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87)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87화(8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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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파자 Ⅰ
신노아
1
노도하는 나를 1,000살도 더 먹은 노괴라며 비아냥거렸으나 그 평가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원래 노도하는 하늘에서 가을의 빗방울이 예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흐으, H₂O들이 집단으로 자살하는군요(실제로 한 말)”라고 묘사하는 종자다. 혓바닥은커녕 척추까지 삐딱선을 타고 있는 독설가란 말씀.
어찌 그런 인간말종의 평론 따위에 일일이 연연하겠는가.
나 장의사를 표현하는 데 노친네·노괴 같은 연령차별적 용어는 결단코 적합하지 않다. 틀딱·꼰대·딸피처럼 아예 인류에 대한 증오와 멸시로 가득 찬 저주야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그보다는 ‘선배’ ‘선생님’ 정도의 중립적 호칭이 훨씬 더 적당한 것이다.
모름지기 선배(先輩)란 앞서서 걸어가는 등을 뜻하는바.
나 장의사는 회귀자로서 다른 사람들보다 늘 한 발짝 더 걸어가기에, 딱히 연공서열을 따지려는 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뭇 인간들의 선배에 해당한다. 왜? 내 말이 틀린가?
선생(先生)도 마찬가지.
생물학적 나이야 나보다 많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정신적 나이를 따졌을 때 나보다 어른인 사람이 어디 있나? 노도하 말마따나 1,000살을 훌쩍 넘긴 것이 나다. 그러니 난 모든 인간의 선생이지. 어때? 내 말이 틀린가?
“뭐라는 겁니까, 이 개꼰대 새끼가……?”
“…….”
하지만 정작 내게 ‘선배’ 혹은 ‘선생’의 호칭을 써 주는 사람은 너무도 드물었다.
아니, 드물기만 하면 괜찮은데……. 오히려 노도하보고 꼬박꼬박 ‘노도하 선생’이라고 불러주는 노인들이 더 많았다!
오호통재라.
이 어찌 탄식하지 않을쏘냐. 저 인간 말종이 선생이라니. 한때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이 땅에서도 삼강이 찢어지고 오륜이 망가진 것이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듯 혼세에도 현자가 있는 법.
“앗, 의사 선배님!”
한반도의 네크로맨서, 그러면서도 검은 옷이 아니라 언제나 백의의 민족답게 새하얀 세일러 교복을 고집하는 애국자.
나를 선배님이라 호칭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 겸, 백화여자고등학교 113대 학생회장, 겸, 백화길드 길드장.
“선배니임!”
가끔식 국도관리대 본부의 복도를 걷다가 나를 부르는 외침이 들리면 돌아볼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목소리의 주인은 탓탓탓- 활력이란 개념이 고스란히 음성화한 듯한 발소리로 달려와서는 빵긋- 웃는 것이다.
참 보기 좋다.
일찍이 한반도에서 좀비를 양산했던 회차에서도, ‘학원도시’를 만든 회차에서도, 마침내 세계 종말을 이끌어 낸 회차에서도, 저것과 정확히 똑같은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을 만약에 내가 몰랐다면 말이다.
어딘지 모르게 고정되어 버린 미소. 박제된 표정.
“장의사 선배님, 어디 가세요―?”
“…….”
이것은 이름에 관한 에피소드. 선배라는 호칭이 선생이라는 호칭으로 변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소외신 무간의 사도.
천요화에 대해 얘기해 보자.
2
나한테 ‘한반도에서 제일 엮이기 싫은 사람’을 딱 두 명만 꼽아 보라면 1위는 당연히 화산파의 장문인 검후 노인이었으며 2위가 바로 천요화였다.
고요리? 걔는 일단 과연 ‘사람’인지부터 정의해야 되니까 논외로 치자.
만일 89회차 때 요정군주로부터 얻어낸 정보만 아니었더라면, 내가 일부러 천요화한테 접근하게 되는 불상사 역시 없었을 거다.
-튜토리얼 던전 백화여자고등학교.
-그곳의 생존자, 천요화가 본 개체 ‘요정군주’의 선택받은 사도입니다.
나는 제임스 모리어티의 이름을 듣게 된 셜록 홈즈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혹은 본의 아니게 조조의 유부녀 취향을 목격하게 된 장수의 심정이라 해도 좋았다. ‘아, 지금까지 내 인생은 저 새끼를 잡아 족치기 위해 살아온 거였구나’라고 불현듯 존재의 깨달음에 눈을 뜬 것이다.
심지어 무간은 빌런의 품격으로만 따지자면 모리어티보다 한 수, 아니 두세 수 위였다.
셜록 홈즈의 각성 스킬인 관심법에 의해 곧바로 마구니임이 들통나 버린 영감탱이와 달리, 무간은 자그마치 89회차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애당초 부를 이름마저 없어 내가 무간(無間)이란 호칭을 지어 주지 않았던가.
천요화는 그런 흑막 중의 흑막, 빌런 중의 빌런으로 유일하게 이어지는 용의자였다.
내 마음속의 작은 탐정이 가열차게 눈독을 부라릴 수밖에.
그리고 당연하지만 내 탐정으로서의 격은 어느 영국인 마약중독 쾌락주의자보다 뛰어났다. 그 자식 시간도 못 돌리잖아.
“머리 색깔 보니 네가 천요화구나? 애들한테 얘기 많이 들었다.”
“어…….”
109회차. 일전에 묘사했다시피 나는 ‘백화여고 튜토리얼 던전’이 해금되고서 반년이 흐르자마자 곧바로 들어가서 천요화와 마주했다.
“엄청 똑똑하고 빠릿빠릿한 후배가 학생회장에 당선됐다는 얘기가 우리 동창회 네트워크에도 한 번 싹 돌았거든. 참고로 나도 학생회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동문회장이란다.”
“…….”
천요화, 함락 완료!
이후 이 네크로맨서 덕분에 ‘AI 판사’가 개발되어 한반도 전역에 보급된다든지 여러 좋은 효과가 생겨났으나……. 딱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아니, 사실은 별로 사소하지 않았다. 좀 심각한 문제였다.
“요화야.”
“네, 의사 선배님!”
“너 혹시 요정들이랑 친하니?”
“네에?”
“왜, 튜토리얼의 요정들 있잖아. 아니면 그런 요정들을 통해서 뭔가 더 위대한 존재와 연결된 적이 있다거나. 그런 경험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 주렴.”
“…….”
깜빡. 천요화가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요정이라뇨, 선배?”
“응?”
“저기. 뭔가 암호인가요? 아니면……. 소설? 에이, 선배도 참. 세상에 요정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너무 장난이 심하시다―.”
“…아니, 너야말로 무슨 소리냐. 백화여고에선 튜토리얼 던전이 발생했다. 그럼 당연히 튜토리얼의 요정도 있었을 테고. 너희는 자그마치 11개월 동안이나 외부와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간신히 튜토리얼을 클리어한…….”
“11개월? 음……. 아하하. 죄송해요, 선배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헉. 혹시 선배님……. 사이비 종교라거나 그런 거랑 엮이신 건 아니죠?”
“…….”
“세상에! 안 돼요! 저희 집안도 사이비랑 엄청 자주 엮여서 제가 잘 아는데,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그쪽이랑 관계되면 안 돼요!”
고도로 발달한 관상학은 관심법과 구별될 수 없었다.
1,000년이 넘도록 관상을 연구한 내 눈에 천요화는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비추지 않았다.
내 학문적 성과는 적중했다.
“꺄아악! 고블린이 나타났다!”
“……? 선배님, 왜 사람들이 늑대를 고블린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십족이 쳐들어온다! 맞서 싸우자!”
“으아아아앗! 지, 지진! 선배님, 지진이에요! 얼른 엎드리세요―!”
“…….”
천요화는 괴이를 괴이로 인식하지 못했다.
고블린은 ‘늑대’로 보였고 십족이 날뛰는 모습은 ‘대지진’으로 이해되었다.
다른 괴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한 번은 아예 요정을 생포하여 잡아와서 눈앞에 들이밀었더니.
“와아아! 고양이! 귀여워라!”
하고 요정을 껴안은 다음 뺨을 비비적거렸다. 요정이 “히엑” “놓으라는 거예요!”라고 언어를 사용해도 천요화의 귀엔 고양이의 하악질로만 들렸다.
망가진 것이었다.
뇌가. 인식체계가.
마치 머리에서 괴이라는 현상을 알아보는 부분만 따로 수술하여 제거해 버린 것처럼.
“…과연. 이러니 요정이나 무간에 대해 물어봐도 유의미한 정보가 안 나오는 거로군.”
“……?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선배님?”
“아무것도 아니다.”
철 지난 라이트노벨 주인공처럼 선택적 청각장애를 앓는 천요화를 보며 나는 눈썹을 모았다.
어쩌면 저 ‘인식오염’조차 무간의 농단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과연 진정한 흑막, 창작물에 흔히 빌런이랍시고 등장하는 주제에 사실은 ‘나를 알아봐 줘!’라며 만인에게 소리치는 관심종자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경탄해야 될까.
나는 천요화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조사했다.
이 아이의 본가가 세종시에 위치했으며, 인근에선 상당히 유명한 토호 집안이었고, 저택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사실마저 알아냈다.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기와집들.
대지 규모는 14,990평방미터. 대한민국의 정부청사가 내려다보이는 원수산(元帥山) 자락에 웅거한 대저택이었다.
지상은 조선 시절부터 내려오는 한옥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했으나,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은 지하에는 현대식 건축물이 숨어 있었다.
그렇지만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대저택에 문서들이야 좀 남았지만 생존자나 증인이 전무했으므로.
기껏해야 천요화네 아버지가 백화여고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는 것 정도?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화여고 자체가 이쪽 가문의 후원금으로 지어진 듯했다.
그렇다면 천요화는 단순한 학생, 단순한 학생회장이 아니라 사립학교 재단의 ‘아가씨’에 준하는 위치였으리라.
그 밖에는 지하시설에서 노자의 도덕경과 기타 도교 관련 책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게 특이사항.
여전히, 이런 정보와 정황만 갖고선 오리무중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 있다. 요화야. 네 가계를 잠깐 조사해 봤다. 아버지 성씨가 일천 천(千)이더구나. 그런데 너는 하늘 천(天)을 성으로 쓰잖냐. 혹시 어쩌다 성씨가 바뀌게 되었는지 알고 있니?”
“엣. 아니요? 완전 처음 듣는데요……. 애초에 저, 가족들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서. 게다가 가계 조사라니. 조금 집착이 무서운데요, 선배님…….”
…전략 수정이 불가피했다.
튜토리얼 던전을 자력으로 깨부수고 나온 ‘이후’의 천요화와 접촉해 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너무도 많은 정보가 유실되었다.
그 이전 시기의 천요화. 아직 백화여고라는 이름의 던전에서 헤매고 있을 시점의 천요화와 만나야만 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한 묘기.
“알겠다. 요화야. 다음에 보자.”
“네? 네, 선배님! 다음에 뵈어요!”
그리고 마침 나에겐 그런 곡예가 가능했다.
3
내가 인류 최초로 밝혀냈다시피 ‘튜토리얼 던전’은 다름 아니라 무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허, 요컨대 인간 실험실이었다.
다른 실험실들과 마찬가지로 튜토리얼의 던전 역시 외부인 출입을 까다롭게 통제했다. 바이러스 난입, 컴퓨터 도난, 데이터 분실 등 단어만 들어도 대학원생의 혈압이 오를 만한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
따라서 튜토리얼 던전은 클리어될 때까지 폐쇄를 유지했다.
성녀의 ‘천리안’도 이 폐쇄된 공간을 살펴볼 순 없었다. 외부의 인간이 억지로 랩실문을 열어 뜯는 만행 따윈 불가능했다.
그래. ‘인간’은.
“가자, 264번 요정.”
“호에에! 충성! 지도자 동지의 명령에 따르는 거예요……!”
물리적 바이러스를 막아 내는 데 진심인 실험실이어도 정신적 바이러스라면 또 얘기가 달라지는 법.
인류 역사상 최강의 바이러스에 감염당한 264번 요정은 힘차게 백화여자고등학교로 전진했다.
끼이익-
인간이라면 절대로 건너가지 못할 백화여고의 교문도 결코 우리의 행진을 막지 못했다. 마치 1832년 파리의 바리케이드처럼 교문은 혁명 동지를 알아보고 부드럽게 열린 것이었다.
(경) 서■대 2인 합격! (축)
낡은 현수막이 펄럭거렸다. 참고로 본인은 학력지상주의 및 학벌사회에 단호히 반대하므로, 저 현수막을 볼 때마다 서울대일지 서강대일지 서경대일지 가능성을 열어 두는 편이었다.
이미 가열찬 전투가 벌어졌던 것일까. 현수막뿐만 아니라 교문 이곳저곳이 파괴당했다.
우아한 한자로 교명이 새겨져 있어야 할 현판은 일부분 훼손당하여 백화여자고등학교(白花女子高等學校)가 아니라 ‘■■女子高等學校’만 적혀 있었다.
“동지! 전위대가 혈로를 뚫었다예요!”
“음. 전진하도록.”
학사 건물들을 둘러싼 화단에는 빨간 꽃무릇들, 일명 피안화라고 불리는 꽃들이 만개해서 흐드러졌다. 피안화의 언덕 너머로는 하이얀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을 향해 요정이 부르짖었다.
“전속 전진! 부르주아의 압제에 멸망 있으라! 장의사 지도자 동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거예요!”
우리가 교내에 발을 들인 순간.
“히에에엑?”
뿅!
침입자를 감지했는지 내부에서 헐레벌떡 경비 책임자가 뛰쳐나왔다.
물론 진짜 경비원은 저어기 교문 근처에서 축 늘어진 채 죽어 있었고, 그냥 새롭게 완장을 찬 ‘백화여고 튜토리얼 던전’의 요정이었다.
상대편 요정은 우리를 둘러보고 당황하여 눈이 똥그래졌다.
“요, 요정? 인간? 히엑? 어째서 인간?”
“호엑! 인간과 요정을 종족적으로 구분하다니! 사람이란 오직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만 구분될 수 있는 것……! 저것은 틀림없이 부르주아의 주구라는 거예요!”
“히엑? 히엑? 히엑?”
상대편 요정이 혼란에 빠졌다.
“보, 본인은 이곳의 튜토리얼을 담당한 16번 요정인 거예요! 사전에 약속도 없이 인간을 데리고 침입하다니 수상스럽기 짝이 없는 것……! 관등성명을 밝히라는 거예요!”
“본인은 264번! 천명이 본인에게 내림으로 인하여 번호마저 혁명적인 것! 가증스러운 부르주아의 앞잡이는 어서 단두대에 모가지를 헌납하라는 거예요!”
“히에엑! 반란! 반란이에요! 근위대! 근위대애애애!”
16번 요정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 마술지팡이를 꺼내든 순간, 우리의 264번 역시 마술지팡이를 쥐었다.
“어딜――.”
“히엑!”
펑!
요정들이 동시에 폭발했다. 폭파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여기엔 슬픈 사정이 숨겨져 있었다. 원래 모든 요정들은 정확히 동일한 전투력을 가진 채 생성되는 것이었다.
요정이 요정과 싸움을 결심하면 무조건 결말은 양상구패로 끝날 운명이었으니, 현대판타지가 아니라 무협물에 태어났다면 주인공은 못 되더라도 능히 ‘멋지게 죽은 조연 10선’에 선정될 만한 인재들이요, 삼국지에 빙의했다면 도원의 약속을 지킬 형제들이라 할 수 있겠다.
‘자아. 이러면 백화여고를 감시하던 무간의 눈이 일시적으로 사라졌을 터.’
이제부터 속도가 생명이었다.
나는 우선 경비원 시체로부터 제복을 벗겨서 트렁크 가죽가방에 욱여넣었다. 그리고 학교 건물로 진입했다.
건물의 구조는 이미 이전 회차들을 통해 숙지했으나 과연 공허답게 실시간으로 지형지물이 비틀리고 있었다.
-우오오오…….
-히, 히, 히, 히.
봐라. 입구에 발을 디뎠을 뿐인데도 온갖 기묘한 소리들이 방문자를 열렬히 환영하지 않는가.
이곳은 이미 백화여자고등학교가 아니었다.
‘학교괴담’.
화장실 귀신이든 7대 불가사의든, 아무튼 ‘학교’라는 장소와 엮인 괴이들은 모조리 구현되어 버린 마경.
공허 ‘학교괴담’에 사로잡힌 인원은 자그마치 750명에 달한다. 전원이 백화여고 학생들이다.
그리고 11개월 동안의 투쟁 끝에 마지막까지 살아남게 될 인원은… 고작 19명.
심지어 그중 2명은 얼마 안 가서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학교괴담’에서 투신자살이란 사실상 귀신들에 의한 타살이나 다름없단 점을 고려하면 저 2명도 희생자로 봐야겠지.
생존률 2.26%.
한반도 최악의 튜토리얼 던전.
하지만… 제아무리 괴이와 공허가 강력하다 해도, 아니,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도리어 비빌 구석이 생겨난다.
나는 이것을 괴이나 공허의 통점. 이른바 허점(虛點)이라고 부른다.
이 허점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공허의 난이도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저 오래된 격언은 세기말에 이르러 한층 더 진실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
외부에서 침입하여 들어온 존재, 그것도 백화여고 재학생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남자가 이용할 수 있는 ‘학교괴담’의 허점으로는 무엇이 제일 적합할까?
과연 어떤 위장색을 취해야 이곳에서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돌아다니는 ‘귀신’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으며, 심지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이상하지 않다’라는 인식을 이 공허에 강요할 수 있을까?
“…좋아. 찾았다.”
정답은 지금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서류에 적혀 있었다.
[백화여자고등학교 경비원 교대 명단]스스슥. 나는 바깥에서 들고온 사인펜으로 맨 마지막 칸에다가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얼른 학교 정문에서 챙겨온 경비원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머리에는 모자. 앞가슴에 ‘경비원 장의사’라고 이름이 새겨진 명패까지 부착했다.
환복 완료.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오랜만이군.”
마지막으로 경비원의 머스트 해브 잇템인 ‘손전등’까지 왼손에 쥐었다. 당직실 거울에 비춘 내 모습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저 장의사, 이번 회차에는 학교 경비원으로 취직하겠습니다.
바야흐로 ‘학교괴담’에서 가장 강력한 직업군이 강림한 순간이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