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89)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89화(8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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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파자 Ⅲ
신노아
6
나는 어디까지나 내 경험을 썰로 가공하여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이른바 이야기 소매업자다.
고로 자기 자신을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로 착각해 버릴 만큼 뇌가 맛이 가 버리지 않는 이상에야 내 썰은 필연적으로 1인칭 화법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도 아주 가끔씩은 이야기 도매업자들. 즉, 3인칭 화자들이나 1인칭-돌려쓰기-화법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상상해 봐라. 전지적 관점에서 노도하를 음해하고 비방하는 일은 얼마나 즐겁겠는가?
정말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스토리 최종장에 신적 존재로 진화하기] 스킬이나 [빙의] 능력이 없으므로, 3인칭 시점에서 현상을 묘사하는 일도 다른 사람의 1인칭 시점에 몰입하는 일도 불가하다.
다만……. 무슨 짓을 해도 아무런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대상들.
가령 괴이들에 대해선 얼마든지 ‘역사왜곡’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해 보았습니다.
-경비원이 온다! 경비원이 온다!
괴이들이 두려움에 떨며(물론 실제로는 이런 대화가 벌어졌을 리 없겠다만) 그림자 속에서 소리쳤다.
-인간 따위에게 공포를 느껴야 한다니! 괴이로서 수치스럽지도 않는가!
-멈춰라! 가면 안 된다! 그렇게 참지 못해서 돌격해 버린 놈들은 전부 돌아오지 못했다!
-괴이 만세! 무간의 영광을 위하여!
-미술실의 아그리파 귀신, 격파! 로스트! 생명반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바보 같은 놈. 대리석으로 만들어져서 물리 면역도 없는 주제에 뭘 믿고 나섰다는 거냐!
-이럴 수가. 음악실의 베토벤 초상화 귀신도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초상화에 [교향곡 원툴]이라는 글자가 적힌 채 사망했습니다! 베토벤의 입가에선 피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생물실의 인체표본 귀신도 내장이 전부 조각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심장에는 [부정맥], 신장에는 [당뇨], 혓바닥에는… [노도하]? 정체불명의 글자들이 저주처럼 적혀 있습니다!
-아니! 말도 안 된다! 우리는 한반도에 도래한 튜토리얼 던전 중 최강, 학교괴담이다! 그런데 아군의 에이스들이 저항조차 못 해본 채 궤멸한다고?
-적영(敵影), 접근 중!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아! 손전등 빛! 저 빛이! 우리의 눈을!
-막아라! 어떻게든 사수해!
-경비원이 온다! 경비원이 온다!
-아아아아아아! 이야! 이야!
이상, 즐거운 역사왜곡 시간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역사를 왜곡해 본들 진실이 사라지진 않았다.
여기서 진실이란 교사(校舍)의 1층부터 3층까지 웬만한 귀신들이 싹 다 내 손에 청소되었다는 것이다.
탐색 2일 차.
나는 3층 교실에서 ‘방과 후 교실에 홀로 남아 버린 학생’ 귀신을 퇴치한 뒤, 계단참에 알아보기 쉽도록 알림판을 설치했다.
[순찰 완료]이로써 학교 건물의 저층부는 전부 안전구역으로 변했다. ‘학교괴담’이라는 공허에서 다시금 ‘백화여자고등학교’라는 현실로 복귀한 것이었다.
“정말로 중요한 건… 4층인가.”
내가 중얼거렸다. 혼자서 공허를 답파할 경우엔 이처럼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혼잣말을 주고받는 것이 제법 요긴했다.
“자의식을 점검하기 위한 방편이지.”
만일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중얼거림이 흘러나온다거나, 그런 중얼거림이 ‘내 말’처럼 느껴진다면, 바로 근처에 세뇌 계열의 괴이가 등장했다는 징조거든.
물론 혼잣말에도 단점이 있었다.
“4층으로 향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아마 그곳에 사로잡힌 생존자들이 가장 많을 터.”
“그래. 슬슬 나타날 줄 알았다.”
콰즉!
나는 곧바로 지팡이검 ‘도하’에 오러를 깃들여서 내 그림자를 찍어 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악!
지금처럼, 지나친 혼잣말은 자칫 잘못하다 ‘도플갱어’ 류의 괴이를 불러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 놨다면 도리어 일부러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림으로써 도플갱어를 ‘낚시’할 수도 있었다.
내 지팡이에 찍힌 그림자가 꿈틀꿈틀거리며 요동쳤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문명의 이기 덕분이란다. 괴이야.”
스윽, 나는 왼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냈다. 경비원 제복 옷깃에는 소형 마이크가 달려 있었다.
나는 실시간으로 자신의 혼잣말을 이어폰으로 엿듣고 있었다. 마이크와 이어폰은 각각 스마트폰에 연결되었으며, 일부러 낮은 음질로 목소리를 재현했다.
만일 ‘이어폰에서 전혀 다른 거리나 음질로 녹음되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면? 주변에 정신세뇌 계열의 괴이가 등장했다는 증거가 되어 준다.
그리고 도플갱어를 퇴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성녀의 이름을 말해 보도록.”
-……? ……?
“대답하지 못하는군. 너는 내가 아니다.”
부글부글부글-
그림자가 끓어오르더니 팟! 하고 방울이 터졌다. 방울들이 전부 터지고 나자 내 그림자는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36회차에 성녀의 본명을 들은 이후 나는 다시는 그녀와 통성명하지 않았다. 이번 회차만을 살아가는 도플갱어로선 성녀의 본명을 알 도리가 없었으리라.
그러니 ‘나’와 ‘너’는 달랐다. 동일성의 부정. 허점을 찔린 괴이로선 더 이상 존재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붕괴한 것이었다.
“싱거운 놈. 나를 세뇌하려거든 고요리 정도는 불러와라.”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나는 이어폰과 마이크를 다시 장착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품속에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좋아. 여기는 경비원 장의사. 현재 1층, 2층, 3층을 거쳐 4층으로 향하고 있다. 이상 무. 계속 야간순찰을 진행한다.”
-라져…….
“그래, 잡았다.”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무전기의 괴이도 발견 확인.
즉시 핸드폰 녹음기로 ‘이상 무, 계속 야간순찰을 진행한다’라는 대사를 무한 반복으로 틀어놓았다.
다만 속도를 좀 높여서 10배속으로.
당연히 내 말에 반응해야만 하는 무전기의 속도도 다급해졌다.
-라져, 라져, 라져, 라져.
“오. 제법 버티는데?”
속도를 20배속으로 쭉 올렸다.
-라져, 라져, 라져라, 라, 져라라라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퍼어어엉!
60초가 지나기도 전에 무전기가 제멋대로 폭발했다.
‘제대로 대답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어 버린 무전기’ 따위는 존재할 가치가 없었기에.
“여기는 경비원 장의사. 4층으로 올라가고 있다. 계단에는 이상 무. 계속 야간순찰을 진행한다.”
-…….
어디에서도 대답은 없었다. 만에 하나를 위해 벽에 설치된 학교 스피커를 쳐다봤지만 그곳도 잠잠했다.
퇴치 완료.
이것으로 이제 웬만한 세뇌 계열의 괴이들은 소탕했다 봐도 무방했다.
“흐음.”
사방이 고요해진 계단참에서 힐끗, 위층을 올려다보았다.
사(四)층.
사(死)층.
계단이나 엘리베이터가 존재하는 공허에서는 ‘13층’ 및 ‘지하 4층’과 더불어서 가장 위험한 지대.
한낱 ‘사’라는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냐며 코웃음 쳐서는 안 된다. 그러다 이집트의 미라처럼 콧구멍으로 뇌까지 흘려보내는 수가 있다.
‘세상에 말로 장난치는 것’. 바로 그 언어 행위야말로 인간의 본질 아니던가.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언어유희는 코미디와 시(詩)의 기본을 이룬다. 언어로써 세상을 지배하려 드는 인간 종족에게 있어서는 주술의 포석이기도 하다.
현명한 독자들이라면 이미 눈치챘으리라.
그렇다. 바로 이것이 내가 나 자신을 장의사라는 이명으로 호칭하길 고집하는 이유이자 ‘성녀’의 본명을 절대 언급하지 않는 까닭이다.
단순히 본명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주술에 악용될 위험이 있다.
노도하나 당서린처럼 양지에서 활약하는 인물이라면 모를까. 나와 성녀처럼 ‘정체를 숨겨야’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존재들은, 마치 몸을 음지에 가려 두듯 자신들의 이름마저 이명에 숨겨 놓아야 한다.
“어디 보자.”
나는 트렁크 가방을 열어 ‘돈’을 꺼냈다.
돈의 종류는 크게 분류해서 두 개였다.
한쪽은 금화와 은화가 가득 들어찬 주머니. 다른 한쪽은 온갖 나라의 지폐들을 이백 장씩 묶은 지폐 더미.
나는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제단으로 삼아서 금화와 은화 그리고 지폐를 나란히 올려 놨다. 내 이빨에도 은화를 한 닢 물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은 채 합장했다.
“…….”
스르륵.
한차례 스산스러운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눈을 뜨자, 계단에 올려놓은 돈들이 싸그리 사라져 있었다.
“퉤에-”
반면에 내 입에 물린 은화는 멀쩡했다. 나는 은화를 뱉어서 다시 트렁크 가방에 쑤셔넣었다.
“거참. 저승사자 나리가 노잣돈 한번 거하게 받아 처먹으시는군.”
죽음의 영역인 사(死)층, 요컨대 ‘저승’에 무탈히 입장하려거든 내 나름대로 성의를 표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노잣돈이었다.
‘어떤 종류의 괴이’가 죽음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노잣돈의 종류와 액수는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방금 내가 제단에 올려놓은 돈들은, 지폐뿐만 아니라 금화와 은화마저 ‘세계 각국에서 발행했던 동전’들이었다. 그리스의 은화랑 베네치아의 금화도 있었다.
그런데 이곳 ‘학교괴담’에 존재하는 ‘저승’은 국적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몽땅 노잣돈을 새벼갔다.
탐욕이 덕지덕지 묻어나오는 괴이란 소리지.
하지만 이건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정반대로 아주, 아예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희소식에 가까웠다.
“그럼 받아처먹은 값을 뱉어 보실까.”
실로 간단한 거래였다.
노잣돈을 과하게 받아먹으면 받아먹을수록 이쪽에 ‘특혜’를 내려줘야만 했다.
괜히 저승의 뱃사공인 카론이 호구여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무조건 뱃삯을 은화 1닢으로 통일해 놓은 게 아니었다.
형평성 논란에 휩싸여 뱃사공 직위에서 사퇴하라는 항의 시위를 미리미리 피해 두기 위한 현명함이 카론에겐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저승의 괴이’는 금화와 은화의 역사적 가치를 제하더라도 최소 1억이 넘어가는 액면가를 노잣돈으로 처드신 것 아니겠는가? 심지어 아직 죽지도 않은 생자(生者)한테서 말이다.
이 정도면 어느 종교에서든 어떤 신화 체계에서든 당장 파직당해도 하소연할 길이 없는 뇌물 수수죄. 횡령. 특혜 논란.
나는 투철한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괴담’에서 가장 위험한 영역을 향해 당차게 걸어갔다.
뚜벅.
뚜벅.
계단을 다 올라서 4층에 발을 내딛자마자 과연 최악의 영역답게 즉시, 사방에서 붉은 살점 덩어리들이 꿈틀거리며 이쪽을 향해 달려――.
-…….
――들지 못했다. 붉은 촉수들은 일제히 내 코앞에서 정지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내 몸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마냥.
도르르르…….
어두운 복도. 지옥의 아가리처럼 새까만 복도 저편에서 금화 하나가 쪼르르- 소리를 내며 굴러와서는 툭, 내 발치를 쳤다.
나는 싱긋 웃었다.
“안 받는다.”
-…….
“환불 안 해 줘.”
-…….
도르르르르, 도르르, 도르르르.
금화들과 은화들이 차례차례 복도 너머로부터 굴러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발끝에는 수많은 동전들이 쌓였지만 난 눈꼽만큼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돈으로 안 받는다고 말했다. 어차피 네놈도 인간들한테 돈을 내지 못하면 대신 팔다리 따위로 목숨값을 지불하라고 뻗댔을 거 아니냐?”
-…….
“요즘 이자율이 빡세서 이거 고리대금이 어디까지 늘어날지 모르겠네. 조금 이따가 봅시다.”
뚜벅. 환불 요청을 무시하고 걸어가자, 주변을 붉게 물들었던 살점 덩어리의 환상이 일제히 사라졌다.
단지 평범한 학교 복도가 보일 뿐.
아직 ‘저승’이 완전히 퇴치된 건 아니었다. 그 증거로 복도 창문 바깥은 여전히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으며, 군데군데 피로 적셔진 손자국들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내 주변만큼은 ‘저승’의 저주로부터 보호받으리라.
그 때문일까.
탓, 탓, 탓, 탓, 탓-
나무 복도가 울렸다. 경쾌한 발소리. 그럼에도 무게중심을 잃지 않은 무게감. 몸의 숨이 실리고 살의 근육이 실린, 살아 있는 유기체만의 리듬.
괴이가 아니라 인간의 발걸음.
“흐야아아아압-!”
그 생체의 리듬은 육성에서도 확인되었다. 나무 복도에서 하얀 교복을 입은 인간이 순식간에 뛰어오더니 점프하여, 나를 향해 오른발을 내뻗지 뭔가.
훌륭한 점프력. 멋진 발차기였다.
나는 머리를 숙이며 상대방의 신발을 잡았다. 흔들. 검은색-빨간색의 에어 조던 농구화가 멈칫했다.
발차기에는 힘차게 달려오던 천요화의 중량이 그대로 실려왔지만 나는 손바닥의 오러로 능숙하게 갈무리했다.
“흐아앗?”
상대가 당황했다. 허공에서 주황색 포니테일이 찰랑거렸다.
일순 눈이 마주쳤다.
“――이, 인간? 엇? 어른?!”
나는 곧바로 상대방을 복도에 내리꽂아 버리는 대신, 허리가 꺾이지 않도록 가볍게 복도에 착륙시켰다.
“흐악! 힉! 갸학!”
상대는 균형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다가 결국 복도에 넘어졌다. 하지만 속도를 내가 다 죽여 줬기에 딱히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아야야야……. 자, 잠깐만. 어른? 진짜 어른이세요? 어, 그러니까… 아저씨, 이, 인간 맞으시죠?”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인간이 맞다.”
“아아앗……! 드, 드디어! 구하러 와주셨군요!”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나중에 만났을 때와는 인상이 퍽 달랐지만 앞주머니에 부착된 이름표는, 눈앞의 인물이 곧 내가 찾아다니던 상대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후일 한반도 최강의 네크로맨서로 성장하게 될 각성자.
대한민국의 마지막 전국체전 농구 여자 고등부 준우승팀 출신. 주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백화여자고등학교 113대 학생회장. 소외신 ‘무간’으로 이어지는 유일무이한 증인.
천요화(天寥化).
하늘 천, 쓸쓸할 요, 될 화. 이름 한 구석에 적요함을 품고 있는 아이.
마침내 최악의 튜토리얼 던전에서 나의 목표물과 조우한 순간이었다.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