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88)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88화(8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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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파자 Ⅱ
신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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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괴이의 약점. 즉, 허점(虛點)을 알아냈다면 그다음부터는 무엇이 중요할까?
바로 기백이다.
고급스러운 언어로는 ‘생명력’이자 ‘정신력’이요 속된 말로는 ‘악바리’이자 ‘깡’. 자신의 정신상태를 해병에 일체화시킴으로써 그저 악으로 깡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이건 절대로 농담이 아니다.
가령, 제6인터내셔널 편의점을 운영했던 90회차 얘기를 잠깐 풀어 보자.
비록 일전에 따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때도 인간 손님뿐만 아니라 ‘비인간 손님’들도 곧잘 방문했더란다.
어느 한밤에 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문가에 걸어둔 전자시계가 01:59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손――.”
-으오어어어…….
“――님. 음, 편하게 살펴보십쇼.”
썩은내가 후욱 풍겼다.
새까만 귀신께서 그림자를 질철질척 흘려 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찌나 보법이 남다르신지 그만 내가 언제 편의점에다가 영화제 레드카펫을 깔아놨나 싶었다.
‘좆 됐군.’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 내려졌다.
혹시 질퍽이라는 포켓몬 아시는지? 아니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오물신이라든지.
딱 그거랑 비슷하게 생긴 귀신이 계산대에 도착하기 전에 편의점을 한 바퀴 스르륵- 돌아오고 있었다.
덕분에 내 정신도 좀 돌아 버렸다. 바로 5분 전에 정성스럽게 닦아 놓았던 가게 바닥은 귀신이 흘린 똥물로 아름답게 코팅되었거든.
-위자아앙…….
손놈이 말했다.
“예?”
-위자아앙, 하나. 신장…… 둘. 심장, 하나아아……. 폐, 하나. 손가락…… 셋. 눈아알, 하나아, 주세요오오오…….
“…….”
나는 전두엽에다 항상 상도덕을 투철하게 박아 놓은 자영업자였다.
이런 진상 고객을 대응할 때조차 ‘서비스 정신’ 다섯 글자를 잊어버리지 않는 정신력의 소유자란 뜻이었다.
그렇기에 한 점의 흐릿함 없이 방긋 웃을 수 있었다.
“손님, 맞을래요?”
-……?
“맞을래요? 맞을래요?”
귀신이 움찔거렸다.
나는 탁, 계산대를 올려서 오히려 귀신한테 한 발짝 다가섰다.
“지금 여기 바닥 보이세요? 네? 눈깔이 달리셨는지 제가 확인을 못 해 드려서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네.”
-우어어……?
“하수구 역류한 것처럼 죄다 새까매졌잖아요. 냄새는? 저희 가게에서는 식료품도 취급하는데 지금 손님의 몸에서 나는 악취가 너무 심해서 전부 상해 버렸잖아요. 이거 책임지실 거죠? 책임지실 거냐고요, 손님아. 왜 대답이 없으세요? 네?”
그렇다.
‘진상 고객’이라는 이름의 괴이가 있다면 ‘폐급 가게주인’도 있어야만 비로소 세상의 균형이 맞추어지는 법.
“뭐? 위장? 신장? 심장? 지랄하고 자빠졌네, 손놈 새끼가. 야, 내놔. 바닥 다시 깨끗하게 만들려면 청소비. 닦고 나면 물걸레 버려야 하니까 걸레비. 식료품 코너 다 갈아야 하니까 보상비. 무엇보다 내 제복에 네 악취가 묻었으니까 세탁비. 다 합쳐서 네 존재값이다, 새끼야.”
-우으어…….
“없어? 돈 없어? 없는데도 가게 들어와서 깽판 친 거야? 아, 씨! 야! 경찰 불러. 경찰 부르라고! 아니! 이제부터 내가 경찰이다, 시팔 거지 새끼야!”
-으어어어…….
사르륵.
그 순간 괴이가 증발했다. 가게에 사방팔방 뿌려 놨던 똥물과 악취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전자시계는 여전히 01:59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일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딱 하나였다. 설령 시간이 잠깐 머뭇거릴 만큼 강력한 괴이일지언정 허점에 대한 지식, 그리고 화끈한 기백만 있으면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는 것.
나 장의사.
사랑이 고프다며 장기휴가를 끊고 도망쳐 버린 어느 회귀자 놈과 다르게, 괴이를 향해 중지를 치켜드는 기백만큼은 언제나 넘쳐나는 인간.
언젠가 여러분들 스스로 루트를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이번 에피소드에선 공허를 돌파하는 전문가의 ‘괴이 공략본’을 보다 상세하게 소개해 볼까 싶다.
5
뚜벅. 나는 경비원 제복을 입은 채 당직실에서 걸어 나왔다.
왼손에는 손전등, 오른손에는 트렁크.
여기에 이어폰과 소형 마이크까지 장착했다. 괴이를 본격적으로 공략할 때의 풀장비 세트였다.
현재 내 기분만 따지자면 실로 자웅일대검을 거머쥔 유비. 조건만 갖추어지면 천하의 여포조차 두려움과 공포에 벌벌 떨게 하는 중원제일검이 강림했다.
-우오오오……, …….
-히, 히, 히, 히…….
내가 발을 딛자마자 1층 복도에 넘실거리던 귀신들이 은근슬쩍 멀어졌다.
당연했다.
‘귀신’은 기본적으로 인간 형태에 베이스를 둔 괴이였다. 그 나름대로 지성을 갖춘 귀신들도 더러 있었을뿐더러, 대부분 강자(强者)를 알아보는 본능쯤은 갖추었다.
애당초 ‘백화여자고등학교’가 제아무리 튜토리얼 던전 중에선 역대급 난이도를 선보인다지만 나는 117회차의 회귀자. 괴이들 입장에선 초보자 마을에 난데없이 크툴루가 강림해 버린 대참사일 터.
다만 그렇다고 모든 귀신이 도망친 건 아니었다.
배짱이 유독 두둑해가 아니라, 그냥 설정상 도망치기 난감한 애들도 존재했거든.
고로 내 발걸음은 제일 먼저 학교 남자 화장실로 향했다.
“음.”
찰박-
신발 밑창이 질퍽거렸다. 화장실 바닥에 0.5cm가량의 수위로 물이 차 있는 탓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희미한 락스 향기와 함께 묘한 악취가 느껴졌다. 사람 머리카락을 왕창 잘라다가 물에 절여 놓은 냄새.
수도꼭지는 멈춰 있었다.
‘이건 뭐 안 봐도 심령 스팟이로군.’
무엇을 주저하랴.
화장실엔 변소가 4칸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곧바로 3번째 변소칸을 똑똑똑, 아주 정중하게 두드렸다.
“하나코 씨, 계십니까?”
-…….
“하나코 씨?”
침묵.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흐으음.”
-…….
굉장히 수상쩍은 침묵이었다.
117회차의 숙련된 괴이 사냥꾼의 후각은 ‘여기 틀림없이 귀신 있음’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허겁지겁 수도꼭지를 걸어 잠갔다지만 이미 타일 바닥에 물이 차 있는 시점에서 아웃이었다.
나는 너그럽게 자기 자신을 신뢰해 주는 인간이었으므로 해답은 둘 중 하나. 즉, 귀신의 원본이 일본산이어서 외국어를 못 알아들었거나 의도적으로 내 말을 생까고 있었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전자는 불가능했다. 내 직감에 따르자면 후자였다.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버전에 따라서는 그냥 노크하는 것만으로는 출현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지.”
-…….
“자아. 이제부터 돈다?”
탁. 나는 화장실문을 걸어잠그고 변기칸 안에서 제자리 돌기를 시전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
“여덟, 아홉, 열, 열둘, 열셋. 끝.”
나는 문을 똑똑똑 두들겼다.
“하나코 씨, 같이 놉시다. 하나코 씨, 계십니까?”
-네.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이것이 괴이들의 숙명이다. 괴이들에겐 그들 나름대로 ‘법칙’이 있으며 이 법칙으로부턴 괴이들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괴이들은 그 법칙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족처럼 ‘물질적 파괴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괴이는 그 반대급부로 ‘물질적으로 파괴당할 수 있음’이란 허점을 지닌다.
편의점 귀신은 ‘축시(丑時)가 되면 어느 편의점에서든 손님으로서 나타날 수 있다’. 얼핏 봤을 때 공간의 제약마저 뛰어넘은 것처럼 보이지만 거꾸로 말해 ‘어디까지나 손님이라는 역할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라는 허점을 가진 것이다.
화장실의 하나코 귀신도 마찬가지.
하나코 귀신은 ‘아무도 없는 화장실의 3번째 칸이라면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다’. 일종의 지박령인 셈이다.
따라서 화장실의 3번째 칸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특히나 주문을 외운 사람들에게 하나코 귀신은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야만’ 한다.
만일 대답을 안 하면? 자기가 3번째 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토벌 완료.
화장실 귀신은 떨리는 목소리(물론 내 인식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는 음산하기 짝이 없는 귀신 보이스였다)로 중얼거렸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아아……?
“아하. 빨간휴지 파란휴지랑 콜라보된 케이스로군. 별로 드물진 않지.”
-보라색 휴지 줄까……?
“오.”
괴이가 타협안을 제시해 왔다.
어떤 괴담에 따르면 ‘보라색 휴지’를 요구할 경우 하나코가 스스로 물러나더라는 썰이 있었다. 일종의 공략법, 퇴치법이지.
그런데 방금 귀신은 딱히 내가 공략법을 외우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나서서 휴전협정을 제안한 것이었다.
살짝 감동할 뻔했다. 이 얼마나 친절한 귀신이란 말인가.
“보라색 휴지도 나쁘진 않지. 그런데 이거 어쩌냐.”
-……?
드르륵!
나는 미리 가져온 가죽 트렁크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이 트렁크 가방도 괴이였는데 그건 언젠가 따로 얘기하고.
지금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트렁크 가방 속에 ‘빨간색 휴지말이’와 ‘파란색 휴지말이’가 떡 하니 들어 있었다는 것.
“난 빨간휴지 파란휴지 다 가져왔는데?”
-…….
“포스트 코로나 시대 아니냐. 요즘처럼 개인위생이 중요해진 시국에 개인용 휴지쯤은 들고 다녀야 안심이지. 안 그래? 하나코야. 너도 가질래? 빨간휴지 줄까? 파란휴지 줄까?”
-보라색 휴지…….
“보라색 휴지는 없어, 새끼야!”
콰아아앙!
나는 곧바로 오러를 일으켜 진각을 밟았다. 화장실 변기통이 산산이 깨부숴지면서 하얀색 도자기 파편이 튀었다.
콰르르르- 물이 역류했다. 하지만 역류한 건 H₂O뿐만이 아니었다. 빨간색 망토를 뒤집어쓴 여자아이 모양의 귀신도 덜컥 솟구쳤다.
나는 히죽 웃었다.
“찾-았-다.”
-……!
귀신의 형체가 와들와들 떨었다.
이게 다른 괴이들과 달리 인간을 베이스로 삼은 ‘귀신류’들의 아주 좋은 점이었다.
강약약강(强弱弱强). 강한 놈 앞에선 약해지고 약한 놈에게만 한없이 강해지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특징을 이 귀신들도 대부분 보유했다. ‘화장실의 하나코 씨’처럼 인간의 특색이 짙으면 짙을수록 이런 특징이 두드러졌다.
물론 대다수의 귀신들은 ‘물리 면역’이라는 귀찮은 특성 또한 겸비했으나 상관없었다. 물리 면역도 잘만 하면 얼마든지 파훼할 수 있으니까.
예컨대 이렇게.
“잡았다.”
-……! ……!
휘릭. 오른손에는 빨간색 휴지, 왼손에는 파란색 휴지를 휘감고 하나코 귀신의 대가리를 콱- 잡았다.
귀신이 제아무리 물리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지만 ‘하나코’는 아무튼 ‘빨간휴지’와 ‘파란휴지’라는 단어를 통해 변기 사용자한테 물리적 변화. 즉, 죽음을 야기시킨다.
이것이 허점의 사용법이다.
괴이의 세계에 일방통행 따윈 없다. 다 쌍방통행로다. 저쪽에서 간섭할 수 있다면 당연히 이쪽에서도 똑같은 방법만 통하면 간섭할 수 있다.
그 결과가 바로 눈앞의 풍경. 내 양손에 바이스그립으로 꽈아아악- 묶인 채 대롱대롱 매달린 화장실 귀신이었다.
-……! ……! ……!
“빨간휴지 줄까, 파란휴지 줄까?”
-…….
“정답은 두 개 전부였습니다. 이번 달에 1+1 세일 행사 중이거든요, 고객님.”
콰직!
귀신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면서 이윽고 펑- 터졌다. 그러자 온몸이 빨간색 액체로 변해서 형체도 없이 녹아내렸다.
설령 인간의 형상을 닮은 괴이였다 해도 동정심은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화장실 귀신이 퇴마되자마자 밝혀졌다.
타일 바닥에 차 있던 물이 어느덧 빨갛게 물들더니, 곧이어 댐에 잠겼던 마을처럼 시체들이 드러났다.
“…….”
이 화장실에만 시체의 숫자가 7구.
다른 화장실까지 다 합치면 가볍게 수십 명에 달하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백화여자고등학교 튜토리얼 던전’에 갇혀 버린 학생들은 괴이에게 있어 한없이 먹음직스러운 약자였을 테니.
나는 시체들을 한곳에 모아 뒀다. 공허가 깨질 때까진 아마도 썩지 않을 터.
“음……?”
그런데 시체를 정리하는 도중에 수상쩍은 물건을 발견했다.
“…부적?”
화장실 여기저기에 부적이 숨겨져 있었다. 빨간휴지 파란휴지 귀신이 튀어나온 변기통의 뒷면, 청소도구함, 세면대의 아랫면까지. 자그마치 3장이나.
만일 200회차 이후의 나였다면 부적에 담긴 의미를 낱낱이 해석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 당시의 나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은 읽었을지언정 과연 주역(周易)까지 독해하진 않았다.
그래도 기원을 바치는 부적과 저주를 얹히는 부적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다. 애당초 부적에 적힌 글자의 의도가 너무 명명백백하여 알아보지 못할 수 없었다.
死. 死. 死. 死.
화장실이 온통 물폭탄을 맞은 와중에도 부적들의 시뻘건 글자만은 뱀의 껍질처럼 형형하게 번들거렸다.
“흐음.”
꽤나 불길했다. 보통 저주 부적을 파는 점집에서도 망(亡) 정도만 써 주지 사(死)는 정말 웬만해선 안 박거든.
나는 부적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빨간색 글자를 손톱으로 긁어 내어 냄새까지 맡아 보았다.
“…진짜 사람 피인데. 이거.”
사람의 혈서로 빚어 낸 부적. 저주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저주였다.
도대체 왜 학교 화장실에 이런 부적들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나는 의문을 접어다가 마음속의 옷장에도 넣은 뒤, 일단 부적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트렁크 가방에서 종이와 테이프를 꺼내 1층 남자 화장실문에 붙였다.
[순찰 완료]일종의 ‘안전 구역’이란 표식이었다.
이 근처에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배회하는진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생존의 힌트가 되어 주리라.
“좋아.”
나는 재차 이동했다.
‘학교괴담’에 진입하자마자 굳이 화장실 귀신부터 퇴치한 것엔 다 이유가 있었다.
고대에서부터 ‘소변을 보는 장소’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터부로 여겨졌다.
제사를 지내는 신당이 햇빛(陽)의 중심지이고 화장실은 그림자(陰)의 중심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장소이건만 그럼에도 여전히 더럽다고 꺼려진다.
공허에서 ‘음식을 먹는 장소’, ‘잠을 자는 장소’와 더불어 ‘소변을 보는 장소’가 언제나 주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말하자면 ‘학교괴담’의 핵심축 중 하나.
이에 비해 과학실 귀신이나 미술실 귀신, 음악실 귀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깔봐도 과언이 아니다.
‘천요화나 생존자 그룹과 바로 합류하면 좋겠다만 이렇게 왜곡된 공허에서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기란 요원하니…….’
뚜벅. 내가 쥔 손전등의 빛이 새까만 복도를 훑었다.
비정상적으로 길어지고 복사되어 기괴하게 비틀려 버린 학교 공간. 창밖의 하늘은 새빨갛게 물들었고, 자작나무들이 흰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깨부수며 복도에 삐죽삐죽 튀어나왔다.
수많은 괴이들이 저 하얀 그늘 속에 잠복하고 있으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주머니의 [경비원 장의사] 명찰을 고쳐맸다.
‘그럼 천요화랑 합류할 때까지, 가는 길마다 마주치는 괴이들부터 싸그리 족치면 되겠군.’
부르르르…….
기분 탓인지 몰라도 그 순간 ‘학교괴담’의 공허가 떨어 댄 느낌이 들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