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84)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84화(8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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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 Ⅱ
신노아
3
노도하의 취향이 목 조르기 플레이였다는 비밀이 발각된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SG넷은 좀 시끄러워졌지만.
-익명: 지금 국도관리대에 대장 없다는데? 진짜임?
-[국도]사관: 진짜임. 우리 대장님 장기휴가 나가서 안 계신다.
└익명: ?
└익명: ?
└문학소녀: 그 기계한테 휴가라는 개념이 있었음??
-[국도]사관: ㅇㅇ. 그래서 관리대원들도 전부 놀랐다. 내가 알기로 국도관리대 창설된 이후 휴가는커녕 휴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화끈하게 21일 장기휴가 끊고서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지시더라.
└익명: 그 인간은 진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측할 수가 없네. 진짜 또라이인 듯.
-고려장: ?ㅋ
└[국도]사관: 뭐? 왜?
└고려장: 혼자서 아무 말 없이 딱 21일 휴가증 끊고 나갔다고? 혹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냐?ㅋㅋ
└[국도]사관: 그런데. 왜?
└고려장: ㅋㅋㅋㅋㅋㅋㅋㅋ
└[국도]사관: ?
-[삼천]마녀재판장: 흠…….
“흠…….”
때마침 거기까지 댓글을 읽었을 때 실제로도 내 옆에서 노도하가 침음을 흘렸다.
나는 스마트폰을 접어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복귀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이 광물이 신기해서 말이죠. 가볍습니다. 단단하고요. 이거, 정말로 지구에 없는 놈이군요. 아다만뭐시기라고 그랬는지……?”
“아다만티움. 실수로라도 헷갈려서 미스릴이라고 부르게 되면 큰일이 나니까 조심하십시오.”
“……? 두 단어 사이에 유사성이라곤 전혀 없습니다만…….”
노도하가 외알안경을 꺼내어 착용했다.
왼눈 시력이 유독 안 좋기도 했지만 일종의 자기 루틴이었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겠다는 표시.
축구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나가면서 잔디밭을 훑거나 신께 기도하듯.
“흐으음…….”
노도하는 한참이나 광산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드워프들이 무기를 제작하는 광경을 안경알에 비추었다.
까앙, 까아앙!
드워프들은 기계적으로 무구를 두드렸고, 무구가 완성된 순간 다시 똑같은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완성품은 현실에 남지 않아 스르륵-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졌다.
노도하는 손을 올려 그 공기의 잔해를 매만졌다.
“흐으으음……. 물건을 제작해도 곧바로 사라져 버리는 마을이라. 그렇지만 대장장이 실력은 눈동냥으로 배울 수 있을 것 같군요…….”
“어떻습니까? 뭐 좀 아시겠습니까?”
“글쎄. 딱히. 댁이야 저보고 대장장이니 뭐니 부르지만 전 그냥 보장구 기사… 보조기기 제작자에 불과합니다. 대뜸 무기를 만들어 달랍시고 요구하셔 봤자 곤란할 뿐입니다…….”
중얼중얼.
노도하가 시선은 드워프한테 고정한 채 내 쪽을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나는 다른 드워프의 손아귀에서 망치랑 집게를 뺏어서 건네줬다. 노도하의 하얀 손가락이 말없이 연장을 그러쥐었다.
“제가 뭐 도라에몽입니까? 팔다리 만들어 달라는 것도 빡센데 도로 만들어 달라, 국도관리대 조직해서 운영해 달라, 군벌 길드들 밸런스 조정해 달라, 씨이팔. 아주 사람을 찌르면 뭐 뱉는 자판기인 줄 아시나…….”
까앙.
노도하는 곁눈질로 드워프를 흉내 냈다. 까앙, 재료가 낯설었는지 망치가 살짝 빗나간다.
“흐음…….”
노도하의 입술 끝이 꿈틀거렸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처음부터 끝까지, 수 시간 동안이나 쭉 드워프를 모방했다.
그날 밤이 되자 노도하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형태도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밸런스도 전혀 잡히지 않은 잡칼.
하지만 밤하늘이 비춘 윤곽은 틀림없이 한 자루의 칼이었다. 달빛을 닮은 노도하의 가느다란 눈빛이 칼의 곡선을 훑었다. 시선의 물성(物性)이 너무 날카로워, 둘을 겹대면 도리어 칼이 깎여나갈 듯했다.
“흠. 잘 모르겠군요? 호미처럼 조금 더 만만한 것부터 따라 해 봐야겠는데…….”
그날 이후 노도하는 거의 식음을 전폐해 버린 채 드워프들을 한 명 한 명 따라 했다.
까아아앙-
나는 조수처럼 연장들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그녀를 보조했다. 우리 둘의 궁합은 찰떡이었다.
“…….”
괴이들을 피해 떠나간 인간들을 대신해서 고여 버린 드워프의 그림자들.
쇠퇴해 버린 광산촌의 광산.
아무도 없어 오직 둘뿐인 마을에서 까앙까앙- 쇳소리만이 영원토록 울리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수백 년 전.
노도하가 유일하게 나를 ‘장의사 각성자’가 아니라 다른 호칭으로 불렀던 때를.
4
“공방주님의 공방에 조수로 취직하고 싶습니다. 저를 뽑아 주십시오.”
“흐음…….”
53회차였다.
그때까지 내 회귀자 인생에선 국도관리대란 조직이 창설된 적 없었다. 단지 내 머릿속 기억의 궁전에 페이퍼 플랜으로 보관되고 있을 뿐.
이 무렵에 나는 ‘준정부 조직의 수장 자리’. 즉, 향후 한반도에서 제일가는 권력자의 위치에 어울리는 인재를 찾아다녔다.
당서린… 이 가장 먼저 떠오른 후보였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 내 편애일지 모르겠으나 여기서 더 당서린에게 부자유를 끼얹고 싶지 않았다.
나… 도 가능하겠지만. 나는 전선을 뛰어다니며 괴이들을 틀어막아야 했다. 항우가 소하를 겸하기란 어려웠다.
조건은 넷.
-권력욕에 의해 오염되지 않는 자. 다시 말해, 정신력 내지는 성격.
-그러면서 권력을 휘두를 줄 아는 자. 다시 말해, 유능함 내지는 본능.
-개개인의 산수적 집합으로서 공리(公利)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역학적 시스템으로서 실리(實利)를 추구하는 자. 다시 말해, 신념 내지는 철학.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내딛는 자. 다시 말해, 용기 내지는 담력.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
그러나 가깝다는 것이 아예 불가능은 아니어서, 수없이 많은 시간은 나로 하여금 ‘불가능’과 ‘불가능에 가까움’ 사이의 간극을 넘어가게 만들어 주었다.
테스트 개시.
-이야, 장의사! 이제 우리가 한반도에선 제일 잘나가는 패밀리 아냐? 저기 저 인천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 줘서…….
-뭐? 서울까지 도로를 잇자고? 그런 짓을 도대체 왜 해? 우리가 도로 깔면서 힘 낭비하면 그냥 다른 길드놈들 좋은 일 대신 해 주는 꼴…….
-의사야. 미안한데 좀 쉬어 주면 안 되겠냐? 네가 너무 잘나서 이 형님이 좀 말빨이 많이 떨어진다, 야. 잠깐만 휴가 보냈다가 돌아오면 내가…….
탈락. 보류. 탈락.
무수한 후보가 거론되었고 제외되었다. 나는 일일이 후보들의 지인, 동료, 친구, 파트너가 되어서 최소한 5년, 길면 10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다.
권력을 안겨 주고 권력을 강탈해 보았다. 명예를 선사하고 명예를 짓밟아 보았다. 그걸로도 불충분하다면 회차를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다각도에서 인간의 됨됨이를 관찰했다.
내가 구상한 국도관리대의 수장이란 그만한 관찰이 필요한 자리였으므로.
나는 거대한 해일처럼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훑고 지나쳤으며, 점점 더 수위를 높였고, 마침내 어느 외곬진 골목까지 귀착했다.
“조수라. 저희 공방에 항상 일손이 달리는 건 사실입니다만……. 굳이? 흐. 허우대 보니까 멀쩡히 다른 길드 들어가셔도 잘 먹고 잘살 관상이신데……?”
노도하(路濤河).
섬이 어울리는 여자였다.
회귀자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평생을 살아도 절대로 만나 볼 일 없는 유형의 인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미 사람들한테 잃어버린 팔다리를 대신할 보장구를 맞춤 제작해 주기로 유명했다. 나 또한 다른 회차들에서는 몇 번 신세를 진 적 있었다.
하지만 손님 대 가게주인을 뛰어넘어 가까운 관계를 수립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저희 아버지께서 평생 다리가 불편하셨습니다. 거동이 어려운 사람들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직업을 갖고 싶습니다.”
“아. 부친께선……?”
“작고하셨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괴이한테.”
“흐으음…….”
노도하가 흘리는 침음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울림을 지녔다. 마치 진동으로 사람을 톡톡 건드려 그 윤곽을 그려 보는 듯한 떨림.
초음파로 그물을 놓아 사물들을 파악하는 박쥐처럼.
“뭐, 그럼 남을 돕는 것보다 괴이들한테 복수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데…….”
“…….”
“하긴, 복수를 단념하라 종용하는 게 주제넘듯 복수에 전념하라 부추기는 것도 똑같이 웃기는 꼴이지요. 알겠습니다. 임시 견습이라도 상관없다면, 한번 마음대로 해 보시는 게……?”
이 세상이 섬이 아니라면 세상에 섬을 만들어서라도 살 여자였다.
노도하가 자신의 세계에 퍼트려 놓은 그물은 결코 넓지 않았으나 그만큼 촘촘했다.
무엇이 들어오고 무엇을 빠트릴 것인지, 노도하는 전부 다 끄집어올려 일일이 파악한 다음 결정할 위인이었다.
그건 노도하의 공방에 들어와 있는, 날 제외한 다른 견습들을 대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십쇼…….”
“네?”
“해고라는 뜻입니다. 귓구녕에 철심 박으셨나, 존나게 똑같은 말 반복하게 만드시네. 철심 빼 드릴까요……?”
“아, 아니. 공방주님! 잠시만요!”
해고당한 직원은 다리 한 짝을 잃은 손님을 응접한 뒤 점심때 ‘아직 젊은 새끼가 사지 하나 잃었다고 뭐 세상 다 잃은 표정이나 처싸고 있는지, 어휴, 씨팔 이런 세상에 멀쩡한 놈이 드문데’라고 읊조린 인간이었다.
해고 직원은 울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노동자 보호? 근로기준법? 그런 서양물 냄새 나는 단어는 동방예의지국에 존재하지 않아요.
“아이고, 어르신! 눈 내려서 길도 불편한데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대. 여기 따뜻한 봉다리 커피라도 하나 드시고 계십쇼.”
“아니, 이 귀한 걸. 고맙네…….”
그리고 나는 한반도 제일의 또라이 검후한테마저 아우 소리를 얻어낸 초특급 대(對)노인 결전병기였다. 당연히 공방의 주된 손님이었던 노년층을 접대하는 데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두개골을 까서 안쪽을 들여다보면 ‘경로우대’ 네 글자가 박혀 있을 노도하가 보기에 나란 인간은 참으로 바람직한 인재였을 터.
“장의사 견습생.”
“장의사 직원.”
“장 직원.”
“장 조수.”
나에 대한 호칭이 한 번씩 바뀔 때마다 노도하 공방주의 직원 목록도 한차례 물갈이되었다.
자기가 ‘더 이상 눈높이를 낮출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된 노도하는 진정한 부르주아로서 각성해 버렸다. 인력 관리, 고객 관리, 조직 내 파벌 관리, 수익 개선 등 귀찮은 일거리는 죄다 나한테 반쯤 떠넘긴 것이었다.
“조수.”
8년.
‘장의사 견습생’이란 6음절 호칭이 ‘조수’라는 2음절로 줄어들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2년당 겨우 1글자씩 덜어내진 셈이었으니 과연 친해지기 참 어려운 성격 아닌가.
“네, 공방주.”
“조수는 피난 안 갑니까? 거 왜, 북쪽 도시들 다 하나씩 괴이들한테 파먹혀서 슬슬 내려온다던데…….”
“공방주도 참. 부산에서 더 어디로 피난을 가겠어요?”
“일본이라든지, 중국이라든지. 아예 더 내려가서 동남아도 있을 테고. 뭐, 도망칠 장소야 세상에 언제든 무한하지 않겠습니까…….”
“어휴, 거기라고 멀쩡하겠어요? 전 됐습니다.”
나만 유별난 게 아니었다.
멸망을 맞이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의외로 ‘끝까지 도망치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회차에서든 상당히 많았다.
노도하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식 들으셨어요? 삼천세계가 최후의 결사대를 꾸려서 반격에 나선다는군요.”
“흐으. 성공할 거 같습니까……?”
“어렵겠지요. 문제는 성공을 해도 기약이 없다는 겁니다. 괴이들이 ‘몬스터 웨이브’를 이룬 시점에서 이미 끝났어요.”
“호오?”
“괴이들은 딱히 서로 친밀하지 않습니다. 유형이랑 성격 자체가 다르거든요. 그런데 그것들이 섞여들어서 군단을 이뤘다는 건, 알맞지 않은 유형이나 성격은 전부 배제된 채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융해되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아니, 생명체란 말도 오해의 여지가 있군요. 그냥… 암세포 덩어리입니다. 세계의 버그. 이번에 부산을 사수해 봤자 괴이들은 계속, 계속,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그저 사방으로 버그를 퍼트릴 겁니다.”
“흐으음…….”
노도하가 눈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요. 가끔 보면……. 조수는 정말로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뭐어. 딱히 상관없지만 말입니다…….”
다음 날, 한반도가 마지막으로 쥐어짜낸 결사대마저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괴이들에 집어삼켜졌다.
“조수.”
“네.”
“뭐 합니까? 8시 됐는데 문 안 열고. 이제 뭐 최선임이라서 빠졌다 이겁니까? 퇴직서 작성 도와드릴까요……?”
“아니고, 아닙니다. 공방주.”
달칵.
나는 유리문에 걸린 팻말을 [Closed]에서 [Opened]로 뒤집었다.
한반도 최후의 도시가 멸망하는 날.
오늘도 노도하 공방은 영업을 개시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