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97)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97화(97/151)
──────
답파자 XI
신노아
천요화.
天寥化.
――아주 오래전, 그 이름의 문자를 보았을 때 이미 나는 징조를 느꼈을지 모르겠다.
하늘 천. 쓸쓸할 요. 될 화.
단순히 풀이하자면 ‘쓸쓸하게 되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붙여 준 이름이라기엔 적잖이 기이하지 않던가.
그래도 요(寥)에는 ‘쓸쓸함’이란 의미만 담기지 않았다. ‘텅 빔’, ‘공허한 하늘’, ‘고요하다’라는 뜻도 있었다.
혹, 어떤 작가들이 그저 조용하다고 써 두기만 해도 충분한 구절에서 구태여 멋을 부려 ‘적요하다’고 표현한 경우를 보았는가.
그 적요(寂寥)함의 ‘요’가 바로 이 아이의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였다. ‘쓸쓸해지다’가 아니라 ‘고요해지다’라고 해석한다면 크게 이상할 것까진 없었다.
그래. 그렇게만 해석한다면.
주의.
여기서부터는 천요화에게도 말한 적 없는 비밀, 아직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정보, 후일담 격의 TMI이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므로 조금은 걸러들어도 좋다. 나는 다만 이런저런 회차에서 내가 긁어모은 조각들을 보여 줄 따름이다.
첫 번째 조각.
108회차에 내가 검후 노인네와 함께 중국에 다녀왔음은 모두 익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검후가 화산에 붉은 꽃을 심기 바빴던 무렵에, 나는 잠깐 주위를 외유했다.
그때 내가 묘사했던 바를 고스란히 발췌하여 옮겨적자면 다음과 같았다.
――――――――――
내가 괴이 사냥을 떠나는 범위도 조금씩 넓어졌다. 섬서성뿐만 아니라 하남성까지 확대된 것이었다.
‘튜토리얼 던전’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는데, 하필 하남성의 영양진이란 곳에 역대급 던전이 발생했지 뭔가.
여기에 도교 계통의 사이비 이단 테러리스트들까지 엮여서 세기말이 따로 없었다.
――――――――――
하남성에 등봉(登封)이란 곳이 있다. 소림사가 위치한 도시로 유명하다.
거기서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영양진(潁陽鎭)이란 동네가 나온다.
영양 천 씨.
천요화가 속한 가문의 본관이다.
두 번째 조각.
본디 한국의 영양 천 씨는 임진왜란 시절 조선으로 파병 온 명나라 장수로부터 유래한다.
장수는 홑몸이 아니라 일가를 거느리고 조선에 귀화했다.
대다수의 후손들은 현지에 완벽히 적응하여 아무런 탈 없이 섞여 지냈지만, 내 가설에 의하면, 그중 극히 일부의 일족은 ‘전통 신앙’을 계속해서 유지했다.
중국의 정통 신앙은 도교다.
도교의 시조라 할 수 있을 노자는 허남성 출신으로 녹읍현(鹿邑縣)의 사람이다. 노자는 하남성 낙양에서 일했고 하남성 함곡관에서 도덕경을 저술했다 알려졌다.
녹읍현과 함곡관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영양진, 천 씨네 일가의 고향은 위치한다.
도교의 발생지. 오래전부터 신앙의 인력에 놓인 지역.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한반도로 넘어온 천 씨들 가운데 유독 천요화네 일족의 신앙만은 변질되었다.
본래부터 그러했는지 아니면 나중에 그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자료가 없으니까.
그들은 세종시에 평방 14,990미터의 대저택을 지었다. 지하에는 종교시설이 숨겨져 있었다. 백화여고를 설립하여 신앙의 자제들을 입학시켰다.
교단의 지도자 격인 천요화네 아버지는, 딸아이의 성을 천(千)에서 천(天)으로 갈아치웠다. 이 일족에게 그들의 근본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신을 불렀다.
어떤 신이 강림해 주기를 원했는진 알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단순히 사이비 교주의 얄팍한 사기 행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기말의 공허에서 주술이란 환상이 아니라 실재였다. 수백 명의 인원이 수백 명의 자식들을 바쳐 시행한 주술은 특히나 그러했다.
공허의 저편에서 어떤 존재가 그들의 기도를 들었다. 응답했다.
그리하여 무간이 도래하였다.
세 번째 조각.
적혜요혜(寂兮寥兮).
도덕경에는 그런 구절이 있다.
인간들이 만물을 구별하기 이전, 온갖 사물들의 형태와 이름이 만들어지기도 이전, 하늘과 땅이 차마 나뉘기도 전부터, 세계는 존재하였다.
그러한 세계를 가리켜서 노자는 ‘적요하다’고 말했다.
그다음 구절쯤엔 이런 말이 이어진다.
오부지기명(吾不知其名).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적요한 그 세계는, 세계의 그 적요함은, 삼라만상이 아직 형태를 갖추기 전의 무언가라서 ‘이름이 없다’.
자아.
그럼 이제 다시 눈앞의 학생회장, 천요화라는 이름을 들여다보자.
순전히 겉으로만 드러난 뜻을 풀이하면 ‘고요해지다’가 되니까, ‘아, 얘 부모님은 딸이 커서 장래에 히키코모리가 되길 바랐나 보구나’라고 납득해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 부모란 사람, 특히 아버지는 도교 계통에서 변질되어 버린 이교 집단의 대사제였다. 도덕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를 모를 리 만무했다.
그러니까 요(寥)의 근원을 알고 난 뒤에 천요화라는 이름을 해석해 보면… 굉장히, 이상해지는 것이다.
쓸쓸해지다.
고요해지다.
하늘이. 텅 비어지다.
이름이 없어지다.
익명. 무명.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는 그 적요함의 하늘로. 자신도 버리고 본명도 버리고, 아무것도 구별하지 못하는 세계로 귀천한다.
이름의 언어유희.
…이 얼마나 악독한 주술이란 말인가.
천요화(天寥化). 불길하기 짝이 없는 울림. 도저히 사랑하는 자식에게 붙여 줄 만한 이름이 아니다.
차라리 악신을 향해 공양한 산 제물한테나 어울리는 이름이라 봐야 옳겠지.
더 지독한 사실은, 그 주술이 성공해 버렸다는 것이다.
시전자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어.
모든 형체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런 형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소외신. 무간이자 백귀야행. 백화.
…혹은, 천요화.
그녀는 산 제물이었고 백화여고는 제단이었다. 백화여고는 그녀만을 위한 제물이었으며 그녀는 신을 위한 제단이었다.
이것이 내가 추론한 지금까지의 해답편.
왜 하필이면 무간이라는 소외신이 백화여고라는 장소에 강림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회귀자의 주석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천요화가 말했다.
“분명히 저 혼자만으로는 이겨 내지 못했을 거예요. 으응, 이겼더라도, 아마 틀림없이 저 자신을 잃어버렸을 거예요.”
그렇다 하더라도 너는 16명의 친구들을 구했다. 언제나. 1회차부터 117회차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천요화가 말했다.
“환상이었다지만, 어머니랑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전하지 못했던 말을 전할 수 있었어. 비행기 재밌었어요. 석양을 보여 줘서 고마워요. 아저씨가 타 준 커피. 맛있어요.”
한반도 유일의 네크로맨서, 라고 불렸던 각성자. 백화여고 학생회장, 이었던 아가씨. 가족에 대한 반항심으로 농구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정말로 좋아하게 된. 공허라는 감옥에서 빠져나가면 자신의 본래 이름과 과거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어서, 1회차부터 117회차까지 쭉, 단 한 번도 이름으로 불린 적 없었던. 이 무간지옥의 살아 있는 제물이자 제단이었던.
그리고 조금 쓰고 조금 달콤한 크림라떼를 좋아하는.
천요화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 같은 괴이 따위한테 나를 건네줄 수 없어.”
-…….
“너는 내가 아니야. 너는 내가 타고 지나친 비행운을 몰라. 너는 내가 본 노을의 이름을 몰라. 너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의 감촉도 몰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해. 네가 알지 못하는 곳까지 내가 가 버렸고, 가고 있고, 가 버릴 거니까.”
-…….
“나는 천요화千謠話야. 천 개의 이야기를 노래하겠어. 내가, 내 인생을, 백 가지 이야기 따위로 만족할 것 같아? 너의 열 배나 되는 용량으로, 크기로, 색깔로 살아갈 거야. 왜냐하면-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응. 나를 도와준 사람이 존재해. 내가 도와줄 사람들이 존재해. 그러니까―― 너는, 너의 좁다란 유리색 하늘로 꺼져 버려. 천요화天寥化.”
깜빡. 덜컹.
눈보라가 쳤다. 유리창은 없었다. 탁자도 탁자 위의 전기포트도 커피잔도 모조리 하얀 눈보라에 휩싸였다.
시간의 수레바퀴가 움직였다.
피안에서 차안으로.
앞으로, 0 걸음.
-아아.
소외신, 무간, 백화.
백색의 세계에서 천요화(天寥化)가 미소를 지었다.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눈보라가 바스라지며 소리를 내었다.
-어찌, 이다지도 아름다운――.
눈보라가 이쪽으로 향해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이것이 마지막 발버둥이라는 확신이 든 순간, 나는 지팡이검을 뽑았다.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드워프의 용광로에서 제련한 장검. 도하(渡河)였다.
일섬.
무간의 백색 눈보라를 내 묵빛 파도가 갈랐다.
세상의 거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을 무간에게 오직 이 ‘검’만은 예상하지 못한 이레귤러.
왜냐하면 도하는 지금이 아닌 다른 회차에서 공방주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작품이었기에.
이세계 제일의 대장장이한테서 수학한 삼한 제일의 대장장이가 만들어 준 걸작. 이미 그 자체로 괴이나 다름없는 무구.
내가 지닌 최강의 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차에선 도하를 사용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검집에서조차 뽑지 않고 아껴 두었다.
오로지 이때만을 위하여.
-――――.
눈보라가 갈라지고 또 갈라졌다.
무간이라 불렸던 존재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유리 감옥에 투옥되었다.
세계의 백색이 모조리 눈보라로 변했다. 눈보라는 다시금 하얀 모래 알갱이들로 변했다.
사막의 모래들은 소용돌이치고 또 소용돌이쳐서, 어느덧 천요화의 손바닥에 들어와 있었다.
모래시계.
오직 하얀 모래로만 채워진 유리벽의 세계가 천요화의 손에 들려 있었다. 투명한 막이 반짝거렸다. 두 칸의 유리로 이루어진 수레바퀴.
무간(無間)은, 시간으로 수속되었다.
“아.”
천요화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안개는 없었다. 학교괴담의 새빨간 하늘도 없었다. 가시나무와 같은 자작나무숲도 그림자를 머금은 피안화 언덕도 없었다.
하늘은 붉었다.
괴이의 붉음이 아니라 현실의 붉음. 태양이 지구의 각막에 부딪혀서 발하는 색조. 노을. 이 세계가 아직 살아서 피를 흘리고 있다는 증거.
운동장 한복판. 하늘을 올려다보는 천요화의 주변으로는 98개의 모래시계가 꽃잎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이 천요화의 백귀야행이었다.
(경) 서■대 2인 합격! (축)
팔락.
교문에는 헤진 현수막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때 문명을 기렸던 그 깃발 아래에서 바람의 메아리가 울렸다.
“요화야아아아!”
“경비원 아저씨이이!”
백화여고의 학생들이었다. 아이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 손짓이 석양에다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꽤나 멀어 보이는 풍경이었지만.
그럼에도 피안에서 차안까지의 거리만큼이나 멀지는 않았다.
“…아저씨.”
천요화의 옆얼굴을 돌아보았다. 노을빛이 미끄러지며 주홍색 머리카락을 빗질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물어보는 걸 깜빡했는데요.”
“뭐든 물어보렴.”
“왜 저희를 구하러 오신 거예요?”
아마도 그것은 마지막 순간이었다.
누군가를 세뇌하는 능력을 타고 각성한 천요화를, 내가 결정적으로 세뇌할 수 있었던 순간. 이름을 받는 순간. 삶의 방향을 노정시킬 수 있는 정류소.
우스꽝스럽지만 만일 내가 여기서 ‘너를 도우라는 신탁을 들었단다’라고 말했다면, 천요화는 강렬한 맹신자가 되었겠지. ‘국가가 너희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면 그야 둘도 없는 애국자가 되었을 것이다.
어떤 대답이든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어떤 방향이든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을 테니까.
나는 잠깐 1초 정도 고민했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대답들을 돌려주었다.
“네가 내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무간은 도저히 나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괴이였어. 무간의 무녀로 선정된 인간의 조력이 필요했다. 요화 네가 백귀야행을 사역할 수 있었던 까닭은, ‘천요화’라는 존재가 무간과 어느 정도 동일시되었기 때문이다. 너를 포섭해서 무간을 토벌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최선의 공략법이었고, 사실상 유일한 공략법이었다.”
“…그렇구나.”
천요화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시원해졌다. 아마 방금 내 대답을 자기 인생의 행로에 관한 ‘설정’으로 받아들인 것이겠지.
“네, 그럼――.”
“그리고 한반도 역대 최악의 튜토리얼 던전이 대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야.”
“……?”
“또 그동안 지겹도록 얼굴을 보고 지내 온 요정들의 실상을 진짜 끝까지 추적하고 싶었기 때문이지. 과연 소외신급 괴이를 정말로 물리칠 수 있는가에 대해 시험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 당연히 아직 백화여고에서 잔뜩 자기 세뇌를 끝마치고 나온 어떤 또라이가 원래는 어떤 인물이었을지 순전히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기, 아저씨? 그게 무슨…….”
“요화야.”
나는 미소를 지었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이유를 찾는 것은 좋아.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네가, 되도록 하나의 이유가 아니라 조금 더 많은 이유들로 살아가면 좋겠구나.”
“…….”
“내리는 비 한 방울에도 죽음을 결심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면 똑같이 한 줄기의 음악이 살아갈 이유가 되어 주기도 할 거란다. 누군가를 도울 때조차 하나의 이유로 돕기보단 여러 이유를 만들어 두렴. 이득. 목표. 탐구심. 자기 시험. 단순한 여흥. 호기심. 그 천 개의 이유들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유이고 동시에 너를 살아가게 해 주는 이유란다.”
그것은 천요화가 무간에게 했던 선언과 정확히 똑같은 말이었다.
설령 아무리 진실이라 하여도 사람이 자신의 말을 스스로 확신하기 위해선 그 말을 똑같이, 그렇지만 다른 방식으로 말해 주는 타인이 언제나 필요했다.
드르륵.
나는 트렁크 가방을 열어 특별히 깨끗하게 보관해 두었던 서류철을 꺼냈다.
“그건…….”
“선물이란다. 던전 클리어 보상이라고도 할 수 있지. 원래는 튜토리얼의 요정이 챙겨 주는 건데 여기 담당자를 내가 없애 버려서. 자아.”
이 시대엔 보기 힘든 고급 종이에 깔끔한 서체로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내 글씨였다.
나는 붓펜을 꺼내어 거기에 몇 글자를 더한 뒤 천요화에게 건네주었다.
――――――――――
[졸업장]성명: 천요화(千謠話)
위 사람은 고등학교 3개년의 전 과정을 이수하였고 뛰어난 학습 능력을 선보였기에 이 졸업장을 수여함.
――――――――――
“…….”
천요화는 양손으로 졸업장을 받아들고 내려다보았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림자가 운동장 바닥에 가라앉았다.
빈칸으로 남겨 두었다가 막 채워진 이름란이 밝은 그늘처럼 맨들거리고 있었다.
“졸업 축하한다, 요화야.”
거기서 천요화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일일이 묘사하는 것은 아무래도 신사답지 못한 서술이리라.
단지 고등학생이 졸업식에서 울어 버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의 풍경이라는 사실만 고지해 두고 싶다.
보스전.
괴이 무간(無間).
이명: 무간지옥, 학교괴담, 백귀야행, 백화(百話), 백화(白化), 4자금기, 헤라클레이토스의 화환, 백룸, 천요화(天寥化)
위험등급: Lv.5 소외신급(Alienation)
토벌 완료.
20
후일담이 있다.
아니, 사실 후일담이 아주 많다. 무간과 관련된 이야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언제든 뒤로 미루어 둘 수 있을 거다.
오늘은 ‘졸업식’이 끝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있었던 일을 짧게 묘사해 볼까 한다.
국도관리대 본부의 복도를 걷던 도중이었다.
“앗! 선생님!”
저 뒤편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탓탓탓탓- 하고 뜀박질 소리가 이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전직 농구부 에이스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와선 끼이익-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경례 자세를 취하는 것 아니던가.
“요화구나. 관리대엔 무슨 일로 왔니?”
“아핫- 슬슬 세종시에서 저희 길드의 독점적인 지배력을 인정받아야 될 것 같아서요. 관리대장이랑 회의하고 오는 길이에요!”
“과연.”
참고로 천요화는 여전히 하얀색 세일러 교복을 입고 있었다. 천요화뿐만 아니라 백화길드… 백화여고 졸업생들로 이루어진 집단 전체가 그랬다.
뭐, 옛날부터 제복은 구성원들 사이에 동질성을 키우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구태여 이제 와서 ‘백화여고’라는 강력한 정체성을 포기할 이유도 없겠지.
아니면 그냥 당서린이 마녀 코스프레에 집착하듯 노도하는 교복 코스프레에 꽂힌 걸 수도 있고. 원래 마법 계열 각성자들이 유독 패티시즘이 강하다.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선생님이라니? 왜 하던 대로 아저씨라 부르지 않고?”
“헤헤……. 저보다 일찍 태어나서 저보다 많이 경험하신 분이잖아요? 그래서 존경심을 담아 선생님! 이라고 부르려고요. 왜요? 싫으세요?”
“아니, 싫진 않지. 그런데 경비원이었다가 교사로 직업을 갑자기 변경하자니 좀 낯설어서 말이다.”
“아하하. 무슨 소리세요. 저한테 졸업장도 주셨잖아요!”
천요화가 뒷짐을 지고 비스듬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에 새겨진 웃음기는 117회차 이전의 ‘천요화’가 지은 표정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생기 넘치고 발랄한 미소.
“앞으로도 쭉 잘 부탁드려요!”
나는 과연 천요화의 호칭 변경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 에피소드를 시작했을 때 미리 말했다시피.
“――저의 선생님!”
이것은 선배라는 호칭이 선생(先生)이란 호칭으로 변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으므로.
– 답파자. 結.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