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86)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86화(8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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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 Ⅳ
신노아
5
까아아아앙-
꿈결처럼 가라앉았던 눈꺼풀 뒤의 세상을 쪼개트린 것은 바로 근방에서 들려온 망치질 소리였다.
백일몽(白日夢). 모든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는 종종 이런 일이 찾아오곤 했다. 방금 감았던 53회차의 눈을, 찰나로 흘려받아, 100회차의 눈으로 떴다.
“후우으…….”
숨소리가 흘렀다.
노도하였다. 노도하의 숨결은 절반쯤 눈부시게 백열(白熱)하는 초여름의 햇빛 속에 잠겼고, 절반쯤은 정선 동굴 폐광산의 군청빛 그림자에 파묻혔다.
“뭐, 어찌저찌 식칼 정도는 완성한 것 같군요. 흐으. 드워프인지 뭔지 이 난쟁이보다 제가 더 잘 만든 것 같습니다…….”
“…….”
신기루가 느릿하게 춤을 췄다.
사람이 흘린 숨 속에서 볕과 그늘, 그리고 다시 볕과 그늘 속에서 티끌들이 물결치고 있었다.
세상이 춤을 추려거든 한편의 빛과 한편의 그림자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주목과 맹목 사이를 가볍게, 한없이 가볍게 헤엄치는 눈의 깜빡거림이야말로 존재가 추는 최초의 춤이겠지.
“이제 슬슬 다음 레벨에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흠, 집게 정도가 딱 적당할 듯싶은데. 장의사 각성자. 마을 돌아다니면서 대충 적당한 거 만들고 있는 난쟁이 새끼 있으면……. 장의사 각성자? 이보쇼. 어이. 야. 새끼야. 제 말 듣고 있으신지……?”
“아, 네. 듣고 있습니다.”
참고로 노도하의 혀 위에서 ‘어이’가 ‘야’가 되고 ‘야’가 ‘새끼야’로 변환하는 데 3초도 안 걸렸다. 마법의 혓바닥이 아닐 수 없었다.
노도하는 호미로 자기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이죽거렸다.
“귀에 철심 박았습니까? 적당히 감 잡고 있으니까 지금 제가 만든 호미보다 좀 더 난이도 높은 단계를 찾아서……. 오?”
노도하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스르륵-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영혼이 없는 듯 모루만 두들기고 있던 드워프 괴이가 돌연 노도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명백한 이상 현상.
탓, 나는 순간적으로 노도하를 껴안고 뒤로 물러섰다. 갑작스러운 행동 때문에 노도하는 무심코 호미를 놓쳐 떨어트리고 말았다.
“조심하십시오. 공방주.”
“오. 아니, 뭐. 고맙습니다만……. 딱히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 것 같은데……?”
“적의 같은 감정을 가지지 않은 괴이들도 세상엔 수두룩합니다. 방사능이 유별나게 악의가 강해서 인간을 조지는 게 아닌 것처럼요.”
-…….
어찌 된 일인지 드워프 괴이는 우리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신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그곳엔 노도하가 떨어트린 호미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흐음……?”
드워프가 호미를 주워 들어 이리저리 살펴봤다. 꼭 0.5배속이 걸린 동영상처럼 느릿느릿하게.
-……, …….
후오오-
칠흑 같은 눈구멍과 입구멍으로 바람이 불었다.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그리고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드워프 괴이는, 마치 처음부터 바람으로 이루어진 존재였다는 것마냥, 자신의 구멍들로 바람을 쏟아내면 쏟아낼수록 점점 더 몸의 윤곽이 졸아들었다.
“호오……?”
-……, ……. …….
드워프가 토해 내는 숨결은 고스란히 노도하가 단조한 호미 위로 쏟아졌다.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가 물감을 칠하고 또 칠하듯, 드워프의 괴이는 제 숨소리로 호미에 마지막 붓칠을 덧붙이고 있었다.
쨍그랑.
호미가 재차 떨어졌다. 숨결을 다 토해 낸 드워프가 풍선처럼 쪼그라들더니 아예 사라진 것이었다.
“흥미롭군요. 이건 대체 무슨 괴현상일까요, 장의사 각성자……?”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광산촌을 알게 된 건 한참 전이지만 제대로 파고든 적은 없었거든요.”
“아하. 100회차나 회귀를 구르셨으면서 마을 하나의 정체도 꿰뚫어보지 못하셨다? 그건 직무태만 아닐지……?”
“죄송합니다. 지난 회차에 누가 제 목을 졸라서 죽여 버리지만 않았으면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깜빡, 하고 노도하가 눈썹을 조므렸다.
“사라지지 않는군요…….”
“예?”
“원래 이 마을에선 대장장이가 물건을 만들어도 곧 사라졌습니다. 제가 오늘 아침에 만든 식칼도 똑같이 사라져 버렸고요. 그런데 보십시오. 지금 시간이 지났는데도 제 호미는 멀쩡하지 않습니까……?”
“아.”
나는 턱을 짚었다.
“과연. 어쩌면 이 ‘태백산맥 드워프 광산촌’ 공허의 본질은… 대장장이 전용 연습장일지도 모르겠군요.”
“연습장……?”
“예. 전승을 계승하는 장소라고 해도 좋겠지요. 방금 노도하 공방주는 호미를 만들어서 저 드워프 괴이한테서 실력을 ‘인정’받은 겁니다.”
“오호라…….”
“이 공허를 클리어하는 방법도 대충 짐작이 갑니다. 광산촌엔 대장장이가 총 일곱 명 있습니다. 노도하 공방주가 한 명을 없애 트렸으니 이제 여섯 명이군요.”
“나머지 여섯 명의 장인들에게도 인정을 받는다……?”
“그렇습니다.”
나는 호미를 주워 들었다. 아다만티움 호미라는, 아마도 창작물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등장해 본 적 없을 호미의 날에는 기이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처음 보는 문자. 이해할 수 없는 언어. 그나마 비슷한 형태의 글자로 묘사해 보자면 이러했다.
[Dicentra Spectabilis]노도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흠. 이건 또 뭡니까? 저는 이런 글자를 새긴 적이 없는데…….”
“아마도 드워프 괴이가 자기 숨결로 조각해 놓은 글자겠지요. 뭐, 대장장이가 제작품에 새겨 넣은 글자야 하나밖에 더 있겠습니까? 자신의 이름일 겁니다.”
“아하……?”
노도하는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눈을 잔뜩 찌푸린 채 신중하게 [Dicentra Spectabilis]의 글자를 메모로 옮겨 놓았다.
“공방주, 그건 왜?”
“흐으…….”
노도하는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날부터 우리의 일과는 정해졌다.
우선, 남은 여섯 명의 드워프 대장장이들에게 각각 제작 난이도를 따져 레벨별로 분류했다.
작은 식칼을 만드는 드워프를 레벨1. 큼직한 대검을 만드는 드워프를 레벨6.
“그럼 어디 시작해 볼까요……. 얼른 집중해서 끝내 버리고 싶으니 장의사 각성자는 시다바리를 들어주십쇼…….”
“이야. 무한 회귀자를 시다바리로 부려먹는 건 공방주 정도밖에 없을 겁니다.”
“뭔 개소리입니까? 제 인생을 국도관리대에 홀라당 저당 잡아놔서 시다만 하게 만든 양반이…….”
“여기 잡아놨습니다. 공방주.”
“오, 좋군요…….”
까앙!
노도하의 망치가 불티를 튀겼다.
겉으로만 보면 알근육이 하나 없어 호리호리해 보이는 노도하는, 마치 실전압축근육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는 양 거침없이 모루를 두들겨 팼다.
동굴 아래서 긴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망치와 물아일체를 이룬 대장장이의 신형은 멀리서 보면 꼭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불꽃과 그림자.
적과 흑의 윤무.
-……, 후오오…….
그렇게 만들어진 식칼을 보고 레벨1의 드워프 역시 깊이 숨을 내뱉었다.
어느 이세계에서 건너왔을 괴이의 숨결은, 식칼이 이 세계에 계속 존재해도 될 것을 허락하였다. 괴이는 식칼에다 자신의 언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이름을 겨우 남겨 놓고 사멸했다.
“…….”
어쩌다 이런 괴이들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제아무리 오래 회귀를 반복한 나조차도 그 내밀스러운 비밀에 관해선 이런저런 추측만 할 뿐이었지, 결코 정답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나는 요리를 만들고, 목욕물을 준비하고, 잠자리를 확보하고, 주변의 이상현상을 경계하며, 노도하가 계속해서 ‘괴이 토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것이 이 공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어려운 역할은 아니었다.
53회차의 ‘조수’는 이미 8년이나 눈앞의 숙련공과 합을 맞추었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내 눈꺼풀 뒤편에 새겨져 있었다.
“흠…….”
다음 레벨. 또 다음 레벨.
노도하는 고작 6일 만에 마지막 대장장이의 관문에 도달했다. 재능충이란 단어는 이 사람을 위해 개발되었으리라.
그런데 어째선지 레벨을 넘어갈 때마다 노도하의 표정은 안 좋아졌다. 그녀가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이쪽을 노려봤다.
“왜 그러십니까?”
“생각해 보니 기분 존나게 나빠서요…….”
“……?”
“아무리 봐도 시다바리 노릇이 비정상적으로 능숙하지 않습니까아……. 집게 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딱 타이밍 좋게 건네줘, 망치 좀 두들기게 뭐 좀 고정해 달라니까 딱 편안한 각도로 잡아 줘, 아주 찾아오는 드론 배달 서비스야. 이럴 때마다 댁이 ‘네가 모르는 걸 나는 다 알지롱’ 무브 치는 음습한 회귀자라는 사실이 아주 잘 지각된단 말이죠…….”
“아니, 뭔.”
말문이 막혔다. 진짜 또라이 아닌가?
“…알지롱이라니. 평생 그런 말투를 쓴 적도 없는데다, 음습? 음습이요? 제가?”
“흐으.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깐깐하게 단어 하나에 얽매이지 마십쇼. 저보다 못해도 1,000살은 더 잡수셨을 노친네 오브 노친네, 그야말로 노괴이신 분께서 뭐 이리도 마음이 비좁으신지…….”
“지금 도대체 살초를 몇 번 연속으로 날리는 겁니까?”
“자, 됐습니다…….”
까앙.
노도하가 칼손잡이에 가볍게 망치질을 때리자- 철커덕, 미묘하게 비틀려 있던 요철이 딱 맞춰졌다.
레벨6. 대검의 완성이었다.
-……, …….
슬쩍. 노도하가 대검을 만들자마자 마치 지하철역 베이커리의 빵냄새를 맡은 직장인처럼 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장인의 마스터피스에 영원을 불어넣기 위해 손을 뻗었――.
“아. 기다리십쇼…….”
지만, 그 손은 그냥 허공만 휘젓고 말았다.
노도하가 대뜸 대검을 뒤로 젖혔기 때문이다.
-……?
“흐음.”
-……?
드워프의 새까만 눈구멍이 꼭 눈앞에서 츄르를 빼앗긴 고양이마냥 노도하를 올려다보았다.
노도하는 히죽 웃고 있었다.
-……? ……?
폴짝. 폴짝. 괜히 종족명부터 난쟁이로 설정된 게 아니어서, 드워프가 제아무리 발돋움을 해 봤자 노도하가 번쩍 들어 올린 대검까지 닿기엔 턱도 없었다.
나 역시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르긴 마찬가지였다.
뭐지, 이 사람? 드디어 인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 괴이들한테까지 인성질을 시전하기로 결정했나?
노도하가 이죽거렸다.
“저는 딱히 댁들을 성불시키는 데 관심 없습니다. 전혀. 댁들의 제자 노릇을 할 생각도 없고요. 이제 우리의 비전을 네가 이어받으라, 같은 식으로 멋대로 승천해 봤자 곤란한 따름입니다…….”
-……?
“솔직히 이딴 잡쓰레기 연장들, 필요 없거든요…….”
노도하는 여태껏 자기가 만들어 온 호미, 식칼, 단검, 낫, 쇠스랑, 롱소드, 대검 따위를 용광로에 넣어서 돌려 버렸다.
광산촌의 용광로는 순식간에 연장들을 다시 아다만티움으로 돌려 버렸다. 그렇게 말랑말랑해진 덩어리로 노도하의 망치가 단숨에 내리찍혔다.
까아아앙-!
본래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광물이 예쁘게 물결을 일으키며 성형되기 시작했다. 까앙! 까아앙! 쉴 새 없이. 자신이 흘리는 땀에 개의치 않고, 여기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듯.
“작은 망치.”
“아, 예. 공방주.”
“끌개.”
“여기 있습니다.”
“샌드위치.”
“옙.”
그녀가 요구할 때마다 나는 연장을 건네주고 주물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
우리 2인조의 작업을 드워프는 텅 빈 눈구멍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단조 내내 단 한 번도 이마를 닦지 않았던 노도하가 슥,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그리고 외알안경을 집어다가 앞주머니에 넣었다.
“후우으, 겨우 완성입니다…….”
완성품의 흔치 않은 모양새에 나는 잠깐 말문을 흐트러트렸다.
“이건…….”
지팡이검이었다.
사르릉- 노도하가 시퍼런 칼날을 직접 뽑아서 시연하였다. 장검(杖劍). 영어로는 소드스틱(swordstick)이라 불리는 것.
평상시엔 지팡이로 쓰다가 여차할 때 호신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선연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장의사 각성자. 여기 올 적에 무기를 만들어 달라 했었지요……?”
“…예.”
“흐으. 그래요. 이것이 제가 당신에게 바치는 무기입니다…….”
지팡이.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보조기기. 그렇기에 노도하의 손자국이 묻었고.
검. 사람이 무언가를 죽이기 위해 들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무기. 그렇기에 나의 손자국이 묻어나게 될.
너무나도 노도하답고 나다운.
“…….”
“잠시만 기다려 보십쇼…….”
노도하는 검신에 조각칼을 기대었다. 끼익, 하고 쇳소리가 미끄러졌다.
[Dicentra Spectabilis]그것은 일찍이 호미에 숨결을 불어넣었던 대장장이 드워프의 이름으로 추정되었던 이름.
노도하는 수첩을 펼쳐 곁눈질로 확인해 가며, 장검의 도신에다 일일이 문자를 옮겨 새겼다. 총 7명의 이름들. 이국, 아니, 이세계의 문자들이 아름다운 문신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도하(渡河).
노도하의 이름과 똑같은 발음인 문자가, 그리고 그녀가 운영했던 공방과 똑같은 의미인 글자가 새하얀 칼날에 빗방울처럼 흘러내렸다.
“자아, 여기 있습니다…….”
-…….
-…….
-……, …….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드워프 괴이의 모습은 사라졌다. 숨결로 영원을 불어넣는 작업조차 없었다.
단지 후오오오오- 하는 깊은 바람 소리가 광산의 협곡을 타고 불어젖혔다. 절벽에서부터 내려앉은 산맥의 숨결이 훅, 우리들 주변과 장검을 훑고 지나갔다.
기나긴 탄식과 같은 바람이 한차례 쓸고 지나간 자리에선 마을이 자취를 감추었다. 아다만티움 광석도, 용광로도, 돌로 지어진 건물들도, 드워프들이 쓰던 모루들도. 모조리 바람에 쓸려 사라져 있었다.
단지 거대한 동굴의 입구에 노도하와 나 그리고 한 자루의 검만이 남았을 뿐.
“…….”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공허란 본래 기이하겠지.
노도하는 드워프 광산촌의 실종에 곁눈질 한번 주지 않은 채 다만 나를 향해 장검을 건네고 있었다.
저녁. 그녀의 등 뒤로 새빨간 노을이 작열하여, 지금 내 눈앞의 장면을 각막에 인화(印畫)하고 있었다.
내가 마침내 손을 뻗은 순간, 장검을 쥐려는 순간, 영원히 침묵할 것만 같았던 노도하의 입술이 열렸다.
“정말로 가져갈 생각입니까……?”
“…….”
“좋은 검입니다. 다시는 만들지 못할 검이기도 하고. 당신이 앞으로 행할 사냥과 도륙에 이 검은 톡톡히 제 역할을 해 주겠지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는지……? 장의사 각성자. 이제부터 당신이 이루어 낼 업적에서 얼마쯤은 이 검 덕분으로 돌려 놔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업적, 위업, 성공과 실패, 살육, 그 모든 것의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갖는다고 해야 할까요……. 요컨대 이걸 잡으면, 당신은 이 검을 당신의 공범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끄덕.
나는 검을 잡았다.
“검의 이름은 도하로 짓겠습니다.”
“…흐으.”
노도하가 작게 웃었다.
노을이 그 미소와 수평을 이루어 붉은빛을 드리웠다.
“지분은 50 대 50입니다…….”
거참. 누가 악덕 고용주 아니었다고 할까 봐, 지독하기 짝이 없는 수익분배율 계약이었다.
6
후일담이 있다.
회차가 바뀌면 모든 것이 초기화되어 원래대로 되돌아가야 할 텐데, 어째선지 장검 ‘도하(渡河)’는 예외였다.
100회차부터 도하는 항상 태백산맥 중턱의 동굴 입구에 꽂혀 있었다. 이후 회차들에서 노도하는 결코 나한테 검을 만들어 준 적 없는데도 말이다.
“…….”
그야말로 괴이(怪異)라고 표현해야 될 법한 일. 다만 대신, 본래 동굴에 펼쳐져 있었어야 할 ‘드워프 광산촌’ 공허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쩌면 ‘광산촌’은 정말로 이세계에서 넘어왔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세계에서 흐르는 시간은 우리의 세계와 또 달라서, ‘도하’는 이곳의 시간 흐름에서 벗어나 고정 좌표처럼 박혀 버린 것일지도.
혹은 광산촌을 대신하여 이 도하라는 지팡이검 자체가 하나의 공허이자 괴이로 굳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광산촌은 증발해 버렸다. 얼마 안 되었던 아다만티움 광맥과 함께 영원히. 이제 그 공허의 정체에 관해 알아낼 일은 앞으로도 없으리라.
부산역 대합실에서 항상 파밍해 오는 은방울 이외에도 내 ‘전용 아이템’이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음? 잠깐, 장의사 각성자…….”
“왜 그러십니까?”
“그 지팡이 좀 보여 주십쇼…….”
노도하는 나에게서 휙- 거의 강탈하다시피 우악스럽게 도하를 넘겨받았다.
“흠…….”
그러고는 외알안경까지 낀 채 검을 이리 뚫어보고 저리 살펴보고, 철컥철컥 칼을 검집에 넣었다 뺐다 확인해 보는 것 아니겠는가.
노도하의 입에서 침음이 길게 흘러나왔다.
“…장의사 각성자. 이거. 이 검 말입니다. 어디서 얻은 물건인지……?”
“아. 한반도에서 제일 뛰어난 대장장이한테서 선물받았습니다.”
“한반도 제일? 흐음, 뭐, 그래 보이는군요……. 좋습니다. 이만한 명품을 제작했다면 그리 자칭해도 되겠죠. 그런데 한국인이라니. 누구입니까아……?”
다크써클이 찐득하게 드리운 노도하의 눈에서 그림자가 이글거렸다.
“왜요? 관심 생겨요?”
“그야…….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면 국도관리대로 부르든 어디에 섭외하든 아무튼 평생 무급 노예로 써먹어야 제맛이니까요…….”
이 말에 내가 어찌 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파안대소에 노도하가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 한 쌍의 새까만 섬, 그래서 외롭지 않은 쌍둥이섬이 나를 노려보았다.
“하? 웃어? 뭐가 웃깁니까? 뒈지고 싶습니까……?”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알려주라니 얌전히 알려 드려야지요. 공방주. 그 검을 만들어 준 사람은 저의――”
– 공범자. 結.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