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83)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83화(8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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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 Ⅰ
신노아
1
‘무간’이라는 최악의 적, 소외신급 괴이와 마주했으나 나는 곧바로 대응하진 않았다.
오히려 적절한 시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무한 회귀자에게 있어 ‘기다림’이란 차원이 다르다. 분명히 음식을 주문했는데 예상 배달 시간을 무려 3분이나 넘어가고 있을 때 느껴지는 분노와 초조함을 대략 13배 곱하면 곧 무한 회귀자의 기다림이 된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심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 시기에 나는 최대한 전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무술 수련이라도 했느냐고? 그럴 리가. 쇼 노인이 말했다시피 내 전투 센스는 비버에 가까웠다. 서포터 태생의 전투 재능을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아니, 나이기에 오히려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남아 있었다.
“노도하 공방주.”
“…….”
노도하의 표정은 평범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 얼굴은 썩어 있는 것이 기본값이었으므로 이제 와서 재차 더 썩어 봤자 평범함에 평범함을 더할 뿐이었다.
“아니,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사람 얼굴을 똥구멍 보듯이 노려보십니까?”
“왜냐하면 댁이 ‘노도하 관리대장’이 아니라 ‘노도하 공방주’라고 저를 불렀을 때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씨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댁의 개인적인 고통과 분노, 한풀이, 호의, 나는 인간적이란 포즈, 당신이 인간적임을 나만은 알아볼 수 있다는 교류신호, 달리 말하자면 그 모든 개지랄은 저에게 귀찮음 이상의 감정도 이하의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노도하 공방주. 요즘 너무 일만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도 잠깐 시간이 비어서 그런데 같이 휴가라도 떠나는 게 어떻습니까? 둘만의 배낭여행이죠. 대학생 친구처럼.”
“이런 개씨발…….”
“역시.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노도하와 여행을 떠났다.
만일 ‘이데아 목장’을 설립한 380회차 이후였으면 둘이서 사이 좋게 공룡들을 타고 여행할 수 있었겠으나(나중엔 정말로 그랬다), 안타깝게도 아직 지금 시점은 100회차에 불과했다.
차라리 나 혼자였다면야 경공 비스무리한 것을 써서 휙휙 나아갔을 것이고, 동행자가 노도하만 아니었더라면 어부바를 해서 함께 스피드를 즐겼을 것이다.
후자의 해결책은 노도하가 “오, 제가 자살하는 모습을 직관하고 싶으셨다면 진즉에 말씀하실 것이지…….”라고 수줍어함으로써 재차 기각당했다. 이런 부끄럼쟁이 같으니.
고로, 우리의 이동수단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와중에서도 기어이 최선의 방안을 찾아낸 것이야말로 회귀자로서 내 품격을 증명한다 할 수 있으리라.
도로로로로로…….
노도하가 이동수단에 올라탄 채 나와 함께 움직이면서 평범한 표정을 지었다.
“장의사 각성자…….”
“네?”
“이게 정말로 최선의 방법입니까……?”
“네.”
도로로로로로…….
“아무리 기름이 귀한 시대라 해도 덤프트럭이라든가, 국도관리대의 힘이든 댁의 미라클 회귀자 파워든, 아무튼 좀 더 그럴싸한 이동수단이 있지 않겠습니까아……? 하다못해 자전거라도…….”
“에이, 농담도 잘하십니다. 사적인 용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인데 관리대의 재산을 축내서야 안 되지요. 험한 도로도 오갈 건데 자전거는 금방 망가져서 못 씁니다.”
도로로로로로…….
“그렇다고 씨발……. 아니, 진짜로. 이 좆 같은 요구르트 카트는 대체 어디서 구해 오신 겁니까? 예에?”
그렇다.
현재 우리 두 사람은 전 세계 최초 유일의 프래시 매니저 전용 탑승형 냉장전동카트, 3세대 모델인 코코(Cold&Cold) 3.0을 탑승하고 있었다.
다른 말로는 ‘요구르트 아줌마 카트’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살구빛 외관이 아름다우며 동네와 동네 사이를 순간이동 기법으로 오가는 그 고대의 유물이 맞았다.
운전대는 내가 잡았고 노도하는 카트 위에 올라탔다. 특별히 최고급 방석까지 붙여서 개조했으니 엉덩이가 아플 일은 없었다.
“어허. 그런 나쁜 말은 삼가 주십시오. 이게 이래 봬도 ‘요구르트 카트’라는 괴이입니다.”
“예에? 괴이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험난한 도로여도 끄떡없이 올라가고 아무리 외진 동네여도 꿋꿋하게 도착하는 기적의 이동수단이지요. 노도하 공방주. 요구르트 카트가 망가지거나 고장 나서 길바닥에 퍼진 모습을 보신 적 있습니까?”
“아니, 없습니다만…….”
“바로 그겁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요구르트 카트가 ‘아무튼 멀쩡’한 모습만 관측해 왔습니다. 물리적으로 생각해서 이동이 불가능해 보이는 지형이라도, 이 괴이는 끄떡없이 ‘아무튼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라는 결과값을 도출합니다.”
“뭔 개소리……?”
“보십쇼.”
도로로로로로…….
아스팔트 도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게 콘크리트인지 쿠크다스인지 헷갈릴 정도로 파손된 포장도로로 카트가 용맹하게 전진했다.
덜컹, 하고 카트 바퀴가 콘크리트 단차에 빠졌다. 노도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어, 떨어진…….”
하지만 카트는 기묘하게도 콘크리트 표면에 착 달라붙어서 다시 멀쩡한 궤도로 올라오는 것 아니겠는가.
“…다?”
말 그대로 보법이 달랐다.
아무리 콘크리트가 무너져 있어도, 타일이 엉망진창이어도, 나무뿌리가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어도, 요구르트 카트는 살짝 덜컹거릴 뿐 ‘아무런 문제 없이’ 직행했다.
자동차는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사람도 오가지 못할 만큼 파손된 국도를 요구르트 카트는 기우뚱- 기우뚱- 거리면서도 잘만 달렸다.
과연 대한민국 공학의 정점. SSS급 로스트 테크놀로지 아티팩트.
“하아? 뭔, 이런 병신 같은……?”
“이게 바로 요구르트 카트 괴이입니다. 공방주. 저를 찬양하셔도 좋습니다.”
“잠깐, 설마 이거 전기나 그런 거 충전도 없이 움직이는 겁니까……?”
“옙. 심지어 노도하 공방주가 지금 깔고 앉은 냉장고에는 음료수나 음식을 넣어 두면 웬만해선 썩지 않습니다. 고기 같은 것도 요구르트 모양의 용기에 집어넣으면 1년 넘게 유지되더군요.”
“세상에. 이런 씨발, 이렇게 좋은 물건이 있었으면 얼른 국도관리대에도 알려 줬어야지 뭐 이딴 배낭여행 코스프레나 하고 앉은 겁니까? 당장 전국에서 카트들을 수거해서 관리대에 배속해야 합니다. 안 그래도 좆 같은 시대에 물류 혁명을 일으킬 수 있고, 아니, 거동 불편한 노친네들한테 휠체어 대용으로도…….”
“아. 한 대밖에 없어요.”
“…….”
“혹시라도 양산이 가능할까 싶어 비교적 멀쩡하게 생긴 카트들을 구해다가 실험해 봤는데 ‘괴이’로 존재하는 건 이거, 이 카트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 애차로 굴리고 있습니다.”
“썅…….”
여하간 음지의 흑막과 양지의 대마왕으로 이루어진 2인 파티는 무탈하게 이동했다.
노도하도 입으로만 툴툴거렸지 즐길 건 다 즐겼다. 그야 냉장카트 안에 호화스럽게 육류와 야채, 각종 탄수화물을 넣어다가 식사 시간마다 꺼내어 요리했으니 즐거울 수밖에.
“그거 아시는지, 장의사 각성자…….”
“뭐 말씀입니까?”
“내 인생에 댁은 하등 쓸모없는데 요리 실력 하나만큼은 국보급입니다. 이거마저 없었으면 진짜 저한테 사람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
태어날 때부터 DNA에 ‘워커홀릭’ 네 음절을 박고 태어난 노도하답게 그동안 국도관리대를 운영하면서 알게 모르게 번아웃 증세를 겪었을 터.
즐거운 캠핑 여행 생활이 하루, 이틀, 사흘, 길게 이어질수록 노도하의 얼굴은 평온해졌다. 마음에 끼인 피로함과 때가 씻겨져 나간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나 사람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케어하는 데 뛰어났다.
“야 이 씨팔 빌어먹을 회귀자 새끼야. 대체 언제까지 바깥을 처돌아 다닐 겁니까? 이거 삼천 길드장이 알면, 예? 진짜 나 뒈지는 꼴 보고 싶어서 이럽니까?”
“……?”
마침내 여행 6일 차. 우리 신나는 배낭여행단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태백산맥. 정선.
한때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했던 광산 지역(이제는 좀 다른 걸로 유명해졌다)을 눈앞에 두고, 노도하는 너무도 평범한 표정을 지었다.
“저긴 뭔 깡촌이랍니까……?”
“보시다시피 마을이지요.”
정선의 광산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지형이 좀 특이했다.
절벽처럼 깎아지는 산자락 한복판에 거대한 동굴이 움푹 파여 있었고 바로 그곳에 마을 건물들이 버섯처럼 자라난 것.
광산 마을이라고나 할까. 배산임수에서 딱 앞 글자만 따온 풍수지리였다.
“집들이 돌로 지어져 있습니다만……?”
“불에 타지 않는 소재를 썼군요. 나쁘지 않은 건축 재료죠.”
“마을 사람들 키가 비정상적으로 작은 것 같습니다만……?”
“요즘 시대에 몸이 커 봤자 쓸데없이 영양만 더 처먹으니 수렴진화한 결과물이겠지요.”
“모든 주민들에게서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습니다만……?”
“항상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수단입니다. 환경 적응력이 몹시 뛰어난 마을주민들이군요.”
“아무리 봐도 난쟁이들 아닙니까……?”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난쟁이라니 좀 종족차별주의적이잖아요? 아무쪼록 드워프라는 용어를 사용해 주십쇼.”
“배낭여행을 가자더니 이종족이 구현된 1급 공허로 사람을 데려오고 앉았네, 미친 새끼…….”
드워프. 판타지 장르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종족.
어느 작품에서든 ‘뛰어난 대장장이’라는 속성을 민족정신에 품고 태어나는 자들. 그리하여 드워프들이 만들어 낸 명품 무기들은, 마치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요구르트 카트처럼 로스트 테크놀로지의 유산으로 취급받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왜 내가 전력을 강화한답시며 태백산맥의 외진 공허까지 기어왔는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
여기 장비템 뽑으러 왔다.
2
내가 이곳, 통칭 ‘정선 드워프 광산’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54회차였다.
그 무렵의 나는 국도관리대를 막 창설했던 터라 대동여지도(버전업)를 완성하기 위해 전국팔도를 돌아다녔거든.
정선 드워프 광산은 겉보기에 정말 창작물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은 마을이었다.
사방에서 ‘까앙까앙!’ 하고 철 두들기는 소리가 울리고 드워프들이 쉼 없이 돌아다니는 그런 마을.
언제 태백산맥의 광산업이 쇠퇴했냐는 듯 드워프 마을에선 곡괭이 소리 망치 소리 소음공해가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세계의 공허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법. 다시 화려하게 광산촌으로 부활할 이곳 또한 평범한 마을이라 불러주기엔 하자가 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
“제 말이 이해되십니까? 헬로? 안녕하십니까? 저를 인식하실 수 있습니까?”
-…….
“엘프보다 열등한 종족. 당신의 수염은 굉장히 어글리하다.”
까앙!
‘드워프’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모루에 망치를 내리찍었다. 이쪽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사실,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전형적인 드워프에서 많이 벗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수염이 덥수룩했다. 이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구멍’이 있었으며 입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입구멍’이 있었다.
언어유희가 아니었다.
눈꺼풀과 입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 …….
까앙, 까아앙-!
팔뚝만큼은 헤라클레스 조각상처럼 비정상적으로 울퉁불퉁하여 묘하게 밸런스가 일그러진 신체. 그 육질 덩어리가 ‘입구멍’에서 기이한 숨소리를 흘리며 끊임없이 망치를 내리쳤다.
-오……. 오운……. 오… 오…….
공기가 폐에 저장되었다가 나오는 게 아니라, 온몸이 장구처럼 가죽통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신체 안쪽에서부터 공기가 흘러나오는 듯한 소리.
생명의 숨소리가 아닌 심연의 휘파람.
“음.”
…지구 역사상 최강의 언어천재인 이 장의사에게도 드워프어는 조금 난해한 듯싶었다. 하긴 당연했다. 지구의 언어가 아닐 테니까.
입안에서 아쉬움이 감돌았다.
‘드워프에게 무기를 의뢰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괴이들한테 무척이나 유효한 명검이 탄생할 텐데.’
광산 마을을 다 둘러보니 대장장이 드워프는 총 일곱이었고 그중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54회차의 나는 공허의 위치만 파악했을 뿐.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간 것이었다.
3
“잠깐…….”
노도하가 내 옛날이야기를 끊었다.
“그럼 뭣 하러 이딴 촌구석까지 빌빌거리며 들어온 겁니까? 말도 통하지 않고 딱히 장비품을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딱히 드워프들한테 무기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할 생각은 아니거든요.”
“……? 그럼 왜?”
“어휴, 생각해 보십시오. 공방주. 아무리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해도 이게 진짜로 창작물 속의 드워프를 모방한 괴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저것들의 망치질과 무두질에는 굉장한 묘리가 담겨 있지 않을까요? 마치 소드마스터의 칼놀림만 봐도 무예에 재능을 갖춘 주인공은 큰 깨달음을 얻듯, 뛰어난 대장장이라면 저 드워프들의 망치질만 봐도 수많은 묘리를 깨우칠 수 있겠지요.”
“하아……?”
“그리고 저 괴이들이 두들기고 있는 광석, 저거 지구에서 발견되는 광물이 아닙니다. 뭐, 아마도 아다만티움이니 뭐니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광석이겠죠. 당연히 광석을 제련하여 무기로 만들어 내는 기술은 현대의 지구인이 아니라 저 드워프들만이 독점하고 있을 테고요. 저 광물을 제련하기 위해선 뛰어난 대장장이가 드워프들로부터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
“헉. 이런 우연이. 마침 제 눈앞에 한반도에서 역사상 가장 재능이 넘치는 대장장이. 즉, 삼한제일공(三韓第一工)이 있군요. 짜잔.”
“…….”
“짜자아안-”
“…….”
“…….”
“…….”
“…….”
“오. 그러니까. 말도 안 통하는 괴이 새끼들한테서 그냥 눈동냥으로 아다만티움인지 아다 새끼인지 뭔지, 하여간 지구상에 없는 광석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먹은 다음 네 새끼가 처사용하실 SSS급 무기를 찍어 주시라……?”
“이그젝틀리.”
“저기요. 제발 좀 뒈져 주십쇼.”
“아, 그거 지난 회차에도 들은 말입니다.”
“……?”
“저번 회차에선 그냥 억지로 어부바해서 여기까지 하루도 안 되어서 달려왔거든요. 그러니까 공방주가 제 목을 졸라서 죽이더군요. 자기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느냐고. 어디 한번 진짜로 뒈져 보라면서. 설마 진짜로 죽이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아무튼. 그래서 이번엔 어부바 말고 좀 더 마음 편하게 오시라고 요구르트 카트 괴이를 끌고 온 겁니다. 잘하지 않았습니까?”
“이 개씨발 미친 좆 또라이 새끼가――.”
목이 졸렸다.
이번엔 뒈지지 않았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