
‘원래 이 카페가… 영업을 했나?’
나는 튜토리얼이 끝나고 6개월쯤 있다가 옛 백제병원 건물로 갔다. 옥상에 쇼 노인의 시체가 인테리어 된 그 빌딩이 맞았다.
가끔 여기가 생각나서 시간을 보내곤 하거든.
그런데 본래라면 영업정지 안내판이 걸려 있어야 할 카페에서 웬일로 남자가 영업을 하고 있지 뭔가.
모든 회차를 통틀어서 최초로 경험해 보는 사태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저기…….”
“네, 손님. 어서 오세요.”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자기 패션과 스타일링의 80%를 턱수염에 투자하는 부류의 남자였다.
“실례지만 괜찮으십니까? 이렇게 영업하셔도. 세상이 지금 막 난리가 났는데요.”
“아……. 그쵸. 저도 일본으로 피난을 가려고 했는데, 엊그제 남해에 어마어마하게 큰 태풍이랑 토네이도가 불어서 피난선들이 죄다 침몰했다지 뭡니까.”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나에겐 금시초문인 얘기였다.
“태풍이 불었다고요?”
“예엡. 모르긴 몰라도 수천 명은 죽었을걸요. 지금 부산항 엄청 시끄럽습니다. 저도 비싼 돈 주고 산 암표가 아까워서라도 배를 탈까 싶었는데……. 선주가 자긴 일주일 있다가 배 띄울 거라고, 싫으면 말라고 협박하더라고요. 뭐, 꼽지만 어쩌겠습니까?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영업하려는 겁니다. 이제 돈은 별로 의미가 없지만요. 하하.”
점장은 웃었다. 난 웃을 수 없었다.
‘이 시기에 태풍이 분 적은 없는데?’
나에겐 [완전 기억 능력]이 있었다. 문자 그대로 과거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저장하는 이능력.
사실 5회차에 획득한 이 스킬 덕분에 지금처럼 여러분한테 썰을 풀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30회차 때 무슨 사건을 겪었으며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전부 일일이 회고할 수 있으니까.
고로, 나는 100% 확신을 가진 채 단언할 수 있었다.
‘…이건 이상 사태다.’
다시 말하지만 30회차의 나는 ‘튜토리얼이 끝나고 6개월이 흐른 시점’에 카페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초반부 중에서도 극초반부라 할 수 있었다.
극초반부의 내 행동은 언제나 비슷했다. 29회차, 28회차와 비교해서 달라진 부분이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내 행동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차의 세계에선 남해에 ‘태풍’이 몰아닥친 것이었다.
‘뭐지? 대체 뭐가 원인이지?’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 같은 사문난적을 엄격히 거부하며 오직 인과적 결정론만을 추종하는, 나 같은 교양인에게 있어 이는 너무도 혼란스러운 사태.
“저기요, 손님.”
“예?”
“정말 죄송한 말씀인데 혹시 주문하지 않으실 거라면…….”
“아. 죄송합니다. 잠깐 딴생각에 잠겨 버려서. 음, 카페오레 한 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휴. 당연하죠. 59,500원 되겠습니다.”
“…….”
아포칼립스발 인플레이션에 직격탄을 얻어맞은 카페오레는 더럽게 맛없었다.
그런데 나를 더 환장하게 만든 사건은 다음 회차, 그러니까 31회차에 벌어졌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영업을 쉽니다.]다시 비슷한 시점에 카페로 가 보니 이번엔 또 예전처럼 영업정지 안내판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허어.”
대체 뭐야?
아직 당황하긴 일렀다. 카페의 영업 여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변수들이 여러 회차에서 제각기 따로 발생했다.
“어? 성녀님, 이사하셨습니까?”
“네?”
“지난 회차들까진 항상 용산에 있던 자택에 거주하셨거든요.”
“아……. 물고기들 사료를 모으는 게 조금 힘들어서요. 근처 길드에 저처럼 수족관이 취미인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가까운 거리로 집을 옮겼어요.”
“…….”
소소하게는 47회차에 성녀가 살고 있는 주소지가 바뀌었으며.
“여러분! 새로운 대한민국의 수도는! 이제부터 부산특별시임을 이 자리에서 선언하는 바입니다!”
“와아아아!”
“정상국! 정상국!”
71회차 때는 부산 시장이 한반도의 정국을 장악했다.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 시장, 본래라면 일본 후쿠오카로 도망쳐서 제2임시정부를 꾸리게 될 인사였다. (참고로 세컨드 패밀리까지 알뜰살뜰하게 챙겨서 도망치는 모범 가장이었다)
이외에도 북한 지역으로 넘어갔어야 할 중간보스급 몬스터가 대뜸 민주주의에 빠졌는지 도로 탈북을 감행하거나, 경상남도에 떨어졌어야 할 유성우가 전라남도에 떨어지는 등, 별의별 꼬라지 퍼레이드가 다 벌어졌다.
‘아니.’
나는 대략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 미래를 예상하는 데 차질이 생기잖아?’
물론 대다수의 회차에선 별다른 이상 없이 ‘평범하게’ 인과가 진행되긴 했다. 그러나 가끔씩, 정말 뜬금없이 난장판이 터져 버렸다.
뭐, 이따금 별미로 파인애플 피자를 먹어 보는 경험 정도라고 치부하면 큰 상관이야 없겠지.
하지만 고전적 결정론의 신봉자로서 이런 이상 현상들의 원인만큼은 반드시 밝혀 놔야만 마음이 편안했다.
[장의사 씨.]그리하여 82회차.
마침내 단서가 주어졌다.
[지금 인천 앞바다에서 태풍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굉장히 거대한 토네이도로군요.]“예? 황해에서 토네이도요? 거긴 수심도 낮아서 어려울 텐데.”
[하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저는 인천항에 나와 있는 각성자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토네이도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니 주의해 주세요.]“허어, 안 그래도 인천엔 난민들이 많은데 그럼…….”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다른 각성자들에게 성좌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날렸어요. 대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나는 급히 SG넷에 접속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게시판은 벌써 난리가 났다.
-익명: 실시간 속보) 서해에서 토네이도 출현ㄷㄷㄷ
-[삼천]마녀재판장: 이건 도와주고 싶어도 너무 멀어서 못 도와주겠네.
-고려장: 자~ 늙은이들 관짝 드가자~ 자~ 늙은이들 관짝 드가자~
-dolLHoUse: 위험.
-익명: 농담이 아니라 사진으로 보니까 좀 심각한데? 수평선에서 저 정도 크기면 지름이 아무리 적어도 3km 이상임. 위력이야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절대 다가가지 마라. 운 나쁘면 벼락 맞고 뒈진다.
난리법석인 와중에 누가 찍어 올렸는지 어마어마한 크기의 토네이도 사진과 동영상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이런 사태는 그동안 한 번도 없었는데.
“……!”
그때, 번개와 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래! 태풍이었어!”
[네?]“태풍! 아니, 토네이도 말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30회차 때 카페 점주도 말하지 않았던가.
‘엊그제 남해에 어마어마하게 큰 태풍이랑 토네이도가 불어서 피난선들이 죄다 침몰했다지 뭡니까.’
라고.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토네이도가 불어제끼는 회차마다 묘하게 사건 진행이 일그러졌습니다. 분명히 태풍이 범인……. 아니, 태풍을 일으킨 놈이 범인입니다.”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리겠습니다. 성녀님, 혹시 인천 앞바다의 태풍 경로를 추적해서 발원지를 최대한 추적해 볼 순 없습니까?”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한번 해 볼게요. 태풍 피해를 입은 지역들이 어디인지 살펴보면 될 테니까요.]잠시만요, 라고 성녀가 속삭였다.
아마도 지도를 가져온 것이겠지. 잠시 뒤, 성녀는 황해에 인접한 도시들을 싹 훑고서 보고했다.
[으음……. 범위가 너무 넓어서 확실하진 않아요. 장의사 씨. 이건 그저 추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유념해 주세요.]“괜찮습니다. 어디입니까?”
[중국. 베이징이네요.]중국의 베이징. 토네이도.
“아.”
그 순간, 어째선지 나는 이 토네이도의 정체를 알 것만 같았다.
3
-베이징에서 한 마리의 나비가 날갯짓하여 지구 반대편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을까?
나비효과를 간략하게 표현한 문구.
원래 원전에는 ‘베이징’이 아니라 ‘브라질’로 표시되어 있다. 재밌는 사실은 이 원전이란 것조차 나중에 발명된 슬로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느 기상학자가 최초로 나비효과에 관해 학회에서 발표했을 땐 ‘나비’가 아니라 ‘갈매기’가 인용되었다. 당연히 브라질도 없었고 태풍도 없었다.
이 점만 봐도 이 세계에 출몰하는 괴이(怪異)들이 얼마나 인류의 역사를 대충대충 무시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으리라.
괴이들은 하나같이 사실적 엄밀성 따윈 따지지 않는 문과적 감수성을 지녔다.
물론 나처럼 엄격한 과학적-인과결정론적 시각을 가진 교양인은 다음과 같이 반문할지 모르겠다.
-왜 브라질이 아니라 베이징에서 나비효과가 발생했나요?
-나비효과 이론은 애당초 초기값이 기나긴 시간 이후에 전혀 다른 결과값으로 나타난다는 이론인데, 왜 초장부터 사방으로다가 장풍을 쏘아 대나요?
모른다.
아니, 진짜로. 몰라.
괴이들은 기본적으로 우리 인류의 호기심과 반론에 조팝만큼도 관심이 없거든.
괴이 감수성에 따르자면 그런 질문들 자체가 ‘섹시’하지 않은 것이다.
오랜 기간 회귀자로 살면서 내 나름대로 얻은 통찰을 공유해 보자면… 이 새끼들은 기본적으로 ‘AI 그림’과 다를 바가 없다.
괴이들 입장에서 우리 인류의 기나긴 역사와 상식, 학문은 전부 ‘프롬프트 입력값’에 지나지 않는다.
AI 그림에서 인간의 다리가 두 개든 세 개든 모두 정상적인 호모 사피엔스라고 판단하듯, 평등주의자인 괴이들은 중국인과 브라질인 사이에 하등 인종적 차별을 두지 않는다.
과거 인류의 학문에 속했던 ‘나비효과’란 개념 또한 세기말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재해석되었다.
‘인과의 흐름에 고정당하지 않은 채 무작정 폭풍을 일으키는 존재!’
굳이 표현하자면 토네이도 발사기랄까.
덕분에 ‘나비효과’는 마치 북한의 미사일과 같은 정체성을 얻었다. 이것이 심심할 때마다 미사일을 쏘아 댄다는 것은 정언명제로서 확실했으나, 미사일이 어디로 날아갈지는 그때그때 마음에 따라 달라졌다.
30회차엔 남해로 커브를 틀어서 일본으로 향하던 피난선들을 수몰시켰다. 82회차엔 인천 앞바다에 상륙하여 역시 난민들에게 물세례를 퍼부었다.
어디 그뿐인가? 83회차부터 85회차까진 제각각 몽골, 인도, 시베리아 쪽으로 드리프트를 꺾었다.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가 봤다면 홀딱 반해 버려 계약서부터 들이밀 만큼 다양한 변화구.
결론적으로 말해서, 토네이도가 한반도 본토에 스트라이크를 꽂아넣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었다. 이러니 원산지 표시가 100% 코리아로 되어 있는 내가 눈치채기 어려운 것도 당연할 수밖에.
“…정말 위험한 존재네요.”
아작. 성녀가 감자칩을 부숴 먹었다.
놀랍게도 성녀는 감자칩을 봉지가 아니라 락앤락 플라스틱 도시락통에서 꺼내먹었다. 과자조차 소분해서 냉장고에 담아 둔다는 뜻이었는데, 이것으로 성녀도 제정신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손가락이 아니라 젓가락으로 감자칩을 집어먹었다. 정녕 그녀에겐 인간의 마음이 없단 말인가?
히키코모리 결벽증 성녀가 말했다.
“이름만 나비효과지, 사실상 종잡을 수 없는 변수이자 난수라는 말씀이잖아요. 그런 괴이가 있으면 회귀자로서 제일 큰 장점이 퇴색해 버리는 것 아닌가요?”
“정확합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괴이의 위치를 특정하기도 어렵다는 것이죠.”
“네?”
“생각해 보십쇼, 성녀님. 토네이도가 날아가는 방향이 회차마다 매번 다르다는 건 토네이도가 발사되는 위치도 다를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베이징이란 건 확실합니다만, 베이징이 좀 넓습니까?”
“아…….”
그제야 성녀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려운 일이네요.”
“예. 괴이가 크툴루처럼 좀 커다랗다면 모를까, 지금까지 제 정보망에 걸려들지 않은 걸 보면 아마 크기가 작을 겁니다. 회차마다 매번 위치가 달라지는 괴이를, 어쨌든 베이징 안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지요. 모래사장에서 비늘 찾는 일이랑 별반 다를 바가 없을걸요.”
“그러게요. 맞는 말씀이에요.”
“맞습니다. 저 혼자서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만약 모든 각성자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는 천재적 능력자가 없다면 말입니다.”
“…….”
“…….”
“……?”
“…….”
“…따라가 드릴게요. 베이징.”
“아이고. 그러실 필요까진 없는데. 어휴, 성녀님이 도와주신다면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지요.”
“…….”
히키코모리 성녀의 두근두근 해외 출장, 확정!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